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4. 5. 19(주일) - 성령강림절, 부부 주일, 청년 주일 - (2024년 20주)
제목;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친교15)
성경; 요 15:26,16:13(15:26-16:15) (p.174) (요 14:26, 191<427>, 516<265>, 3)
<예배의 부름>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며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 평화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인데, 구약에서는 오순절혹은 칠칠절, 맥추절이라고 부르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오순절은 이 땅에 교회가 탄생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전통적으로 율법 수여와 계약의 갱신을 기념하던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하늘로부터 불어오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고 3,000명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이렇게 기독교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음으로써 시작되었고, 그 교회의 목적은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는 선교입니다.
유대교의 오순절이 추수에 대한 감사 축제였다면, 기독교의 오순절은 선교를 위한 헌신과 감사 축제입니다. 오순절(五旬節, Pentecost)은 ‘50일’을 뜻하는데, 부활절부터 계산하여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이 임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오순절 이후의 주일 예배는 교회의 성장과 선교에 초점을 둡니다.
금년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제자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해 교회의 5대 사명인 “예배, 교육, 친교, 봉사, 선교” 중 “친교”에 중점을 두고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첫 번째 말씀으로 “참된 친교의 원리”(행 2:42-47)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말 “친교”(親交)는 ‘친할(가까울) 친(親)’+‘사귈(주고받을) 교(交)’의 합성어로 ‘친밀하게 사귐, 또는 그런 교분’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친교”는 이런 일반적인 친교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세상에서의 친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친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이웃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1. “친교(교제)”의 원어적 의미 : ①코이노니아 : 교제, 협조, 관대, 참여 등, ②콜라오 : 아교로 붙이다, 밀착하다, 더부살이하다, ③하베르 : 함께 묶다, 결합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2. “참된 친교(교제)”란? : ①서로 마음으로 동정하고 사랑하며 연합하는 것, ②서로 선물이나 기부금 등 물질을 나누는 것, ③서로 연합하고 함께 하는 것, ④서로의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지난 2월 “참된 친교는 무엇입니까?”(행 2:42-47)란 제목으로 세상 친목 단체와 교회 친교를 비교하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1. 세상 친목 단체의 친교에서 1)친목(親睦)이란? ‘특정 집단에서 개인들끼리 친해지기 위한 행위와 그 과정’이란 뜻으로, ‘친목회, 친목계’라고 부른다. 2)친목 단체 종류: 개인적 친목을 넘어 사회로 확장된 친목 단체를 ‘사회 친목 단체’라고 하며, ‘친목을 도모하여 구성원의 화합을 통해 사회공공성을 지향하는 단체’라고 정의하고, ‘동호회, 향우회, 동창회, 친목회, 계, 동아리’ 등으로 불린다. 3)세상 친목 단체의 목적과 한계: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친하게 화목하게 지내자는 목적으로 모이다 보니 ‘끼리끼리의 문화’, ‘친목질’이 발생하며, 개인적, 이기적이고 편협적이 되며, 같은 친목 단체 안에서도 파벌이 생기고 싸우게 된다. 2.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친교: 1)참된 친교의 주인(주체)은 하나님이시다. 2)하나님이 주인(주체) 되시는 참된 친교(교제)는 어떻게 완성될 수 있는가? 참된 친교는 ①경건한 예배를 통해(42), ②사랑의 나눔과 섬김, 돌봄을 통해(44-45), ③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나누므로(42,46), ④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선교를 통해 열매를 맺는다(47). 이것이 세상의 친목 단체와 다른 점으로, 세상 친목 단체는 자신의 유익과 관심에 따라 모여서 서로 친교하는 것이지만, 성경에서의 친교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친교하는 것이다. 어떤 파벌이나 파당이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 성경, 교회에서 말하는 친교이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 제안하면, ①교회 들어오시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샬롬’이라고 인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②만약 새 가족이나 자주 출석하지 못하는 분이 오셨다면 모든 교인들이 다 찾아가서 인사하고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③교회 내에서의 호칭은 ‘형님, 누나, 언니’ 등 세상적인 호칭이 아니라 ‘장로, 집사, 권사, 형제, 자매’ 등 직분 중심으로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④교회가 하는 모든 예배, 전도, 선교, 봉사 등에 더욱 열심히 참석해서 자연스럽게 친교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3월 “하나님과의 친교의 근거와 실제”(친교13)(요일 1:3-4)란 제목으로 참된 친교 완성의 첫째 조건인 하나님과의 교제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1. 하나님과의 교제의 선행 조건: 1)화해(고후 5:18-19), 2)거룩(성별)(고후 6:14-18), 3)그리스도를 영접함(요 14:6), 4)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복종함(요 14:23). 2. 하나님과의 교제의 성취: 1)하나님과의 교제를 소원함으로, 2)기도를 통해 3)영원한 천국에서 완전히 실현됨 3. 하나님과 교제한 실제: 1)에녹(하나님과 동행), 2)노아(의인,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명령 준행), 3)아브라함(하나님 명령 준행, 동행), 4)이삭(하나님의 명령 준행, 번성), 5)야곱(꿈 속에서 만남, 교제, 명령 수종), 6)모세(명령 순종), 7)여호수아(명령 따름, 사명 완수), 8)기드온(동행 약속 믿고 해방 이룸), 9)솔로몬(기브온 산당 1천 번제 후 명령 순종, 동행)
참된 친교의 주인(주체)은 하나님이십니다. 참된 “친교”(교제, 코이노니아)는 이웃과의 만남과 교제라는 일반적인 친교의 범위를 뛰어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는 것입니다.
