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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 원 게 시 판 ┓ 스크랩 <황제 음부경> 도인의 필독서
다람쥐 추천 0 조회 107 11.03.16 08:1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황제 음부경>





*** 음부경 1 ***

음부경의 출처와 저자에 대한 정설은 없다.

이 글은 예로부터 奇書(기서), 秘書(비서)라고하여 은밀히 전해진 것이다.

재야 사학가들의 말을 빌면 단군께서 스승 자부진인과 함께 문자를 창제하시게 되었는데 표의문자로서는 오늘날 한자의 기원이 되는 내황문을 만드셨고 발음문자로서는 외황문을 만드셨다고 전하고 있다.

黃帝(황제) 헌원은 헌원지역의 족장으로서 자부선생으로부터 내황문을 배우게 되었다.

흔히 천부경, 지부경, 인부경의 삼경을 거론하고 있으나 천부경은 9×9=81자의 원칙으로 전래되어 오고 있으며 그것은 우주의 법전으로서 일반인들이 헤아리기는 심히 어려운 바 있다.

지부경과 인부경에 대한 것은 각자 보는 시각에 따라 지부경을 음부경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각 경전에 깃들여 있는 수리원칙으로 짐작해 본다면 지부경은 역경의 수리와 부합된다고 할 수 있으며 천지의 이치를 종합하여 구성되어진 음부경이 人(만물)의 위치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음부경은 황제 헌원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고 그 내용이 天機(천기)를 담은 것이어서 태공망 여상이나 귀곡자 제갈량 등을 거쳐 위나라의 구겸지에 이르러 전할 사람을 찾지 못하여 崇山(숭산)에 감추어 놓았다고 한다.

이것을 唐(당)대에 이르러 李筌(이전)이 주석을 닮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석을 가하여 여러 가지 異本(이본)이 내려오고 있다.

여기에서는 실제 수련적인 측면에서 음부경을 조명한 悟元子(오원자) 劉一明(유일명)의 주소와 삼황옥결의 주소를 위주로 하여 풀이하기로 한다.


내가 평소 수행가들에 대하여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많은 수행가들이 자신의 체험만을 중시하여 이치적, 학문적 통찰을 소홀히 하고 그러한 것을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하며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풍조이다.

또한 각 수행자들 간에도 서로의 자기 체험만을 고집하여 마음을 닫고 왕래를 단절하므로써 각자의 행법에 대한 眞僞(진위)를 밝히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흔히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 또는 '문자를 떠나서 존재한다' 하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경원시하는 풍조가 있으므로 인하여 그 어두움이 사회 곳곳에 미치게 되어 이러한 풍조가 때로는 미신적으로 흐르고 급기야는 사회 병리적인 현상으로까지 번지는 예가 속출하는 것이다.

음부경 첫머리에서 '관천지도하고 집천지행이면 진의라'는 한마디에 드러나 있듯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 모든 것은 理(리)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수련과 행위는 모두 이치에 맞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또한 그 이치는 문자로써 표기되어지는 것이다.

바른 수행은 바른 이치를 증득하게 되어 있고 바른 이치는 바른 수행을 이끌게 되어 있다.

바르게 수련한 사람은 반드시 이러한 이치에 맞는 이론으로써 자신의 증득한 세계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더불어 옛 성현들의 말씀을 통하여, 혼란스럽지 않게, 세상에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수련이 비록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은밀한 자기만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앞서의 성인들께서 이미 정당하고 적합한 문자표기로써 세상에 밝혀놓지 않음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체험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성현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무시하여 괴이한 용어를 만들어 세상에 퍼뜨리고 이상한 행법을 자기만의 독특한 것이라고 하여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진정한 진리를 담은 평범한 수행법들을 가려 더욱 대중을 혼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더욱 옛 경전들을 깊이 살피어 그 속에 들어있는 참된 진리의 세계에 눈을 떠야 한다.

주희, 장과, 태공망 여상, 범여, 제갈공명, 장자방, 이전, 유일명 등은 각각 儒(유)와 음양학적인 측면, 도가적 선수련에 깊이 통달한 사람들로서 우리는 그들의 안목을 통하여 비록 음부경에 담겨 있는 오묘함을 전부 알 수는 없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방향성 제시와 향기는 스스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黃帝陰符經(황제음부경) 券上(권상) ***


*** 黃帝陰符經 序(황제음부경 서) ***


*** 李全 序("이전" 서) ***


少室山(소실산)의 達觀子 李筌(달관자 이전)은 신선의 도를 좋아하여 항상 이름난 산을 돌며 方術(방술)을 널리 찾아 다녔다.

어느 날 嵩山[숭산] 虎口巖(호구암)에 이르러 석벽 가운데에서 비단으로 된 음부경과 두루말이에 주사로 쓰여진 素書(소서)를 얻어 이를 비단으로 감싸서 간직하게 되었다.

봉하여 운하기를 魏眞君(위진군) 이년 칠월 칠일 上淸道士 寇謙之(상청도사 구겸지)가 명산에 감추어서 同好人(동호인)에게 전하고자 하였으며 그 본래의 겉모양은 문드러지고 낡아서 희미해진 것을 이전이 다시 본떠서 기록하였다.

이전이 밤낮으로 이를 외우고 그 뜻을 헤아렸으나 끝내 그 義理(의리)를 깨닫지 못하였다.

후에 秦(진)나라 驪山(려산) 아래에 이르러 한 노파를 만나니   (좌계 : 상투머리)를 틀고 남은 머리카락이 해진 옷을 덮었는데 지팡이를 집고 길옆에 서서 불이 나무를 태우는 것을 보고 스스로 말하기를 '火生於木(화생어목)하니 화가 발하여 반드시 목을 극하더라'고 하였다.

이전이 놀라 묻기를 이는 黃帝陰符(황제음부) 상문에 있는 글이니 母가 어찌 얻었음이요?

이에 노파가 말하기를 "내가 이 符(부)를 받아 삼원육갑주가 지났으니 일갑자에 어찌 살펴 알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太一遁甲經(태일둔갑경)에 이르기를 일원은 육십세이니 일 갑자를 행함이 된다.

그러므로 삼 元은 백 팔십 歲(해)이며 삼 甲子(갑자)는 일 周㈜가 된다.

육 周를 계산하면 천 팔십 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이 어려서 어찌 그 진의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전이 거듭하여 머리 숙여 절하며 책을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하니 노파가 웃으며 말하기를 나이 젊어서  頰(협)이 生門(생문)에 꿰고 命輪(명륜)이 月角(월각)에 가지런하며 血腦(혈뇌)가 함몰되지 아니하였으니 마음이 공평하고 성질이 어질며 법을 좋아하고 신이 용맹스럽고 지혜를 좋아하니 이에 나의 제자라.

그러나, 나이 오십 육세에, 크게, 대액이 있을 것이라 하며, 이전에게, 앉을 것을 권하고,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서로 보호함이 있을 것이라 하고 나무 아래에서 음부의 현묘한 뜻을 설하였다.

이전이 말하기를, 黃帝陰部(황제음부)는 三白言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백언은 도를 말하고 백언은 법을 말하며 백언은 술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셋은 실제로는 모두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니 성인과 현인, 지혜롭고 어리석은 이 등이 각각 그 분수대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음부는 상편에는 神仙抱一之道(신선포일지도)가 실려 있고 중편에는 富國安人之法(부국안인지법)이 있으며 하편에는 强兵戰勝之術(강병전승지술)로 구성되어 있다.

성인이 배우면 그 도를 얻을 것이며 현인이 배우면 그 법을 얻을 것이며 지혜로운 자가 배우면 그 술을 얻을 것이며 소인이 배우면 재앙을 받을 것이니 이는 그 분수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안으로는 天機(천기)를 헤아림에서 나오고 밖으로는 人事(인사)에 합당해야 하는 것이니 큰 바다의 조수와 온갖 계곡에 담겨진 물이 萬象(만상)을 함유하는 것과 같다.

그 기틀을 펼치면 우주를 감싸고 九夷(구이)를 하나로 묶는다 하여도 이보다 클 수가 없음이요, 그 기틀을 두루(彌)한다면 작은 티끌을 겨자씨에 넣어 숨긴다고 하더라도 족히 이보다 작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정미한 것을 살핀다면 黃庭八景(황정팔경)이라도 족히 써 이보다 더 배울 바가 없음이요, 그 지극히 중요로움을 살피는 것은 경전의 子와 史(사)라도 족히 써 이보다 더한 문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 교묘하고 지혜로움으로 할 것 같으면 손자와 오자, 한비자라도 족히 써 이보다 기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식물의 성정과 성하고 패하는 수와 죽고 사는 이치가 이러한 機(기)에서 벗어남이 없다.

이 책은 一名 黃帝天機之書(일명 황제천기지서)라고 하니 九竅(구규)와 四肢(사지)를 갖추지 못하고  貪愚癡(간탄우치)하며 風 狂 (풍간광광)한 자라고 할지라도 전함을 얻지 못하겠는가?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삼일동안 목욕재개 할 것이니 지위가 높고 낮음과 나이의 많고 어림을 가리지 말라.

다만 근본이 있는 자는 큰 스승이 될 것이다.

부귀는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가난하고 천하며 죄지은 자라고 할지라도 이십 紀(기)를 빼앗을 것이다.

하도 낙서에서 황제가 말하기를 성인이 생하고 天帝(천제)가 賜(사)하니 算 (산 )삼만 육천 칠백 이십 기에 主一歲(주일세)라.

만약 사명이 지나침이 있다면 문득 算(산)을 빼앗을 것이다.

산이 다하면 기를 뺏고 기가 다한즉 몸이 죽을 것이니 공덕이 있으면 사명이 문득 산을 더할 것이다.

산을 얻으면 기를 더하고 기를 얻으면 신이 장생불사할 것이니 매년 칠월 칠일 한 권을 베껴 써서 명산 바위틈에 감추면 算(산) 일천 이백 本命(본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루에 칠 편을 외운다면 사람이 지혜가 많아지고 심기가 더하여져 삿됨을 물리치고 재해를 벗어나며 三尸九(삼시구 ) 을 제거하게 된다.

성인이 금궤에 감추어서 전함을 잊지 않는다.

노파가 말을 마치니 날이 이미 저물게 되었다.

노파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게 보리밥이 있으니 같이 먹자 하고 이에 소매 가운데에서 표주박 하나를 꺼내어 이전을 하여금 물을 떠오라고 하였다.

이전이 계곡 가운데로 내려가서 표주박에 물을 채우니 갑자기 표주박이 무거워져 무게가 가히 백여근에 달함이라.

힘으로 도저히 들 수가 없게 되었다.

하여 문득 샘 속에 표주박을 빠뜨리게 되니 황급히 놀라서 표주박을 잡으려 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되돌아와 노파를 찾으니 노파는 간 곳이 없고 오직 보리밥 한 됫박만이 남아 있었다.

이전이 슬피 울며 노파를 찾아 다녔으나 해가 다 지도록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전이 이에 보리밥을 먹고서 되돌아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점차 배고픔을 잊게 되니 이전은 능히 수일동안 먹지 않거나 또는 하루에 여러 번을 먹더라도 아무런 장애가 없게 되고 기력이 어느 때나 왕성하였다.

이전이 여산의 노파가 설명한 바에 힘입어 음부를 터득하게 되니 이는 이전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바가 아니다.

후세의 동호인들은 천기를 공경하고 인연 있는 자에게 전함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貧貪癡(빈탐치) 癎(간) 齋賜輒誦(재사첩송) 瓠覓(호멱)간 風 狂(풍 광) 





*** 오원자 유일명의 주소 ***


*** 陰符經 註序(음부경 주서) ***


음부경 삼백여 자는 그 말씀이 심히 오묘하고 그 이치는 精微(정미)하다.

때문에, 混沌(혼돈)을 열고, 鴻 (홍 )을 剖析( 부석)하여, 造化(조화)의 비밀을, 통하게 하였다.

이로써 성명의 깊고 깊은 바닥을 열어 보임으로써 古今來(고금래)의 修道第一部眞經(수도제일부진경)이 되었다.

당나라 陸龜蒙(육구몽)이 이르기를 黃帝(황제)가 지었다고 하고 송나라 陳淵(진연)은 이르기를 黃帝가 廣成子(광성자)에게 받은 것이라 했으며 朱 公 또한 이르기를 황제가 지은 것이라 하였다.

