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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삼이가 분명히 말했다.
전시회 하는 이틀째 그곳에 가서 우석이 에게 그림을 보여 주라고 했었다.
기삼이는 첫날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불상사를 걱정 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어떤 사고가 있다는 것은 일본사람들의 눈에 보일 수 있는
특별한 행동이 감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틀림없었다.
나는 기삼이의 그런 걱정 때문에 이틀째 되는 날 우석이를 전시장에 데려갈 생각 이였다.
나는 부산으로 도착한 일본의 고미술이 부산을 통해 서울로 옮겨지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 박스가 17번 박스에 담겨져서 왔다는 지극히 단순한 정보만 입수 했을 뿐 이였다.
김 부장이 2차를 가자는 제의를 쌍식이 형님은
‘썩을놈아 지금 한가하게 술 퍼 마실 때가 아니다’로 일축 해 버렸다.
맞는 말 이였다.
내가 그들과 술을 마실 정신적인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 이였다.
그날은 한국땅에 비로서 몽유도원도가 입성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술좌석을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회가 열리는 첫날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 하며 하루를 꼬박 보냈다.
그리고 전시회가 열리는 이틀째 아침 일찍 우석이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그를 데리러 갔다.
역시 그도 눈치는 있는 사내 였다.
“오늘 올 줄 알았소. 어제께 텔레비전 본께 전시회 한다고 나옵디다.”
여전히 그의 방은 화방도구 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었다.
그림은 그리지만 그 방을 청소하는 호텔의 직원도 모를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 해 버리는
그의 성격 단면을 보는 듯 했다.
“그림도 보고 오늘은 밖에서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림부터 보고 결정을 합시다이... 왜 그라냐믄 내가 언젠가 이야기 했는디..
그것이 천이 때깔이 틀려븐다 그라믄 골때리요. 그랑께 그것부터 보고...
그라고 내가 맘이 켕기믄 술 한 잔하고 안그라고 뭣이 삐끄덕 거리믄 내가 성가신께..
일단 나가 봅시다.”
“천만 맞으면 다른건 문제 없습니까?”
그는 신고 있던 슬립을 구두로 바꿔 신으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웃으며 대답 했다.
“기자 선생은... 여작 내 그림을 수없이 봤음서 그라요?
몽유도원도를 내가 수백번도 더 그려 브렀응께...
인자 그 그림은 돌에서 땀 난것 까지 뽄을 떠븐당께 그라네.
그림은 그렇게 걱정할것 없소. 오늘 내가 가서 보는것도 일종의 확인 이제...
그거는 너무 걱정 안해도 되요.”
딴에는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그를 데리고 호텔을 나왔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충무팀 직원 2명이 우리 뒤를 따랐다.
나는 우석이가 눈치 차리지 못하게 손을 흔들어 그들의 미행을 제지 시켰다.
그들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호텔 정문 앞에서 택시를 타는 나와 우석이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우석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긴장하고 있음이 분명 했다.
차가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도착할 때 까지도 우석이는
아무 말 없이 차창 밖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둘이는 말없이 전시관 앞에 까지 걸어갔다.
나는 둘이 나란히 관람하는 게 혹시 일본 사람에게 어떤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우석이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화장실 안에서 반갑고 놀라운 인물을 보았다. 달중이 였다.
그는 말끔한 차림의 양복 차림 이였고, 머리에는 서양화가들이 즐겨 쓰고 다니는
차양이 짧은 모자를 쓰고 그리고 손에는 박물관 입구에서 나누어준 안내책자가 들려져 있었다.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는 듯 했지만 그는 애써 나를 외면하고 그는 전시관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화장실 제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마치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일반인처럼 행동 하고 그리고 화장실을 나와서
전시실이 아닌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의 불을 댕겼다.
혹시 전시실 안에서 달중이와 우석이가 만날지도 모른다.
달중이가 먼저 우석이 에게 아는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석이는 달중이를 보고 아는 척하며 말을 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끝내 전시실 안에 들어가지 않고 누가 먼저 전시실 밖으로 나오는가를 기다려 봤다.
담배를 몇 개 피웠지만 어느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자 나는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내가 몸을 움직여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 봤다.
그러나 역시 달중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와 화장실에서 마주쳤던 순간은 아마 이미 전시실안의 고미술품을 이미 관람하고
돌아가는 길 이였는지도 몰랐다.
내가 내부 사람들을 꼼꼼히 쳐다보고 있을 때 우석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언젠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원단을 구입할 때 했던 그 손가락 흉내를 내 보였다.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머리위로 손을 들어 올리고 웃으며 나에게 걸어 왔다.
