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품처럼 포근한 절’ 지향
‘불교’ 한 마디 쓰지 않고도
불교 보여주는 글솜씨 유명
“법회가 살아야 불교가 산다
절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설법이 없으면 절이 아니다
법문 듣지 않으면 신도 아니다
불공보다 법회 활발한 절이
참다운 절” 지론 …
법문에 여행이 접목된 법회로
신생 사찰인 마야사를
지역대표 전법도량으로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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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은 ‘글’로 유명하다. 교계 언론에 두루 원고를 연재했고 10권의 수필집을 냈다. 올해로 출가 30주년이자 ‘글쓰기 20주년’을 맞은 스님의 최근작은 <스님의 일기장>. 그간의 저서에서 유독 빛나는 단락을 추려 엮었다. 농사짓고 수행하는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일상도 맛깔나게 담겼다. 늦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17일 청주 마야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글만이 아니라 말도 신선하고 정연했다. 스님은 현재 세간의 지방법원 판사에 해당하는 조계종 초심호계위원이다. 포교 방면에 등용돼도 종단 기여도가 크겠다 싶었다.
마야사는 청주시 외곽에 있는 사찰이다. 현진스님이 2012년 5월 창건했다. 법당은 전통 그대로인데 다른 건물들은 요즘 유행하는 ‘펜션’이다. 종교를 떠나 누구나 편히 쉬다 갈 만한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마야사(摩耶寺)란 명칭은 짐작하다시피 부처님의 생모인 마야부인에게서 따왔다. 엄마 품처럼 포근한 절을 지향한다. 짧고 담백한 스님의 문장도 일견 여성적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어절 사이사이에 활인검(活人劍)이 박혔다. 무엇보다 불교란 말을 한 마디 쓰지 않고도 불교를 확연히 보여주는 솜씨가 뛰어나다.
“우리 인생에서 약간의 고난이나 불편은 우리 일상을 긴장하게 만들고 탄력을 주기도 한다. … (자전거) 바퀴는 늘 굴러가야 바람이 새지 않는 법.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자체가 생동감을 주는 장치다. … 삶에 대한 순발력은 책상이 아니라 현장 속에서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 … 수십 층 빌딩의 주인이라고 객실 전체를 다 사용하는가? 돈 내고 잠자는 손님이 그날 밤은 주인이다. … 인생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태도는 삶의 불만을 줄이는 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잔잔한 관조 안에는 연기(緣起)와 중도(中道)와 지족(知足)의 미덕이 싱글거린다.
현진스님의 처녀작은 1994년에 낸 <삭발하는 날>이다. 해인총림 해인사의 사보(寺報)인 월간 <해인>에 ‘치문일기’란 제목으로 실렸던 글들을 묶은 것이다. 치문(緇門). 갓 출가한 초심자의 하루하루 배움과 다짐을 정리했다. 본래 해인사승가대학의 교지(校誌)였던 <수다라>에 게재된 것을, 당시 해인지 편집장이었던 도각스님이 높이 샀다. <해인>은 그때에도 종단 안팎에서 알아주는 불교계 전문지였다. 나이 어린 학인 신분이었음에도 당당히 실력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삭발하는 날>은 지금껏 스테디셀러이자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다.
입소문을 타면서 교계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 밀려왔다. 중앙 일간지(동아일보)에도 ‘현진스님의 산사이야기’를 연재하며 필력을 널리 알렸다. 열심히 글을 쓰고 글이 모이면 책을 내는 게 당신에게 주어진 포교였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 동안, 집필의 원칙도 무르익었다. 절대 가르치려들지 말 것. “일상 속에서 불교적인 요소를 뽑아내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 제 화두입니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독한 세상에서 지혜와 위로가 될 수 있는 덕담이지 교리강좌가 아니에요. 어느 때보다도 ‘공유하는 글쓰기’가 요구되는 시절입니다.”
그래서 모범으로 삼는 인물이 <무소유>의 법정스님이다. 법정스님의 글은 도인도 선사도 아닌 현자(賢者)의 글이다. “‘불교가 최고다’라며 강요하지 않을뿐더러 ‘내가 스님입네’ 생색을 내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책무를 맑고 담백한 어조로 차분히 설명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특정한 종교색을 띄지 않는 설법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사상적으로 확실히 정립돼야만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쓸 수 있는 법이죠. 그러니 스님이라면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공부가 진짜 스님을 만들게 마련입니다.”
