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4. 5. 12(주일) - 부활절 일곱째 주일, 어버이 주일 - (2024년 19주)
제목; “그리스도인의 가정, 무엇이 다른가?”
성경; 골 3:18-21 (p.326) (시 128:1-4, 435<492>, 559<305>, 2)
<예배의 부름> (시 128:1-4)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 일곱째, 마지막 주일에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 평강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특별히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어버이를 기념하고 감사하는 귀한 날이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주일이 어린이주일이라 한 주 연기해서, 어버이주일인 오늘 저의 모교회 부산 동광교회 권사님께서 보내주신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작품집, 2024>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네 편을 나누려고 합니다.
아리송해 - 손동호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 아리송한 치매약
임플란트 - 조정명
손주 보러 서울 간다는 / 할머니 환한 얼굴에 / 금빛 꽃나무 한 그루 숨어 있다
남의 편 - 이승영
누가 나 보고 / 너그러운 분이라 하네 / 아내가 들으면 / 댁이 살아봤느냐 하겠지
잃은 안경 - 천봉근
할배가 안경을 찾아서 / 여기저기 돌고 있는데
네 살 손녀가 찾아 주었다 / 할배 손에 있다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 그대로 ‘짧은 시’인데, 그 내용은 결코 짧지가 않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들의 지혜가 번쩍이는 함축된 인생을 보여주는 시들입니다. 특별히 “잃은 안경”에서 ‘할배가 안경을 찾아서, 여기저기 돌고 있는데, 네 살 손녀가 찾아 주었다, 할배 손에 있다고’란 싯귀에 다들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말도 따로 움직일 때가 많이 있지만, 마음만은 청춘으로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II.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골 3:18-21<4:1>)은 소위 ‘그리스도인의 가정률’이라고 불리는 ‘가정 규범’(가정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귀한 본문입니다. 그리고 이 가정 규범은 4:1까지 이어져서, 당시 가정에서 이뤄지고 있는 세 가지 관계, 곧 ‘부부 관계’(3:18-19), ‘부모와 자녀 관계’(3:20-21), 그리고 ‘주인과 종의 관계’(3:22-4:1)를 말하고 있으며, 오늘 본문은 앞선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런 가정 규범을 기록하게 된 동기는 이제 기독교가 이방 세계에 전파되면서 이방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골로새서의 수신인인 골로새 교회는 이방인들이 주축이 된 교회였습니다. 이방인들이 주축이 되다보니 유대인들은 가지고 있는 율법이라는 신적 권위를 가진 생활 지침서도 없고, 여러 가지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차이가 나는 다른 상황에서 오는 교회의 혼란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건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신학적으로 그리고 생활 윤리적으로 가장 기초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가르쳐야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그래서 골로새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골로새서 3장은 1-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의 새 삶의 원칙에 대해 가르쳐주고, 5-11절에서 새 사람인 성도가 버려야 할 것들, 예를 들자면 ‘땅에 있는 지체,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우상 숭배)을 죽이라’(5)고 말하며,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벗어버리고’(8), ‘서로 거짓말하지 말고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8-9)고 말하며, 13-17절에서 새 사람인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 즉 긍휼과 자비와 겸손, 온유와 오래참음, 사랑과 용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며, 시와 찬송을 부르라고 권면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새 사람이 된 성도의 새로운 삶에 관해 가르친 사도 바울은 3장의 마지막(3:18-4:1)에서 성도의 가정 생활에 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 ‘그리스도인의 가정률’을 살펴보면, 바울이 골로새서를 기록하던 당시 사회 윤리 하고는 많이 다른 매우 진보적이고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가정이란 ‘가부장이 주인인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부장에게 아내와 자식, 노예들이 소속되어 있고, 윤리도 아내와 자식, 노예가 주인에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일방적인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태동기인 로마제국 사회는 강력한 가부장제 사회였습니다. 가부장(pater familias)이 가족 구성원에 대한 모든 권리를 쥐고 있었습니다. 가장은 모든 가족 구성원의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내에 대한 이런 권리는 노예에 대한 권리보다 약했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 로마의 가부장은 가족들에 대한 절대권을 행사했습니다.