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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과안락성. 김병연)-문제 모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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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安樂城中欲暮天
관서 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關西孺子聳詩肩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村風厭客遲炊飯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店俗慣人但索錢
빈 배에선 자주 천둥소리가 들리는데 虛腹曳雷頻有響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론 냉기만 스며드네.破窓透冷更無穿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朝來一吸江山氣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試向人間辟穀仙
- 김병연, 「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
*벽곡: 곡식은 먹지 않고 솔잎이나 대추, 밤 따위를 조금씩 날로 먹음.
(나) 고유(高裕)는 상주 사람인데 위인이 강직하고 청렴결백하였다.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차례 주군(州郡)을 관장하였는데 관인들이 감히 청탁하지 못하였으며, 간악한 짓을 드러내고 숨겨진 짓을 적발해 내는 것이 한나라 때의 조광한(趙廣漢) 같은지라, 도처에 선정으로 이름이 났다.
창녕에 있을 때였는데, 전후의 의옥(疑獄)*을 처결함에 매양 신이한 일이 많았다. 글솜씨가 조금 있는 어떤 중 하나가 서울의 권귀(權貴)와 교제하고 있었는데, 표충사(表忠寺)의 원장(院長)으로 세도를 믿고 행악하였다. 그가 이르는 곳의 수령은 바삐 달려가 그 아래에서 노닐었으며, 비록 방백의 지체로도 또한 예를 대등하게 하였는데, 조금이라도 어김이 있으면 수령들이 노상 곤욕을 치러야 했으니, 도내 관리들이 기용되고 쫓겨나는 것이 모두 이 중의 손에서 나올 지경이었다. 이 자는 호를 남붕(南朋)이라고 하는 자였는데, 각 읍에 폐를 끼치고 사찰에 행악을 하였지만, 승속(僧俗)이 모두 그 앞에서는 눈도 똑바로 뜨지 못하였으며 감히 힐문*하지도 못하였다.
남붕이 마침 일이 있어 창녕을 지나가는데, 정문을 열도록 하고 들어가 수령을 보면서도 예를 차리지 않았다. 고유가 미리 관속들과 짜 두었던 만큼, 잡아 내리도록 하였다. 그 능욕하고 공갈하는 말이야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족한지라, 마침내 즉시 때려 죽였다. 여러 날 되자 서울 권귀들의 편지가 남붕을 위해 답지 하였으나, 인심은 시원하다고 일컬었다.
상서(尙書) 조엄(趙曮)이 영백(嶺伯)*이 되었는데, 도내에 금주령을 행하였다. 그러고는 창녕이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이방과 죄수를 심문하고 죄를 다스리는 일까지 있었다. 고유가 하루는 감영에 이르러,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술을 사 오게 하여 몹시 취한 채 들어가 감사를 보더니 말하였다.
“창녕에 비록 박주(薄酒)가 있어도 감히 마시지 못하였는데, 이제 감영에 오니 술을 담그지 않는 집이 없고 맛도 좋은지라, 하관이 양껏 마셨습니다.”
감사가 그 뜻을 알고서 미소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군현(郡縣)을 관장하였지만, 터럭 하나도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기는 처음이나 같았다. 상주의 이속(吏屬) 하나가 매양 청지기로 따라다녔는데, 쓰고 남은 봉급의 여분은 반드시 그에게 다 주었는지라, 그 사람은 이로 인해 부유하게 되었다. 그 뒤에 고유는 죽었는데, ⓑ그 자손은 가난하여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이때에 그 청지기는 이미 팔십여 세가 되었는데, 하루는 그 아들과 손자에게 말하였다.
