<photo by 느티신부님>
+찬미예수님!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서운동 순교성지 성당이 설립연월이 1933년으로 올해로 86년이 됐죠.
감곡에 매괴 성모성지 성당 다음으로 오래된 성당입니다.
물론 이 성당 건물은 1962년에 세워졌어요.
이 서운동 성당의 좋은 보물 같은 것을 그동안 살면서 두 가지는 찾아냈어요.
물론 여기 교우 분들이 제일 큰 보물이지만, 눈에 보이는 보물 두 가지를 찾았는데
첫 번째는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던 성수대 위에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성수대 위 무릎과 발가락이 다 닳아 반들반들 거리는 정말 오래된 십자가.
성수를 찍고 작은 분은 주님의 발가락을 잡고, 큰 분은 무릎을 잡고 한참 기도한 다음에 성당으로 들어오세요.
이 십자가가 서운동 성당의 큰 보물입니다.
두 번째로는 2층에 있는 스테인 글라스입니다.
저 글래스는 전 세계에 몇 개 되지 않아요. 안과 밖 두 겹으로 되어 있어요.
안쪽에는 원죄 없으신 성모마리아의 아름다운 모습(Conceptio)이 들어 있고
미국 동부 브루클린에서 만들었다는 것이 선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전공한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라요.
성지가 되었으니 여러 가지 안팎으로 성지다운 모습을 가져야 됩니다.
영성교육도 중요하고 순례자들 맞을 준비도하고 외부도 성형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달 은총의 밤에 오실 때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마치 옛날 배티 왔던 분들이 바뀐 뒤에 와서, ‘그 전에 왔던 데가 배티 아니었나봐.’ 하듯
5월에 오면 ‘서운동이라고 알고 왔는데, 여기가 서운동이 아닌가봐.’ 할겁니다.
이 주변에 있는 모든 공사는 부활 전에 끝납니다.
폐원된 유치원을 리모델링을 해서 순례자들이 모텔에 가서 주무시지 않아도 됩니다.
또 일찍 오시면 차 한 잔 드실 수 있는 카페도 꾸밉니다.
저한테 요즘 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몇 건 왔어요.
내용은 ‘유투브나 옛날 신부님 강론 들으면,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의 조각(보목)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데
어떻게 신부님한테 가게 된 겁니까?’
그런 질문을 종종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어떻게 한국 땅에 보목이 오시게 됐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거슬러 오래 전 지금부터 1700전으로 올라갑니다.
그 당시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로마황제가 된 다음에 종교자유를 선포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가 그 유명한 헬레나 황후죠.
헬레나 황후는 신심이 돈독하셨는데, 자기 아들 황제에게 청원을 했습니다.
‘죽기 전에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셨던 그 땅을 밟고 싶다. 순례하고 싶다.’
헬레나 황후는 수행원들과 말과 마차를 타고 먼 길, 로마에서 예루살렘까지 갑니다.
그러나 황후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갈바리아 산에 가니,
이교도들이 십자가 흔적은 깨끗이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비너스 신당을 세워놓았던 겁니다.
그래서 황후는 그 신당을 부수고 신당 밑을 파라고 명령합니다.
많은 일꾼들이 달려들어 파 내려가는데 어떤 이가 십자가가 나왔다고 소리 지릅니다.
파보니 십자가 세 개가 서로 엉켜있었습니다.
짐작하건데 3개 중 하나는 우도, 하나는 좌도,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고 하는 명패가 떨어져있어 알 길이 없었죠.
엉겨있는 십자가 세 개를 펼쳐놓고 주교와 신자들이 올라와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어느 것이 주님의 십자가인지 찾을 수 있는 분별을 주십시오.’
예루살렘 주교님은 예루살렘의 환자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십자가에다가 손을 대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에 있는 십자가에 손을 대었더니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을 주님 십자가를 찾았다 했지만, 헬레나 황후는 ‘그것만으로 안 됩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십자가에 손을 대니 첫 번째와는 전혀 반대야.
만지는 사람마다 뒤로 자빠지고, 상처가 더 깊어지고.
첫 번째 십자가는 누구의 십자가였을까요? 우도의 십자가였던 겁니다.
회개하고 죽은. 예수님이 공적으로 ‘오늘 나와 같이 천국에 갈 것이다.’
천국에 확실히 간 첫 번째 사람. 그분 이름을 전해오는 말에 디스마스라고 그럽니다.
전설에 의하면 아기예수님 때 이집트로 피난 갈 때 도적떼를 만났습니다.