邵堯夫(소요부) 선생은 이르기를 전국시대의 책이라고 하였고 程伊川(정이천)은 商(상)나라 末(말)이 아니면 周㈜나라 말기의 책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그 설이 분분하여 定見(정견)을 밝히기 어렵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세상에서는 대개 어떠한 것의 가치를 높이고 비중을 싣는 방법으로서 그 출처를 옛 성인들에게서 나온 것이라 하여 신비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傳書(전서)와 丹經(단경)들이 黃帝를 저자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문자를 살펴 보건대 황제에서 시작하여 唐(당), 虞(우), 夏(하), 商(상)으로 내려가니 혹자는 황제가 지은  作(선작)이라 하고 입과 입으로 서로 전하여 문자로 기록하지 않은 것을 후세의 眞(진), 仙(선), 侶(려)들이 책으로 만들어서 세간에 流傳(유전)한 것이라고 하나 이 또한 가히 定說(정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책은 沿訛( 연와)된지 이미 오래되어 진본을 가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字句(자구)가 어긋난 것이 적지 아니하고 혹자는 驪山 老(여산 노) 의 말의 빌어 百言은 道를 설하고 百言은 法(법)을, 百言은 術(술)을 설한 것이라고 하나 이 또한 聖道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이는 맹인을 이끄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정이천, 태공망 여상, 장과, 장자방, 제갈공명 등의 註語(주어)라고 하여 세상을 속이고 사람을 미혹하게 하니 이 또한 물고기의 눈을 가지고 混珠(혼주)구슬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크게 眞經(진경)의 妙旨(묘지)를 상실하는 바가 있다.

乾隆(건륭) 사십 사년, 歲次(세차) 己亥(기해)에, 南台(남태) 深處(심처)에서, 諸家(제가)의 註本(주본)을 취하여, 字句(자구)를 교정하고, 세심하게 참작하고, 大意(대의)를 서술하여, 삿된 면을 일소하고, 바름을 구함으로써, 狂言亂語(광언난어)의 폐단을 제거하였으니, 高明者(고명자) 스스로 능히 분별하리라.


大淸(대청) 嘉慶(가경) 三年 歲次(세차) 戊午 九月 九日

樓雲山(루운산) 素樸散人(소박산인) 悟元子(오원자) 劉一明(유일명)  

於自在窩中(어자재와중)





*** 陰符經 註解跋(음부경 주해발) ***


음부경은 황제가 도를 설명한 글이되 兵家(병가)에서는 天時孤虛旺相之理(천시고허왕상지리)와 人事進退存亡之因(인사진퇴존망지인)으로 풀이하니 곧 緇黃之流[치황지류]이다.

聖經(성경)을 천박하게 하며 註疏(주소)를 그릇되게 한 것이 또한 적지 아니하다.

그릇 되이 죽은 쥐로써 살아있는 쥐를 대신하듯이 하며 푸른 것을 가지고 누르다고 하니 거기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우리의 스승 悟元老師(오원노사)께서 性命(성명)의 정밀함을 밝히시고 천과 인의 오묘함을 증명하시니 옛 성인들께서 세상을 염려하시는 마음과 체합함이다.

그 감춰진 것을 들추어내시어 후학들이 이치를 궁구하되 그 문을 찾기가 어려운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상세하게 해설하심으로써 여러 가지 어긋난 설들을 제거하시었다.

또한 음부의 핵심을 설명하시어 盡性至命之學(진성지명지학)과 有爲無爲之理(유위무위지리)를 모두 세세하게 정립하시어 상세히 갖추어 놓았으니 장장 수 천년 동안 매몰되었던 음부를 오늘날 원래의 뜻을 다 노출시키어 조금도 의심됨이 없게 하셨다.

경에 운하기를 '관천지도집천지행이면 진의' 라 하였으니 나는 말하기를 聖經之精(성경지정) 聖道之微(성도지미)를 盡矣(진의)라고 한다.


大淸(대청) 嘉慶(가경) 三年 歲次 戊午 九月 九日

受業(수업) 門人 王附(왕부) 靑雲峰(청운봉) 甫沐手敬願(보목수경원)






*** 陰符經(음부경) ***



軒轅黃帝著(헌원황제저)  

陽門人張陽全校閱(양문인장양전교열)

悟元子劉一明註(오원자유일명주)

後學陶鑄靈重刊(후학도주령중간)



陰者(음자)는 暗也默也(암야묵야)라.

사람이 능히 볼 수 없고 알 수 없으니 스스로 홀로 보고 홀로 아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符者(부자)는 契也(계야)니 둘이서 서로 합한다는 뜻으로 彼(피)와 此(차)가 如一(여일)하다는 뜻이다.

經者(경자)는 徑也(경야), 道也(도야), 常也(상야)니 常行(상행)하는 도로서 經(경)이 오래되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음부경은 神明(신명)이 暗運(암운)하고 默契造化(묵계조화)하는 도이니 묵계조화란 사람이 하늘과 더불어 합하여 一動一靜(일동일정)이 모두 천기에 합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또한 一天이 되는 것이다.

상, 중, 하 삼편이 모두 음부경 三字에 申明(신명)되는 것이니 음부경 세 글자의 뜻을 알게 된즉 삼편의 大意(대의)를 가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上篇 (상편) ***


"관천지도" 하고, "집천지행" 이면, 진의라.



성명의 도는 一天道이며, 하늘의 도는 음양의 도일뿐이다.

修道者(수도자)는 능히 天道(천도)의 오묘함과 神明(신명)의 默運(묵운)함을 알아 음양의 기를 훔치고 造化(조화)의 權(권)을 빼앗아 가히 長生不死(장생불사)할 것이며 가히 無生無死(무생무사)해야 할 것이다.

그 最要處(최요처)는 능히 觀(관)하고 능히 執(집)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觀(관)이라고 하는가?

格物致知(격물치지)의 관이며 極深硏幾(극심연기)의 관이며 心知神會(심지신회)의 관이며 廻光返照(회광반조)의 관이며 不隱不瞞(불은불만)의 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러 執(집)이라고 하는가?

專心致志(전심치지)의 집이며 身體力行(신체역행)의 집이며 愈久愈力(유구유력)의 집이며 無過不及(무과불급)의 집이며 始終如一(시종일여)의 집이다.

즉 하늘의 도를 본다 함은 무위의 공이며 頓悟(돈오)이며 소이 了性(료성)이다.

하늘의 行을 잡는다 함은 유위의 學이며 漸修(점수)이며 了命(료명)이다.

能觀能執(능관능집)은 음양의 도를 사용하여 이로써 음양을 벗어나는 것이며 세간법을 의지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것이니 성과 명을 함께 마치고 心과 法을 모두 잊어 천지를 초탈하여 영겁토록 長存(장존)하는 것이다.

이 두 구절은 선을 이루고 불을 이루는 하늘 사다리가 되는 것이며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는 대도인 것이다.

이 밖의 것들은 모두 방문의 굽은 길이며 邪設淫辭(사설음사)이니 고로 盡矣(진의)라 한 것이다.

"관천지도하고, 집천지행이면 진의라."

이 한마디 말은, 음부경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다.




문1)

여기에 나열된, 격물치지나, 기타 여러 가지 집과 행에 대한 글들은, 이미, 여러 경서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이 자리에 모여서, 읽고 해석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좀 더,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서, 관천지도와 집천지행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답)

여기에 표현된, 여러 글귀들에서 나타나 있듯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관천지도이며, 우리가 행하는, 걸음걸음이, 집천지행입니다.




문) 너무 피상적입니다.

실례를 들어서 설명해 주십시오.





답)

자, 여기 손에 하나의 물건을 쥐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물건을 잡으려면 이 손의 것을 놓아버린 후에야 잡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마음이 어떤 하나에 집착한다면 이것은 마치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관찰하는 것과 같아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관천지도란, 희로애락에 떨어지지 말고, 본연한 中心으로써,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실례를 든다면 한의원에 환자가 찾아왔을 때에 환자를 잘 보아야 되겠다거나 기타의 어떤 마음을 가진다면 이는 바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처음 대할 때에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정리되기 이전에 순간적으로 뭔가 모를 느낌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마음 이전에 신이 먼저 동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텅 비워 무심하게 환자를 그대로 대한다면 환자의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를 통하여 우리는 인간의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의 이치를 꿰뚫게 됩니다.

이런 것이 관천지도입니다.

집천지행이란 천지와 내 몸의 기운이 하나인 것을 깨달아 그 흐름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나의 몸 속에, 자연한 기운이 형성되어, 음양의 변화를 이루면, 그 기운이, 곧, 천지본연의 기운과 동체를 이루게 되므로, 나의 기운의 흐름이, 곧, 천지의 흐름이오, 천지의 기의 흐름이, 곧, 내 몸 속의 기의 흐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이, 나의 얼굴을 향해서, 날아 온다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하게 됩니다.

어떠한 꽃향기가, 풍겨온다면, 자기도 모르게 그쪽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천지의 어두운 기운이 흘러올 때에는 내 몸 속의 음양이 자연히 그것을 인지하여 스스로 피하게 되고 천지의 밝은 기운이 도래할 때에는 또한 자연스럽게 그것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행위로 나타날 때에, 나의 모든 행위는, 天機(천기)에, 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로 선천이 천불위하여 후천이 봉천시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즉 내가 하늘보다 먼저 하여도 하늘이 나를 어기지 아니하며 내가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하늘이 나의 뜻을 받들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나의 몸 속의 음양이 천지자연의 본연한 기와 상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2) 점과 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답)

우리가, "성명쌍수"를 말하는데, "점"과 "돈"은, 곧, "성"과 "명"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살과 뼈로 이루어진 우리의 이 육신은 시공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 수련은, "점"에 해당하고, 우리의 마음 수련은, "돈"에 해당합니다.

마음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어린아이가, 갑자기, 뛰어 다닐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점진적인 수련을 통한,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선도 수련"에 있어서는, 대주천, 즉, "연정화기" 까지가, 漸修(점수) 입니다.

옛 선인들의 글에 보면, 어느 선사의 한 마디에, 깨달았다고 하고, 또, 어디에서는, 몽둥이로 맞는 순간에, 깨달았다고 하며, 수 없이 깨달음의 행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이란 것은, 本覺(본각)이, 아닌 것입니다.

"연정화기"를 닦아, "삼단전"에, "내단"이 형성되어, 자신의 생명의 근본인, 단전기혈에, 현재 의식이, 입실하여야만이, "진정한 대각"인 것입니다.

이때부터가, 진정한 "돈법"인 것입니다.

해서 "선가"에서는, "대주천"이 완성되는, "연정화기" 까지를 점법,
"연기화신"과 "연신환허"의 단계를, 돈법이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용어로는, "시월도태", "삼년유포", "구년면벽" 등으로, 세월을 표시하는 용어를, 쓰고 있으나, 이것은, 형식적인 의미부여일 뿐이며, 실제로는, 돈의 세계(마음의 세계)이므로, 외형적인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즉, 몇 달만에도, 구년면벽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몇 십년에도, 구년면벽이 이루어지는 그런 것입니다.






*** 음부경 2 ***

天有五賊(천유오적)하니 見之者昌(견지자창)이라.


주)

오적이란 金, 木, 水, 火, 土이다.

하늘은 음양오행으로써 만물을 화생하고 기로써 形(형)을 이루니 사람은 곧 이 기를 받아서 태어나고 자란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생함으로부터(但自陽極生陰) 선천에서 후천으로 떨어지게 되어 오행이 능히 화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 대적하고 해함으로부터(自相賊害) 각각 그 性을 따로 하게 된 것이니 목은 금으로써 적을 삼고, 금은 화로써 적을 삼고, 화는 수로써, 수는 토로써, 토는 목으로써 적을 삼으니 이것이 이른바 하늘의 오적이 된다.

이러한 오적을 백성은 일용하되 알지 못하는 것이니, 그 기를 따라서 순행하므로 생겨나고 죽는 것이며 사망하였다가 다시 잉태하므로 生과 死가 그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를 꿰뚫는 자가 있다면 逆(역)으로 조화를 베풀어 오행을 전도시켜 금이 본래 목을 극하는 것이나 목은 도리어 그로 인하여 器物(기물)을 이루고, 목은 본래 토를 극하는 것이나 토는 도리어 이로 인하여 生榮(생영)하게 된다.

토는 본래 수를 극하는 것이나 수는 도리어 이로 인하여 넘치지 않게 되며, 수는 본래 화를 극하는 것이나 화는 도리어 이로 인하여 지나치게 건조하지 아니한다.

화는 본래 금을 극하는 것이나 금이 도리어 이로 인하여 화를 받아들여 청명함을 이루니 극하는 가운데 새로운 생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적이 전화하여 五寶(오보)를 이루며 一氣가 渾然(혼연)하여 화는 返本(반본)하게 되니 어찌 창성하지 아니하겠는가?