지난 4월 “예수님과의 친교의 근거와 실제”(친교14)(요 14:21-24)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1. 예수님과의 교제(친교)의 조건: 1)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2)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3)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하는 것, 2. 예수님과의 교제(친교)의 근거: 1)구속(구원), 2)중생(거듭남), 3)부활(영적 부활), 3. 성도들이 예수님과의 교제(친교)에서 하는 것들 : 1)동일한 이름, 2)동일한 성품, 3)동일한 소망, 4. 예수님과 교제(친교)한 실제: 1)12제자들, 2)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 3)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4)도마, 5)일곱 제자들, 6)사데 교회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 7)라오디게아 교회에서 문을 여는 자들, 8)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께 대해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자들
참된 친교(교제), 코이노니아는 ‘입으로만 사랑한다, 교제한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동정하고, 관대하게 대하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선물이나, 기부금 등 물질을 나누면서, 서로 연합하고 함께 하는 것인 동시에 서로의 생명을 나누는 참된 친교(교제, 코이노니아)’를 성취해야 합니다.
II.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요 15:26-16:15)은 보혜사이신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셔서 주님과 교제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참된 친교 완성의 첫째 조건인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성자 예수님과의 교제에 이어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 마지막 말씀으로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에 관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모든 친교의 근원이 되시고,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친교를 이루셨다면, 성령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친교의 주인이십니다.
1. 보혜사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하면서, 성령님에 관해서 많이 말하면서도 예수님 승천 이후 성도와 함께 머물면서 진리의 영으로서 성도의 위로자 되시는 보혜사 성령님과 관련해 정작 알아야 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신학적으로 성령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①삼위일체 하나님의 3위 중 한 위이신 ‘하나님’이신 성령님, ②‘하나님의 영’이신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 ③지정의(知情意) 인격을 가지신 성령님, ④우리에게 오기로 약속된 하나님의 선물
그런데 이런 성령님에 관해 너무 모르고, 또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무당이 푸닥거리하고 점쟁이가 점을 치는 ‘귀신’쯤으로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성령님을 하나님보다 낮은 존재로, 그저 ‘영’으로만 생각하는 성도들도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령님은 영으로만 존재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15:26에서 성령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보혜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보혜사”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는 ‘곁으로’란 뜻의 ‘파라’(παρα)라는 전치사와 ‘부르다’, ‘초청하다’, ‘위로하다’는 ‘칼레오’(καλεω)라는 동사의 합성어 ‘파라칼레오’에서 유래된 말로, ‘옆으로 오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란 뜻이며, 여기서 ‘위로자’, ‘변호자’, ‘조력자’, ‘탄원자’, ‘중보자’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 “보혜사”(파라클레토스)를 ‘헬퍼(Helper)’, 즉 ‘도우실 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보내어지신 성령님의 성격을 규정하는 말로,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 인간들을 도와주시고 중보해 주시기 위해서 계신 분이십니다.
좀 쉽게 설명하면, 뭔가 잘못을 해서 어머니로부터 야단을 맞고 있는 아이가 있는데, 마침 아버지가 퇴근해서, 엄마에게 ‘이제 그만 하지’ 하므로 그 야단맞는 것으로부터 해방될 때, 바로 이 아이를 도와준 아버지가 바로 ‘보혜사’, 즉 Helper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령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함께 해주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이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참 평안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을 통한 참된 친교는 어떤 것일까요?