그 도적떼의 두목이 바로 디스마스입니다.
그 아기에게 손을 대려하자 광채가 나서, 그 두목은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당신이 다음에 만날 때 저를 꼭 구원해주십시오.’
우도는 예수님과 그때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아기예수님 때 이미 본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의해서 ‘너는 나와 함께 천국에 갈 것이다.’
다시 말하면 회개는 치유를 불러옵니다.
회개하는 자 옆에 있으면 저절로 치유가 됩니다.
개망나니로 살다가 하느님을 체험하고 회개한 사람 옆에만 가도 기분이 좋아지죠.
만지자마자 뒤로 자빠지는 십자가는 당연히 좌도의 것이었죠.
그 좌도는 죽는 순간까지 교만을 떨었습니다.
교만은 자기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오는 사람한테 무수한 상처를 줍니다.
자, 마지막 십자가 하나가 남았죠.
마지막 십자가에다가 환자들이 손을 대었더니 첫 번째와 같이 치유가 일어났어요.
헬레나 성녀는 치유만으로는 부족하고 죽은 이를 살려내야 된다합니다.
그래서 시체 팔을 펴서 십자가 위에 뉘고 간절히 기도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썩은 송장 냄새는 짙은 장미향기로 바뀌고
뼈와 가죽만 남았던 볼에 살이 붙으면서 눈을 뜨며 일어났다는 겁니다.
물론 저는 그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헬레나 황후는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십자가를 찾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헬레나 황후가 유명한 성녀 헬레나에요.
헬레나 성녀는 그 십자가를 그대로 로마로 옮겨 원형그대로 보존됩니다.
그러다 약 400년 전에 십자가를 가장 큰 것은 로마에 두고 작은 부분으로 나눕니다.
큰 것은 2cm, 작은 것은 3~ 4mm정도로 나뉘어 전 세계로 내보냅니다.
어디로 내 보내느냐?
첫 번째, 교황청령 직속 수도회 본부로 내보냅니다.
베네딕도 수도회 총원, 프란치스코 수도회 총원, 갈멜 수도원 총원 등에 보냅니다.
그리고 바실리카(Basilica), 주교좌 성당등에 십자가 조각을 보냅니다.
세 번째로는 큰 공헌을 한 가톨릭 집안에 교황님께서 보물로 하사를 하십니다.
저는 지금 이 이야기를 신학생 때부터 듣고 알고 있었어요.
그러면 분명 세계에 보목이 퍼져 있을 텐데, 순교자의 땅 한국에는 조각하나 없다니!
그래서 저는 해외 피정 나갈 때 마다, 수도원에 찾아가 ‘그 보목 주시면 안 됩니까?’
여러분 같으면 주겠어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가는 데마다 그 십자가를 한국 땅으로 모시고 오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죠.
그러다 2002년 미 서북부와 캐나다 밴쿠버주변, 포트랜드, 시애틀, 타코마에 피정을 시키러 갔습니다.
그 전 1999년에도 한 번 그 성당을 갔었는데, 내가 그 얘기를 한 것에요.
예수님의 보목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왜 한 조각도 없는가?
그 성당에는 국제 결혼한 한국의 자매들이 많은데 물과 기름같은 분들 많아요.
한국 왔던 미군이 많다보니 장교부인이 된 분도 있지만 기지촌에서 온 분도 있죠.
둘째 날 앞줄에 할머니들이 여섯이 쭉 앉아 강의시간 내내 뚫어지게 보는 거예요.
끝나고 할머니 한 분이 물었어요.
‘신부님, 3년 전에 오셨을 때 십자가 보목을 찾으신다했는데 찾으셨습니까?’
‘아뇨. 포기했죠. 못 가지고 가요.’ 하니,
그 할머니가 대뜸 ‘신부님, 제가 드릴게요.’
그래서 저는 그 할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할머니 가지세요.’
예루살렘가면 예수님 십자가 조각이라고 파는 가짜인 줄 알았죠.
그 할머니가 십자가 보목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까 진짜인거예요.
할머니 남편은 미국 사람이고. 한인 성당에 안 나오고 미국 지역 성당을 다녔대요.
그리고 갈멜 제3회원이었는데, 같은 제3회원 백인할머니가 위독하시어 찾아갔대요.
그 분이 자기 손을 잡고는 ‘수십 년 동안 지켜봤는데 가보를 주겠다.’ 했대요.
백인 할머니 집안은 아일랜드에 있는데, 400년 전에 대성전을 봉헌했대요.