강의)

지난 시간에 이전의 주에서 나온 여산 노노의 말을 빌려,
上者(상자)는, 神仙抱一之道(신선포일지도) 이며,
中者(중자)는, 富國安民之法(부국안민지법) 이며,
下者(하자)는, 强兵戰勝之術(강병전승지술) 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전의 주에서는 상편, 중편, 하편으로, 각기 百言으로, 편을 나누었고, 또한,
上根基者(상근기자)는 신선의 도를 발견하고,
中根基者(중근기자)는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게 하는 도를 얻으며,
下根基者(하근기자)는 싸움에 임하는 병술을 취득한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음부경은, 접하는 자의 풍속과 정서에 따라, 아주 색다르게, 조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三皇玉訣」(삼황옥결)에 따르면 '상자 신선포일지도'는 上天(상천)이 비밀로 하는 것으로 世人들이 얻기 어려운 것이라 했으며 이는 우주 본바탕의 기운인 太一之 (태일지 )를 채취하여 虛無(허무)한 가운데 神(신)을 煉(연)하는 도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소위 오늘날의 煉神還虛(연신환허)의 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자 부국안민지법'은 煉 (연기화신)의 도로서 범인들이 眞精(진정)을 연하여 神胎(신태)를 이루니 이를 胎仙(태선)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養 (양육?)하여 신을 보존하고 대도에 합하여 단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므로 부국안민지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몸을 말하며 民은 精(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해서 부국하고 안민한다 함은 진기를 단련하여 단을 이룸으로써 신체를 완전히 하여 명을 마치고 정을 편안히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소위 煉氣化神(연기화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자 강병전승지술'은 진기로써 음기를 戰退(전퇴)시켜 體(체)를 단련하고 골수를 순양케 하는 것으로 不死(불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강병은 精(정)을 단련하는 것이며 전승지술은 강병으로써 음기를 제거하는 火候周天之術(화후주천지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의 煉精化氣(연정화기)의 과정인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정, 기, 신의 三寶(삼보)를 사용한 삼단계적 수련체계가 이미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갖추어졌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록의 신빙성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황제가 음부경을 공동산의 석동에서 얻은 후 무수한 異人(이인)과 도사를 찾아 그 뜻을 물었으나 답하는 사람이 없었고 후에 광성자에 의해 天眞皇人(천진황인)을 만나 뵙고 비로소 그 두 분에 의하여 음부경을 해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천진황인의 나이 이미 이십만 이천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예전에 원효대사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 가운데 '野雲'(야운)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저자가 어떠한 기록에서 이 내용을 발췌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원효대사가 동해안의 어느 동굴에서 수도를 하고 있을 때에 아침에 일어나 보면 동굴에 피워 놓았던 불을 건드린 흔적을 발견하곤 하였습니다.

해서 하루는 잠을 자는 척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벌거숭이 모습의 사람이 나타나 불을 건드리는 것을 보고는 물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야운이라 하고 나이를 물으니 자신은 너무 오래 살아서 나이를 알지 못한다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대가 얼마나 살았는고?" 하고 물었더니

"동해 바다가 세 번 땅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라고 답하였습니다.

해서 그 자리에서 불법을 설명을 주었더니 단박에 깨치더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선도 수련의 이치로 볼 때 정과 기가 경락에 충만하면 외부의 風寒邪(풍한사)(바이러스도 이에 속함)의 氣가 인체에 침투하거나 머무를 수 없게 되므로 만병에서 벗어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문1)

但自陽極生陰'(단자양극생음)에 대하여 질문하겠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문법원칙상 '양이 극함으로부터 음이 생겨난다' 라고 해석함이 옳을 듯 합니다.



답)

물론 그 한 문장만 떼어 본다면 그렇게 해석함이 옳습니다.

그러나 전체문장의 흐름으로 볼 때에 오적은 금, 목, 수, 화, 토이고 하늘은 이러한 오행으로 만물을 생육하는 것이며 이러한 오행의 기로써 만물의 형체를 이루니 사람 또한 이 기를 받아서 잉태되고 생장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오원자의 주해는 우주생명현상적 차원을 밝히는 중요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앞서의 강의시간에 만물의 근원 되는 한 기운을 '天元一 ' 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제각기 그 모습과 성질을 다르게 하는 것 같으나 그 최초의 근원을 無極(무극)이라 하고 그 무극에서 하나의 기운이 혼돈의 상태로 자연발생 되며 구체적인 최초의 기운인 兩儀(양의)에 의해 천태만상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양과 음은 두 가지 물건이 아니며 한 물건이 음양으로 변하는 것이고, 이러한 음양변화를 시발로 하여 똑같은 이치로써 선천에서 후천으로 떨어져갔기 때문에 오행이 서로 화합치 못함으로서 賊害(적해)하게 된다는 논리전개입니다.

따라서 나는 '양이 극하여 음이 생함으로부터' 라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어느 것이 문법체계에 맞는지는 본인이 전문학자가 아니므로 단정지어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뜻의 흐름상 이렇게 풀이하였습니다.

같은 문맥으로 自相賊害,(자생적해) 各一其性,(각일기성) ...이 이어지는데 동일 해석원칙으로 '서로 적해함으로부터', ...이라고 한 것입니다.

만일 이 구절을 '서로 함으로부터 적해하여' 라고 풀이한다면 선천기가 서로 화합하는 것 자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행은 본래 하나로 화합하는 것인데 화합하지 못하는 까닭은 서로 어울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탁하여 氣質之性(기질지성)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문2)

五行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십시오.




답)

오행의 근본성질은 이미 선도에 대한 보충강의 시간에 설명 드린 적이 있습니다.

간략히 말하면 먼저 우주공간에 최초로 무언가 뭉치는 기운이 형성되고 비중이 생기면서 내려가는 기운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러한 뭉치고 내려가고 서늘한 기운을 水라 하였고 숫자로는 1과 6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뭉치는 수의 기운에 상응하여 바깥으로 퍼져 나가며 밖은 밝게 비치고 속은 어두운 기운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火이며 숫자로는 2와 7에 해당합니다.

뭉치고 퍼져나가는 기운이 서로 합성되어 3·8 木의 기운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나무의 나이테는 水의 뭉침이며 위로 뻗어 오르는 성장은 火의 기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4·9 金은 이러한 뭉치고 성장하는 기운이 극에 달하여 한계점에 이르면 자연히 딱딱하게 굳어지는 기운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5·10 土는 이러한 딱딱한 기운이 극성에 이르면 다시 흩어져 사방에 퍼져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도에서는 이러한 오행의 이치에 의해 후천으로 떨어진 水의 단계에서 음양변화를 얻어 火로 옮겨가며 차차로 선천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 화, 목, 금, 토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물, 불, 나무 등이 아니고 그러한 오행의 성질을 가장 잘 나타낸 물상의 비유인 것입니다.

이 자연적인 法理(법리)에 의하여 아랫배에 기를 모을 수 있는 것이고 기가 모여짐에 따라 점차로 뜨거워지고 팽창되는 것이며 산발적으로 팽창되는 기운이 木의 단계로 발전함으로써 뭉치고 뻗어나가게 되어 任督脈(임독맥)을 개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기운이 단전에서 응취되므로 인하여 내단을 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자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러한 오행의 하늘기운을 十干이라 하고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로 표시하고 오행의 땅기운을 十二支라고 하고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표시합니다.

선도에서는 십이 지지를 소주천 경맥의 배대하여 하늘의 이치가 우리의 몸 속에서 이루어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일년 열두 달의 이치가 하루 십이 시진에 축소 반영되어 나타나고 하루 십이시진의 천도운행의 이치가 소주천 一周天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삼황옥결」에서 진인은 천지간에 흐르고 있는 太和之 를 몸 속에 조화시켜 신선을 이룬다 하였습니다.

凡人은 범인대로, 眞人은 진인대로 각자의 淸濁(청탁)에 따라 천지의 기를 몸 속에 받아들여 각자 그 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축인묘의 소주천 배대를 통하여 천도의 운행을 내 몸에서 느낄 수 있고 천도운행의 음양강도에 따라 자연스러운 화후법이 그 속에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음부경 3 ***

五賊(오적)이 在心(재심)하니 施行於天(여행어천)이면 宇宙(우주)가 在乎手(재호수)하고 萬化(만화)가 生乎身(생호신)하니라.




주)

사람은 오행의 기를 끌어 몸을 만드니 몸 가운데에는 오행의 기가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마음이란 몸의 주인이며 몸이란 마음의 집이니 오적이 몸에 있다 함은 실은 마음에 있는 것이 된다. 다만 마음은 人心과 道心의 나눔이 있으니 인심으로 用事(사용)한즉 오적이 발하여 喜怒哀樂慾(희로애락욕)의 五物(오물)이 되고 도심으로 用事한즉 오적이 변하여 仁義禮智信(인의예진신)의 五德(오덕)이 된다. 만약 능히 觀天(관천)하여 오행의 消息(소식)에 밝아 도심으로 운용한다면 一步一趨(일보일추)가 모두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며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주가 비록 크다고 하나 손바닥 안에 있는 것과 같으며 萬化가 비록 많다고 하나 내 몸 안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니 오행을 모으고 사상을 합하여 성명을 마침이 가히 어렵지 않다 할 것이다.





강의1)

하늘의 기운은 無形無質(무형무질)이다. 땅의 기운은 有形有質(유형유질)이다.

이는 하늘이 선천이라면 땅은 후천이라고도 비유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무형무질이며 몸은 유형유질이다.

우리의 몸은 오기를 받아들여 生하고 長하는 것이며 이러한 오기는 五臟六腑(오장육부)를 형성하고 있다.

오장육부가 서로 조화되고 中和(중화)를 얻는다면 신체는 건강할 것이며, 우리의 마음 또한 中道(중도)를 얻는다면 이도 또한 마음의 건강을 얻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人心은 後天氣質之性(후천기질지성)에 떨어진 것이므로 各一其性(각일기성)인 것이다.

때문에 희로애락욕의 하나씩을 잡아 순간순간 유전하고 있는 것이며 이에 따라 우리의 장부 또한 편중된 상태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예로 노하면 간이 상하며 얼굴에 푸른빛이 돌게 되고, 기쁘면 심장의 기가 발하여 얼굴에 홍조를 띄게 되며, 두려움에 떨게 되면 신장이 위축되고 몸이 굳어지면서 움츠러들게 된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은 서로 상응하는 관계로서 중도를 벗어나면 오적의 피해에 떨어지게 된다.

천진황인은 말하기를 우주란 천지이며 음양의 기를 받아들여 만물의 모양을 이룬다고 하였다.

陰者(음자)는 地(지)이며  陽者(양자)는 天이다.

天氣가 하강하면 地氣가 받아들이고 지기가 상등하면 천기와 접하게 된다.

천기와 지기가 상교하여 음양이 감응되므로 萬神(만신)이 生化成象(생화성상)된다.

우리의 몸도 이러한 천지감응의 이치에 따라 吸(흡)할 때에는 천기는 하강하고 지기는 상승하며, 呼(호)할 때에는 지기는 하강하고 천기는 상승한다.

이렇듯 우리의 몸 속에서 천지의 기운이 상교되어 막히고 밀폐된 곳을 모두 열어 내단을 이룬다면 완전히 자연과 일체를 이루어 나의 기가 곧 우주의 기요, 우주의 호흡이 곧 나의 호흡이 된다.

옛 성인들께서는 이러한 天地陰陽造化(천지음양조화)의 원기를 파악하셨으니 지혜로운 자는 이를 얻어 굳게 지키고, 굳게 지키는 자는 도를 얻어 죽지 아니한다.

고로 우주가 손안에 있다고 한 것이다.

광성자가 말하기를 大道(대도)는 無爲(무위)이며, 무위이면 命不亂(명불난)하다.

명이 어지럽지 아니하면 神(신)이 떠나지 아니하고 神不移(신불이)즉 精不散(정불산)하고, 精不散(정불산)즉 氣不絶(기부절)하니 고로 이러한 道氣(도기)를 몸에 굳게 지키어 단을 이루게 된다면 또한 우주가 내 손에 있는 것과 같다.

萬化(만화)가 몸에서 생한다고 하는 것은 정이 흩어지지 아니하여 신이 떠나지 아니하므로 신이 곤륜산에 머물러 오기가 합치어 神胎(신태)를 맺게 된다.

신태가 성장하여, 몸 속 오장의 기와 합치하여, 五기朝元을 이루어,
완전한 "양신(陽神)이 되면, 내 몸의 기는 물론이려니와, 천지자연의 기운 또한,
동일하게 能事(능사)하게 된다.

고로 모든 변화가 내 몸에서 나온다고 한 것이다.





