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영, 박향림 태양극장의 막간가수 출신인 이난영의 본명은 이옥례이다.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하여 어머니는
극장주인 일본사람의 집에 일하러 제주도로 가고 없었다. 어머니가 그립기도 한 이난영은
목포 공립 보통학교(현 목포 북교 초등학교) 4학년때 제주도에 있는 어머니에게 가게 되었다.
당시 극장에는 태양극장의 연극공연이 있었는데 노래에 소질이 있는 이난영을 극장주인
일본사람이 소개하여 태양극장에 입단을 하였다. 태양극장은 1923년 박승희등이 설립한
토월회의 후신으로 토월회가 경영난으로 해산한 후 박승희 단독으로 1932년에 설립한
흥행위주의 연극단체였다.
태양극장의 연기인들은 토월회의 연기자들을 대부분 흡수하였는데 강석연, 양백명
(탈렌트 양택조의 부친), 이동호, 석금성, 강석재등 당시 일류 배우들이 많았다.
이난영이란 이름은 태양극장의 박승희가 지어준것으로 1933년 일본 주요도시 순회공연에서
처음으로 막간무대에 등장하여 '아리랑' '도라지타령'을 난영이란 예명으로 노래하였다.
"일본 교포의 초청으로 대판에 가서 '춘향전' 음반 12매로 취입할 때에
이난영이 처음으로 취입하여 ---"<사상계 1963.8 박승희 회고'
이난영이 처음으로 취입한 곡은 '지나간 옛꿈', '시드는 청춘'으로 1933년 8월에 태평레코드의 취입광고로 나와있다.
"16세때 세상물정을 아나요 대판에서 혼자 변두리 극장 분장실에 기숙하며 ---
어느 흥행사에게 사기도 당했어요. 그때 OK레코드 사장 이철이 레코드 기획일로 대판에 왔어요.
레코드 특약점 주인이 나를 추천했어요"
<모던일본(마해송 주관):1940. 3 좌담회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