“우리 집이 이처럼 부유하게 된 것은 모두 고 나으리 덕이다. 나으리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전곡을 드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청덕(淸德)에 누가 될까 싶었고, 설혹 드린다고 해도 받기를 허락하실 리가 필연코 없었던 고로 차마 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듣자니 그 댁의 가세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니, 내 마음이 어찌 편안하겠느냐? 사람이 되어서 배은망덕한다면 하늘이 반드시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내가 애초부터 유념하여 모처에 논을 사 두었고, 또 다락 위에 모아 둔 돈도 있다. 장차 이것을 드릴 터이니, 너는 내일 모름지기 그 댁에 가서 아드님과 손자를 모시고 오너라.”
그 아들과 손자가 ‘예, 예.’ 하며 대꾸하였다. 입으로는 비록 응낙하였지만, 마음으로는 내키지 않았기에 그날이 되자 둘러대기를, /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합니다.” / 라고 하였다.
이때에 고유의 손자가 마침 성내에 들어왔다가 잠깐 그 집을 찾아갔더니, 그 사람의 아들과 손자가 밖에서 손사래 쳐 쫓아내며, 그 할아버지와 상면치 못하게 하였다. 고유의 손자가 대로하여 말하려던 것도 말하지 못한 채, 분을 참으며 돌아오는 길에 마침 읍내의 친지를 만나 그 해괴한 형상을 말하였다. 그 사람이 노인에게 가서 묻자, 노인이 몹시 놀라 아들과 손자를 부르더니 몽둥이로 때리고는, 가마를 세내어 타게 하고 곧장 그 집으로 가서 문하에서 대죄하게 하였다. 고유의 손자가 놀라고 의아하여 나와 보자 노인이 억지로 동행하기를 청하였다. 그 집에 이르자 술과 안주로 접대하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소인이 먹고 입는 것이 선영감(先令監)의 덕택 아님이 없습니다. 소인이 귀댁을 위하여 유념하고 장만해두었던 것을 이제 바치겠으니, 사양치 마십시오.”
이어 매년 이백 석을 추수할 논문서와 돈 천 냥 수표를 내어 보내었다. 고유의 손자의 집은 이로 인해 부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주 사람이 와서 이 일을 전하기에 여기 적어 둔다.
- 작자 미상, 「청렴한 관리와 청지기」
*의옥: 범죄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아 죄가 있고 없음을 결정하기 어려운 사건.
*힐문: 트집을 잡아 따져 물음.
*영백: 조선 시대에, 경상도 관찰사를 이르던 말.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역설적 상황 인식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② 인물의 행동을 통해 부정적인 세태를 드러내고 있다.
③ 공간의 대조를 통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
④ 역전적 시간 구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⑤ 배경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통해 서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와 ⓑ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와 ⓑ는 모두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푼 존재이다.
② ⓐ와 ⓑ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다.
③ ⓐ는 각박한 인심을 대변하고, ⓑ는 인심의 후덕함을 경험한다.
④ ⓐ는 인물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는 인물 사이의 갈등을 조장한다.
⑤ ⓐ는 약자의 편에서 행동하는 존재를, ⓑ는 약자를 핍박하는 존재를 표상한다.
(가)를 이해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날이 저무는데’는 화자가 안락성에서 하루를 묵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② ‘우쭐대네’는 상대의 행동을 낮잡아 보는 화자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③ ‘천둥소리’는 굶주린 화자의 고달픔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④ ‘뚫릴 대로 뚫린 창문’은 화자에게 제공된 거처의 열악함을 나타낸다.