문)

문장의 첫 시작은 '五賊(오적)이 在心(재심)하니'로 되어 있고 뒷부분은 '宇宙(우주)가 在乎手(재호수)하고'로 되어 '在'자와 '在乎'의 관계가 문명하지 않습니다.
답-일초스님) 어조사 於, 于, 乎는 동일하게 쓰이는 것입니다. 다만 시기와 지역에 따라 즐겨 쓰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오적이 재심하다'라는 것은 오적은 마음에 있다는 동일선상의 것이며 '우주가 재호수하다'라는 것은 우주의 무한한 여러 가지 것들이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공간적인 대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치사로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강의2)

우리는 음부경의 '관천지도'에서 천도가 오기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학의 근간을 이루는 음양, 즉 오기의 변화를 좀더 심도 있게 관찰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오기가 잘못 사용되면 오적에 떨어지는 것이며, 중화를 이룬다면 오상이 되는 것이다. 오행의 기본적 상생상극의 흐름을 파악하여 자신을 이해하며 남을 파악하고 사물을 관찰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음부경 4

天性(천성)은 人也(인야)요 人心(인심)은 機也(기야)니 立天之道(입천지도)하여 以定人也(이정인야)니라.




주)

天性(천성)이란 하늘이 부여한 성이니 곧 眞如之性(진여지성)으로 소위 眞心(진심)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하늘의 법칙을 순으로 따라 사람이 이를 얻어 사람이 되는 것이다. 人心(인심)이란 氣質之性(기질지성)이니 곧 知識(지식)의 性(성)으로 소위 機心(기심)이다. 景物(경물)을 보아 뜻이 생겨나고 바람을 따라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니 사람은 이로 인하여 生(생)이 있고 死(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天性(천성)이란 天機(천기)이니 곧 天道(천도)이다. 人心(인심)이란 人機(인기)이니 곧 人道이다. 천기를 지키는 자는 보존되고 人機(인기)를 따르는 자는 망한다. 오직 大聖人(대성인)이라야 天道를 觀(관)하고 天行을 잡아 中에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니 寂然不動(적연부동)하여 感而遂通(감이수통)하게 되는 것이다. 眞性(진성)을 닦아 氣性(기성)을 화하게 하며 天道(천도)를 지키어 人心을 定(정)하게 하는 것이니 方寸之內(방촌지내)에 털끝만치라도 客氣(객기)가 섞이지 않게 하여야 한다.





강의)

만물의 근원을 先天一 라고 하였다. 모든 생명의 조화가 一生二(일생이), 二生三,(이생삼) 三生萬物(삼생만물)로 이어지는 것이니 사람 또한 一 를 받아 三 를 化生(화생)하니 이가 곧 精氣神 三寶(정기신 삼보)이다. 하늘은 북두칠성으로 기틀을 삼아 움직이고 사람은 마음이 기틀이 되어 움직인다. 마음은 神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神으로 움직이면 곧 천성에 합하는 것이며 도에 합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一 를 받아 性命을 이루니 여기에 부모의 二 가 相合(상합)하여 형태가 갖추어진다. 고로 사람은 천성에 의하여 생겨나게 되는 것이며 인심에 의하여 움직이게 된다. 고로 사람은 마음을 보존하고 신을 지켜 천성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만일 機心(기심)으로 살게 되면 마음이 어지러워져 神이 흩어지며 氣가 끊어져 命이 망하게 되니 이는 모두 천성을 어그러뜨리는 일이다. 천지는 성명의 근본이니 사람이 몸 속의 기를 지극히 맑게 닦아 천기에 합하면 본성을 잃지 않게 된다. 성을 잃지 아니한즉 기가 흩어지지 아니하고, 기가 흩어지지 아니한즉 명이 망하지 아니하고, 명이 망하지 아니한즉 형체가 멸하지 아니한다. 고로 하늘의 도를 세워 사람을 定하는 것이다.




문1)

주에 '所謂眞心(소위진심)'과 '所謂機心'(소위기심)이 나오는데 이 구절을 위 문장에 붙이는 것과 아래 문장에 붙여 주어절로 해석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맞는지요?




답)

만일 '所謂眞心'(소위진심)을 뒤 문장에 붙여 해석한다면 '天性(천성)이란 天賦之性(천부지성)이니 곧 眞如之性(진여지성)이다. 소위 眞心(진심)은 識(식)도 아니고 知도 아니니 하늘의 법칙을 좇아서 사람이 이를 얻어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不識不知順帝之則'(불식부지순제지칙)이란 구절은 유일명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서 항상 붙어 사용되고 있습니다(답-김낙필 교수). 따라서 '所謂眞心'(소위진심)과 '所謂機心'(소위기심)은 위 문장에 붙어서 결론을 강조한 말로 보아야 합니다.




문2)

만일 '所謂眞心'(소위진심)을 '不識不知'(불식부지)라 한다면 헤아림이나 아는 것으로는 眞心(진심)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글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답)

어차피 형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형상이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글로써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사과의 빛깔이나 향기, 모양, 성분을 아무리 글로써 자세히 나타낸다고 할지라도 그 글을 통하여 실제로 사과를 먹어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과를 먹어본 사람만이 그 글을 통하여 사과를 먹었을 때의 느낌이나 감정, 성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충설명-일초스님) 사단논법을 적용하여 이 문제를 풀어봅시다. 첫째, A는 빨간 사과만 보고 자랐고 B는 푸른 빛깔의 사과만 보고 자랐다고 가정합시다. A는 말하기를 "사과는 붉은 것이다(是紅)." 하였고 B는 "사과는 푸른 것이다(是靑)."라 하였으며 두 가지를 다 먹어보지 못한 C는 "사과는 붉지도 않고 푸르지도 않다(非紅非靑)." 라고 하며 두 가지를 다 먹어본 D는 말하기를 "사과는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다(亦紅亦靑)"라는 논리로 전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단논법으로서도 그 실상은 깨닫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사과를 입에 콱 쳐 넣고 "이게 바로 사과다." 하는 것만이 진실로 사과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옛 진인들께서 이르시기를 '不立文字(불입문자)하여 敎外別傳(교외별전)하니 直指人心(직지인심)으로 見性成佛(견성성불)이라.'고 한 것입니다.

天發殺機(천발살기)하면 移星易宿(이성역숙)하고 地發殺機(지발살기)하면 龍蛇起陸(용사기육)하고 人發殺機(인발살기)하면 天地反覆(천지반복)하나니 天人合發(천인합발)이라야 萬化定基(만화정기)니라.

주)
殺機(살기)란 陰肅之氣(음숙지기)이니 곧써 만물을 傷(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陰(음)이 없다면 능히 陽(양)을 생할 수 없고 殺(살)이 아니면 生(생)을 지킬 수 없다. 고로 하늘이 殺機(살기)를 한 번 발한즉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시작함이 있게 되고 별자리가 옮겨지며 북두칠성이 回寅(회인)되는 것이다. 땅이 한 번 殺氣(살기)를 발한즉 極(극)이 바뀌어 다시 시작하니 용과 뱀이 땅에서 일어나며 靜이 극하여 또한 動이 있게 된다. 오직 사람도 또한 一天地를 갖춤이니 이러한 음양이 몸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만약 능히 하늘을 본받고 땅을 法하여 殺氣를 움직인즉 오행이 顚倒(전도)되고 地天交泰(지천교태)하게 된다. 이러한즉 人心이 천심과 더불어 합하고 음양이 전도됨이 다만 순간의 일이다. 天時와 人事가 합하여 하나로 가게 된즉 萬物變化(만물변화)의 근본 기틀이 곧 이에서 정하여진다. 중용에 이른바 '致中和(치중화) 天地位焉(천지위언) 萬物育焉者(만물육언자)' 바로 이것이다.




문1)

'剝極而復'(박극이부)는 '山地剝(산지박)이 極(극)하여 地雷復(지뢰복)이 된다'로 해석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




답)

물론 대부분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앞 문장 '天之殺機一發則週而復始'(천지살기이발칙주이복시)에서 '하늘이 살기를 한 번 발한즉 한바퀴 돌아서 다시 시작한다.'와 같은 맥락에서 이 문장도 '땅이 한 번 살기를 발한즉 극이 바뀌어 다시 시작한다.'로 풀이한 것입니다. 앞서의 天에서도 卦象(괘상)으로 배대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地에서도 괘상으로 풀이하지 아니하고 속뜻으로 풀이한 것입니다. 山地剝(산지박)이란 괘는 一陽(일양)이 五陰之上(오음지상)에 있어서 지표면에 하나의 산이 우뚝하게 솟아 있으나 지구 중심부에서부터 이미 五陰(오음)이 가득 차 올라 변화하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때문에 한 번 살기가 발해지면 重坤地(중곤지)를 거쳐 地雷復(지뢰복)으로 괘상이 변하게 되는데 실제 현상으로는 지축이 변하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문2)

'五行顚倒而地天交泰'(오행전도이지천교태)에서 오행전도라는 것은 나쁜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답)

上丹田(상단전)은 乾天(건천), 下丹田(하단전)은 坤地(곤지)로 표현됩니다. 地天泰(지천태)라는 것은 천기는 하강하고 지기는 상승하여 변화의 공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늘의 오행이 하단전으로 내려오고 땅의 오행이 상단전으로 올라가는 것이니 곧 周天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심이 천심과 더불어 합하여 음양을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이란 하늘나라 동물이고 뱀은 땅의 동물로서 용은 목성지기로 바람을 뜻하고 뱀은 불을 뜻합니다. 곧 이것은 火候(화후)를 상징합니다. 화후에 의지하여 소주천을 돌려 내 몸 속의 기운과 천기를 조화시켜 天人이 合發(합발)하는 것입니다.





문3)

'斗柄回寅'(두병회인)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십시오.




답) 두병은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선도에서는 眞意(진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斗'에는 七星이 있으니 첫째는 樞[추]라 하며 둘째는 璇[선], 셋째는 璣[기], 넷째는 權[권], 다섯째는 衡[형], 여섯째는 開陽[개양], 일곱 번째는 搖光[요광]이라 합니다. 우주는 광대무변하여 우리의 과학으로는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려우며 현재에도 우주는 팽창과 소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우리가 사는 태양계는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운행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병이 회인 된다는 말은 지구상의 지축이 변하듯이 북두칠성이 중심 축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며 '寅' 자의 의미로 미루어 본다면 모든 지구상의 생명이 봄철에 소생하고 겨울에 갈무리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북두칠성이 동북방에 위치할 때에 지구생명의 시작을 의미한다고도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문4)

'龍蛇起陸'(용사기육)에서 하고많은 동물 중에 하필 용과 뱀을 썼을까요?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답)

용은 하늘나라 동물로서 純陽之(순양지) 를 상징하며 또 역에서는 바람으로 풀이합니다. 뱀은 火性에 속하며 後天陽火(후천양화)를 상징합니다. 선도에서는 一吸(일흡)에 천기는 하강하고 지기는 상승하며 一呼(일호)에 천기는 상승하고 지기는 하강하여 천지의 기운이 우리의 몸 속에서 순환하고 있다고 하며 우리의 인체는 머리는 둥글어 하늘을 본받고 몸은 방형으로 땅을 본받았다고 보고 있으며 상단전을 乾鼎(건정), 하단전을 坤鼎(곤정)이라고 비유합니다. 따라서 陸(육)이란 것은 하단전을 의미하며 천기가 하강하여 하단전에서 지기와 함께 혼합되어 올라가는 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문5)

용을 현자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답)

물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어느 쪽으로도 풀이가 가능합니다. 역 건괘에 보면 초구와 구이, 구오, 상구에서는 순양지물을 용이라고 하였고 구삼, 구사에서는 군자로 풀이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아래, 위 두 효씩은 각각 천, 지의 위치이며 중간의 두 효는 인의 위치에 해당하기 때문에 군자로 비유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살이로 비유하여 풀이할 수도 있고 수련적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일명은 일관되게 수련적 측면으로 주해를 한 것이기 때문에 용은 선천기로 봄이 마땅합니다.







음부경 5


性有巧拙(성유교졸)하니 可以 伏藏(가이 복장)이라.




주)

사람은 음양의 기를 합하여서 형을 이루며 良知(양지)와 良能(양능)으로써 性(성)을 삼는다. 性에는 착하지 아니함이 없되 氣에는 淸濁(청탁)이 있다. 기가 청한 자는 교묘하고, 탁한 자는 졸렬하다. 성이 교묘한 자는 機謀(기모)가 많고, 성품이 졸렬한 자는 탐하고 어리석음이 많다. 그러나 교묘한 성품과 졸렬한 성품이 모두 氣質(기질)의 성품으로써 인심으로 이를 처리하는 것이며 본래의 천성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다. 修眞(수진)의 도는 선천을 캐어 후천을 화하게 하는 것이니 일체의 巧拙(교졸)의 性이 모두 감추어지고 쓰이지 않게 된다.
강의) 성품은 천성이며 또한 신이다. 신이 안정되면 기가 안정되고 기가 안정되면 마음이 정하여진다. 때문에 교졸의 성품이 모두 가라앉게 된다.