“씨바꺼...인자 게임은 끝나 브렀소. 가서 쇠주나 한잔 합시다.”
천재 화가의 이 일성(一聲)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나까지 입에 미소를 머금기에 충분했다.
나는 전시실안의 그림을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의 손에 끌려
전시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나를 아는 척하는 사람이 한사람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인상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일본말로 뭐라고 하면서 선뜻 내 손을 잡으며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급하게 한국말을 통역 할수 있는 도우미를 불렀다.
나는 그때서야 그가 일본 덴리대학의 박물관장으로 있었던 다께오가쓰로 라는걸 알았다.
그가 불러온 통역사의 첫인사는 반갑다는 통상적인 인사 였고,
놀랍게도 그는 내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 하고 있었다.
그는 통역을 통해 또박또박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 했다.
“안상, 반갑습니다.”
“예. 안녕 하세요.”
“그림은 잘 감상 하셨습니까?”
“예. 잘 감상 했습니다.”
나는 보지도 않았던 그림을 감상 했노라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묻지 않는 대답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죄송합니다. 전시실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없게 해서.”
‘개 새끼들’ 나는 속으로 그들을 욕을 했다.
애초부터 사진을 찍을 마음은 없었지만 한국 땅에서 전시하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사진조차 찍게 할 수 없게 만든 그들의 영민함에 욕이 나왔다.
그러나 입 밖으로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전번에 보내준 그림은 잘 받았습니다.
혹시 기회가 되면 그 작가를 뵙고 싶은데 선처를 부탁 합니다.”
나는 잠시 고민 했다.
그가 원하는 작가는 지금 내 옆에 서있는 우석이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석이는 조만간 미국으로 떠날 사람이다.
그를 소개 시켜 준다고 해도 그와 접촉할 기회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흔쾌히 그를 소개 시켜 주었다.
“여기 이분입니다.”
나는 우석이를 돌아보며 그를 소개 시켜 주었다.
일본인의 눈빛이 반짝 빛났고 그리고 그는 일본인 특유의 강한 상대에게 읍소하는,
비굴하다 싶을 만큼 저자세로 머리를 숙여 우석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두 손으로 그에게 주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을 보고 꼭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일본에 선생님의 작품이 두 점 있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고 또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뻘쭘하게 서 있던 우석이가 내 얼굴을 쳐다 본다.
“일본 댄리 대학 미술관 관장님이신데...
예전에 우석이 아저씨가 주었던 그림을 내가 선물 했는데...
그걸 보고 그러시는 것 같네요.”
“음마.. 그라믄 내가 준 그림을 전부 저 아자씨 줘 브렀단 이야기여? 시방?”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칭찬을 하시네요.”
“그 그림은 내가 국전에 출품 할라고 신경 써서 그린 그림 이기는 헌디..
그것이 또 묘하그만... 한국 놈들은 이렇게 까지 칭찬 하고 그라지는 않는디..
혹시 쌩까는거 아니여?”
“그건 아닌것 같고요. 우석이 아저씨가 그림은 잘 그리잖아요.”
“ㅎㅎㅎ 돈만 많이 가져 오라고 그래. 얼마든지 그려 준다고.”
나는 통역사가 있음을 의식해서 말을 조심 하였지만 우석이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가운데 서있던 통역사 역시 그의 그런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라나 박물관 관장은 집요함을 보였다.
“내일 이나 모래쯤 시간을 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 선생님과 화가선생님 함께 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막연한 대답으로 그에게 이야기 했다.
“내일 다시 전시장에 올수 있으면 그때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아쉬워하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우석이의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걸 차단했다.
“그냥 저한테 연락 하세요. 제가 매니저거든요.”
나는 농담처럼 그렇게 이야기 했고, 통역을 또 그대로 전달을 했는지
그 일본인 박물관 관장은 실제로 그 말을 믿는 듯 우석이 에게 또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에 더 이상 우석이를 그 자리에 세워 두기가 싫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우석이 에게 물었다.
“뭐 특별히 드시고 싶은게 있습니까?”
“장충동 가까라? 족발이나 묵게.”
“점심은 안드시고요?”
“거그 가가꼬 걍 소주나 한잔 합시다.
거그는 족발이라도 발모가지만 나오는 게 아니라 허벅지가 나온께
그걸로 배 채우믄 될것이요.
아니믄 딴데 가고...”
항상 내가 호텔로 찾아가 그를 밖으로 불러 낼 때는 그가 원하는 음식을 사주곤 했었다.
호텔에서도 우석이는 주로 한식당을 이용 한다고 했다.
그런 그답게 역시 소주 안주에 어울리는 족발을 먹자고 제의를 했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장충동 족발골목으로 가자고 부탁을 하고 그의 얼굴을 봤다.
