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 한율아!
지난주에 시작된 장마가 지난 주말 주춤하더니 다시 이어지고 있구나. 후덥지근한 날씨에 불쾌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로 긴 가뭄 끝의 장마라 다소 많은 비가 내리는 것도 같지만 아직은 반갑기만 해. 목 말라하던 대지가 엄마의 젖을 실컷 먹고 있는 것만 같아. 풀과 나무들이 단물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해.
장마가 보통은 6월 하순에 시작되어 한 달쯤의 기간 동안 길게 이어지고는 해. 하지만 그 기간 내내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란다. 며칠을 폭우가 내리는 때문에 홍수가 나기도 하지만, 장마 기간 중에는 사이사이 하루 이틀 날이 맑아지기도 하고 흐린 날이 계속되기도 해. 그래서 이 장마철은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워낙 독특한 패턴의 날씨를 보여주지. 그래서 이 장마의 시기를 ‘제5의 계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하는구나.
한편 장마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의 말인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장마를 매우(梅雨)라고 부른다고 해. ‘매실비’, 즉 매실이 익을 무렵 내리는 비라는 뜻에서 이렇게 부른다고 하지. 실제로 할아버지 농원의 매실도 6월 말쯤 장마가 지기 시작하면서 노랗게 익기 시작해서 장마가 이어지는 내내 하나둘씩 땅 위로 떨어진단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노랗게 달려있던 매실이 보이지 않을 때쯤이면 장마가 끝날 무렵이라는 것도 알 수 있어. 그리고 장마는 보통 7월 중순쯤에는 끝이 나지. 늦어도 7월 하순의 장마 뒤에는 불볕과도 같은 무더위가 찾아오고 바로 이때부터는 한여름, 이제 신나는 방학과 휴가 시즌이 시작되지.
장마철을 맞은 농원은 정원과 농사일을 잠시 잊고 쉴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한단다. 그간에는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눈코 뜰 새가 없었지. 이제 텃밭에 자리를 잡은 온갖 것들은 무성하게 자라서 실과를 맺기 시작하고 호박도 옥수수도 쑥쑥 자라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야. 6월 초순의 씨앗을 뿌리는 절기인 망종(亡種)이 지나고 나면 별달리 손을 보태지 않아도 모두가 스스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 같아. 모종밭
을 나와 화단에 심어진 화초들도 이제 품을 벌려 하늘 쪽으로 힘차게 솟아오른단다. 장맛비를 맞고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를 한 춤 베어주고 나면 쏟아져 내리는 비를 한가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장마철의 여유까지 즐길 수가 있어. 오늘처럼 장맛비가 내리고 있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그간에 허둥거림과도 같았던 시간들의 기억이 마치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단다.
본격적인 장마 시즌이 시작되기 전 지난 2주 여의 주말 동안은 화초를 옮겨 심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어. 무엇보다도 먼저 모종밭에서 키우던 것들을 바깥 화단이나 농원 안길 가장자리 쪽에 옮겨 심었지. 백일홍, 과꽃, 코스모스, 노랑코스모스, 풍접초, 접시꽃과 같은 것들이지. 백일홍을 무리지어 심고 그 앞에는 풍접초를 심었어. 키가 좀 더 큰 노랑코스모스는 뒤쪽으로, 키가 조금 작은 코스모스는 길 안쪽으로 심어서 노랑과 하양, 그리고 분홍의 꽃들이 어우러지는 한 구간의 농원 안길을 디자인해. 새싹을 틔운 접시꽃으로도 농원 안길의 한 부분을 장식하고 말이야. 접시꽃은 워낙 키가 커서 풀협죽도(플록스)가 심어진 안길 화단 바깥쪽으로 심었어. 또 봉선화와 맨드라미는 산방 앞 화단에 몇 포기를 옮겨 심고, 나머지는 모종이 자라던 자리에 적당한 간격을 벌려 심어주었어. 모종밭에서 키우는 봉선화는 나중에 꽃이 피면 손가락에 봉선화 꽃물을 들이는 용도로 활용할 예정이야.
한편 향소국(香小菊), 댕강나무 따위와 같이 1달 여 전에 꺾꽂이를 해서 뿌리를 내린 것들도 화단으로 옮겨 주었어. 자리를 잡고 더 넓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준 것이지. 또 씀바귀와 같이 뿌리를 잘라서 싹을 낸 씀바귀는 텃밭에다 아주심기를 해주었어. 씀바귀는 한해를 키우고 그해 겨울을 나게 해서는 그 이듬해 봄에 수확을 하는 뿌리채소의 일종이야. 씀바귀는 개성배추, 섬쑥부쟁이(부지깽이나물), 곰취와 참취, 산마늘(명이나물), 도라지, 당귀 따위와 함께 할아버지가 즐겨 가꾸는 향미 채소의 하나야. 씀바귀는 그 뿌리의 쌉싸래한 맛이 아주 별미란다.
이렇게 한 해의 농원을 새롭게 가꾸는 마지막 부산을 떨고 나면 이제부터는 잡초를 제거하는 등의 무척이나 성가신 일이 끊이질 않지만, 이어지는 수확의 기쁨을 즐길 수 있게 된단다. 지난주에는 앵두의 수확과 함께 풋고추, 오이, 애호박을 따기 시작했고 이번 주에는 감자 캐기 철이 돌아왔어. 보통은 6월 하순에 들어있는 하지(夏至, 올해는 6월 21일)의 절기에 햇감자를 캐기 시작하지. 올해는 장마가 살짝 물러간 지난 주말에 흰감자를 캤어. 홍감자는 지난해처럼 우영이, 그리고 한비와 한율이가 와서 캘 수 있도록 남겨두었어. 흰 감자도 조금 남겨 두었으니 이번 주말에 농원을 방문한다면 감자를 캐는 재미를 한껏 즐길 수 있을 거야.
