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다섯째 이야기, 피 묻은 투표 용지(2)
[정해랑 연재소설] 노동자 신돌석씨의 하루 (212)
[삽화-백소(白笑)]
여섯 시에 일어나 보니 아내는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하였고, 힘찬이는 여전히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도중에 몇 차례 졸다 깨다 했다고 한다. 피곤해서 그런지 아니면 결과가 마음에 안 드는지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개표는 거의 끝난 듯한데 여전히 엎치락뒤치락해서 아직 결판을 내지 못한 곳들이 있었다. 어찌 됐든 출구조사는 빗나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뒤집어지거나 한 것은 아니고, 야권의 압승이기는 한데 출구조사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것이었다. 출구조사가 약간 과장된 것이라고나 해야 할까.
전체적으로는 민주세력의 압승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들어가 보면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았다. 신돌석씨 생각에 부산 경남의 결과는 정말 의외였고, 심지어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21대 때도 20대 때보다 득표율은 올랐지만 의석수는 줄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모양이다. 부산은 일찍부터 시민단체에서 1 : 1 구도를 내걸었고, 지역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부산경남이 국힘당 일색이 되니 전체 지도를 보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왼쪽 파란색, 오른쪽 빨간색이다. 지역구도가 심화되는 것일까?
비몽사몽인 듯한 힘찬이를 편히 자라고 하고 송영을 하려고 나왔다. 송영을 하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편의점을 하는 형수였다. 지금 전화하기 곤란하니 나중에 하자고 한 뒤 송영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밤을 새웠다고 한다. 하긴 어차피 편의점을 보느라 밤을 새워야 하기는 했다고 한다. 이 친구 전화를 받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다. 형수 말로는 천당에 갔다가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란다. 이 말에 따르면 선거 결과는 지옥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을까? 그런데 당장 형수가 그렇게 보고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형수는 선거 기간 동안 종종 전화를 해서 윤석열 정권 심판을 이야기했다. 민주당 지지자이기는 하지만 꼭 민주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 투표에서는 지역구는 민주당을 찍고,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찍었다고 했다. 당시는 진보당이 아니라 민중당이었는데, 형수는 그런 당이 있는지도 몰랐다. 정의당의 강령이나 공약을 지지해서 찍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지금은 민주당이 되어야 하지만, 앞으로는 좀더 나은 정당이 되기를 바라고 현재로는 그 정당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정의당에 대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신돌석씨 주변에는 형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런 이야기를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의당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쾌하다는 반응을 했다. 신돌석씨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의당이 당하고 있는 시련은 진보운동이 겪는 어려움이 될 테고, 얼마나 더 돌아가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돌석씨는 어찌 되었든 과거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의 당을 지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보세력이 대단결한 정당을 기대하고 있었다.
망했다는 말을 형수가 반복하자, 신돌석씨가 압승한 거라고 말했다. 형수는 이번에 200석을 넘겨서 거부권도 무력화시키고 탄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안 되어서 화가 난다는 것이었고, 앞으로 3년을 어떻게 기다리냐고 하였다. 신돌석씨는 이제 곧 그런 상황이 올 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정말 그렇게 되겠냐고 하면서 어조가 달라졌다. 사실 신돌석씨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의석 차이가 나는데 정국이 윤석열 뜻대로 제대로 돌아갈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런 점을 형수에게 말하다 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았다.
아침에 송영하면서 라디오 시사프로를 들었는데 패널 중 한 사람이 이번 선거 결과는 4년 전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4년 전과 의석 수가 비슷하다고 하여 그런 결과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4년 전에는 민주당이 여당이었고, 대선에서 이긴 뒤 치른 총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힘당이 여당이고, 대선 지선에서 연달아 승리하고 치른 총선이다. 이럴 때 국민들은 어느 정도 여당 쪽에 의석을 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대로 간다면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가 되는 것이다.
