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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투어
[연재] 임영태의 남미 여행기 (8)
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새로운 세계 파타고니아 지역 푸에르토 나탈레스 입성
우리를 태운 스카이항공은 12시 30분경 칠레 산티아고 아르투로 베니테스 공항을 이륙해 오후 4시 50분경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있는 트니언트 갈라(테니엔테 훌리오 갈라르도) 공항에 도착했다. 대략 4시간 20분가량 걸린 것이다. 공항이 소박했다.
시골 간이역 느낌이다. 이 대표는 북한 백두산 아래의 삼지연 공항 같다고 말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날씨가 달라져 있었다. 산티아고는 덥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초여름 날씨에 가까웠는데 갈라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의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날씨 같다. 비가 약간 내리는데 공기가 싸늘하다. 차가운 느낌이 그대로 온몸에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약간 한기가 느껴지는 그런 기온이다.
공항에서 1인당 7달러씩 내고 벤을 타고 푸에르토 나탈레스 시내에 있는 예약 숙소로 이동했다. 아,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왔다는 느낌이다. 황량하면서도 싸늘한 공기에서 상쾌함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숙소에 잠을 두고 바로 나와서 낸시 호스탈에 들러 국립공원 투어 계약서와 입장권, 아르헨티나로 넘어갈 버스표를 찾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내일 투어 중 먹을 점심 식사용 식빵, 바나나, 물 등을 구입했다. 피자 가게에서 환전해 남은 돈을 다 털어서 피자와 작은 환타를 시켜 먹었다, 남은 돈 만큼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세금 10%를 생각하지 못했다. 낭패다. 주인에게 남은 돈이 이게 전부라고 하니 알았다며 가라고 한다. 관광지여서 그런지 물가가 비싼 편이다. 소득 수준이 많이 낮은 대도 우리 물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음식점을 나와서 거리를 걷는데 K팝 가요가 흘러나온다. 어제 산티아고 공항 입국 때 40대로 보이는 공항 직원이 코레아에서 왔다니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더니 싸이 흉내를 냈다. K-팝, K-문화(드라마, 영화)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한국,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인 인상을 받는다. 노란 꽃, 하얀 꽃, 붉은 꽃들이 피어서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걸어서 천천히 동네를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앞에 보이는 설산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거리에는 목조건물로 지은 오래된 주택도 있고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식 건물도 있다. 거리고 곳곳에 꽃들이 활짝 피어서 여름임을 알려주고 있다. 거리는 한적했지만 바닷가로 가니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사진을 찍거나 풍광을 감상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김 원장은 젊은 여성 여행객을 만나 금세 친해져 즐겁게 수다를 나누더니 사진까지 찍는다.
바닷가에서 바라본 풍광이 그림이다. 정말 멋지다. 황량하면서도 황홀한 기분이 든다. 저 멀리 배 한 척이 떠 있다. 아마도 소형 크루즈 여행선인 모양이다. 이 모든 풍경들을 보면서 우리는 마침내 파타고니아에 들어선 것을 실감한다.
푸레르토 나탈레스라고 쓴 글자판이 있는 로터리에 석기시대의 수렵 동물이었던 밀로돈 형상이 서 있다. 이곳을 상징하는 동물처럼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이동이 베링해를 건너서 북아메리카에서 시작해 중남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해 1만4천년 전 이곳 남단 파타고니아까지 왔다고 한다. 남미쪽에는 남태평양 바다를 건너서 이동해 왔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 됐던 그 인류가 빙하기 뒤 동굴 생활을 하던 시절 생존을 위해 수렵했던 대표적인 동물이 밀라돈이라고 한다.
저녁 10시가 됐는데도 어두워지지를 않는 백야 현상이 보인다. 이전 우리가 살던 곳과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을 알게 된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거쳤다를 반복한다. 추적추적 내린다고 하기는 그렇고 흩날리듯 썰렁한 가을비처럼 내린다. 기온은 10도 내외를 가리키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느낌은 그보다 더 쌀쌀하다. 지금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불지 않지만 국립공원 투어를 가면 세찬 바람과 만나게 될 것이다.
훌리오 갈라르도 공항. [사진-임영태]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도중. [사진-임영태]
푸에르토 나탈레스 시내 거리. [사진-임영태]3
바닷가에서 바라본 풍광. [사진-임영태]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상징하는 이구아돈 상. [사진-임영태]
숙소 앞에서 한 컷. [사진-임영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가는 길
인터넷이 됐다 안 됐다 한다. 분명 한국에서 로밍을 해갔는데도 이곳 인터넷 사정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잘 안 될 때가 많다. 그 지역의 통신사와 연계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떠 있는 통신사 중에서 선택 지정해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인터넷 사정과는 차이가 크다. 이런 현상은 대도시 지역에서도 계속 나타났다. 호텔이나 공항 등 인터넷망이 잘 깔려 있는 곳이 아니면 계속 문제가 됐다.