이를 두고 선천의 기를 채취하여 후천기를 정화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九竅之邪(구규지사) 在乎三要(재호삼요)하니 可以 動靜(가이 동정)이라.


주)

구규란 사람의 몸 위쪽의 일곱 개의 구멍과 아래쪽의 두 구멍을 말하는 것이다. 삼요란 耳, 目, 口를 말함이다. 사람 몸의 아홉 개의 구멍은 모두 삿된 것을 받아들이는 처소가 된다. 아홉 구멍 가운데 耳, 目, 口 세 가지는 삿된 것을 불러들이는 구멍이 되는 것이니 귀로 소리를 들은즉 정이 흔들리고 눈으로 색을 본즉 신이 달아나고 입으로 말을 많이 한즉 기가 흩어지게 된다. 精, 氣, 神이 한 번 상하게 되면 전신이 쇠약해져 性과 命을 敗(패)하게하여 죽지 않는 자가 없다. 사람이 능히 밖으로 보는 것을 거두고 소리를 되돌리며 말을 적게 하여 그 삼요를 닫아 뜻을 허무에 맡기고 마음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며 外念(외념)도 또한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정, 기, 신 三品大藥(삼품대약)을 응결시켜 흩어지지 않게 한다면 아홉 구멍이 움직임도 가한 것이고 고요함도 가한 것이다. 따라서 동할 때나 정할 때나 언제나 天機(천기)로써 응하게 되어 人機(인기)가 사라지게 되니 어찌 邪氣(사기)가 소멸되지 않겠는가?
강의) 여기서 三要(삼요)를 耳, 目, 口라고 했는데 이것은 정, 기, 신이 주로 귀와 눈과 입에 의하여 흩어지기 때문에 외형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실제로 삼요는 곧 정, 기, 신을 뜻하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정, 기, 신의 안정을 요한다는 뜻이다.




火生於木(화생어목)이나 禍發必剋(화발필극)하고 姦生於國(간생어국)이나 時動必潰(시동필궤)하니 知之修鍊(지지수련)을 謂之聖人(위지성인)이라 한다.


주)

火는 삿된 마음을 비유한 것이며 木은 성품을 비유한 것이다. 간사하다는 것은 陰惡(음악)한 것을 비유한 것이며 나라는 몸을 비유한 것이다. 나무는 본래 불을 생하는 것이나 불이 맹렬히 타오르게 되면 그 재앙이 나무에 미치게 되어 나무를 극한다는 것이다. 삿된 것이 마음에서 생겨나 삿됨이 발하게 되면 그 재앙이 도리어 마음에 미치어 성품이 어지럽게 되며 나라에 간신이 동하면 그 나라가 무너지게 되고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음이 몸 가운데에 감추어져 있어 음이 강성하게 되면 그 몸을 敗하게하여 명이 무너지게 된다. 마음과 몸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성과 명이 서로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니 이에 수련을 행하여 관천도집천행하여 身心을 항복 받고 성명을 보존하여 後天五行에 얽히는 바 되지 않는다면 그가 곧 성인이 아니고 누구리오?
강의) 고서에 이르기를 음기를 몸 속에 머무르게 하지 말라. 음이 몸 속에 자리잡으면 괴이한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러한 음기는 곧 무명이니 무명에 의하여 貪, 嗔, 癡가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진양화의 조화로 陰邪之姦(음사지간)을 태워 후천기의 얽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음부경 6


中篇


天生天殺(천생천살)은 道之理也(도지리야)라.



주)

하늘의 도는 음양일 따름이다. 양은 생을 위주로 하고 음은 살을 위주로 한다. 양하되 음이 아니며 생하되 살하지 아니하는 이치는 있지 아니하다. 고로 봄은 생하고 여름은 자라며 가을에는 거두어지며 겨울에는 갈무리하는 것이니 四時가 차례를 이루고 한바퀴 돌아서 다시 시작하여 끊임없이 순환하여 그치지 아니함이 예로부터 이와 같다.
강의) 장행거는 음양을 정의하기를 음이되 음이 아니고 양이되 양이 아니라고 하였다. 유일명은 이것을 더욱 극명하게 양하되 음하지 아니하며 생하되 살하지 아니하는 이치는 없다고 설파한 것이다. 역시 선도 수련에서도 기적인 체험을 통하여 몸 속의 양이 극성에 이르르면 그것이 시원하게 음으로 변하며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것을 스스로 증험하게 된다.
강의) 수련하여 양기를 채취하여 천시를 얻어 명을 회복하고 조화를 얻는 자는 음양을 합일하여 오행의 정기를 취합하게 된다. 따라서 생은 있으되 사는 없는 경지에 이르러 그 수명을 오래도록 영위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천도를 알지 못하여 정기신을 손상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니 이 또한 천살이 된다.





天地(천지)는 萬物之盜(만물지도)요 萬物(만물)은 人之盜(인지도)요 人은 萬物之盜(만물지도)라. 三盜旣宜(삼도기의)면 三才旣安(삼재기안)이라.

고로 말하기를 食其時(식기시)하면 百骸(백해)가 理(리)하고 動其機(동기기)하면 萬化(만화)가 安(안)이라.


주)

하늘은 만물을 생겨날 수 있게 하고 땅은 만물을 태어나게 한다. 그러나 이미 생겨난즉 또한 죽이니 이것이 천지가 만물을 훔치는 것이다. 세상에는 만물이 있으니 사람이 이를 보아 마음을 내게 된다. 뜻을 함부로 하여 욕심을 따르게 되니 신과 기를 소모시키고 흩어지게 한다. 이로써 어린아이에서 장성하게 되고 장성한 데서 다시 늙어지게 되며 이윽고 늙어서는 죽게 된다. 이것이 만물이 곧 사람을 훔치는 것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만물이 비록 능히 사람의 기를 훔친다고 하나 사람은 만물의 精華(정화)를 먹음으로서 만물의 기를 빌리어 생겨나고 자라는 것이니 이것이 또한 사람이 만물을 훔치는 것이 된다. 대수행인은 능히 만물의 기를 빼앗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한다. 또한 능히 만물이 나의 기를 훔침으로 인하여 내가 훔치고 아울러 천지가 만물의 기를 훔침으로 인하여 내가 또한 그를 훔친다. 三道(삼도)가 一道(일도)로 귀결되고 殺 가운데 생이 있게 된다. 즉 삼도가 모두 그 마땅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삼도가 이미 마땅함을 얻게 되면 사람과 더불어 천지가 덕을 합하게 되니 더불어 행하여 서로 어김이 없게 되므로 三才(삼재)가 또한 편안한 것이다. 삼재가 이미 편안하다면 道氣(도기)가 常存(상존)하게 되며 만물에 능히 屈(굴)하지 않게 되어 조화가 구속받지 아니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의 비밀이니 이 도의 비밀은 한 때의 功(공)에 있는 것이니 반드시 앞서지도 아니하며 뒤에 해서도 아니 되며 太過不及(태과불급)도 아니 된다. 坎(감)이 온즉 離(리)로써 받고 저(彼)가 오면 나는 기다린다. 양이 돌아오면 음으로써 接(접)한다. 크게 중요한 것은 그 때를 잃지 아니하는 것이며 그 기미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其時(기시)하면 百骸(백해)가 理(리)하고 動其機(동기기)하면 萬化(만화)가 安이라 한 것이다. 食其時(식기시)란 때를 따라 선천지기를 삼키는 것이며 動其機(동기기)란 기미를 따라서 生殺의 자루를 돌리는 것이다. 食時(식기)한즉 후천의 기를 化하게하여 百骸(백해)가 다 이치에 맞게 되므로 가히 모양이 온전하게 된다. 動機則(동기칙) 선천지기를 회복하여 萬化가 모두 편안해지므로 가히 延年(연년)할 수 있는 것이다. 時나 機는 모두 말로 드러내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時는 天時를 말하는 것이며 機는 天機(천기)를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조화에 밝아 음양에 통달한 자가 아니라면 어찌 능히 안다 하리요? 오호라, 팔월 십오일에 蟾輝(섬휘)를 보라. 정히 이 때가 金精(금정)이 壯盛(장성)할 때이다. 만약 一陽이 솟아나는 곳에 이른다면 문득 마땅히 火를 내어 늦지 않게 하라.
강의) 천지는 일기로써 만물을 長養(장양)한다. 이는 천지가 만물을 생함이요, 천지의 기가 흩어짐이다. 또한 만물이 천지의 기를 훔침이다. 사람은 만물을 먹음으로 만물의 기를 훔치는 것이며 만물의 기를 훔쳐 形을 보존하며 천시에 맞추어 승강하여 청기를 뺏으니 이는 곧 사람이 천지의 기운을 훔침이 된다. 그러나 범인들은 이러한 생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만물에 현혹되어 정기신을 손상하고 지나치게 음식을 많이 먹음으로써 오히려 몸 속에 독을 쌓아 죽음에 이르게 되니 이는 만물이 사람의 기를 훔치는 것이 되며 사람이 죽어 그 기운이 천지로 돌아가니 천지가 사람의 기를 훔치는 것이 된다. 옛말에 이르기를 수행하는 자는 배고픔을 면할 정도로만 먹으라고 하였으니 배불리 먹는 자는 精血(정혈)을 상하게 하고 몸을 크게 피곤하게 하는 자는 기를 손상케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자는 신을 상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殺이요, 훔침을 당하는 것이다.





문1)

三盜歸於一道(삼도귀어일도)하면 삼도가 다 마땅함을 얻는다 하였는데 무슨 뜻인지요?




답)

사람이 천지와 만물의 기운을 훔치는 것을 '삼도귀일'이라 한다. 삼도가 귀일하면 천지와 만물과 사람의 구분이 사라져 道 가 常存(상존)한다고 하는 것이다. 왜 도기가 상존하는가? 범인은 입과 코로 숨을 쉬고 지나친 음식을 먹어 그 몸이 탁하다. 그러나 수행자는 인체의 혈을 통하여 천지의 기운을 취하므로 음식과 천지의 기운이 正合하므로 청정한 정기신을 이루게 된다. 천지와 만물과 사람의 기운이 하나로 중화되어 전체가 하나되고 하나가 전체로 되니 내단을 이루어 불사하므로 도기가 상존하는 것이다.




문2)

'食其時百骸理'(식기시백해리)는 무엇입니까?




답)

배고플 때에 밥 먹는 것, 제철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은 외형적인 모습이며 수행적으로는 선천기를 復食(복식)함에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대약을 복식하여 전신의 경락을 고루 유통시키면 우리의 신체가 바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고로 '백해가 리하다' 라고 한 것이다. 動其機(동기기)란 기틀을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니 즉 기의 동함에 따라 그것을 적절히
운용한다는 말이다.





문3)

8월 15일에 蟾輝(섬휘)를 관찰하라 하였습니다.




답)

8월 15일은 소위 보름달이 밝을 때인데 이는 곧 음이 극성에 이른 시기이다. 여기서 '섬'이란 竅(규)를 말하며 '휘'란 그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眞陽의 빛을 말한다. 이는 대약을 채취할 때에 고요함이 극성에 이르러 一陽의 선천지기가 일어나는 것을 놓치지 말고 찾으라는 뜻이다. '金精'은 일양의 선천지기를 말하며 '進火를 늦지 않게 하라' 라는 말은 대약을 적절하게 때를 놓치지 말고 캐라는 뜻이다.






음부경 7


人知其神而神(인지기신이신)하며 不知不神而所以神(부지불신이소이신)이라.




주)

古今의 學人들이 모두 昭昭靈靈(소소령령)한 識神(식신)을 가지고 본래의 元神으로 오인하였다. 고로 空과 相에 집착하여 천 가지의 기이함과 백가지 괴이함에 빠져 늙음에 이르도록 성취가 없었고 결국은 모두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신이 후천의 신으로서 선천의 신이 아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기는 하되 실제로는 신이 아닌 것이다. 선천의 신은 色도 아니고 空도 아니며 지극히 無하되 또한 지극한 有를 포함하며 지극히 虛(허)하면서도 지극히 實(실)하니 이에 神이 아닌 것 같은 神이니 실제로는 지극한 神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다만 후천의 신이 진실된 신인 줄 알고 윤회에 떨어지고 마니 선천의 신 같지 아니한 신이 능히 성명을 보호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이 나의 기를 훔치는 것을 깨닫지 못함이 조금도 괴이하지 않다.