표정이 평온해 보인다.
아마 그의 말처럼 ‘그림을 뽄뜨는것’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표정이기도 했다.
택시 기사가 특별히 맛있다고 소개한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 이지만 유명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더러 대학생들도 낮술을 즐기는 듯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아주머니는 뭘 먹을 거냐는 질문 대신에 두 사람뿐 이냐는
간단한 질문만 하고 돌아갔다.
나는 소주를 두 병 따로 시키는것 말고는 복잡한 주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그곳은 족발만을 파는 집 이였다.
“그림을 좀 보니까 어떻습니까?”
“좋기는 하드만... 근디... 내가 새삼스럽게 놀란것은...
그림 보다 글씨들이 죽이듬만.. 만약에 나한티 그림 대신에 글씨를 뽄뜨라고 그랬으믄..
나는 그것은 못했을것이여.
그것이 왜 근고 하믄.. 대충 흘려쓴 글씨들은 오히려 더 쉽게 그려 낼수가 있는디..
그것이 붓이 가는 각도가 있응께 요령으로 흉내를 낼수가 있응께...
그 그림에 있는 글씨들은 뭔 글씨가 도장 찍어 놓은거 멩키로 똑 같고,
그라고 획이 꼭 우리 한글 쓴거 멩키고 딱부러져가꼬..
사람들이 몰라서 그란디...
한문을 휘갈겨 써 놓으믄 그것이 뭔 용이 춤추는것 같다고 지랄들 해 싼디..
그것이 아니여.
아까 본 글씨는 붓놀림의 속도가 빠르지 않고
혼신의 힘을 들여야 쓸수 있는 글씨라...
웬만큼 연습 안하믄 그 글씨는 뽄뜨기가 상당히 힘이 들것다 싶습디다.
저런 글씨는 용이 승천 해가꼬 하늘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형국이라
어지간한 붓감(感)으로는 택도 없제.”
“글씨는 그렇다 치고, 그림은요?”
“그림은 인자 내가 몇일내로 한 장을 뽑아 줄라요.
그란디 그 천이...때깔이 좀 더 연합디다. 근디...
더 찐한것이 문제지...더 연한것은 내가 천을 쬐끔 더 탈색 시킬수 있응께..
그것은 그라고 걱정 할바가 아닐것 같고...
그래서 내가 원단의 때깔을 보고 걍 한숨을 푹- 쉬어 브렀소.
인자 호텔로 찾아오지도 마쇼. 작품 나오믄 내가 연락 할라.”
“몇일이나 걸리겠어요?”
“아무리 미국에 있는 엄니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해 싸도 한 삼일은 걸릴 것이요.
나도 인자 원본을 봤응께 그림은 한방에 뽑아블수 있는디...
우선 천을 내가 초산에 담가가꼬 때깔을 맞춰 놓고 그라고 시작해야 한께...
그라고.. 내가 눈짐작으로 봐 논게 있응께...
인자 싸이즈도 똑 같이 맞챠브러야제.
그래야 언놈이 끼어 박아도 딱 맞제. 그것 까지는 내가 해주께라.
어째도 한 삼일 걸리겄소. 내가 연락 할랑께 맘 편하게 먹고 기다리고 있으쇼.“
그의 표정이나 행동에 전혀 어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어보였다.
식당 주인이 가져온 족발은 푸짐했다.
두사람 몫으로 나온 음식으로는 좀 많다싶게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웠다.
그는 소주병을 따고 그리고 나부터 한잔을 따라 주면서 말을 계속 했다.
“근디... 약속은 지키쇼이.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본께..
겁도 나기는 나요.
내가 평생을 남의 그림 모작도 하고, 간판도 그리고, 있는 환쟁이 기술로
그림 그림서 그걸로 밥 벌어 먹고 살아 오긴 했는디...
그래도 이참에는 뭐가 잘못 되믄 디질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라요.
뭔 사고를 칠랑가 그것은 모르겄고...
일 터지기 전에 여그를 뜨고 싶어서 하는 소리요.”
“그런건 걱정 하지 마세요.”
“일단 한잔 찌끄러븝시다.
그림을 보고 난께... 인자 긴장이 좀 풀리요.
그림에 뭐 특별한것이 있어서 갑자기 대가리 싸 메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겄다 싶은께
어저께는 잠도 안오드만..”
“석장을 뽑아야 하는건 아시죠?”
“알제... 근디... 첨에 한 장 뽑기가 성가셔서 그라제...
한번 필 받아블믄 금방 나오요.
짜장 뽑은 놈이 국수 못 뽑을랍디여...