새벽에 국내 소식을 확인하는데 서해상에서 남북 사이에 포사격 연습을 하며 신경전을 벌였다는 기사가 올랐다.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우리가 한가하게 여행을 하고 있을 상황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대표는 열심히 국내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통일뉴스와도 연락하며 상황을 파악하며 내용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평화를 기원하는 것밖에는.
아침 6시경 식사를 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7시 반경 예약한 17인승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미 예약돼 있는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투어를 위해서였다. 차가 지나는 길옆에는 하얀, 보라, 노란색의 들꽃들이 피어 있고, 키가 크지 않은 관목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큰 나무들이 쉽게 견디기 힘든 곳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드문드문 마을이 보이고, 외딴집들도 보인다. 말과 소, 양들을 방목하고 있는 목장도 종종 보인다. 지평선이 있는 넓은 초원지대가 보이다가 밋밋한 구릉이 나타난다. 저 멀리 블루빛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숙소로 정한 푸에르토 나탈레스나 오늘 투어를 예정한 토레스 델 파이네는 모두 남미 파타고니아의 일부이다. 파타고니아(Patagonia)란 말은 마젤란이 이 지역을 탐험하면서 처음 만난 원주민을 지칭한 전설 속의 거인 ‘파타곤’에서 유래했다. 당시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은 인디오의 한 종족인 테우엘체족이었다. 마젤란이 지금의 마젤란 해협에 당도해 처음 만난 원주민들은 큰 키에 발이 엄청나게 큰 거인 같았다고 한다. 마젤란 일행은 장신의 거구에다가 모카신을 신어서 발이 엄청 커 보였던 데 놀라 그들을 발이 큰 ‘파타곤(Patagon)’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한 20분 정도 달려 삼거리에 위치한 마을 쎄로 카스티요(Cerro Castillo)에 도착했다. 잠시 쉬었다가 가는 모양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그리고 아르헨티나로 국경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바로 옆에 칠레 국경 검문소가 보인다. 기념품과 식료품, 간단한 요기 음식도 팔고 있다. 호텔도 있고, 계곡도 있어서 역시 관광지 중 한곳이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국립공원이기에 이곳을 돌아볼 여유는 없다. 사진 몇 장 찍고 기념품점에 들러 구경만 하고 주변 풍광을 돌아보니 버스가 출발한다.
나탈레스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는 길. [사진-임영태]
삼거리 마을 쎄로 카스티요에 있는 기념품점. [사진-임영태]
국경마을 쎄로 카스티요에 있는 기념품점. [사진-임영태]
다시 버스가 달린다. 여전히 비슷한 풍광이지만 인가는 보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마을이나 인가, 목장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국립공원에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곳곳에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곳이 있는데, 아마도 사유지인 듯하지만 집도, 목장도 아니다. 황량한 이곳 국립공원 근처에 땅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일까? 투자를 위한 것일까? 별장이나 목장을 지을 생각일까? 궁금하다. 도로 옆에서 종종 동물들이 발견된다. 과나코도 보이고, 새들도 보인다. 어미새가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노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버스는 얼마간 달려 호수 앞에서 잠시 쉬어간다. 동물들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달리는 길은 비포장도로다. 기존의 도로를 넓히고 포장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관광객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포장도로 늘어나고 자연도 손상될 것이다. 오래전 이곳을 왔던 사람들은 불편한 거친 자연 상태와 정면으로 부딪치며 이곳을 구경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차를 편하게 타고 이곳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사람의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엔 반드시 자연 파괴가 일어난다. 자연의 가장 큰 적은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
호수도 만나고 폭포도 만났다. 호수에서 세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때린다. 길옆에 핀 가시가 있는 작은 노란 꽃 군집이 인상적이다. 우리네 구절초를 닮은 하얀 꽃들도 흐드러지게 피어서 우리를 반겨준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안개 속에서 우리를 반겨준다.
