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 바라보는 나, 지켜보는 나를 공적영지(空寂靈知)로 설명
화나고 억울하며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잠 못 이루고 이리저리 뒤척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겨 속상해 하며 고통 속에서 아파하는 것들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찾고 명상의 시간을 갖으려 하는 것일 게다.
명상이라 하건, 수행이라 하건, 선이라 하건, 그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리저리 소란스러운 마음, 고통스럽고 불안한 마음, 조급하고 달아오르는 마음을 잠재우려면 그 마음을 지켜보고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마음에는 직접 작용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마음이 있다. 이 '마음' 이라는 말을 '나'로 바꾸어도 의미는 마찬가지다. 박수치는 나와 그 박수치는 나를 지켜보는 나가 또 있다는 것이다. 짜증을 내는 나와 그 짜증내는 나를 들여다보는 나가 있다. 전자가 겉마음이요 중생심요 오락가락하는 나라면, 후자는 본마음이요 부처의 마음이며 진정한 '나'이며, 지켜보는 나이다.
이렇게 지켜보는 나의 세계에서 바라보면 시시각각 움직이는 나의 모습을 그저 흘러가고 있는 현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저 멀리서, 저 깊은 곳에서 내 모습을 관조하노라면 가슴을 파고드는 천근 무게 같은 괴로움도 그저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일 뿐이요 흐르는 시냇물이다.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면 금방 질식할 것 같은, 금방 폭발할 것 같은 나의 모습도 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임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게 된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바라 볼 때, 한국이라는 나라, 그 중에서 한 도시, 다시 그 도시에서 한 거리의 조그마한 공간, 거기서 화내고 억울해 하며 절망에 빠지는 나의 모습은 사실 흔적조차 없는 티끌의 파동이며 물거품과 같으며 아침이슬과 같다. 사실 집착할게 전혀 없는 것이다. 그 광활한 우주, 부증불감, 불생불멸하는 우주에서 바라보는 나가 '지켜보는 나'이다.
번뇌 잠재우려면 그 마음을 지켜봐야
자신을 깊이 관조하면서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 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내가 본마음 자리, 진리의 자리, 공의 자리, 광활한 허공, 드넓은 바다 깊숙한 곳에 서서 넓고 깊게 들여다보고 지켜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자리에 서면 모든 갈등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심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는 지금 까마귀 우는소리와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
"그대는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들어보라. 과연 그곳에도 정말 많은 소리가 있는가?"
"저의 마음속에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기특하다.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간 문이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가 말하기를 거기에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이 없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것은 허공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이러한 지켜보는 마음, 지켜보는 나가 있다. 그것이 참나이다. 이것만 제대로 느낄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멋있게 살아 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강의를 할 때면, 사람들에게 손뼉을 처 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손뼉을 치는 나와, 손뼉 치는 나를 바라보는 나를 돌이켜 보라고 한다. 그것을 들여다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바라보는 그 당체를 느껴보라고 한다. 『수심결』에서는 그렇게 바라보는 나, 지켜보는 나를 공적영지(空寂靈知)로 설명한다.
신령스럽게 알고 지켜보며 깨어 있는 나
공적하다는 것은, 지켜보는 나의 자리, 부처의 자리란 본래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어떠한 분별이나 판단을 떠나 있으며 가고 옴, 안과 밖, 너와 나, 이것과 저것, 흙과 백, 선과 악, 미와 추, 삶과 죽음도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적하다고 해서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신령스럽게 알고 지켜보며 깨어 있는 나가 있다. 그러한 생명의 주체가 소소영영(昭昭靈靈)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운 그 자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그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활 하면서 소리치기도 하고 웃고 떠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나를 소리치게도 하지만 그 소리치는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지켜보는 나에 깨어 있으면 그 자리에 서서 소리치고, 웃고 떠들며, 때로는 안절부절하고 때로는 희희낙락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거기에 함몰되거나 집착하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물론 당당한 삶의 주체자로서 멋지게 스스로를 경영해 나갈 수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지켜보는 나, 진정한 나 자신이 내 안에서 고동치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 마음자리에 서서 살아간다면 어떤 두려움, 좌절, 공포, 분노 또한 없을 것이다.
한편 나는 사람들에게 화두 참선을 지도할 때, 소리치고 박수 치는 나를 보는 또 다른 나를 돌이켜 보고 느껴보라고 하면서, 그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니, 무엇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 그것이 무엇인지 깊게 의심해 보라고 한다. 무언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놈, 그것이 있긴 있는데, 그게 참으로 묘하게 작용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라고 한다. 과연 이것이 무엇인가. 이 무엇인가?
고명석/조계종 포교연구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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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2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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