한비, 한율아!
이번 여름에는 자두를 수확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구나. 3년 만에 자두를 수확하는 기회가 찾아왔어. 지난 2년 동안은 해마다 빼놓지 않았던 자두 수확을 즐길 수 없었지. 지지난해에 매미나방의 애벌레가 기승을 부리는 통에 그해의 자두가 열매를 맺지 못했고, 지난해 또한 그 여파 때문이지 역시 자두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았어. 송충이와 같이 생긴 매미나방의 애벌레가 모든 과수나무의 잎을 갉아먹은 때문에 자두나무는 물론 매실나무, 아로나아, 블루베리, 사과나무, 꽃사과나무 등 거의 모든 과수들이 그 열매의 결실을 두 해씩이나 건너뛰었어. 그런데 올해는 열매를 다는 나무들 모두가 열매를 달았어. 앵두는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는지 올해를 앵두의 ‘빈티지 해(Vintage Year; 포도 작황이 좋아 품질이 좋은 많은 포도를 수확한 해)’라고 할아버지가 말하기도 했지. 곧 수확을 할 수 있는 자두나무는 긴 가뭄의 영향 때문인지 그 작황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년과 비슷한 수준의 결실을 이루었어.
이번 주말이면 마침 감자를 캐기에 알맞은 시기이기도 하고 자두를 수확할 수 있는 적기가 될 듯싶어. 이번 주말에 농원을 방문한다면 감자 캐기와 자두 따기 체험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또 주먹토마토는 그 시기가 조금은 이른 듯하지만, 방울토마토, 고추, 애호박, 오이 따위는 직접 따 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한창인 바위취와 산수국, 막 피기 시작한 왕원추리 따위의 꽃구경도 할 수 있을 거야. 우영이네를 이미 초대를 했지만, 둥이네도 이번 주말에 농원에 초대를 하고 싶구나. 미스킴 라일락이 꽃을 피우던 지난 늦봄 초대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 초대가 되는 셈이지. 물론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올해 둥이네가 2~3번 정도 더 농원 탐방 기회를 가졌으면 해. 한 달쯤 후인 8월 초순이나 중순, 옥수수가 익고 봉숭아가 꽃이 필 무렵에 한 차례 더 여름 농원을 방문했으면 하고, 가을 한때 또 농원을 찾았으면 한단다. 또 겨울에 썰매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좀 많이 내리면 한 번 더 농원을 찾아주었으면 하고.
다시 이어진 장맛비가 오늘 아침까지도 이어지고 있단다. 어제 새벽에 시작된 비가 오다가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어. 아주 전형적인 장마철 날씨를 보여주고 있구나. 하루 그리고 밤사이에 제법 많은 비가 내려서 산방 앞의 도랑물도 오랜만에 경쾌하게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내는구나. 흠뻑 비를 맞은 온갖 풀과 나무들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의 푸르른 생기를 되찾았어. 할아버지도 바깥일을 하기 어려운 어제와 오늘과 같은 날은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즐길 수 있어. 초대를 했으니 주말이면 우영이와 둥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일기 예보를 보니 오늘 늦게까지 비가 계속 이어진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내일부터는 날이 개기 시작해서 주말에는 장마가 주춤하고 대체적으로 맑을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럼 럼 주말에 농원에서 만나자꾸나. (2022.6.30)
첫댓글 순우의 글을보면 옛 시골ᆞ농촌의 향기로운 추억을 느끼게 됩니다.
요즘 비는 가믐을 해갈하는 단비겠지
오.
비소리를 자장가삼아 낮잠을 즐기는
것도 크나큰 행복입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길
가뭄 끝 단비라 그런지 반갑고 장마가 며칠 되어도 전혀 지겹지 않을 듯 싶네요. 이런 가운데 순우 부부가 정성을 댜해 가꾸고 있는 여름농원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네요.
지속되는 장마로 오랜만에 서재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면서 순우의 산촌편지를 읽습니다. 나래실마을이 어비산장보다 위도는 더 위이지만, 고도차 때문인지 모든 작물 수확이 일 주일 정도 빠른 것 같군요.나는 감자 매실 수확은 1주일 뒤 그리고 자두 수확은 2주일 뒤에나 가능할 것 같네요. 그리고 농작물을 가꾸는 사이 정성들여 화초를 가꾸는 여유와 아름다운 마음이 부럽기만 하군요. 농사일이 힘들기보다 즐거움의 경지에 이르르러면 오랜 기간의 내공이 필요하지요. 분주함 속에서 한가함 즐기기를 배우고 싶습니다.
제5계절, 매우라고도 하는군요. 감자를 캐고 매실을 따는 시절, 마음이 설렙니다.
장마가 끝나면 붙볕 더위가 훅훅 볶겠지요. 많이 느끼고 갑니다. 고맙!
어린 시절 새벽 일찍 사립문을 나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듯. 아침에 따온 호박과 잎 가지 풋고추로 아침식사를 했던 농촌의 기억이 새로워요...
장마가 순우리말이었군요
매우, 매실비
이것도 넘 좋은데요^^
6월 하순에 매실을 땄는데 의미가 있었다니 또 하나 배웁니다
초보농부라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더 와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