그런데 골로새서의 가정 규범은 가정을 이루고 있는 세 관계 구조, 아내와 남편, 자녀와 아버지, 노예와 상전에 대해 상호적이며 쌍방적인 권면으로 되어있어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 볼 때 매우 진보적인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골로새서 저자는 이에 “주 안에서”를 첨가함으로써 당시 진보적인 생활률을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도 제시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시 사회는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그리고 주인이 노예에 대해서 가부장적이며 일방적이었으나, 이 가정률은 상호적이며 쌍방적인 권면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 안에서”의 가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세 가지 관계, 즉 ‘부부 관계’(18-19), ‘부모와 자녀 관계’(20-21), ‘주인과 종의 관계’(3:22-4:1) 중 두 가지 관계, 곧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하기에, ‘부부 관계’는 생략하고 ‘부모와 자녀 관계’에 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골로새서의 가정률은 가부장적인 당시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상호적이며 쌍방적인 권면으로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녀가 부모에게 : 항상 순종하며 효(孝)를 다해야 합니다(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20)
부모 공경은 구약의 십계명에 나올 뿐만 아니라 중국 고전이나 고대 여러 나라 법에도 부모 공경이 나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동서고금 어느 종교라도 만장일치하는 기본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공경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골로새서의 가정률에 나오는 권면을 자세히 보면 ‘공경’이 아니라 ‘순종’이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인격적으로 공경하고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아버지의 옳지 않은 판단과 억압적인 태도에 순종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본문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문제를 일으켜 왔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나 요즘도 가끔은 자녀를 아버지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집안의 가문이라는 명목으로 아버지(부모)의 욕심과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녀들을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아이의 적성이나 관심, 능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너는 일류대학을 가야한다, 판사가 되어라, 정치가가 되어라, 목사가 되어라, 의사가 되어라, 그 여자와는 안 된다, 이 여자와 결혼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부모의 권위인 줄 알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이 본문 때문에 어떤 자녀는 자신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꿈을 꺾고 불행한 직업생활을 하거나, 사랑하지 않은 여자와 결혼해서 평생을 외롭고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순종하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휘파쿠에테’(ὑπακούετε)는 ‘이미 듣다’, ‘복종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휘파쿠오’(ὑπακούω)의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이 동사는‘…아래에, 위하여’라는 전치사 ‘휘포’(ὑπό)와 ‘듣다, 순종하다’라는 동사 ‘아쿠오’(ἀκούω)의 합성어입니다. 직역하면 ‘…아래에(위하여) 듣다’로써, ‘철저히 복종하다’란 뜻으로, 적극적인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는 낱말입니다. 결국 자녀들은 그의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언제나 부모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이와 같은 순종은 단순히 그들의 부모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 관계 역시 언약적 맥락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현실적인 통로로써 부모의 역할을 그 자녀는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 가장 큰 근거요, 목적이 주님께서 이를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규정하므로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모든 일을 곧이곧대로 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일에 순종하는 자세로 부모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옳게 부모님을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될 때 주 안에서 하나님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하므로 하나님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고, 부모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언약적 축복을 받아누리는 성도님들 다 되시길 기원합니다.
2. 부모가 자녀에게 : 자녀들이 낙심할 만큼 야단을 쳐서는 안됩니다(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21)
<현대어성경> “아버지된 사람들은 자녀들이 용기를 잃고 의욕을 상실할 정도로 너무 심하게 꾸짖지 마십시오.”
<공동번역> “어버이들은 자녀들을 못 살게 굴지 마십시오. 그들의 의기를 꺾어서는 안 됩니다.”
<한글킹제임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성나게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낙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쉬운성경>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너무 엄하게 혼내지 마십시오. 그들이 혹시 용기를 잃고 낙담할 수도 있습니다.”