신약 성경에 “보혜사”(파라클레토스)란 말이 다섯 번나오며(요 14:16,26, 15:26, 16:7, 요일 2:1), 요한일서에서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표시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전부 ‘성령님’을 표시합니다. 요한복음에 인용된 보혜사에 대해서 다섯 번의 말씀(14:16-17, 14:26, 15:26, 16:7-11, 16:13-14)은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으며,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1)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6-17)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에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16a)그러므로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보내달라고 간구하므로 오셨습니다.
여기서 ‘구한다’는 ‘에로테소’(ἐρωτήσω)는 13,14절에 사용된 ‘구한다’는 ‘아이테오’(αίτεω)보다 훨씬 간절히 구한다는 동사입니다. ‘아이테오’가 일반적으로 ‘요구하다’, ‘원하다’는 뜻인 반면에, ‘에로테소’는 ‘간청하다’, ‘구걸하다’, ‘요청하다’, ‘화평을 간청하다’는 뜻으로, 매우 간절하게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에로테소’는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주로 사용하는 낱말로, 보편적인 구함,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특별한 구함,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구하는 내용은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과 제자들(인간들) 사이에 중보자(mediator) 역할을 했지만, 부활 승천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님께서 오셔서 중보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을 알지도 못하고 또 미처 그 필요성도 알지 못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께 성령님을 간절히 구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내달라고 간구하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받게 됩니다(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4:13-14) 예수님은 또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20명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찾고 구하므로 보혜사 성령님을 받고 이 성령님과 교제하며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간구해 주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16c)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원토록”(아이온, αὶών)은 “항상”(행 7:51)이란 뜻의 ‘아에이’에서 유래한 말로, 앞으로 올 ‘끝없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또16절의 “있게”와 17절의 “거하심”은 같은 낱말로 ‘메노’(μένω)라는 헬라어이며, 기본 의미는 ‘머물다’(딤후 4:20)는 뜻으로, ‘영존하다’(히 12:27), ‘그대로 남아 있다’(요 19:31), ‘유하다’(막 6:10)라는 뜻입니다. 이는 성령님께서 앞으로 올 끝없는 시간 동안 우리와 늘 함께 유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일시적으로 왔다가 언짢으면 떠나버리는 우리 인간과 같은 분이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영원히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와 영원히 교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하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으로서 합당하도록 거룩히 해야 합니다(고전 3:16-17). 또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무기력하게 그대로 두지 말고 늘 의지하고 그 뜻에 복종하므로, 세상으로부터 오는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2)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보혜사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제한적인 우리 인간의 이해력의 한계성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솔직하게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교제했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사역 등에 관해서 잘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오죽 했으면 3년의 공생애를 마감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위해서 마지막 예루살렘을 향한 길에서 좌상, 우상 하면서 자리다툼 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제자들이 오순절 날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주셨던 말씀이 생각났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므로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서므로 교회가 출발하였으며,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하여 모든 제자들이 목숨을 내어놓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므로 믿는 교인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고, 교회가 부흥 발전하여갔던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20-22) ☞ 헤롯이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3일 동안에 일으켜 세우겠다는 말씀에 대하여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요 12:16) ☞ 종려주일에 슥 9:9 “보라 너의 왕이 나귀를 타고 오신다”는 말씀에 대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알게 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말씀 대로 살아가므로 주님의 뜻을 이뤄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3) 진리의 영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
성경은 보혜사 성령님을 “진리의 영”(14:17, 15:16, 16:1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참 영이며, 진리이신 영이며, 그에게서 모든 진리가 나오며, 그만이 하나님의 모든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성령님은 바로 진리입니다. 요한일서 5:6에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고 말했습니다. 모리스(Morris)는 “성령의 사역으로 진리를 증거하시는 분이다”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우리를 교육하는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가장 좋은 교육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은 거짓말에 의하여 왔습니다. 거짓말은 사탄의 도구로써 인간을 미혹하여 범죄하게 하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으로 타락시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거짓된 것을 진리의 성령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진리의 성령께서 인간들과 교제하시면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 바로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결코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4)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해주십니다(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하나님의 계시를 우리들에게 밝히고 깨닫게 하셔서, 우리들이 무엇이 중요한 것이며 또 어떻게 새로운 상황들에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해주십니다.