[삽화-백소(白笑)]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형수에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형수는 금방 기분이 달라진 듯하였다. 그리고는 부산이 그럴 줄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신돌석씨가 부산 득표율이 21대보다 더 상승했고, 대선보다 많이 올랐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른바 샤이 보수가 뭉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지역별로 적대시하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렇다. 심지어 경북조차도 대선 때에 윤석열을 찍었던 표가 민주당으로 많이 옮겨왔다고 한다. 현재의 소선거구제에서 1등이 된 것만으로 지역 구도가 강해졌다고만 판단할 수는 없다.
이런 점들이 궁금해져서 형수와 하던 전화를 끊은 뒤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철용에게 전화했다. 작년 가을에 부산 시민사회 각계에서 부산 총선 승리를 위한 1천인 선언을 조직했었다. 그리고 연말에는 정권심판 정치사회대개혁을 위한 총선 필승전략 토론회를 열기도 했었다. 이때 신돌석씨도 올 수 없냐는 제안을 받았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서 못 갔었다. 그리고 곧바로 옛 동지의 아내 부고를 들었다. 그래서 작년 마지막 날에 부산에 갔었다. 김철용은 상주의 절친한 후배였다. 그때 문상객들과 부산 상황 그리고 총선 정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부산 사람들은 자신감에 넘쳤었다. 물론 그때도 여러 이야기가 여과 없이 나오기는 했었다. 김철용은 민주진보연합이 성사되어 1 : 1 구도를 만들면 부산에서도 절반 가까운 의석을 차지할 수가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반면에 같은 자리에 동석한 사람 중 연합정치보다는 민주당 단독을 확실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었다. 그 사람의 성향인지, 부산지역의 특성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었다. 다음 날 기차역으로 향하면서 한 석 정도 민주당이 진보당에 양보할 것을 논의하고 있고, 민주당 지도부가 긍정적이라는, 당시에는 비공개인 정보를 김철용에게 듣고 왔었다.
김철용은 역시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여론조사로도 그렇고, 주변 분위기를 봐도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막판의 바람이 결국 이렇게 만든 거냐고 묻자 솔직히 그것도 잘 이해가 안 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막판에 인천에서 있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인천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사전투표함 세 개가 사라진 일이었다. 민주당 후보가 패배를 인정해서 끝나기는 했지만 과정을 들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사전투표함이 민주당 후보를 찍은 표가 많은 것이고, 소선거구제에 박빙이라서 투표함 몇 개가 당락을 바꿀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으니 중앙 차원에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지역에서 나서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다. 속만 타는 일이고 부산지역에서 아직 제대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바로 현장에서 잡지 않으면 다시 제기하기 어려운 일 아니냐는 것이었다. 신돌석씨도 그럴 것 같다고 하였다. 갑갑한 마음이지만 어쨌든 득표율이 오른 것과 전국적 차원에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한 것으로 일단 만족하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도 동의하면서도 이번에 진보당 후보가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이기고도 막판에 국힘당에 진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신돌석씨도 그것이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이번에 진보당에서 지역구에 출마한 곳은 네 곳이었던 것 같다. 그 중 서울과 전북은 차이가 많이 나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울산과 부산은 되리라는 기대가 컸는데 민주당이 양보하기로 합의한 곳은 울산이었다. 부산은 자력으로 경선을 해서 이긴 곳이었다. 울산은 민주당 후보가 당 차원의 양보에 반발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한다고 하여 경선을 하기로 해서 결국 진보당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끝내 당선되었다. 부산의 후보는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꾸준히 조직을 해온 사람이라고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보통 선거에서 바람, 구도, 인물이라는 요소를 꼽는다. 구도는 1 : 1이 되었고, 인물도 더없이 기대를 모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시민사회에서도 처음부터 그를 밀었고, 여론 조사로 국힘당 후보를 계속 10% 정도 앞서 왔었다. 하지만 막판에 수구결집이라는 바람에 꺾인 것이라고 보아야 하리라. 물론 김철용 말대로 부정 요소가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송영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 입고 조금 쉬다가 나왔다. 아내는 일하러 나갔는지 없고, 힘찬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점심 약속이 있었다. 같은 지역에 사는 교수이다. 학교는 인천에 있는 곳이다. 아직 현직인 것 보면 신돌석씨보다 나이가 적을 것 같은데 서로 존대를 하는 사이다. 그가 신돌석씨를 좋아하고, 신돌석씨도 그를 좋게 생각해서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교수시국선언 등에 앞장서 온 사람인데 지극히 품성이 맑은 사람이라고 신돌석씨는 생각하였다. 하지만 정치적 성향에서는 차이가 날 때가 종종 있었다.