강의)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 있는 마음이 참된 것인 줄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이 마음은 이미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이른바 識心(식심)이라 한다. 이런 마음이 움직여 몸에서 일어나는 기운 또한 후천기이다. 우리가 본성을 깨치면 우리는 참된 마음, 즉 진심으로 살며 선천기를 쓰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신인 줄로 아는 현재의 나의 마음(식심)은 실제로는 신령스럽지 못한 것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신 같지 아니한 신이 실제로는 진실로 신령스러운 것이다. 선도는 이러한 실제의 나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즉 몸이 건강해야 후천기를 뭉칠 수 있고 후천기가 뭉쳐져야 그 속에서 선천기가 드러난다. 선천기가 뭉치면 그 속에 자신의 신을 집중할 수 있고 자신의 신이 한곳에 머물게(定) 되면 慧明(혜명)이 나타난다. 이러한 혜명이 나타나면 번뇌망상이 제거되므로 비로소 우리 인간은 바른 마음, 바른 行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모든 종교나 수련단체를 통틀어 다 함께 지향하는 성명쌍수의 정도이다.






日月有數(일월유수)하고 大小有定(대소유정)하니 聖功(성공)이 生焉(생언)하며 神明(신명)이 出焉(출언)이라. 其盜機也(기도기야) 天下莫能見(천하막능견)하고 莫能知(막능지)하니 君子得之(군자득지)에 固窮(고궁)하고 小人得之(소인득지)에 輕命(경명)하니라.


주)

사람이 능히 천지만물의 기를 훔칠 수 있는 까닭은 천지만물이 정해진 數(수)가 있기 때문이다. 천지만물이 사람의 기를 훔치지 못하는 까닭은 聖道(성도)가 形象(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해와 달이 비록 높다하나 度數(도수)가 있어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해는 일년에 한바퀴를 도는 것이며 따라서 하늘에 춘하추동이 있어 가히 볼 수 있다. 달은 삼십 일에 한바퀴를 도는 것으로 하늘에는 盈虛朔望(영허삭망)이 있어 가히 엿볼 수 있다. 큰 것은 陽이며 작은 것은 陰이니 陽極則陰生(양극침음생)하고 陰極則陽生(음극칙양생)한다. 大往小來(대왕소래)하며 小往大來(소왕대래)하여 음양이 끊임없이 순환하나 그 이치가 일정하여 바뀌지 않는 도가 있다. 지극한 사람은 이에 陰陽造化(음양조화)의 消息(소식)을 짐작하여 一時辰(일시진) 내에 功法(공법)을 써서 鴻 未判(홍 미판)한 氣를 채취하여서 丹母(단모)로 삼는다. 또한 天地虧盈(천지휴형)의 수를 빼앗아 命의 기반을 삼으니 하늘보다 먼저 하여도 하늘이 이를 어기지 아니하며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天時를 받들게 된다. 성인의 공업이 여기에서 生하게 되며 神明이 또한 여기에서 나오게 된다. 이러한 공업과 이러한 신명으로 하는 盜機(도기)는 비록 天地鬼神(천지귀신)이라 할지라도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하물며 사람에서이랴? 천하가 어찌 이를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알 수 있겠는가? 만일 이를 능히 보고 능히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훔침이 가능하겠는가? 이가 곧 聖人이며 이가 곧써 神이 되는 것이다. 이 道는 忠臣, 孝子, 大賢(대현), 大德의 사람이 아니면 능히 알지 못하는 것이며 烈士(열사), 丈夫(장부)로서 일체의 萬有(만유)를 굽어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능히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修道君子(수도군자)는 뜻을 얻었으나 말이 없고 크게 지혜로우나 어리석은 것 같으며 크게 교묘하나 옹졸한 것 같으니 性을 마치고 命을 마친 후에도 그에 이르지 못한 것 같이하여 조금도 누설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한다. 진실로 몸을 굳게 지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다. 박복한 사람들은 이와 달리 우연히 조그마한 滋味(자미)를 맛보면 스스로 만족하여 성과 명을 고르게 닦지 아니하며 없되 있는 것 같이 하고 텅 비었으되 가득 찬 것 같이 하며 빈약하면서도 편안한 것 같이 하여 스스로 죄를 지으니 한갓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해가 되는 것이다.







음부경


下篇

 
者善聽(자선청)하고 聾者善視(롱자선시)라. 絶利一源(절리일원)이면 用師十倍(용사십배)하고 三返晝夜(삼반주야)하면 用師萬倍(용사만배)니라.




주)

소경이 듣기를 잘 한다는 것은 잘 듣는다는 뜻이 아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므로 신이 귀에 갈무리되어 그 듣는 것이 밝아진다. 벙어리가 보기를 잘 한다는 것은 잘 보는 것이 아니라 귀가 듣지 못하므로 기가 눈에 운기되는 까닭이다. 고로 그 보는 것이 밝다. 이 두 가지로써 보건대 눈을 막으면 귀가 밝고 귀를 막으면 눈이 밝으니 하물며 선천기를 가져 거짓됨을 버리고 참됨을 닦으며 정성스러움을 보존하고 망령됨을 버리는 자, 어찌 능히 장생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淸靜經(청정경)에 말하기를 중생이 참된 도를 얻지 못하는 것은 망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망심이 있은즉 그 신이 놀라게 되고 이미 신이 놀란즉 만물에 집착하게 되며 이미 만물에 집착한즉 생을 탐구하게 된다. 이미 생을 탐구한즉 이는 번뇌이니 번뇌망상은 몸과 마음을 괴롭고 근심스럽게 하여 문득 탁하고 욕되게 하며 생사에 유랑하여 항상 고해에 잠겨 영원토록 참된 도를 잃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망상과 탐구는 이에 利(리)의 근원이 된다. 사람이 능히 利(리)의 한 근원을 끊은즉 만유가 다 공하게 되고 모든 생각을 다 쉬게 되니 군사를 씀에 이끌어 가는 공이 십 배를 능가하고 또한 능히 두세 번 스스로 돌이켜 存誠去妄(존성거망)하고 朝乾夕 (조건석 )하며 주야로 慇勳( 은훈)하여 십이시 중 간단히 없게 하여 점차 至善無惡之地(지선무악지지)에 돌아가니 군사를 써 도인하는 공, 만 배를 능가한다. 대개 군사의 공이란 능히 그 얼굴은 고치되 그 마음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며 능히 남과 더불어 規矩(규구)는 하되 능히 사람을 교묘하게는 하지 못한다. 利(리)를 끊어 스스로에게 돌이킨다는 것은 心地(심야)를 바르게 하는 下功(하공)이니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는 데에야 師力(사력)이 어찌 미칠 것인가? 至聖(지성)은 운하기를 "하루 克己復禮(극기복례)하면 천하가 仁(인)에 돌아갈 것이니 仁(인)은 나로 말미암음이며 어찌 남으로 말미암음이겠는가?" 라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절묘한 말이라 하겠다.





강의)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선천과 후천, 명과 성의 관계를 둘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귀와 눈을 사용하여 좀더 잘 보고 듣는 것은 후천기의 일이며 또한 그러한 후천기로서는 능히 장생불사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군사란 精(정)을 일컫는다. 도인지공이란 이러한 정을 이끌어 몸 속의 음기를 제거해 나가는 健康術(건강술)을 말한다. 이는 모두 연정화기의 과정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우리의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功(공)이다. 이러한 연정화기의 수련은 욕심을 따라 바깥으로 향하는 욕망을 끊어 안으로 되돌려 반관내조하는 것이 도인지공 십 배보다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한계성을 구분하기를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나 그 마음을 고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연정화기를 마쳐 연신의 단계에 들어가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마음을 고칠 수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불가에서도 見性(견성)이후에 成佛(성불)이라고하여 신체를 먼저 단련하고 그 바탕에서 자신의 性(성)이 나온 것을 알아 마음의 근본을 잡아야 비로소 성불과정으로 갈 수 있다고 하였으니 仙家(선가)의 煉精(연정) 이후에 煉神(연신)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흔히 본성을 깨친다고 하여 불가에서는 命(명)을 닦는 공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마음이 어디에 깃들여 존재를 드러내는가? 분명히 한 인간이 태어나면 마음도 또한 그 육신과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마음의 근원지를 이 몸밖의 어디에서 찾아 돌아다닐 것인가? 다만 사람들이 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지 못하는 까닭은 내 몸이 생겨나기 이전, 현재 나의 마음이 나타나기 이전의 그곳을 자신의 현재 마음으로 헤아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삼마지는 나의 몸과 마음이 형태를 나타내기 이전에 최초로 형성된 곳이다. 그 곳을 찾아야 비로소 見性(마음이 생겨난 곳을 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몸 속에 無明(무명)이란 음기가 가득하여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음기를 제거하고 후천기를 청정하게 변화시켜 선천기의 상태에 들어가야만이 비로소 신의 장소인 단전을 발견할 수 있다. 삼반주야하면 도인지공 만 배보다 낫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三은 上元(상원), 中元, 下元의 삼단전을 가리킨다. 우리의 신이 단전기혈에 입실하여 밤낮으로 떠남이 없이 머물음으로써 본래의 신성을 회복하고 본래 자신의 영적인 모습을 부활시키게 된다. 이것이 곧 도태요, 양신이며 법신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본래 태어난 성전에 들어가면 비로소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니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을 이 이치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억측이 될까?





음부경 9


心生於物(심생어물)하고 死於物(사어물)하니 機在目(기재목)이라.


주)

마음은 주인과 같고 눈은 문호와 같다. 본래 진심은 空空洞洞(공공동동)하며 無我無人無物(무아무인무물)하여 太虛(태허)와 더불어 同體(동체)를 이루니 어찌 생사가 있겠는가? 그 생사가 있다는 것은 後天肉團之心(후천육단지심)일 뿐이다. 마음은 가히 볼 수 없는 것이나 만물로 인하여 나타나니 만물을 봄에 문득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만물이 없으면 마음도 나타나지 아니하니 주인이 혹은 생하고 혹은 사하는 것이 만물로 인해서 생겨나고 만물로 인해서 죽는 것과 같다. 소이 만물에 의하여 死心(사심)이 생한다는 것은 모두 눈이 문호를 닫아 훔침을 당하는 것일 뿐이다. 대개 눈으로 보는 바가 있으면 마음이 곧 받아들이니 이는 마음이 생하고 사하는 기틀이 실은 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능히 返觀內照(반관내조)하여 외물을 받아들임이 없게 한다면 생사가 어디로 좇아오겠는가? 古人(고인)이 운하기를 흘겨보지 말 것이니 옆눈질하면 문득 늙어질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지극한 말이다.
강의) 사람의 심기가 밖으로 드러나기 이전까지는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수련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더욱 중요시 여긴다. 불가에서는 正法眼藏(정법안장)이라하여 조사와 조사 간에 법을 전하는 말로 쓰여지고 있다. 말 그대로 정법이 눈에 감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여기 음부경에서는 機在目(기재목)이라 하였으니 즉 기밀이 눈에 있다는 뜻으로 다 같은 말이다. 정, 기, 신이 합일되어 단전의 기가 두 눈동자를 통하여 발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를 마음의 눈으로 하단전을 응시함으로써 返觀內照(반관내조)의 열쇠를 얻게 되는 것이다.





天之無恩而大恩生(천지무은이대은생)하고 迅雷烈風(신뢰열풍)에 莫不蠢然(막불준연)하니 至樂(자락)은 性餘(성여)하고 至靜(지정)은 性廉(성렴)이니라.



주)

天은 지극히 높고 만물은 지극히 낮다. 하늘과 만물이 서로 멀어 만물에 은혜가 없는 것 같으나 無恩(무은) 중에 실은 大恩(대은)이 생함을 알지 못한다. 하늘이 기를 움직여 우레를 이루고 불어서 바람을 이룬다. 빠른 번개로 진동하여 만물을 발생시키고 더운 바람을 불어 만물을 왕성하게 한다. 發生榮旺(발생영왕)하여 만물이 모두 蠢然(준연)하나 모두 자연에서 출함을 알지 못한다. 이는 無恩而生大恩(무은이생대은)이니 하늘이 어떠한 마음이겠는가? 고로 至樂者(지락자)는 만물이 굴복시키기 어려우니 구속됨이 없어 性(성)이 항상 여유가 있다. 至靜者(지정자)는 만물이 옮기기 어려우니 貪愛(탐애)가 없어 성품이 항상 맑고 청렴하다. 즐거운 자는 남음에 무심하여 항상 스스로 여유롭고 靜者(정자)는 청렴함에 무심하여 항상 스스로 청렴하니 하늘이 은혜 없는 것 같으되 큰 은혜가 있음은 無心(무심)의 用(용)이니 神(신)일진저.