진리의 영은 진리를 알게 하여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진리에 따라 살게 하며 또 장래에 예수님의 재림 심판을 통해서 인류 구속 완성까지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진리에 붙들려 사는 제자들은 진리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들이 진리에 절대 순종하여 삶의 방향이 바르게 교정되므로 그들의 삶을 통해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성령 강림 후부터 제자들의 신앙생활이 억지가 아니라 스스로 하게 되므로 모든 수고가 참으로 가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들과 함께하셔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이 믿어집니다. 제자들은 진리를 발견한 뒤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하고 예수님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성령님은 바로 진리의 영이십니다. 이 영을 받아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집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집니까? 아멘!
5) 세상의 모든 죄와 의(義), 심판을 드러내실 것입니다(16:7-11).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6:7-11)
사실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교만하고 무식해서 자신이 죄인인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시면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요한은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는 진리의 성령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①“죄에 대하여”는 인간의 죄악의 근본인 ‘불신앙’을(9), ②“의에 대하여”는 율법의 의를 자랑하는 유대인(갈 2:21)과 자기 의를 자랑하는 세상(마 6:1)에 대해 의로운 자요 온 인류에게 의의 길을 마련해주신 그리스도 자신이 의의 표준임을 말하며(10), ③“심판에 대하여”는 세상 임금인 마귀(사탄)에 대한 심판을 선언합니다(11).
특별히 ‘…에 대하여 책망하시리라’를 공동번역에서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의 불신앙을 바로잡아 주시고. 참된 의의 표준이 되시는 예수님을 깨닫게 해주시며, 세상 주관자 되는 마귀(사탄)를 심판하고 굴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이같은 보혜사 성령님의 활동은 교회를 통해서, 즉 교회의 증언적인 선포와 행동, 삶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상의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왜 우리가 성령님을 만나야 하고, 성령님과 교제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교만하고 무식해서 우리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님과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교제하시는 성령님을 잘 알지 못하고, 자행자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셨고, 주님께서 떠나가시므로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거하고 계십니다. 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님과의 참된 교제를 통해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으며, 장래 일을 깨닫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성도님들 다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II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도 “친교”에 관한 말씀을 나누면서 ‘실제적인 친교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스승의날(15일)을 보내고 부부의날(21일)을 맞이하면서 스승과 부부, 가정과 가족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글을 하나 나누려고 합니다. 요즘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힘들어 하는데, 은퇴를 앞둔 60대 중반의 의대 교수 할머니의 글이 큰 감동을 주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설교는 요약해서 하지만 글이 조금 길어서 아예 유인물을 만들어 여러분에 나눠주었으므로, 생각날 때마다 다시금 꺼내보면서 계속해서 큰 감동이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 “아름다운 인연” 유인물 함께 보며 나누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감동적이지요. 우리 인간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라는 만왕의 왕 자리를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고, 죽기까기 복종하고 낮아지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남겨둔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해 보혜사 성령님을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께서 진리의 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을 증언해 주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은“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갖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오늘 우리들이 들고 있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없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아는 것의 10분의 1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일으켰으며, 생명을 살렸고, 한 번의 설교에 수천 명이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예수님조차도 이루지 못했던 엄청난 역사였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6-27)
이 보혜사 성령님을 나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교제를 통해 참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 평화, 샬롬을 나눠주며 참된 교제를 이어 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샬롬!!
♥ 아름다운 인연 ♥ (SM240519, 결론)
저는 예순 중반의 할머니입니다. 저는 한 대학교의 의대 교수인데요. 이제 내년이면 정년이 되어 은퇴를 하게 되네요. 제가 사람 답게 살고 교수까지 될 수 있었던 사연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깡 시골에서 태어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장작 땔 나무를 해오고 집안 허드렛일을 도왔습니다.
저희 집은 아주 가난했고 부모님은 여자애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집안 일보다는 공부에 흥미가 많았어요. 몰래 학교 창문으로 들여다 보며 한글을 익히고 산수를 공부하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부모님한테 잡혀 와서 혼쭐이 나기도 했어요.
‘계집애가 공부해서 뭐 할 거냐며 살림이나 잘 배우라’고 하셨죠.