20절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권면했던 바울은 21절에서는 부모들에게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 당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정에서의 부모의 권한은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강력한 부모의 뜻은 때로 자녀들을 분노에 차게 하거나 강압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노엽게 하다’로 번역된 ‘에레디제테’(ἐρεθίζετε)의 원형 ‘에레디조’(ἐρεθίζω)는 ‘흥분시키다’, ‘화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를 남용할 때 오는 부작용을 가리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부모는 자녀의 소유주가 아니라 소유주인 하나님을 대신하여 양육하는 양육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식에 대한 소유욕에 사로잡혀 자녀를 마치 자신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욕심대로 혹은 부모의 권위만을 내세워 자녀를 양육하다보면 자녀들이 상심하고 반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때 자녀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리고 “낙심할까 함이라”(히나 메 아뒤모신, ἳνα μὴ ἀθυμῶσιν)은 ‘히나 가정법’ 구문으로써 목적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는 ‘낙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낙심하다’로 번역된 ‘아뒤모신’(ἀθυμῶσιν)의 원형 ‘아뒤메오’(ἀθυμέω)는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된 단어로, 원래 이 단어는 전쟁 용어로써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적군이 밀려올 때 상대가 되지 않는 현실을 비관하여 낙심하고 실망하는 심리적인 상태를 나타내었습니다(Moule). ‘아뒤메오’(ἀθυμέω)는 부정 불변사 ‘아’(ἀ)’와 ‘열정, 열망’을 뜻하는 명사 ‘뒤모스’(θυμός)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열정을 잃어버리다’, ‘낙담하다’, ‘의기소침하다’, ‘심령이 상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가정법 현재능동형으로써 ‘계속되는 부모의 노여움으로 인해 심령이 완전히 상하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열정과 용기를 잃은 자녀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성장기의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 어린 격려입니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자녀의 재능과 취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부모들만의 일방적인 강요는 자녀를 낙담하게 합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자녀를 교육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달란트를 발견하여 그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한평생을 살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녀를 “노엽게”하는 말은 대개 자녀를 생각하기보다는 부모(당시는 가부장적 사회였으므로, 특히 아버지) 자신의 사회적 체면이나 욕심과 허영 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부모)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할 때는 자녀의 인격과 관심, 기호, 취향, 적성 등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관심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기호와 가치관에 따라 자녀들을 만들고, 남들에게 이러저러한 훌륭한 자녀를 가르쳤다는 평판을 들으며 훌륭한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고, 그러면 인생을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는 많은 아버지들이 있었습니다. 직업과 결혼 등 억압하는 아버지 앞에서 아들은 꼼짝없이 순종하지만, 그 아들이 그의 인생을 살면서 행복할 것인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집안 가문의 명예를 위해 이런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라고 아버지가 정했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하기 위해 아버지가 며느리로 원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며,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 항상 딴 생각을 하며 이중 생활을 하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나의 소유물이나, 나의 대리만족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분의 자녀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들은 항상 자녀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세워주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키우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충효(忠孝)’를 강조하고 가르치는 우리 동양 사상도 결코 일방적이거나 편향적이지 않습니다. 항상 상호적이요 쌍방적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백성이 임금과 나라에 ‘충’(忠)하면 임금과 나라는 ‘인’(仁)으로 다스려야 하며, 자녀가 부모에게 ‘효’(孝)하면 부모는 자녀에게 ‘애’(愛)로 답하는 것이 우리의 사상이었습니다.
3.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효도(孝道)은 무엇일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 세계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이 질서는 곧 조화와 평화이며, 생명의 법입니다. 비단 자연에 있어서의 질서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공동체에도 기본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가장 먼저 세우신 기관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륜의 질서 가운데서도 가정에서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가장 기본이 되는 질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이 바로 부모님을 통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모 공경을 모든 인간관계의 으뜸가는 질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경과 어긋나는 많은 세속적 가치들이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유혹하고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태도와 관계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 즉 효도란 무엇인지를 발견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깨달은 자녀와 부모 관계에 대한 바른 질서를 삶 속에 세워 나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1) 효도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높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인륜의 첫 계명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이 제5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계명들과 사람들을 위해서 세우신 계명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계명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나의 생명이 창조주로부터(from), 부모를 통하여(through) 세상에 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모든 생명체들의 창조 사역을 위해서 부모님을 창조의 동역자로 세우신 후 그들을 통해서 번성케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어느 누구도 경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경외하라”(레 19:3)는 말씀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모님을 하나님과 함께 경외의 대상으로 높여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인륜의 기본 질서를 바로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효도의 근거는 자녀들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해서 부모를 통하여 존재한다는 고백이며, 구약 성경에서 가르치는 효도는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신앙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를 경외하라”(레 19:3)는 ‘경외하다’는 히브리어 ‘티라우’(תיראו)는‘두려워하다’, ‘존경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야레’(ירא)의 미완료형으로, 미완료형은 반복, 강조의 의미를 내포하므로 ‘티라우’는 단순히 ‘존경한다’는 뜻이 아니라 ‘반드시 존경해야만 한다’(must respect,NIV)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조항입니다. 그래서성경에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불효에 대한 형벌은 하나님께 중한 죄를 범한 자에게 내리는 돌로 쳐 죽이는 극형이었습니다(출 21:15-17, 신 21:18-21). 이러한 처벌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기본 질서를 지키고, 모든 생명을 보존하시려는 창조주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는 십계명 제5계명을 기억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높여드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세상의 장수를 비롯한 풍성한 복을 받아누리는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5-17)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 21:18-21)
2) 효도는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효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듯이 부모님을 경외하고 높여드리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낮추어서 부모님의 말씀을 무겁게 생각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휘파쿠오)”(20)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언제나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신명기 27:16에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부모를 가볍게 생각하고, 업신여기는 자이며, 부모를 저주하는 자와 같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무겁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것이 부모님의 존재를 존귀하게 여기는 효도의 기본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부모님의 뜻을 역행하는 것은 부모님의 존재와 권위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불효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모님을 경홀히 여기는 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 30:17)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잠 20:20).