강의)

사람은 대기 속에 살며 마음껏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에 공기를 의식하지 못한다. 물고기는 물 속에 살면서 물을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새는 하늘을 날면서 자신이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별다른 자각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관념, 이것을 느낄 때에 그 대상을 인지하게 되지만 정말로 무한한 것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 보라. 좀 다른 색깔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인들은 말마다 국민의 뜻이니 정치도의니 하는 것들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일부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인들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과연 국민을 자신과 동등한 사람으로나마 생각하는지가 의심스럽다. 미국 흑인노예해방 전에는 백인 여자들이 그들의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도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을 관찰해 보라. 그 사람이 열심히 주장하는 것을 역으로 꿰뚫어 보면 그 자신이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가장 열망하고 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수행자들이 물질과 명예에 초연할 것을 주장하나 실제로 그들이 그것에서 자유를 얻었다면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끝 구절의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의식 자체도 없이 여유로울 때 진실로 여유로운 것이며 맑고 청렴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관념도 없이 스스로 청렴할 때 진실로 그는 청렴한 사람인 것이다. 말끝마다 수련해야 된다고 부르짖는 사람은 실지로는 어딘가 모르게 수련에 대한 부족을 느끼는 사람이런지도 모른다.




문1)

신뢰열풍으로 만물을 발아시키고 영왕시킨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천지의 대은이라고 하였는데 무슨 까닭입니까?



답)

입춘지절에 치는 천둥번개는 만물을 일깨워서 발아시키고 입동지절에 치는 천둥번개는 만물의 기를 거두어들인다. 천지는 이러한 음양의 기를 주고받음으로 인하여 만물을 번성시키고 또한 갈무리한다. 하늘의 기에 의하여 땅의 기가 솟구쳐 오르면 만물은 번성하는 것이요, 하늘의 기에 의하여 땅의 기운이 갈무리되면 만물도 수장된다. 천둥은 하늘이 음양이요, 바람은 땅의 음양이다.




문2)

더운 바람을 불어서 만물을 성장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수련에서는 어떠한 의미인지요?



답)

물론 우리는 수련적 입장에서 음부경을 고찰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 방면으로도 조명해 봐야 할 것이다. 수련 시에 상단전에서 신이 번개와 같이 하단전을 응시한다. 번개는 순양의 신을 상징하며 신이 극도로 미묘하여 단숨에 탁한 몸 속의 기를 뚫고 하단전을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만물을 소생시키는 이치를 빌어서 하단전에 양기를 일깨우고 발생시키는 것을 비유하였다. 더운 바람이란 이러한 양기에 호흡을 가하여 뜨겁게 독맥으로 피워 올리니 전신의 경락들이 소주천의 영향을 받아 전부 파동 치며 되살아난다. 곧 만물이 번성하듯 우리의 몸 구석구석이 모두 활기를 띄게 된다.




문3)

지극한 즐거움이란 무엇입니까?




답)

어미가 아들을 안았을 때,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있을 때, 정신과 육체가 다 같이 건강할 때, 정신적 문화와 물질적 문화가 서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인간과 자연이 조화로울 때 우리는 이것을 이상적이라 할 것이다. 음과 양이 합해져야만이 비로소 완전한, 가장 편안한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 어느 한 쪽이 결여된다면 그것은 지극한 즐거움이 아니다. 따라서 몸 속에서 신과 기가 합일한 자는 이미 내면의 편안함을 얻었기 때문에 바깥 사물에 한 눈을 팔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편안하고 항상 여유로운 것이다. 至靜(지정)도 같은 말이니 이렇게 마음 속에 평화를 얻은 자는 그 마음이 고요히 내면세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당연히 지극히 고요한 것이며 그 고요함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생활은 맑고 청렴하게 될 것이다. 즉 외유내강이라.





天之至私(천지지사)하고 用之至公(용지지공)하니 禽之制在氣(금지제재기)라.


주)

하늘의 도는 無象(무상)한 데에서 행하고 無形(무형)에서 運(운)하여 만물에 둘이 아니니 그 지극히 사사로움이여. 그러나 四時(사시)에 행하여 만물을 생하니 그 쓰임은 또한 지극히 공적이다. 그 오묘함을 미루어 一氣(일기)가 流行(유행)하니 만물을 禽制(금제)한다. 禽(금)은 擒(금)이니 統攝(통섭)함을 이른다. 制(제)는 造作(조작)함을 이른다. 統攝萬物 制造萬物(통섭만물 제조만물)함은 一氣(일기)에 있다는 말이다. 일기가 상승함에 만물이 모두 따라서 생장하고 일기가 하강함에 모두 따라서 거두고 갈무리되니 생장하고 갈무리되는 것이 모두 이 일기의 금제하는 바이다. 하나의 근본이 흩어져서 만가지 다름이 되고 만가지 다름이 돌아와 한 근본이 되니 삿되다고 하나 공적이고, 공이라 하나 삿되니 非私非公(비사비공)하며 卽私卽公(즉사즉공)하다. 一氣流行(일기유행)하여 순환이 끝이 없으니 활발하다.




문1)

하늘이 지극히 삿되며 그 쓰임은 공적이라 하였는데 무슨 뜻인지요?




답)

여기서 邪(사)란 지극히 은밀함을 말한다. 하늘이 만물을 일깨우고 그 생명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邪(사)라 한 것이다. 또한 수련시 우리의 신이 하단전에 응시되어 작용하는 것을 아무도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이것 또한 사가 된다. 하늘의 쓰임이 공적이라고 하는 것은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며 비바람 치고 눈오는 것 또한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련에 있어 시작과 과정은 귀신도 알지 못하되 단을 이루어 드러난 성과는 남들이 다 알 수 있다. 때문에 공변된 것이라 말한다.




문2)

일기상승에 만물이 따라서 생장하고 일기하강에 만물이 따라서 거두어지고 갈무리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일기유행이라고 하였습니다.




답)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기가 상승하면 만물은 모두 생장한다. 올라갔던 지기가 하강하면 만물은 모두 갈무리된다. 마찬가지로 수련 시에 하단전에서 독맥을 타고 기가 상승하면 몸 전체의 기가 상승의 순환을 시작하며 몸이 더워지고 활발해진다. 백회에 올랐던 기가 임맥으로 내려와 갈무리되면 만물이 갈무리되고 고요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 또한 고요히 가라앉는다. 이 모두가 일기의 유행이다.




문3)

원문에 새를 제어하는 것이 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해에서는 '새 금' 자를 '사로잡을 금'과 같다고 쓰여있습니다. 무슨 뜻인지요?




답)

일기상승과 팽창에 의하여 만물이 번성하고 우리의 기운 또한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상승과 팽창을 주재하는 것은 곧 마음이다. 이 마음은 우리의 정과 기를 몸 속에서만 움직일 뿐 아니라 오관을 통하여 탐착을 일으켜 바깥으로 끌고 나가 소진시킨다. 그 무엇으로도 항상 바깥으로 떠돌아다니는 이 마음을 잡을 수 없다. 해서 옛 사람들은 바깥으로만 돌아다니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이러한 마음을 새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새와 같은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비밀의 열쇠가 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즉 마음이 바깥을 향하면 우리의 기가 이 마음을 따라 나가지만 몸 속에 이 기를 잡아둠으로써 바깥으로 달아나는 마음이 이 기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희로애락에 봉착하여 그 대상에 떨어지지 말고 수련에 임하여 자신의 기를 잡으면 어느덧 그러한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마음이 다시 기에 머물러 편안함을 얻게 된다. 고로 마음을 제어하는 것이 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음부경 10


生者(생자)는 死之根(사지근)이요, 死者(사자)는 生之根(생지근)이니 恩生於害(은생어해)하고 害生於恩(해생어은)이라.




주)

하늘의 道(도)가 만물을 생하니 즉 이 도는 一氣(일기)로 말미암음이다. 상하로 一氣를 운용하니 上은 陽(양)이 되고 下는 음이 된다. 陽이란 生이며 恩(은)이다. 陰이란 死이며 害(해)이다. 그러나 生이 있으면 반드시 死가 있고, 死가 있으면 반드시 생이 있게 된다. 따라서 生은 死의 뿌리가 되며 死는 生의 뿌리가 된다. 恩惠(은혜)가 있다면 반드시 害(해)도 있는 것이며 害(해)가 있으면 반드시 은혜도 있는 것이니 따라서 은혜에서 해가 생하고 해에서 은혜가 생함이 있다. 사람이 죽음 가운데에서 속으로 生을 구한즉 長生하고 不死할 것이며 사람이 능히 害(해) 가운데에서 속으로 은혜를 찾은즉 은혜가 있고 해가 없이 될 것이다. 이를 벗어나 저(彼)로 들어감에 가히 조심하지 않겠는가?




강의)

天道(천도)가 一氣(일기)의 運行(운행)임을 밝히고 있다. 一氣의 운행은 곧 음과 양으로 나타남을 명시한다. 따라서 陰陽, 生死, 恩害(은해)가 모두 하나의 평등한 순환법칙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죽음 가운데서도 生을 찾고 害(해) 가운데서도 恩(은)을 구한다는 것에 있다. 생사가 呼吸之間에(호흡지간) 달려있다는 말처럼 한 번 들이마시고 토하지 못하면 죽는 것이요, 한 번 토하고 들이마시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기가 한 번 내려가고 오르지 못하면 죽는 것이요, 한 번 오르고 내려가지 못하면 이 또한 죽는 것이다. 아침해는 힘차게 솟아오르며 석양은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다. 날아오르는 새는 양날개를 마음껏 펼쳐올리고 보금자리에 깃드는 새는 그 날개를 거두어들인다. 이 모두는 펼쳐지는 陽과 거두고 모이는 陰의 현상이다. 이렇게 고요히 거두어들인 陰이 다시 펼쳐지는 양으로 변할 수 있음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그 陰 속에 다시 陽으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 힘이 없다면 접혀진 새의 날개는 다시 펼쳐지지 않을 것이며 한 번 토한 우리의 숨은 다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 힘이란 무엇인가? 변화를 가능케 하는 충분한 精氣神(정기신)인 것이다.





愚人(우인)은 以天地文理(이천지문리)로 聖(성)하고 我(아)는 以時物文理(이시물문리)로 哲(철)하니라.



주)

어리석은 사람은 生死恩害(생사은해)를 알지 못한다. 이는 天地造化 循環(천지조화 순환)의 비밀로서 곧 天地文理(천지문리)로 聖(성)을 삼기 때문이다. 나는 이르기를 天文(천문)에는 象(상)이 있고 地理(지리)에는 形(형)이 있어 바깥으로 나타남이 있으니 가히 볼 수 있고 가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족히 天地(천지)를 성스럽다 하지 않는다. 時物(시물)의 文理(문리)는 象(상)도 없고 形(형)도 없어 이에 神運(신운)의 道(도)가 속으로 감추어진 것이기 때문에 가히 볼 수도 없고 가히 알 수도 없어 정히 天地(천지)의 곧써 哲(철)이 된다. 대개 만물에는 때가 있어 生하고 때가 있어 死한다. 마땅히 생하는 때에는 때에 맞춰 생하여 생하지 아니할 수 없다. 마땅히 사하는 때에는 때에 맞춰 사하여 죽지 않을 수가 없다. 生은 恩(은)이며 死는 害(해)이다. 나고 죽고, 죽고 나며, 은혜롭고 해되며, 해되며 은혜롭다. 生死恩害(생사은해)가 모두 時運(시운)에 따르는 것이니 또한 天地神道(천지신도)의 운행이 아님이 없다. 天地神道(천지신도)는 볼 수 없는 것이나 만물로 인하여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만물의 생사에 때가 있을 보아서 천지신도의 明哲(명철)함을 가히 알 수 있다.
강의) 앞서 말한 것처럼 여기서 生死恩害(생사은해)란 天地造化循環(천지조화순환)의 비밀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속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변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스럽다 하고 신기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에는 象이 있고 땅에는 산천경계의 모양이 있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는 능히 이러한 모양을 보고서도 그 속에 흐르는 변화를 알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천문지리는 결코 성스러운 것도 신기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유일명 선사가 성스럽고 기이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時物之文理(시물지문리)이다. 象도 形도 없는 時物(시물)을 通哲(통철)하는 것을 말한다






음부경 11



人은 以愚(이우)로 虞聖(우성)하고 我는 以不愚(이불우)로 虞聖(우성)하며 人은 以奇(이기)기로 期聖(기성)하고 我는 以不奇(이불기)로 期聖(기성)하니라.