그런 제 삶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건 젊은 여선생님이 오시고부터였어요. 시내에 있는 유일한 중학교에 부임하신 선생님은 제가 야트막한 산기슭에서 쑥을 뜯다 말고 누가 놓고 간 책을 읽는 걸 보시고 저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어요.
“순정아 지금 당장은 이게 너한테 쓸모 없는 것 같아도 언젠가 분명히 도움이 될 날이 올거야 니가 노력하는 만큼 니 인생의 기회도 넓어질 거고”
그 선생님도 공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됐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때부터 밤마다 몰래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선생님 댁에 가서 국어 산수 도덕 사회 자연... 이런 것들을 배웠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중학교 과정도 배울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다가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댁에 가려고 막 집을 나셨을 때였죠. 엄마는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라고 싹싹 비는 저를 보며 한숨을 쉬시고는“들키지 않고 끝까지 할 자신 있으면 그렇게 하고, 자식이 좋아하는 거 부모도 못 시켜 주는데... 그걸 다 해 주신다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하겠냐... 기왕 할 거면 내 몫까지 다 하거라”라며 몰래 다닐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공부가 계속 되면서 저는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공부할 시간도 많아야 하고 문제집도 살 게 많고... 그저 막막하고 걱정을 하자 선생님은 엄마를 만나셨어요.
“순정이는 정말 똑똑해요... 누구보다 이해력도 빠르고 머리도 좋고 굉장히 성실하죠... 이런 애가 공부를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부디 어머님께서 순정이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말에 엄마는 한동안 고민하셨어요. 그리고 결국에는 저를 밀어주기로 하셨습니다. 아빠 몰래 집안일 하는 시간을 빼 주셨고 문제집 살 돈도 주셨어요. 그 돈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저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두 분은 그렇게 뒤에서 조용히 제 앞 날을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죠.
저도 그런 엄마와 선생님께 보답하고자 하루 열 시간씩 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많아지더라구요. 한번은 선생님이 갖다주신 유명 학원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는데 제가 거기서 딱 두 문제만 틀렸어요. 공부 잘하는 고3들도 어려워하는 시험이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거 봐...너는 이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이게 공부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야. 거기다 넌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힘까지 있잖아...”
“선생님 제가 정말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이 시험 성적을 보고도 모르겠어? 넌 이미 전국 수준이라고”라며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힘을 얻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저는 선생님 말씀대로 서울에 있는 의과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저는 너무 기뻐서 엄마와 선생님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구요. 엄마는 너무 좋아서 눈물을 훔치셨고 선생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죠.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였는데요. 아버지는 어디 여자애가 혼자 서울에 올라가냐며 펄펄 뛰셨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낭비했다며 제 책들을 다 버리셨어요. 저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아버지를 원망하며 가출을 결심했죠.
“오빠들은 아버지가 다 밀어줘도 못 간 대학을 나는 갔는데 왜 나보고는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밀어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저는 몰래 짐을 싸서 새벽에 기차역으로 갔어요. 그런데 거기에 선생님이 나와 계신 것이었어요.
“순정아 이렇게 가면 안돼... 니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집을 나가니? 나가더라도 떳떳하게 모두의 박수를 받으면서 떠나야지 지금 니가 이렇게 무작정 서울에 가면 어디서 받아줄 거 같아? 지금 그러지 말고 돌아가자... 안 그러면 니가 지금까지 노력한 게 다 헛수고가 되는 거야”
저는 결국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집에서는 제가 가출하려고 했던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신 건지 대학교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해 오셨더라구요.
그리고 아버지께 “이건 제가 순정이한테 주는 대학 합격 선물입니다. 서울에서 1등만 한다고 하는 애들도 떨어지는 의대에 합격했잖아요. 이만한 선물은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정이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분명히 아버님께 효도하는 딸이 될 겁니다.”
선생님의 몇 번이고 되풀이한 간곡한 설득 덕에 결국 아버지는 저를 서울로 보내기로 하셨어요.
저는 선생님께 “이 은혜를 다 어떻게 갚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하며 펑펑 울자 선생님은 “니가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그리고 훌륭한 의사가 돼서 갚으면 돼”라며 제 어깨를 토닥여 주셨습니다. 저는 그러겠다고 굳게 약속했고 대학에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1학년 때 다들 해본다는 미팅도 하지 않았고 다른 애들과 몰려다니며 놀지도 않고 공부하고 학생 과외만 열심히 했죠. 그렇게 1학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사가지고 시내 중학교로 갔더니 선생님이 그만 두셨다는 거예요.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묻자 결핵에 걸려서 수업 시간에 피를 토했고 그 이후로 학교를 그만 두고 요양을 떠났다고 하더라구요.