과나코 무리들. [사진-임영태]
호수에서 바라본 국립공원 풍광. [사진-임영태]
국립공원 가는 길에 만난 폭포. [사진-임영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돌아보기
드디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과 함께 전망대, 음식점, 휴식공간도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는 화장실도 다녀오고 잠시 주변도 돌아보며 쉰다. 가이드가 입장 티켓을 구매해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우리는 걸어서 가지 않고 미니버스를 타고 국립공원 투어에 나섰다. 버스는 중간중간 풍광 좋은 뷰 포인드, 포토 존 등에 차를 세운다. 우리는 차에서 잠시 내려서 주변을 돌아보고 크게 숨을 쉬고 사진을 찍는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입구 표지판. [사진-임영태]
안개 속에 숨은 토레스 델 파이네 산봉우리. [사진-임영태]
그림 같은 곳에 자리잡은 국립공원 본부. [사진-임영태]
역시 이곳은 걸어서 돌아보는 트레킹이 제맛일 것 같다. 차를 타고 포인트에 내려서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이 들지만 트레킹을 한다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으며 최고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는 스페인어로 ‘탑’을 뜻하는 토레스와 원주민 테우엘체 인디언 말로 ‘창백한’ 또는 ‘푸른’이란 뜻의 파이네가 합쳐진 말이다. 우리말로 풀자면 ‘창백하고 푸른 거탑’ 정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이곳은 온통 푸른 빛이다.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호수도 푸른색(옥색)이다. 햇볕이 나더라도 적도의 밝은 태양 빛이 아니라 푸른 비치 섞여 있는 느낌이다.
국립공원을 돌아보면서 가장 큰 감상 포인트의 하나는 토레스 델 파이네 산을 여러 각도에서 보는 것이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동쪽에서 보고, 서쪽에서 보고, 또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는 느낌이 다 다르다. 토레스 델 파이네 산을 중심으로 트레킹 코스가 W자 모양이어서 ‘W트랙’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이 코스가 가장 유명하다. 이 W코스는 4박5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밖에도 W트랙을 포함해 100킬로에 달하는 전 코스를 일주하는 데는 7박8일이 걸린다고 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 자연의 제대로 느끼고 맛보려면 W트랙 정도라도 걷는 게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건 꿈일 뿐이다. 남미 여행기가 많지만 이곳 트레킹 코스의 느낌을 잘 전해주는 글로는 남미여행 전문가 김남희의 글이 있다(김남희,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토레스 델 파이네 W자 트레킹 코스. [네이버 블로그-‘지금은 이지트레블’]
토레스 델 파이네 W자 트레킹 코스. [지도- 론리플래닛]
산과 더불어 토레스 델 파이네의 또 다른 매력은 옥빛을 띤 호수들이다. 거대한 라르고 엘 토로(Lago el Toro) 호수를 중심으로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들이 존재한다.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의 옥빛만으로도 사람에게 저절로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호수를 바라보기만 해도 경외심이 생기지만 호수 주변의 산과 풀, 나무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다. 투어버스는 라르고 호수 주변을 따라 난 길을 따라 운행한다.
또 하나는 빙하 구경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돌고 돌아서 마지막에 그레이 호수에 떠 있는 빙산, 유빙을 보러 갔다. 그레이 호수는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에 있는 12개의 빙하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그레이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다. 그레이 빙하는 폭 5킬로, 길이 27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하는데 점점 녹아가고 있다. 빙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그레이 캠핑장이 있어서 야영을 할 수도 있고, 빙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레이 빙하는 그야말로 아주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레이 호수에 떠 있는 빙산들만 보고 돌아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사정도 정확히 모른 채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고 산길을 걷고 또 모래사장을 지나 30분 이상 걸어서 도착해 보니 몇 개의 유빙만 있을 뿐이었다. 그레이 빙하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빙하투어에 나서든가 산장까지 걷은 트레킹을 해야 한다. 칠레에서 못 본 빙하를 아르헨티나에서 제대로 보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뚝 솟은 쎄로 파이네 그란데 산과 코디에라 델 파이네 산. [사진-임영태]
위용을 자랑하는 산봉. [사진-임영태] 17
호수와 산, 하늘의 구름이 어우러진 풍광. [사진-임영태]
그레이 호수에 떠 있는 빙산과 저 멀리 보이는 그레이 빙하. [사진-임영태]
그레이 호수와 그레이 빙산. [사진-임영태]
밀라돈 동굴과 인류의 남미 이동
국립공원 투어 중 라고 페오에 캠핑장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했다. 전날 장을 봐서 준비해간 과일과 빵, 커피, 차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함께 투어를 하고 있던 중국인 젊은 친구는 식사도 거른 채 사진 찍기에 몰두한다. 아마도 그 친구의 가장 중요한 투어 목적은 사진찍기와 유튜브에 올리는 것인 듯하다.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지금은 유튜브로 생중계하며 여행을 다닌다. 나도 간단한 여행 메모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기억하기도 어렵고 메모를 따로 하는 일도 쉽지 않아서 기본이 되는 간단한 내용은 페이스북에 올린다. 더 필요한 내용은 셀폰 메모 앱을 활용한다.