⑤ ‘벽곡의 신선’은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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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知坐輿樂 사람들이 가마 타기 좋은 줄만 알고
不識肩輿苦 가마 메는 고통은 알지 못하네
肩輿上峻阪 가마 메고 높은 비탈을 오를 적엔
捷若躋山麌 빠르기가 산 오르는 사슴과 같고
肩輿下懸崿 가마 메고 낭떠러지를 내려갈 적엔
沛如歸苙羖 우리로 돌아가는 양처럼 쏜살같으며
肩輿超谽谺 가마 메고 깊은 구덩일 뛰어넘을 땐
松鼠行且舞 다람쥐가 달리며 춤추는 것 같다오
側石微低肩 바위 곁에선 살짝 어깨를 낮추고
窄徑敏交股 좁은 길에선 민첩하게 다리를 꼬기도
絶壁頫黝潭 절벽에서 깊은 못을 내려다보면
駭魄散不聚 놀라서 넋이 달아날 지경이건만
快走同履坦 평탄한 곳처럼 신속히 달리어라
耳竅生風雨 귓구멍에 씽씽 바람이 이는 듯하니
所以游此山 이 때문에 이 산에 노닐 적엔
此樂必先數 ㉠이 낙을 반드시 먼저 꼽는다오
紆回得官帖 멀리 돌아서 관첩*을 얻어 오는데도
役屬遵遺矩 역속들이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데
矧爾乘傳赴 더구나 너희야 역마 타고 부임하는
翰林疇敢侮 한림학사를 누가 감히 업신여기랴
領吏操鞭扑 통솔하는 아전은 채찍과 매를 쥐고
首僧整編部 우두머리 중은 대오를 정돈하여
迎候不差限 영접하는 덴 시한을 어기지 않고
肅恭行接武 가는 데는 엄숙히 서로 뒤따라서
喘息雜湍瀑 헐떡이는 숨소리는 여울 소리에 섞이고
汗漿徹襤褸 땀국은 헌 누더기에 흠뻑 젖누나
度虧旁者落 움푹 팬 곳 건널 땐 옆 사람이 받쳐 주고
陟險前者傴 험한 곳 오를 땐 앞사람이 허리 굽히네
壓繩肩有瘢 새끼에 눌려 어깨엔 홈이 생기고
觸石跰未癒 돌에 부딪쳐 멍든 발은 낫지를 않네
自瘁以寧人 스스로 고생하여 남을 편케 함이니
職與驢馬伍 당나귀나 말과 다를 것이 없구나
爾我本同胞 너와 나는 본시 같은 민족으로서
洪勻受乾父 하늘의 조화를 똑같이 타고났건만
汝愚甘此卑 네 어리석어 이런 천역을 감수하니
吾寧不愧憮 ㉡내가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오
吾無德及汝 나는 너에게 덕 입힌 것 없는데
爾惠胡獨取 어찌 너희 은혜만 받는단 말이냐
兄長不憐弟 형이 아우를 불쌍히 안 여기면
慈衷無乃怒 부모 마음에 노여워하지 않겠는가
僧輩猶哿矣 중의 무리는 그래도 괜찮거니와
哀彼嶺下戶 저 산 밑의 민호들이 애처롭구나
巨槓雙馬轎 큰 지렛대 쌍마의 가마에다가
服驂傾村塢 온 마을 사람들은 복마꾼 참마꾼으로 동원하네
被驅如犬鷄 개와 닭처럼 마구 몰아대니
聲吼甚豺虎 으르는 소리 시호*보다 고약하도다
乘人古有戒 가마 타는 덴 옛 경계가 있는데도
此道棄如土 이 도리를 분토처럼 버린지라
耘者棄其鋤 김매던 자는 호미를 놓아 버리고
飯者哺而吐 밥 먹던 자는 먹던 밥을 뱉고서
無辜遭嗔喝 아무 죄 없이 꾸짖음을 당하면서
萬死唯首俯 만 번 죽어도 머리만 조아리어
顦顇旣踰艱 가까스로 어려움을 넘기고 나면
噫吁始贖擄 어허, 그제야 노략질을 면하도다
片言無慰撫 가마 탄 자 한마디 위로도 없이
浩然揚傘去 호연히 일산 드날리며 떠나가거든
力盡返其畝 힘이 다 빠진 채 밭으로 돌아와선
呻唫命如縷 실낱 같은 목숨 시름시름하누나
欲作肩輿圖 ㉢내 이 때문에 견여도 를 그려 내어
歸而獻明主 돌아가 임금님께 바치려고 하노라
- 정약용, 「견여탄(肩輿歎)*」-
*관첩: 벼슬아치에게 주던 임명장.