선생님은 제 앞으로 편지를 남겨 놓으셨더군요. ‘편지를 서울로 보내지 않은 건 제 공부를 방해하기 싫어서였다’고 적혀 있었어요. ‘순정아 너는 언젠가 꼭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 선생님은 그렇게 믿어 그러니 건강 유의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 없어.’
저는 선생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학교 선생님마다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어디로 요양 가셨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 에게도 말 안하고 떠나셨다는 거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으로 어떻게든 찾을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저는 선생님을 찾으려고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녀 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자취방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결심했어요. ‘그래...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때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게 열심히 살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열심히 벌자. 그게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이야’
저는 그때 이후로 정말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잠 한 숨 안 자고 며칠씩 공부하다가 병원에 입원도 해봤고, 너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온통 짓무른 적도 있었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일주일 치 주먹밥을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 넣어 놨다가 하나씩 꺼내 녹여서 먹었습니다. 반찬은 시골에서 보내준 김치 한 가지였구요.
어려운 의학 용어들은 다양한 연상법을 이용해 달달 외우고 또 외웠어요. 화장실 거울 옆에도 외워야 할 단어들을 잔뜩 써 놓고 이빨을 닦으면서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택에 저는 인턴 후 봤던 시험도, 레지던트 4년 후 봤던 내과 전문의 시험도 모두 한 번에 합격하게 되었어요. 시험에 합격할 때마다 선생님을 떠 올리고 마음 속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죠.
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어서 미국으로 연수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대학병원에서 계속 일을 하다가 순환기 내과 교수가 되었죠. 그 날은 정말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었어요. 속으로 살아 계시면 언젠가 꼭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날도 많았구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늘 제 마음 한 쪽에 계셨어요. 저는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었고 선생님을 대한다고 생각하고 환자를 진료했어요. 그리고 또 새로운 의학 논문들을 읽고 연구 자료도 수없이 검토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환자들이 제일 신뢰하는 의사로 저를 꼽게 되었고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해서 딸을 하나 두었어요. 딸을 낳은 날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났지만 선생님이 만약 보셨다면 참 기뻐하셨겠지... 그런 생각을 했죠. 선생님을 떠 올리며 딸 이름을 선생님과 같은 ‘선희’라고 지었습니다. 선생님처럼 마음 넓고 예쁜 사람이 되길 바래서였어요.
그리고 어느새 그 딸이 다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죠. 딸도 저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며 의대에 가서 인턴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나 만나는 사람 있는데 엄마도 한 번 같이 봤으면 좋겠어”
“그래?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야?”
“응, 내가 지금까지 엄마한테 내 남친 소개한 적 없잖아. 이 오빠는 진짜 내 인연인 거 같아”
딸은 부끄러운 듯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저는 그렇게까지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딸 얘기를 들어보니 마음은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 같은데 크게 욕심도 없고 가진 것에만 만족하며 그 날 벌어서 그 날 쓰고 사는 사람 같았거든요.
저는 제 사위는 좀 더 야망이 크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인물이길 바랐는데, 완전 정반대인 타입인 것 같아서 만나기도 전에 씁쓸했죠. 하지만 딸은 그걸 참 좋게 본 것 같았어요. 딸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제가 보지도 않고 싫다고 할 수 없어서 저는 일단 그 청년을 만나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위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아주 선한 인상을 하고 있었어요. 교사 사위라니 부족함 없다고들 하시겠지만 전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 평생 고등학교에서 아이들만 가르칠 생각인가? 대학원에 가서 박사를 하고 유학을 갈 계획은 없고?”라고 하자,
사위는 “네, 저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뭐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데에는 저희 큰어머니 영향이 큽니다. 아프셔서 두 번 교직을 쉬셨지만 큰어머니가 용기를 줘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해서 자기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이 큰어머니한테 인사하러 올 때면 큰어머니가 자랑스럽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생각이 굉장히 바른 청년 같았습니다.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인 거 같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이 만만치만은 않을 텐데, 자네가 그러는 걸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라고 물었고,
사위는 “부모님도 처음에는 제가 외국 유학도 다녀오고 더 좋은 직장 갖기를 바라셨지만 요즘처럼 교사되기 힘든 때에 당당히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것도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제 생각도 많이 지지해 주셨구요.” 라며 쑥스럽다는 듯 웃더군요.