그 때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십자가 보목을 그 집안에 선물로 내린 거죠.
200년 전 미국으로 이민 와 가보로 내려오다 할머니 후부터 천주교가 끊긴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한국에서 온 할머니가 열심히 사는 것을 보았던 거죠.
‘내가 이 보목을 주는 게 아니다. 잘 모시고 있으면 필요한 사제가 나타날 거다.’
그리고 그 사제에게 조건 하나를 걸었대요. ‘말씀 전할 때 꼭 모시고 다녀라.’
그 앞에 앉아있던 여섯 명의 할머니들이 제3갈멜 회원들이었죠.
그리고 저 신부가 이 보목을 모셔갈 자격이 있는지 강의 동안 분별을 청했대요.
그리고 결론이 났대요.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
’신부님. 모르실 것에요. 신부님이 강의하실 때 머리 뒤의 우리는 후광을 봤어요.
신부님 하루만 기다리세요. 내일 이 시간에 제가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 하루가 일 년보다 더 길었어요.
다음 날 아름다운 자개함에다가 그 십자가를 모셔 왔는데, 400년 된 십자가에요.
그 십자가 위의 나사를 돌리니 반으로 포개지며, 그 안에 성혈 묻은 보목 나왔어요.
라틴어로 ‘주님의 십자가 조각’이라 적혀있고, 추기경 서명 증명서까지 갖고 왔어요.
드디어 순교의 땅 한국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의 십자가 보목이 모셔지는 거예요.
그날 십자가를 받아 들고 호텔에 가서 모셔 놓고 초를 켰는데 정말 감개무량 했어요.
이 작은 조각이 그 십자가의 어느 부분에 있었는지 모르죠.
예수님의 등 밑에 있던 부분인지, 아니면 손등을 받치고 있던 부분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2000년 전 예수님의 거친 마지막 숨소리를 듣고 그 밑에 쳐다보던 성모님을 봤던 작은 조각,
정말 거룩한 조각이다!
저는 보목을 모시고 돌아와 피정 때마다 몸에 지니면서 강연을 했죠.
성시간 때 여러분들이 뺨에 대는 그 십자가 보목이 들어 있는 십자가 고상은 2002년부터 하도
신자들을 친구해주다 보니까 어느 날 예수님의 팔이 하나 없어졌어요.
닿아서 떨어져 나갔어요.
그 후에 소설 같은 사연을 통해 더 작은 십자가 보목이 두 개가 왔습니다.
앞의 액자 성광 안에 보시면 아실 겁니다.
헬레나 황후가 찾은 이 거룩한 십자가는 죽은 이를 살리는 힘이 있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전의 십자가는 뭐였습니까?
사람을 피 말려 죽이는 흉물 덩어리요 사형틀 이었지만,
존귀하신 예수님이 올라가신 그 후부터는 사랑의 상징, 구원의 상징, 해방의 상징으로 바뀐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 계시는 십자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개신교에는 십자가 위에 예수님의 몸이 안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유를 물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거기 왜 있냐고 그래요.
그것은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이 안 계신 십자가는 흉물 덩어리에요. 고통 덩어리 일 뿐이에요.
예수님 없는 십자가는 강도의 십자가인지 살인범의 십자가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성당에 와 ‘엄마, 저 앞에 더 하기 표시가 있어.’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더하기 표시입니다.
주님 함께 계시면 모든 것이 더해져 선하게 변하고 구원에 이른다는 표시입니다.
첫째 십자가는 불화가 있는 곳에 화목을 더해 주는 표시입니다.
십자가가 싫다고 모든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곳에는 불화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내 가슴을 치고 상대편 십자가까지 끌어안으면 화목과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우리 집안에 불화와 분열이 있다면, ‘내가 내 십자가 못 지고 있다. 끌어안아야겠다.’ 생각하셔야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유한성에 떨고 있는 약한 인간에게 영원을 더해 주는 표시입니다.
사람에게 죽음만큼 두려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오래 전에 KAL기 사고 난 일주일 후에 회장님 넷을 데리고 중국 선교를 떠났었어요.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이륙할 때는 조용했어요.
둘러보니 앞에 개신교 선교사 몇 분 손잡고 ‘알렐루야, 비행기를 뜨게 해 주시옵소서.’
건너 줄 스님이 한 분 염주를 돌리며 ‘나무아미타불, 조종사에게 기운을 주시고.’
또 나와 같이 간 회장님들은 묵주를 꺼내서 기도하셨겠죠.