*시호: 승냥이와 여우.
㈏
安樂城中欲暮天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關西孺子聳詩肩 관서 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村風厭客遲炊飯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店俗慣人但索錢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虛腹曳雷頻有響 빈 배에선 자주 천둥 소리가 들리는데
破窓透冷更無穿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朝來一吸江山氣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試向人間辟穀仙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 김병연,「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
*벽곡: 곡식은 먹지 않고 솔잎, 대추, 밤 따위를 조금씩 날로 먹음.
㈎와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는 관료와 백성을 부모와 자식에 빗대어 각자의 직분을 강조하고 있다.
② ㈎는 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을 통해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③ ㈏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화자가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상념을 전개하고 있다.
④ ㈏는 구체적인 공간을 제시한 뒤 그 속에서 관찰한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다.
⑤ ㈎와 ㈏는 청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인물이 겪는 고통을 형상화하고 있다.
㉠~㉤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은 고달픈 노동을 마무리한 뒤에 얻을 수 있는 보람과 즐거움을 가리키고 있다.
② ㉡은 본업을 소홀히 하고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던 젊은 시절에 대한 반서을 담고 있다.
③ ㉢은 화자가 보고 들은 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의 표명하고 있다.
④ ㉣은 화자가 겪고 있는 고충의 한 가지 원인을 보여 주고 있다.
⑤ ㉤은 제대로 된 주거 환경을 갖추지 못한 하층민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
<보기 1>를 참고하여 ㈏와 <보기 2>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1>
흔히 ‘김삿갓’으로 알려진 조선 후기의 문인 김병연은 허울뿐인 권위나 부정적인 세태 및 인물 등을 비판하는 작품을 다수 창작하였다. 그의 비판 의식은 감정적인 언어를 통한 직접적인 비난보다는 주로 해학과 풍자의 방식을 통해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기 2>
唐鞋崇襪數斤綿 비싼 가죽신에 솜버선 겹으로 껴 신고
踏盡淸霜赴暮煙 서리 밟고 집 나서면 저물 때나 돌아오네.
淺綠周衣長曳地 연두색 두루마기 땅을 쓸 듯 치렁치렁
眞紅唐扇半遮天 진홍 부채 반만 펴도 하늘마저 가리겠네.
詩讀一卷能言律 한 권의 책을 겨우 일고 시율을 떠벌리고
材盡千金尙用錢 천만금을 다 쓰고도 돈쓸 곳만 찾는구나.
朱門盡日垂頭客 권문세가 찾아가서 하루 종일 굽실굽실
若對鄕人意氣全 고향 사람 만날 양이면 그 기세 대단하네.
- 김병연,「진종일 머리 조아리는 양반」-
① ㈏의 ‘관서 지방 못난 것’과 <보기 2>의 ‘권문세가’는 모두 권위적인 지배층을 가리키는 것으로 작가의 비판 의식이 집약된 대상이다.
② ㈏의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와 <보기 2>의 ‘시율을 떠벌리고’는 모두 실력을 갖추지 못해 허울뿐인 양반들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③ ㈏의 ‘나그네’와 <보기 2>의 ‘고향 사람’은 모두 대상의 부정적인 성격이 표면화 되는 계기를 만드는 존재이다.
④ ㈏의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는 재물을 우선 시하는 세태를, <보기 2>의 ‘연두색 두루마기 땅을 쓸 듯 치렁치렁’은 겉치레에 치중하는 인줄의 행태를 보여 주고 있다.