[삽화-백소(白笑)]
신돌석씨도 아주 가끔 갔던 한정식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교훈이라고 하였다. 처음 소개했을 때 본인 이름을 말하면서 학교 다닐 때 무척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신돌석씨는 그 말을 들을 때 속으로 신돌석씨만큼 놀림을 받았겠냐고 했다. 그리고 이름을 말하자 역시 그는 교수답게 의병장이시군요. 부모님이 독립운동 유공자시냐고 물었었다. 그렇게 말한 지도 벌써 10년은 된 것 같다. 그는 지역의 연대체 모임에는 아주 가끔씩 나오고 전국적인 일을 주로 하였다. 그러면서도 신돌석씨한테는 가끔씩 보자고 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신돌석씨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이번 총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신돌석씨가 머뭇거리면서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가 그 말에 동의하지만 진보를 제외한 야권의 승리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이번에 진보는 궤멸했고, 지난 번보다 못한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300 : 0이란다. 그리고 최악의 선거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진보적 의제는 실종되고, 정책 경쟁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상대에 대한 비방만 난무했다는 것이다. 공천 역시 양쪽 다 문제였다고 했다.
더 나쁜 정권과 그들의 엄청난 실책 때문에 민주당의 승리로 귀결된 것이라는 게 그의 평가였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진보가 궤멸했다면 진보당은 진보가 아니란 말인가? 진보적 의제의 실종이나 정책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등은 맞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었을까? 그리고 공천만 해도 서로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결과를 보면 민주당 공천이 꼭 최악이었을까? 결국 검찰독재에 대한 이해에서 신돌석씨와 그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가 견지해온 정치노선으로 볼 때 이런 말을 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선거 다음 날 이런 말을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그는 지금까지 정의당이나 진보당 중 어느 한 편을 들지 않았다. 진보대단결이 그가 견지해 온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신돌석씨와 기본 생각이 같고, 그 때문에 그를 신뢰하였다. 작년 이맘때 강성희 의원이 당선되었을 때 그는 매우 기뻐했었다. 진정한 노동운동 활동가가 의회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이제 그것을 씨앗으로 해서 의회 변혁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공허한 점이 있었다. 사실 지난 전주을 재보궐선거는 민주당의 불출마가 있었기에 진보당의 승리가 가능했었다. 불편한 진실이다. 후보 자신은 물론 진보당 당원들의 눈물 나는 노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강성희 후보의 당선을 진보의 성과로 이야기하던 그가 지금 진보당 후보들에 대해서는 냉랭한 평가를 한다. 지역구 1석과 비례대표 2석을 진보의 성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이 그의 견해에서 불만이었지만 신돌석씨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그와는 이견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큰 줄기에서 같았다. 진보대연합이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는 길을 잃었다고 하였다. 진보대연합이 왜 안 될까에 대해서 물으면 그의 답은 몇몇 사람의 욕심, 정파주의 등이 원인이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일리는 있다. 그런데 그것만일까? 신돌석씨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항상 그것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왔었다. 신돌석씨는 그에게 상당히 서툴게 연합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신돌석씨의 말을 듣고 반박하지 않았다. 그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그와 헤어지고 나오면서 머리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개표가 완료되고 반나절밖에 안 지났는데 형수 같은 의견, 부산의 김철용 같은 의견, 이교훈 교수 의견 등 상당히 다른 견해 들이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기치를 내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난무하고 있다. 이런 견해들이 어떻게 모아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나의 힘으로 되어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수구세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난망하다는 생각만이 자꾸 생긴다. 하지만 우리의 알량한 생각과는 달리 이제 곧 엄청난 변화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신돌석씨의 촉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