“엄마, 왜 자꾸 그런 질문만 해? 꼭 오빠가 교사인 게 마음에 안드는 것처럼, 나는 오빠같은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오빠가 하는 거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구. 그리고 학생들 한테도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 교사가 천직이야... 타고 났다니까” 라며 딸이 옆에서 지원 공세를 펼쳤습니다.
그렇게 좋은 뜻을 가졌다니 할 말은 없었죠. 제가 너무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했구요. 남편은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저 였죠. 제 딸은 더 근사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보내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저런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 딸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그 청년의 마음가짐 하나만 보고 딸의 결혼을 허락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결혼식 준비는 원만하게 진행되어 양가 부모의 상견례 날이 되었어요. 저는 약속 장소인 한정식 식당에 조금 일찍 도착했죠. 환자 진료가 생각보다 일찍 끝난 것도 있었지만 중요한 자리인 만큼 먼저 가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은 것도 있었거든요.
제가 식당에 들어서자 젊은 직원이 나와서 예약을 했냐고 묻더군요. 저는 상견례 예약을 했다고 말했고 직원은 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렇게 직원을 기다리며 서 있는데 카운터에서
“감사합니다. 다시 뵐 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하는 고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한 목소리여서 카운터 쪽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저보다 한 열 살은 많으신 것 같은 여자분께서 우아하게 머리를 틀어 올리시고 앉아서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꾸 어디서 본 것만 같아 가까이 다가갔어요. “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저를 본 여자분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물으시더니 한참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저도 한참을 바라봤구요. 아무래도 낯이 익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목소리의 억양,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이 예전에 제가 알던 유선희 선생님과 너무도 닮아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눈매라던가 얼굴형 콧날이 선생님과 흡사했죠.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유선희 선생님 아닌가요?”라고 하자 그 분도 “너, 순정이니?”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상견례라고 특별히 신경 써서 했던 화장이 다 무너지는데도 아랑곳없이요.
“선생님, 제가 얼마나 선생님을 찾았는데, 어떻게 이런 데에서 만나요. 선생님 정말 보고 싶었어요. 너무 그리웠어요. 한 시도 잊지 않았어요.”
저는 통곡을 하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어요. 선생님도 눈물을 훔치시며 제 손을 잡으셨죠.
“순정아, 너 정말 순정이 맞구나. 살아 있으니 이렇게 만나는구나. 나도 널 잊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내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그 곳을 떠나야 했을 땐 정말 마음이 아팠단다. 그래도 니가 정말 잘 산 거 같아서 기쁘구나.”
“저는 언제고 살아 있을 때 선생님을 다시 뵙게 해 달라고 매일 속으로 빌고 또 빌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만났나 봐요”
선생님도 눈시울이 붉어져서 저를 끌어안으셨어요. 그리고 ‘여긴 어떻게 왔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저는 상견례 얘기를 했죠. 선생님은 예약자 이름을 보더니 놀라시며 “니가 선희 엄마였니?”라고 하시는 거였어요. 저는 너무 놀라서 “제 딸을 아시냐?”고 했고 선생님은 바로 제 사위의 큰어머니라고 하시는 거예요.
“나는 벌써 니 딸 봤지... 정우가 꼭 소개 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몇 번이나 봤는걸. 너무 예쁘고 총명하고 이상하게 정이 가더라니... 니 딸이어서 그랬나보다”라며 놀라셨어요.
저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어요. 사위가 닮고 싶었던 사람이 선생님이라니...
저는 사돈 분들과 사위와 딸을 만나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야기 했고 그 분들과 사위도 다 놀라더라구요. 당연히 제 딸도 놀랐구요. 무엇보다 제가 딸 이름을 선생님 이름을 따서 붙였다니까 사위는 흠칫 하더군요. 처음에 제 딸한테 눈이 간 게 큰 어머니 이름하고 같아서였답니다.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는지, 하늘은 계속 우리를 잊지 않고 지켜보시고 있다가 이렇게 엮어서 저와 선생님을 만나게 해준 것 같았어요.
그날 상견례가 끝나고 저와 선생님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처음 요양을 마치시고 다시 교사를 하시며 결혼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너무 쇠 약해져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더군요. 학교 일도 너무 무리를 해서 몸이 다시 나빠졌는데 그때도 폐가 문제가 됐다고 하셨어요. 결국 교사를 그만 두셨고 집에서 지내시다가 가끔씩 남편이 경영하는 한정식 식당에 나와서 카운터를 봐주고 있다고 하셨어요.