⑤ ㈏의 ‘벽곡의 신선’은 화자 자신의 처지를 해학의 방식으로, <보기 2>의 ‘그 기세 대단하네’는 대상의 행동을 풍자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安樂城中欲暮天
관서 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 대네
關西孺子聳詩肩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村風厭客遲炊飯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店俗慣人但索錢
빈 배에선 자주 천둥소리가 들리는데 虛腹曳雷頻有響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론 냉기만 스며드네 破窓透冷更無穿
아침이 돼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 번 마셨으니
朝來一吸江山氣
인간 세상에서의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試向人間辟穀仙
- 김병연,「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
*벽곡: 곡식은 안 먹고 솔잎, 대추 따위만 조금식 먹는 삶.
㈏
인간이별(離別) 만사(萬事) 중에 독수공방 더욱 섧다
상사불견(相思不見) 이내 진정(眞情) 그 뉘 알리 맺힌 설움
이렁저렁 허튼 근심 다 후려쳐 던져두고
자나 깨나 깨나자나 임 못 보니 가슴 답답
어린 양자(樣子) 고운 소리 눈에 암암 귀에 쟁쟁
듣고 지고 임의 소리 보고 지고 임의 얼굴
비나이다 하나님께 ㉣이제 보게 만드소서
전생차생(前生此生) 무슨 죄로 우리 둘이 생겨나서
그린 상사 한데 만나 잊지 마자 백년 기약(百年期約)
죽지 말고 한데 있어 이별 말자 처음 맹세
천금 주옥(千金珠玉) 귀에 빗기고 세상 일분(一分) 관계하랴
근원(根源) 흘러 물이 되어 깊고 깊고 다시 깊고
사랑 모여 산이 되어 높고 높고 다시 높고
무너질 줄 모르거든 끊어질 줄 게 뉘 알리
화옹(化翁)조차 샘내고 귀신조차 훼방한다
일조(一朝) 낭군 이별 후에 소식조차 돈절(頓絶)하니
오늘이나 기별 올까 내일이나 사람 올까
기다린지 오래더니 무정세월(無情歲月) 절로 간다
소년 청춘 다 보내고 ㉤옥빈홍안(玉鬢紅顔) 공노(空老)로다
- 작자 미상,「상사별곡(想思別曲)」-
㈐
[앞부분 줄거리] 국군 탈영병 현철과 상상은 인민군 패잔병 치성, 영희 택기 등과 동막골에서 마주쳐 총과 수류탄을 들고 대치하다 실수로 마을의 곡간을 폭파한다. 그들은 곡간을 수리하고 곡식을 채울 때까지 마을에 머물기로 한다.
#89. 촌장 집 인민군 방
(F. L) 동막골에 비가 내리고 있다. 카메라 서서히 내려오면 열린 인민군 방 안에 군인들이 보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평화롭게 보고 있는 인민군들. 그 틈에 끼어 있는 상상.
상상: (내리는 비를 보며) 전쟁만 아녔어도 지금쯤 잘나갈 인생인데…… 제 꿈이 뭔지 아세요? 미군 구락부* 지배인이요. 지배인은 원래 법적으루다 위아래 양복 쫙 빼입고 그래야 되거든요. 무지 자세 나오겠죠? 근데 울 아부지는 그걸 이해 못 해요.
영희: 네래 아바디가 돼 보면 그 맘 알 거야.
상상: 꼭 우리 아버지마냥 말해. (영희를 본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영희: 니 몇 살이가? 삼촌이라 부르라우.
상상: 아냐. 형이 더 나아, 형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지잖아……. (큰 소리로) 형!
영희: 어? 어…… (갑자기 형이라는 말에 이상한 기분이 들고)
상상: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때 우리 맨 처음 본 날…… 그때 진짜 나 쏠라 그랬어요?
영희: 우헤헤헤, 기칼라구 했는데 총알이 한 알도 없었어, 야. 속았디?
상상: 뭐야? 이런 사기꾼들……
아이들처럼 붙들고 뒹굴며 웃어 젖히는 두 사람.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치성. 이 모습을 건너방에서 보고 있는 현철.