3) 효도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도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 10:1)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마음에 근심되는 일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필요를 잘 살펴서 그 파악된 필요를 정성껏 해결해 드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체로 연로하신 부모님의 필요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노화 현상과 함께 건강이 약해집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최대한으로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둘째, 경제력이 약해집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너무 궁색하지 않도록 봉양해야 합니다. 셋째, 역할이 줄어들고 일손을 놓게 됨으로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열등 의식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일감을 드리고 역할을 드려야만 기뻐하십니다. 넷째, 고독감을 느끼고 소외감에 사로잡혀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외롭지 않도록 온 가족들이 대화를 많이 하고 좋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살펴드려야 기뻐하십니다. 다섯째,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소망이 넘치는 생활을 하시도록 도와드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연세가 높아지면 이 세상적 즐거움은 점점 약화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이 강해지기 때문에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도와드리면 가장 기뻐하십니다.
몇 년 전 5월 8일 어버이날을 보내면서 어느 신문에서 설문 조사를 한 것이 발표되었습니다. 어버이날 부모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위가 카네이션, 2위가 책인데, 3위가 좀 의외였습니다. ‘현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님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 1위가 ‘현금’이었는데, 지금 받기 싫은 선물 3위가 현금이라니, 좀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온-라인 시대인 요즘 현금만 보내고 오지는 않는 자녀들이 싫다는 것입니다. 현금보다 자녀들이 와서 함께 해주는 것은 더 원한다는 대답을 들으면서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부모님들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잘 새겨서 우리 부모님들이 원하시는 것을 해드리므로 깊은 효도를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III.
오늘은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며 조금 특별하게 동영상을 보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고 생각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먼저 동영상 두 개 보겠습니다. ☞ 김유연+정제권 부부, 박노준+최은경 부부
설교 준비를 하다가 이번 어버이주일에는 깜짝 이벤트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해서 멀리 떨어져서 생활하는 우리 자녀들의 감사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두 부부에게 부탁했는데 흔쾌히 허락하고 동영상을 보내주었습니다. 동영상 보내준 두 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두 부부가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 인사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감사 인사로 받으면서 함께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어서 국민 가요인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 故 김광석 가수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란 노래를 듣겠습니다. ☞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1995년, 작사.작곡 김목경, 노래 김광석)
곱고 희던 그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 먼 길을 /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저 역시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을 전부 다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제가 결혼 주례를 부탁하러 오면 꼭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른이 되느냐?”고...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오는데, 저는 “양친 부모가 다 돌아가신 후에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이 볼 때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태어나도 자식은 항상 어릴 뿐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 아버이된 우리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거나, 나의 대리 만족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귀한 한 생명임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줍시다. 그리고 자녀된 우리들은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며 기쁘게 해드리므로 효도를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우리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정말 짧은 인생이라고... 영원에 비해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인생 살아가면서 정말 살아계신 부모님과 어른들을 잘 공경하고 순종하며 섬기는 효도를 다하므로 후회 없는 인생 살아가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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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2일(주일) 주일 2부예배 facebook 실시간 송출한 동영상 url 주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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