점심 식사 후 호수 주변을 잠시 걸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강해서 날려갈 것 같은 기분이다. 캠핑장에는 몇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있다. 차도 보인다. 차를 끌고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식당(휴게소) 직원의 차일까?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캠핑장. [사진-임영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밀로돈 동굴에 들렀다. 밀로돈은 몸길이가 3미터나 되는 거구의 몸집을 가진 초식동물이었다고 한다. 형상을 보면 북극곰을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늘보를 닮은 듯도 하다. 실제로 움직임이 매우 느린 느림보여서 땅늘보라고 불렸다고 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시내에 상징물처럼 서 있는 그 동물이다.
밀로돈 동굴은 남미에 남아 있는 인류의 흔적 가운데 드물게 남아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에 속한다. 빙하시대 얼음덩어리로 차 있던 곳이 간빙기가 돼 얼음이 녹으면서 생긴 동굴인데, 1895년 독일의 한 고고학자가 이곳에서 인간의 두개골과 가죽조각을 발견했다. 털이 있던 가죽은 밀로돈으로 밝혀졌고, 이 동굴을 밀로돈 동굴로 명명했다. 밀로돈의 화석이 사람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이 동굴에 거주하면서 밀로돈을 사냥해서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밀로돈은 1만년 전까지 생존했으며, 그 뒤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밀로돈이 멸종하고 5천년이 지난 후에 파타고니아 일대가 초원에서 삼림지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밀로돈은 파타고니아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어디서도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정광주, “파타고니아서 사라진, 밀로돈을 아시나요?”, 오마이뉴스, 2013.1.14.).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지구 곳곳으로 퍼졌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다. 2만년 전 베링해를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간 현생 인류는 1만 6천년 전 남미 파타고니아 지역까지 도달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남미 원주민들은 적어도 수천년 동안 이 밀로돈과 함께 공존하며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랬던 이 거대한 초식동물은 왜 사라진 것일까? 인간에 의해 멸종된 것일까? 아니면, 공룡처럼 지구의 환경 변화로 순식간에 사라진 것일까?
밀로돈 동굴 안에서 밖으로 바라본 풍경. [사진-임영태]
밀로돈 동굴 앞에서 바라본 광경. [사진-임영태]
밀로돈 동굴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미리 끊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티켓 구입이 가능하다고 해서 왔는데 현장에서도 매표소에서 티켓을 카드나 현금을 내고 끊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끊어야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국립공원 입장료를 현금을 내며 버스까지 올라와서 끊어주지만 카드를 사용하면 버스에서 내려 매표소에서 끊어야 했다. 그런데 이곳 칠레에서는 아예 현금도 카드도 안 되고 현장에서도 QR코드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티켓을 구매하게 돼 있었다. 우리는 현장에서 수차에 걸쳐 티켓 구매를 시도했지만 인터넷 접속도 잘 안 되고 계속 오류가 났다. 그렇게 한참을 시도해도 안 되니까 직원이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입장료가 1인당 7달러였는데 공짜로 입장한 것이다. 칠레의 경우 자국민 노인들은 국립공원 입장이 모두 무료라고 한다. 우리가 몇 차례 시도해도 안 되어서 김 원장이 시니어라고 했더니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시니어여서 봐 준 것일까? 아니면 직원이 재량으로 처리한 것일까? 아무튼 공짜 구경을 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동굴 구경은 별 게 없었지만 동굴 앞에서 바라본 풍광은 일품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산과 호수, 계곡과 폭포, 강, 풀과 나무, 대지, 동물, 공기, 눈, 빙하.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다. 바람이 워낙 세차게 불어서 기온은 10도 정도였지만 실제 체감기온은 영하 느낌이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이처럼 스쳐가듯 하루 만에 지나치고 가야 한다니 아쉽기만 하디. 하지만 이거라도 어디인가? 이렇게라도 못 보면 언제 보겠는가? 모든 것은 순간이고 찰라다. 인생도 여행도 순간이고 찰라 아니겠는가.
인간은 순간이고 찰라지만 자연은 영원하다. [사진-임영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주변 지도. [구글맵][사진-임영태]
임영태 필자 약력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힘쓰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의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에서의 학살-한국현대사, 기억과의 투쟁』, 『새로 쓴 한국현대사-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 35장면』(공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공저),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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