첨에 한 장 나오믄 그때 내가 연락 하께라.
그라고 나머지 두 장은 한 이틀 있다가 그냥 호텔로 오쇼.”
그는 시원스럽게 쪽-소리가 나게 소주를 힘있게 빨아 마셨다.
그리고 상추에 싸지도 않고 족발을 새우젓에 찍어서 먹었다.
“미국에 연락을 했습니까?”
“가는 날짜는 이야기 못했고...걍 구월에 가믄 아부지 제사는
엄니랑 같이 모실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랬소.
그랑께 징허게 좋아 합디다.
엄니가 그 나이에 훌쩍거리고 울어 싼께 내가 속이 안좋을락 합니다.
진짜로 이참에는 내손으로 아부지 제사상에 술잔을 올리고 싶소.”
“아마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기자 아저씨 한티 뭐라고 감사를 해사 쓸랑가 모르겄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는디...
나중에 올 때 모친 사진이나 한 장 주쇼. 내가 초상화 한 장하고
그라고 영정 하나 그려 드리께라.
내가 말은 초상화라 그란디...
옛날 정경부인들 초상화 멩키로 크게 한 장 전지로 뽑아 드릴라.
집구석에 그런거 한 장 걸어두믄 집안이 뼈대가 있어 뵈고
두고두고 조상들을 생각하게 한께 걸어두믄 좋소.
잊어 먹지 말고 꼭 사진 한장 갇다 주쇼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인께 하는 소리요.”
“저도 우석이 아저씨가 그려 준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아- 그라고 내가 언감생심 말은 못했는디...
쌍식이 형님한티 안부나 좀 전해 주쇼. 생전에 빚진 게 많은 사람 이였는디...
올케 술 한 잔 대접도 못하고 가는 것 같애가꼬 무쟈게 짠하요.”
“꼭 안부 전해 드리죠. 그리고...저도 간단한 부탁이 있는데...
아까 그 일본 사람이 준 명함 있죠? 그거 저 주시면 안되요?”
“그라쇼. 내사 맹탕 필요 없응께. 그란디 뭐 할라고 그라요?”
“예. 좀 필요 해서요.”
나는 우석이가 그 명함을 가지고 미국으로 떠나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방탕한 생활로 엉뚱한 생각을 가지게 돼서
그 일본사람과 접촉을 하는 게 걱정될 뿐이었다.
그는 순순히 그 명함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는 소주를 또 한잔 입에 털어 넣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쌍식이 형님한티는 꼭 안부좀 전해 주고...
그라고 내가 한국 떠나기 하루 전에는 나한티 일정을 쪼까 이야기 해 주쇼이.
나도 엄니 한티 연락을 할라고 그라요.
내가 길도 모르고 영어도 못한께
거그 가가꼬 길 잊어 묵을것 같아서 허는 소리요.
부탁 하요이.”
그는 그 그림의 중요성과 자신의 그림이 어떻게 사용 될 거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한국을 떠나겠다는 희망에 차 있었다.
그가 나에게 해줄수 있는 행위가 영정이나 초상화 따위가 전부 라고 했지만
그런 행동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만큼은 아버지 제사상에 술잔을 올릴 수 있게 해 주는건
어쩌면 내가 그를 위해 배려 할 수 있는 방법의 유일한 하나인지도 몰랐다.
그림에 대한 그의 집착과 책임감 때문인지 그는 많은 량의 소주를 마시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호텔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가는 동안도 웃음한번 보이지 않는 진지함을 보였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비해 오히려 더 차분해져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충무팀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가 했던 말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안평대군의 글을 평(評)했던 몇 마디.
“내가 새삼스럽게 놀란것은... 그림 보다 글씨들이 죽이듬만...
만약에 나한티 그림 대신에 글씨를 뽄뜨라고 그랬으믄...
나는 그것은 못했을것이여.
그것이 왜 근고 하믄...대충 흘려쓴 글씨들은 오히려 더 쉽게 그려 낼수가 있는디...
그것이 붓이 가는 각도가 있응께 요령으로 흉내를 낼수가 있응께...
그 그림에 있는 글씨들은 뭔 글씨가 도장 찍어 놓은거 멩키로 똑 같고,
그라고 획이 꼭 우리 한글 쓴거 멩키고 딱부러져가꼬...”
과연 안평대군의 글씨가 어느 정도의 수작이면
천재 작가라고 불러주고 싶은 이 환쟁이가
그렇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까 하는 것 이였다.
언젠가 기삼이가 말했던 송설체, 안평체,
그리고 훈민정음의 초석이 되었다는 복잡한 해석들이
충무팀 사무실에 오는 동안 내 상념에 젖어들 뿐이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