불법을 홍포하는 현장에선 ‘입말’도 ‘글말’만큼이나 중요하다. 법회의 중심은 법문이며 법문은 그야말로 입말의 결정체다. 스님은 “법회가 살아야 불교가 산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법회는 가장 원초적인 포교이며 법회를 살리는 건 법문이다. “절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스님들의 설법이 없으면 절이 아니다.” “법문을 듣지 않으면 신도가 아니다.” “불공보다 법회가 활발한 절이 참다운 절이다.” ‘법회가 불교의 본질’이란 당신의 신념은 이처럼 견고하다. 스님의 법문을 인연으로 한 삶의 변화가 신행의 핵심이란 확신 때문이다.
집필 못지않게 법문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어설픈 법문은 스님을 졸지에 웃음거리로 전락시킨다. 연구와 고민이 받쳐주지 않는 법문은 중언부언하기 일쑤이며, “내가 왕년에” 운운하는 신변잡기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현진스님은 “부처님의 신성한 가르침을 전하는 자리이므로 중생 냄새가 풀풀 나는 정치 이야기도 입에 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단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로 공인된 종정예하의 전국 순회법회를 제안했다. 종단 차원의 법석이 불교의 골수를 일깨우고 불자들의 환희심을 일으키는 솔선수범이 되리란 기대에서다.
말만 앞서는 것은 아니다. 법회에 대한 스님의 실천은 두텁다. ‘108암자순례’에 힘입어 마야사는 건립된 지 3년 만에 활황을 맞았다. 앞으로 3년간 36곳 명찰의 산내암자 3곳을 둘러보는 대장정이다. 순례단 회원은 400여 명.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아침이면 7대의 전세버스가 마야사를 출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4월 첫 순례지인 해인총림 해인사로 떠나던 날, “그동안 자식 키우고, 가정 꾸리고, 직장생활 하면서 고생 많이 하셨다. 이제부턴 나를 위한 기도를 하고 행복을 찾으시라”던 현진스님의 인사말은 친아들의 그것처럼 정답다.
108암자순례는 ‘신나는 법회’ ‘나누는 법회’를 염두에 두며 기획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국의 고찰과 산천을 구경하며 우애를 다지니, 신도들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즐거운 소풍 안에선 불교의 교리와 역사에 관한 지식도 쌓여간다. 스님은 ‘명상산책’ ‘나무그늘 아래 앉아 가족에게 편지 쓰기’ 등등 막간 프로그램을 즉석에서 개발해 신심을 북돋운다. 걸음걸음 하나에 삶에 힘이 되는 교훈과 덕화를 담는다. 법문에 여행이 접목된 법회는 신생사찰인 마야사를 지역을 대표하는 전법도량으로 이끌고 있다. 9월엔 해수관음보살의 원력이 숨 쉬는 양양 낙산사를 찾아간다.
오래되고 투철한 글쓰기로 인해 스님의 사유는 누구보다 구체적이고 골격이 탄탄하다. “불교의 지혜와 자비는 결국 ‘친절’과 ‘미소’”라고 정리했다. 친절은 모든 것은 서로 기대어 산다는 연기(緣起)를 체득한 자의 태도요, 미소는 주어진 조건에 최선을 다하는 자의 몸짓이다. 삶은 허망하지만, 그 허망함을 끌어안으면 그런 대로 맛이 있다. “찰나를 놓치면 전부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변화 속에 숨을 쉬며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꽃이 피어 있는 순간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나팔꽃 피듯 열정을 다 쏟아 부어라. 그러면 후회도 미련도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현진스님 저서 <오늘이 전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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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은 “불교의 핵심은 친절과 미소로 귀결된다”며 지혜를 틔우는 수행과 자비를 키우는 전법을 강조했다. 사진은 순천 선암사를 참배하고 있는 청주 마야사 108암자순례단. 이시영 충청지사장 |
■ 현진스님은 …
경남 사천 출생. 이두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0년 사미계를 1988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총림 해인사승가대학, 조계총림 송광사 율원,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해인사 포교국장, 월간 <해인> 편집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충북경찰청 경승, 제5교구본사 법주사 수련원장, 청주 관음사 주지 등을 지냈다. 현재 청주 마야사 주지이자 조계종 초심호계위원. <삭발하는 날> <언젠가는 지나간다>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등 다수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