비행기 안이 개신교, 천주교, 불교, 갑자기 종교집회가 되었어요.
비행기 뜰 때보다 내릴 때가 더 두렵죠? 바퀴가 덜컹할 때 두려워요.
비행기가 내린다고 방송이 나오니 다시 열심히 기도하셨겠죠?
비행기가 딱 서니까 난리가 난 것에요. ‘알렐루야!’
저는 그것을 보고 ‘진짜 죽기 싫어하네.’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사는 사람은 죽음이 언제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순교자들은 십자가 하나만을 쥐고 영생을 바라보면서 망나니의 칼 앞에 죽었고
온 몸이 사자 이빨에 찢기면서도 웃으면서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옛날 죽은 천주교 신자들 얼굴을 보면서 군인들은 질겁했대요.
온몸은 찢겨 죽었는데 얼굴만큼은 웃고 있더래요.
그것을 보고 무릎을 꿇고 이 분들이 믿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았던 거죠.
죽음 앞에서 초연한 것은 십자가 뒤에 있는 영생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아멘.
세 번째로 십자가는 절망과 탄식이 있는 곳에 희망과 찬양을 더해 줍니다.
현대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외적인 자유에만 몰입해 삽니다.
그러나 내적으론 피곤하고 절망과 노이로제라는 자기 감옥에 갇혀 울부짖고 삽니다.
약을 해 보려고도 하고, 별 짓을 다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먹고 사는 것은 차고 흘러넘칠 정도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마음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지구도 같이 죽어갑니다.
테러와 전쟁과 피와 죽음의 문화가 지구를 물들게 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갈바리아 산에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불평이 감사로 바뀔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절망이 희망과 찬송으로 바뀔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총성과 포성이 화해의 메아리로 바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기적을 찾았고, 희랍인들은 철학을 외쳤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오로 사도의 갈라티아서 6장 14절의 말씀대로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외쳐야 될 겁니다.
여러분들,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가 너무 많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주눅 들지 마십시오.
억지로 지는 십자가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것을 긍휼히 여길 것입니다.
솔직히 좋아서 십자가 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대부분의 십자가는 마지못해 지는 십자가가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기력이 쇠해서 꼼짝 못 할 때 키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을 받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그리스도 신자도 아니었습니다.
일 갔다 오는 길에 죄인을 죽인다기에 어깨 너머로 쳐다보다, 로마군인 눈에 띈 거죠.
‘야, 키 큰 놈. 여기 와봐. 이사람 것 대신 네가 짊어져.’
그 당시 십자가는 흉물 덩어리로 손만 대도 3년 동안 재수가 없는 건데.
그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십자가를 지라고 하니, 시몬은 칼로 찌르겠다고 하니 졌지요.
억지로 지는 십자가였어도 그동안에 예수님은 쉴 수 있었던 것에요.
‘똥오줌 싸는 시어머님 모신지 15년째에요. 사람들은 나보고 열녀라 하는데 저 솔직히
우리 시어머니 빨라 죽으라고 하루에 30번씩 기도해요. 정말 억지로 지고 있어요.’
그렇게 십자가 질 때가 많아요.
저도 그래요. 순명서약 했으니까.
참, 저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만만한 게 나인가?
하지만 결국에는 그 십자가는 순명이라고 하는 키(key) 외에는 해결할 길이 없어요.
하느님께 순명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저는 체험을 통하여 알고 있거든요.
주교님이 하시는 제게 하시는 말씀은 이성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 돼요.
왜 하필 나에요? 우리 교구에 사제가 저밖에 없어요?
동창 신부님들이 말려도 전 한 번도 노(No) 한 적이 없어요.
왜? 이제껏 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예’ 했어요.
저는 지금도 변함없어요. 주교님이 죽어라고 하면 죽은 시늉이라도 할 것에요.
십자가 보목은 우리 한국 땅에 2002년도, 제가 진천 본당에서 사목할 때 모셔졌고,
그 이후 기도찬미의 밤, 은총의 밤 할 때 항상 제대 앞에 한 달에 한 번 모셔집니다.
그리고 성시간에 수녀님은 교우들이 뺨에 헬레나 성녀가 찾은 보목을 대어줍니다.
여러분들, 오늘 여기에 하느님이 부르신 이유가 있다고 그랬죠?
예수님의 십자가는 치유가 아니라 부활까지 시켜주십니다.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믿으면서 오늘 주님께 찬미 드립시다.
아멘.
♣2019년 04월 은총의 밤(4/6)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