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속의 섬마을 빗속의 회룡포마을<3>
<2024년 6월 22일>
2편에 이어지는 3편은 제목과는 달리 [삼강주막] 산책 사진입니다.
제목을 [삼강나루 삼강주막]으로 고칠까 하다가 그냥 둡니다. 혜량하소서!
예천 제2경 삼강주막은 회룡포를 지난 내성천이 금천과 낙동강을 만나 삼강을 이루는 삼강나루에 1900년 경 지은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으로,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 사공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건축사적 희소가치와 옛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05년 경북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2005년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방치되었으나 2008년 예천군에서 복원(소요예산 1억 5천만원).
주막 건물 뒤에 수령 500년 이상의 회화나무가 서 있어 옛 정취를 더해준다.(조금 떨어진 곳에는 형님 회화나무가 있다)
보부상(褓負商)은 보상과 부상을 총칭하며, 보상(褓商)은 정밀 세공품이나 값비싼 사치품 등 잡화를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였고, 부상(負商)은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 상품을
위주로 지게에 얹어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였다. 보상을 ‘봇짐장수’, 부상을 ‘등짐장수’라고도 불렀다.
흔히들 '낙동강 700리'라고들 하는데, 낙동강은 압록강 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이며, 태백시에서 발원하여
부산까지 이르는 영남의 젖줄로서 길이 510km 남짓이니 '낙동강 1,300리'가 맞다.
낙동강의 지명유래는 몇가지 설이 있으나 상주(낙양)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 하여 '낙동강'이라 한다는 설에 기인하여
상주 경천대부터 부산까지를 계산하여 낙동강 700리라 하기도 하고, 안동부터 부산까지 강의 경사도가 거의 없어 뱃길이
가능하여 뱃길 기준 낙동강 7백리라 하기도 한다.
[엽전조형물] 조선말기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 사공들의 숙식을 제공하던 삼강주막의 활황을 상징하는 조형물
[자귀나무]
콩과의 낙엽활엽소교목. 자귀나무의 한자 이름은 모두 비슷한 뜻의 합환목·합혼수·야합수·유정수 등으로 불린다.
밤이면 잎이 오므라들어 서로를 포옹한다고 해서 합환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자귀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는 밤에 잎이 오므라져 마치 자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잠자는 데 귀신 같다 해서,
또는 나무 깎는 연장 '자귀'를 만드는 데 쓴다고 해서 자귀나무라 한다고들 한다. 꽃말은 '환희' '두근거림'
삼강주막 상설무대
떡메치기
삼강나루
[황포돛배]
三江(낙동강, 내성천, 금천) 합수부, 다리는 삼강교이며, 59번 국도(전남 광양시 ~ 강원 양양군). 이 구간의 도로명은 [삼강로]
전에도 주막집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회화나무], 삼강교를 사이에 두고 두 그루가 있다. 주막집 뒤에 서 있는 이 회화나무는 동생 회화나무.
*** 1972년 지정 당시 수령 450년, 그러니 이미 수령 500년이 넘는데, 다리 너머 있는 회화나무가 50년 위의 형님 나무라네.
[형님 회화나무], 제(祭)를 지낼 때도 이 나무 아래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주막과 동생 회화나무.
[들돌] 인력이 필요할 때,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삯을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 통상 들돌은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농부(어른)로서 인정 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유옥련 할머니가 2005년까지 지켰던 주막(2008년 복원)과 동생 회화나무.
<삼강주막 관련 옛날 사진과 그림을 퍼와서 비교해 봅니다.>
년도 미상
년도 작가 미상
1971년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
2004년도 주막과 유옥련 할머니
유옥련 할머니 사후, 2007년 주막 모습
주막(酒幕)은 여행자에게 술과 음식, 그리고 숙박을 제공하는 상업형태로 조선 중기부터 나타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驛)과 원(院)을 두어 여행하는 관리들에게 말을 바꿔타고 숙식을 제공했다.
일반 여행객은 인근 절이나 부잣집 등에 숙식을 청하여 해결하는 형태가 일반적인 풍습이었는데,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주막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점점 상업화되었다.
주막에서 일하는 여주인을 주모(酒母)고 부르는데, 퇴기(退妓)출신이 많았고, 격이 낮은 궁녀나 나인들이
퇴궁하거나 궁에서 쫓겨나 주막을 차리기도 하고 가난한 백성이 생업으로 뛰어들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주막은 점차 폐업하거나 술집, 여인숙으로 전업하였다.
마지막 주막으로 알려진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 있는 삼강주막의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2005년에 사망하면서,
주막과 주모는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삼강주막은 2005년 12월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 2007년까지 방치되다가, 2008년 복원하여 관광지로 개발.
*** 1917년 生인 유옥련(兪玉蓮) 할머니는 1932년 뱃사공 배소봉 씨와 결혼하였으며, 19세에 주모 일을 시작,
2005년 10월,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막을 지켰으나, 시류의 변화에 따라 늦게는 마실 나온
동네 노인들에게 소주나 과자 정도를 파는 동네 점방 수준이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상설무대에는 아까부터 공연이 계속 이어지고, 유명가수라고 소개를 했는데 기억력이 시원찮아 이름을 잊어버렸네.
호국보훈의 달, '전우가 남긴 한마디'를 듣습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정구지전(부추전)에 막걸리 몇 잔하고 나니
낮술이라 그런가, 세상이 그냥 동전만 하네.
참,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저는 삼강주막이 곳곳에 볼곳이 많았는데 술꾼처럼 바로 주막으로 가버려 멋있는 회화나무 등등 하나도 못봤네요
특히 돌들을 드는걸로 품삯을 정했다니 한참을 웃게됩니다
조그만 돌은 애들도 들겠더구만^^
전생에 혹 술꾼이었는지도 ~~~. ㅎㅎㅎ
'단술'의 고장 예천이라 그런지, 날씨 덕분인지,
예천 막걸리가 그리도 달짝지근한지는 처음 알았네요.
특히, 자연식당에서 한잔 마신 예천생막걸리는 그야말로 甘酒였지요.
삼강주막 부추전도 맛있었고, 분위기도 참 좋았구요.
고맙습니다.
한편의 "다큐멘타리"를 보는것 같습니다.
모처럼 많은 일행 리딩하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삼강주막에서 잘먹고 잘 놀앗습네다
우동길 또 오이소
영원한 젊은이,
그 젊음 영원하시길!!!
사진들이 다 멋지네요. 감사감사
늘 멋진 포즈 취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