주)

性命(성명)의 道(도)는 有作(유작)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 어렵다. 無爲(무위)에 이르러서 衆人(중인)들이 비로소 알 수 있다. 고로 古來(고래)의 修眞上聖(수진상성)들께서 有作(유작)의 시기에는 黜聰毁智(출총훼지)하고 韜明養晦(도명양회)하며 斡天關回斗柄(알천관회두병)하며 恍惚杳冥(황홀묘?)한 本鄕(본향)에서 藥物(약물)을 採取(채취)하고 識(식)과 知(지)가 없는 곳에서 火候(화후)를 行하며 虛無(허무)에 뜻을 맡겨 神明(신명)으로 默運(묵운)하여 비록 天地鬼神(천지귀신)이라도 엿볼 수 없게 하니 하물며 사람임에랴? 이에 사람들이 그 가운데 오묘함을 알지 못하니 혹 어리석음으로써 聖人(성인)을 헤아리니 저들이 어찌 良賈沈藏(양고심장)을 알리오? 虛(허)한 것 같으되 實(실)함이 있어 어리석지 않은 運用(운용)일진저. 無爲(무위)의 때를 당하여서는 和光同塵(화광동진)하고 積功修德(적공수덕)하여 極往知來(극왕지래)하니 한 번 두드림에 백가지로 응함이 있어 神通(신통)이 광대하고 지혜가 無邊(무변)하니 사람들이 혹 기이함으로써 聖人(성인)을 기대하나 저가 어찌 眞常應物(진상응물)이 실제로 기이함으로 행동을 가림이 아님을 알겠는가? 聖人(성인)은 어리석지 않으며 또한 時物文理(시물문리)에 밝다. 성인은 기이하지 않기 때문에 天地文理(천지문리)도 역시 동일하다. 성스럽지 않은 성인은 소이 天地化育(천지화육)에 참여하고 德(덕)이 천지에 짝하는 자이다.





沈水入火(심수입화)하여 自取滅亡(자취멸망)이라.


주)

사람의  貪恩愛(탐은애)는 물구덩이와 같고 酒色財氣(주색재기)는 불구덩이와 같다. 모든 사람들은 천지조화의 도와 성인의 공업인 性命之學(성명지학)을 궁구하지 아니한다. 자포자기하여 거짓으로써 참됨을 삼고 괴로움으로써 즐거움을 삼으니 물구덩이에 빠지고도 알지 못하며 불구덩이에 들어가고서도 깨닫지 못하여 스스로 멸망을 취하니 장차 누구를 탓하리요?





自然之道靜(자연지도정)이라 故天地萬物生(고천지만물생)하고 天地道浸(천지도침)하니 故陰陽勝(고음양승)하고 陰陽相推(음양상추)하여 而變化順矣(이변화순의)라.



주)

큰 도는 모양이 없되 천지를 생육한다. 대도는 이름이 없되 만물을 기른다. 無形無名(무형무명)하니 자연히 지극히 정한 도이다. 그러나 靜(정)이란 動(동)의 터[基]가 된다. 靜極(정극)이 動(동)으로 천지만물이 곧 이에서 생한다. 一이 천지를 생하니 천지는 곧 자연의 도를 얻어서 도를 삼는다. 고로 천지의 도가 浸(침)이라. 浸(침)이란 점점 잠기고 젖어드는 것을 이름이니 또한 자연한 뜻이다. 오직 浸潤自然(침윤자연)함으로 인하여 움직이되 靜(정)을 떠나지 아니하고 靜(정)하되 動(동)을 떠나지 아니한다. 一動一靜(일동일정)이 서로 그 근원을 함께 한다. 고로 음양이 勝(승)하여 동은 양이 되고 정은 음이 되며 동이 극하여 정이 되고 정이 극하여 동이 된다. 음이 극하여 양을 생하고 양이 극하여 음을 생하니 음양이 서로 미루어서 四時(사시)가 차례를 이루고 만물이 생성된다. 혹 變(변)하고 혹 化(화)하여 순서에 입각하지 않음이 없으니 造物者(조물자) 어찌 그 사이에 마음이 있다 하겠는가? 대개 자연의 도는 형태가 없음으로써 이루어지고 형태가 없음으로 인하여 능히 변화하니 이로써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






聖人(성인)은 知自然之道不可違(지자연지도불가위)로 因而制之(인이제지)라. 至靜之道(지정지도)는 律 (율)으로 所不能契(소불능계)라. 爰有奇器(원유기기)하니 時生萬象(시생만상)이라. 八卦甲子(팔괘갑자)는 神機鬼藏(신기귀장)함으로 陰陽上勝之術(음양상승지술)로 昭昭乎進於象矣(조조호진어상의)라.
(성인은 자연의 도를 알아서 가히 어기지 아니하고 인하여 제어한다. 지극히 고요한 도는 율력으로도 능히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니 이에 기이한 기물이 있어 만상을 생한다. 팔괘의 갑자는 신의 기밀과 귀신의 감춤이 있어 음양상승지술로 상에 나아가 만상을 밝힌다.)




주)

성인이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는 자다. 오직 천지와 더불어 덕을 합하는 고로 천지자연의 도를 어기지 아니하고 인하여 裁制變通(재제변통)하여 천지와 더불어 功用(공용)을 함께 한다. 이러한즉 자연의 도는 色(색)도 아니고 空(공)도 아니며 지극히 無(무)하되 지극히 有(유)함을 포함하고 지극히 虛(허)하되 지극히 實(실)함을 포함한다. 有無(유무)를 兼該(겸해)하며 虛實(허실)을  應( 응)한다. 고로 그 無(무)를 말한즉 虛空一氣(허공일기)로 無聲無臭(무성무취)하다. 그 道(도)됨은 지극히 고요함에 있으니 고요함이 지극함에 이르러 비록 律 (율 )의 기수로도 능히 契合(계합)할 수 없다. 무릇 율력는 능히 모양 있는 것에는 계합하나 모양 없는 것에는 계합할 수 없다. 至靜(지정)이란 모양이 없는 것이니 율력이 어찌 모양을 얻어 계합할 수 있겠는가? 곤릉사 소위 有物先天地(유물선천지)하고 無名本寂寥(무명본적요)란 것이 곧 이것이다. 그 有(유)로써 말한즉 造化不測(조화불측)하여 일체를 감싸니 그 기물됨이 최고로 기이하다. 기물이 기이함에 이르르니 이를 神器(신기)라 이른다. 神(신)이란 만물의 묘함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森羅萬象(삼라만상)이 八卦相(팔괘상) 과 甲子循環(갑자순환)으로 표현되니 이는 신의 伸機(신기)이며 鬼(귀)의 屈藏(굴장)으로서 그 안에 다 포용되지 아니함이 없다. 곤릉사 이른바 萬象(만상)의 주인이 되어 四時의 시듦을 따르지 아니한다고 한 것이 이 뜻이다. 靜道(정도)란 이름 없는 天地의 시작이며 神器(신기)란 이름 있는 萬物之母(만물지모)이다. 노자의 이른바 無欲(무욕)으로써 그 묘함을 본다는 것이 곧 그 시작을 보는 것이다. 有欲(무욕)으로써 그 竅(규)를 본다는 것이 곧 그 母를 보는 것이다. 有가 아니면 능히 無를 이룰 수 없고 규를 보지 아니하면 妙(묘)함을 보기 어렵다. 묘함을 보는 도는 萬有(만유)가 다 空(공)함이니 無作(무작)이며 無爲(무위)이다. 觀竅(관규)의 道는 음양변화이니 修(수)와 證(증)이 있다. 성인이 자연의 도를 어기지 아니하고 인하여 제어하니 天道를 觀(관)하고 天行을 잡는다. 후천을 따라서 선천으로 돌이키고 殺機 (살기)가운데에서 生機(생기)를 훔치며 五行을 顚倒(전도)하여 逆(역)으로 조화를 베푸니 음으로써 양을 기르고 양으로써 음을 化(화)한다. 양은 강건하고 음은 순하여 음양을 혼합한다. 觀竅(관규)로 말미암아 觀妙(관묘)에 이르르고 神器(신기)로 말미암아 至靜(지정)에 들어간다. 억지로 함으로 말미암아 자연함에 이르르고 有無(유무)를 일치시켜 功(공)과 力(력)이 다 化(화)한다. 陰陽相勝之術(음양상승지술)로 色象(색상)의 바깥 세계까지도 모두 비춘다. 이 술법은 尋常(심상)한 術(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에 음양을 훔치고 조화의 術(술)을 빼앗는다. 璇璣(선기)를 돌려 생사의 術(술)을 빼앗는다. 예전에 黃帝(황제)가 닦아서 용을 타고 하늘로 올랐으며 장백단, 갈선옹, 허정양 등이 닦아서 超凡入聖(초범입성)하였다. 집채로 허공에 올라간 자 팔 백이며 허공으로 솟구쳐 사라진 자 삼천이니 이 道로 말미암아 이루지 않음이 없다. 음부경 삼백여 자는 구절구절이 甘露(감로)이며 글자마다 珠玉(주옥)으로서 性命不死(성명불사)의 방법을 보여준다. 萬世에 참됨을 닦는 길을 열어 天機(천기)를 노출하였다. 후세의 丹經子書(단경자서)가 비록 천만가지라 할지라도 음양상승지수를 벗어남이 없으니 뜻 있는 자 만약 이 경을 본다면 정성으로 그 뜻을 참구하고 스승의 한 구결을 얻는다면 일 순간에 그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이니 大徹大悟(대철대오)하여 動行之間(동행지간)에 팔 백의 비결에 응하여 막힘이 없을 것이다.





문1)

원문에 '자연지도를 알아서 어기지 아니하고 인하여 제어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답)

자연의 도를 어기지 않는다 함은 자연의 흐름을 알아서 거스르지 않는다는 뜻이며, 인하여 제어한다는 것은 그 흐름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조화 발전한다는 뜻이다.





문2)

'천지와 덕을 합한다' 했는데 '덕'이란 무엇입니까?




답)

앞의 질문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 상당히 포괄적인 뜻이 있다. 예를 들면 봄에 씨뿌리고 가을철에 거두는 것도 자연과 그 덕을 합하는 것이 된다. 좀 더 세분화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누구에게 밥을 준다는 행위를 가정해 볼 때에 배부른 자와 배고픈 자, 또는 배고픈 자 중에서도 단식이나 수술을 받기 위해서 굶어야 하는 사람,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 사람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과연 이들 중 누구에게 밥을 주는 것이 덕이 되겠는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수많은 상황에 따라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행위가 이루어질 때에 이것을 덕을 이루는 행위라 볼 수 있다.




문3)

'없는 것이 있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을 포함한다' 라고 하니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답)

역시 이런 것은 敎外別傳(교외별전)에 속하는 것으로서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하여도 그림 속의 떡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 수련을 통하여 몸으로 체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구태여 설명하자면 질량불변의 법칙을 적용하여 하나의 나무가 불에 타서 그 형체가 없어졌을 경우 그 나무를 이루고 있는 분자는 대기 중에 흩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더하고 덜함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동양학에서 말하는 유, 무의 관계도 이러한 형태적인 변화에 불가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문4)

'지정이란 율력의 수로써도 계합할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답)

여기에서 형태 있는 것은 율력의 수로써 계합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는 그 양상이 각기 다르게 드러납니다. 이런 절기의 변화 같은 것은 모두 수리로써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고요한 상태는 그 무엇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문5)

유일명의 스승인 곤릉사가 말한 하나의 물건이 천지보다 먼저 있으되 본래 고요하여 이름이 없다라는 구절에서 이 物(물)이란 무엇입니까?




답)

유일명은 그 物을 가리켜 至靜(지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만물을 담는 그릇(神器)이라고 표현하여 천지만물을 낳는 근원이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物이란 일체의 형상이 없는 그 무엇을 표현한 단어이다.




문6)

곤릉사가 말한 만상의 주인이 되어 사계절의 시듦을 따르지 않는다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겨울에 핀 꽃은 봄에 시들고 봄에 핀 꽃은 여름이나 가을에 시든다. 각기 한 때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것은 그 한 때가 지나면 시들고 만다. 만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알아 그 생기를 얻고 이용하여 천지로부터 기를 훔치고 조화의 힘을 빌려 멸함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우리가 처음 생겨나 기혈의 순환이 왕성하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히 막히고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수련을 통해서 천지의 생기를 취하여 자신의 막힌 곳을 뚫고 새로운 기운을 채워서 조화에 권세를 교묘히 쓰는 것이다.




문7)

노자의 관묘지도와 관규지도는 무엇을 말함입니까?



답)

주해에 나타난 대로 무위법과 유위법을 설명한 것이다. 관묘지도는 모두가 다 허공이며 관규지도는 음양변화와 닦고 증험함이 있다는 그 말 그대로이다. 참으로 수련의 양대 측면을 간단명료하게 드러낸 말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노력하여 가나 뒤에는 자연함에 이르르고, 처음에는 유위로 하나 나중에는 무위이며 功(공)과 力(력)이 다같이 화하고 음양이 한데 어우러져지고 색과 공이 하나로 일치되어 일체의 구별이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문8)

'발택자 팔백' 이라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답)

우화등선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拔宅(발택)이란 문자 그대로 집채로 허공으로 날아올라 사라지는 것이며 飛昇(비승)이란 육신만 허공으로 날아올라 사라지는 것이다. 간혹 중국의 正史에서도 수많은 군중을 모아 놓고 대중이 보는 가운데 허공으로 사라졌으며 이에 왕이 호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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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3.20 15:58

    첫댓글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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