사랑에 빠진 택기는 멍하게 앉아 비를 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리는 비를 입을 벌리고 받아 먹고 있는 이연을 보는거다. 곁눈질로 치성을 살피던 택기, 망설이다 말을 뱉는다.
택기: 군관 동지, ⓐ곡간 다 채워지면…… 떠나야갔죠?
치성: …… 기래야갔디…… (그의 말끝은 착잡하다.)
택기: …… 어디로 말입네까?
영희: (참다못해) 아새끼래, 우리가 갈 데가 어딨네? 아무리 철떼기가 없어도 기렇디, 평양 다 멕히고 연합군 북진중이라는데, 여적 그 소리네?
치성: ……
택기: ……
상상: 갈 데 없는 건 우리도 마찬가진데……
인민군들, 모두 상상을 쳐다본다.
(중략)
#92. 옥수수밭(해 질 녘)
옥수수밭의 롱 숏. 석양이 묻어 아름답다. 옥수수밭 사잇길로 새참을 지고 오는 아낙들. 함박웃음으로 달려가 받아 드는 군인들. 동구 모(母)의 바구니를 받아 드는 치성. 두 사람 괜스레 쑥스러워한다. 새참 바구니를 내려놓은 아낙들, 발을 휘둘러 본다.
달수 처: (감탄) 어터케 그새 언덕 한 구릉을 다 해낸 거나?
용봉 처: 하이고 용하네. 어터케 그리 힘들이 좋아요.
석용 처: 이기 좋아할 기 아이래요. ⓑ곡간 다 채워졌으니 저이들 마을을 떠난다 할 긴데……
못내 섭섭한 표정의 아낙들, “이거 더 들어요.” 하며 군인들을 챙긴다. 새참을 먹는 군인들, 부락민들. 스미스도 한자리껴서 어설픈 젓가락질을 하면, 옆에서 가르쳐 주는 김 선생, 괜히 소련 말도 하고. 허공에 대고 나비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연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택기, 문득 이연이 볼라치면 얼른 고개를 숙인다.
상상: 젠장…… ⓒ곡간은 다 찼는데…… 갈 데는 없고……
영희: 어케…… 수류탄 하나 찾아보까나? ⓓ곡간에 잘만 던지믄…… 한 몇 달 잘 있디 않칸?
상상: 형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 농사꾼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이 쉬지를 않어. 군인이 자세 안 나오게.
택기: 내 보기사 ⓔ곡간이 너무 좁소. 다시 만들기요, 넓게스리.
치성: ……(그런저런 농담을 듣다가 피식 웃는다.)
- 장진,「웰컴 투 동막골」-
*구락부: ‘클럽’의 일본식 음역어.
㈎~㈐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➀ ㈎의 ‘주막’은 화자의 결핍을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고, ㈏의 ‘독수공방’은 화자의 결핍감을 심화시키는 상황이다.
➁ ㈎의 ‘안락성’은 집단의 유대감이 형성되는 공간이고, ㈐의 ‘인민군 방’은 집단의 유대감이 붕괴되는 공간이다.
➂ ㈎의 ‘마을’은 각박한 세태를 보여 주는 공간이고, ㈐의 ‘동막골’은 인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➃ ㈏의 ‘임의 소리’나 ‘임의 얼굴’은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이고, ㈐의 ‘형’이나 ‘삼촌’은 인물들이 기다림 끝에 조우한 대상이다.
➄ ㈏의 ‘물’과 ‘산’은 화자의 자연 친화적 태도를 보여 주는 공간이고, ㈐의 ‘옥수수밭’은 인물들의 고된 노동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➀ ㉠: 솜씨를 과시하려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냉소적 시선을 드러낸다.
➁ ㉡: 탈속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화자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나타낸다.
➂ ㉢: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의도적인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을 보여 준다.
➃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월적 존재를 직접 만나 하소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➄ ㉤: 임과 재회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더 이상 임을 대면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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