마침 제가 간 날이 시 조카 상견례여서 제 딸도 보고 저희 부부도 볼 겸 나오셨다는 거였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순환기 내과 교수라고 하자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며, 저는 꼭 해낼 줄 알았다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셨죠.
저는 선생님 손을 꼭 잡고 “그래서 이제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많이 마르신 것 같은데, 불편하신 덴 없으시고요?”라고 물었더니, 다시 몸이 안 좋아진 것 같아서 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그 의사가 워낙 그 계통에 유명한 교수라 그런지 두 달도 넘게 기다려야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돌아와서 호흡기 쪽의 내로라 하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싹 돌렸어요. 그리고 대학병원 내에 인맥을 총동원해서 선생님이 VIP 병실에 입원할 수 있게 했죠.
“난 일반 병실도 괜찮은데, 이런 데는 어색해...”
“선생님, 이거 제가 은혜 갚는 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선생님께 보답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알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검사 결과 선생님의 폐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암의 소견이 나왔어요. 선생님은 몸이 많이 약하셔서 수술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워낙 초기였고 표적 항암약물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며 바로 제가 주치의가 돼서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은 우시면서 “내가 순정이 덕분에 살게 됐구나...고맙다”라며 계속 제게 고개를 숙이셨어요. 저는 그러지 마시라면서 꼭 건강하게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죠.
선생님의 항암 치료가 시작됐고 아이들의 결혼식 날짜도 잡았습니다.
저는 해외 최신 논문들을 전부 찾아보고 미국 유명한 대학 병원에서 임상 진행 중인 효과 좋은 신약이 있는지 계속 알아보며 바쁜 날들을 보냈어요. 제가 있는 대학에서 연구 중인 치료제도 알아 보았죠. 어떻게 서든지 암의 전이도 막아내고 완전히 뿌리 뽑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그런 절 보며 이런 좋은 의사를 만날 줄 몰랐다고 좋아하셨구요.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공부한 것으로 선생님을 도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힘들게 공부했던 날들에 대한 후회가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부모님 만큼이나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선생님을 치료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 결혼식 날이 되었어요.
선생님도 그 동안의 치료로 많이 좋아지셔서 곱게 한복을 입고 결혼식장에 오셨어요.
사위는 저를 보더니 함박 웃음을 지으며 90도로 인사를 하더군요. 저는 가까이 가서 사위 손을 잡았습니다.
“내가 자네를 잘못 알아보고 이런 저런 실례를 많이 했지? 미안하네... 내가 어느새 올챙이 적을 잊어버리고 나 혼자 잘 된 것처럼 살고 있었나 보네. 자네가 그토록 닮고 싶어하는 큰 어머니, 유선희 선생님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셨는데, 자네는 더 훌륭한 제자를 많이 만들게.”
“아닙니다, 장모님... 저는 섭섭하게 느낀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리고 선희가 좀 훌륭한 가요... 아까우신 게 당연하지요. 저한테 정말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거 잊지 않고 늘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와 선희의 결혼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데 제 눈시울이 뜨거워 지더라구요.
결혼식이 진행되고, 딸과 사위가 우리 부부와 사돈 부부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했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선생님 앞에 갔죠. 그리고 선생님께 큰 절을 올렸습니다.
“선생님, 시골에서 나물이나 캐고 땔감이나 주워 오던 저를 오직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공부시켜 주시고 문제집도 사주시고 대학교 첫 등록금까지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제 사돈 큰 어른이 되어 주셔서 정말 너무 영광입니다. 제 딸도 사위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사돈 내외도 저의 사정을 잘 알고 계셨어요. 눈시울을 붉히시더라구요. 다들 박수가 터졌고, 그 가운데 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딸과 사위도 눈물을 흘렸죠. 안사돈은 제게 다가와 저를 안아 주더군요.
행복한 딸의 결혼식을 울음 바다로 만들어 너무 미안했지만 저는 그렇게라도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건강을 회복하셨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오십니다. 이제 제가 은퇴하고 나면 같이 여행이나 다니자고 하시네요. 저도 그럴 날 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선생님의 은혜 보답하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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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9일(주일) 주일 2부예배 facebook 실시간 송출한 동영상 url 주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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