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호쎄 델 라 꼰꼬르디아 가르씨아 마르께 - 미구엘 리삥이 쓴 칠레의 모든 기록(La aventura de Miguel Littín clandestino en C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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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려 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도망자에 대한 영구불변한 핑계를 대며 그들이 내 등을 향해 총을 발사하리라고 생각하고서 나는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칠레 필름' 건물 앞에서 총살되었다는 소식을 어느 친구로부터 들은 엘리는 내 시체를 거두러 갔었다고 했다.
거리에 늘어서 있던 여러 집에서는 깃발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군인들이 자기 편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미리 정한 표시였다.
한편으로 우리가 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고, 내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선거전에 열렬히 참여했으며, 군부 쿠데타가 임박했을 때 우리 집에서 회합이 열리곤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느 이웃 여자에 의해 우리는 이미 쿠데타 군에 고발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꼭 필 요한 몇 가지 것들만 겨우 준비하여 세 아이를 데리고 우리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고 있던 죽음을 피해 한 달 동안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포위망이 우리를 향해 좁혀져와 숨막힐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망명이라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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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두 사람이 항상 그랬듯이 다정하게 손을 마주잡고 식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는
세상이 그처럼 많이 변했는데도 여전히 같은 식당을 이용하는 그들의 충직함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너무나 나이가 들어보여서 마음이 찡했다.
나는 그들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부부가 아니라 열애 중인 한 쌍의 활기 넘치는 나이가 지긋한 연인들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때 내 앞에 나타난 두 사람은 세월의 살이 붙고 육체가 시든 노인네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모습은 곧 다가올 내 노년의 모습이 담긴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만약에 그들이 나를 알아보았더라면, 틀림없이 그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놀라 나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걸치고 있던 우루과이 출신 부유한 사업가의 껍데기가 나를 보호해주었다.
그들은 내가 앉아 있던 탁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앉아 밝은 목소리로 시끌벅적하게 대화하면서 식사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서 예전의 그런 열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식사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길로 가끔씩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는데, 내가 같은 탁자에 앉아서 자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바로 그 사람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비로소 내가 추방당해 망명 생활을 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그 지난한 세월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지를 깨달았다.
비단 우리처럼 고국을 떠난 사람들에게만 그 세월이 길었고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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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성스러운 장소들에 가보지 못한 지 십 몇 년이 흐른 후, 그 금요일에 무엇보다도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무덤들 속에 묻혀 있는 사람을 위해 놓아둔 화사한 꽃들이 꽂힌 화병들 사이에서 입맞춤을 하거나, 다리 아래로 무심히 흐르 는 끊임없는 시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사랑을 나누면서 허리를 껴안고 강 위의 발코니를 거니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유럽의 도시들 가운데서도 파리에서만 유독 거리에 넘쳐흐르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느꼈다.
나는 산티아고를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찬 도시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파리에서는 차츰차츰 사그라들고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생기발랄한 광경을 바로 거기서 만났던 것이다.
그 순간 마드리드에 머물고 있을 당시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사랑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꽃이 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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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사방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 사이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것들은 텅 빈 역들과 텅 빈 들판, 텅 비어 있는 나라를 끝없이 덮고 있던 텅 빈 밤이었다.
그 광활한 대지 위에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철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가시 돋친 철조망뿐 그 철 조망 뒤에는 사람도, 꽃도, 동물도 없었다. 아무 것도.
순간 칠레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시인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구가 내 머리에 떠올랐다.
"온 세상에는 빵, 쌀, 사과. 칠레에는 철조망, 철조망, 철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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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안 아세베도는 탄원하는 대신에 한 가지 경고를 했다.
당시에 대주교가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세바스티안 아세베도는 대주교청의 고위직 인사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기자들,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상공인 지도자들에게도 이야기했으며, 정부의 고위 관리를 포함하여 자기의 말을 들어줄 만한 사람이면 누구를 불문하고 찾아갔다. 그는 자기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내 자식들에게 가해지는 고문을 중지시키지 않으면, 주교좌 성당 앞마당에서 내 몸에 휘발유를 뿌리 고 분신 자살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은 세바스티안 아세베도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예고된 날짜가 되었고, 세바스티안 아세베도는 성당 앞마당에 섰다.
그는 몸에 휘발유 한 통을 쏟아붓고 나서 거리를 가득 메운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군중들을 향해 만약 누구든지 노란색 줄을 넘어서기만 하면 자기 몸에 불을 지르겠다고 경고 했다.
사람들이 세바스티안 아세베도에게 애원을 하고, 강하게 명령을 하고, 끝내는 위험까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세바스티안 아세베도의 희생을 막아보려는 경찰관 한 사람이 그만 노란 줄을 넘어서고 말았고, 세바스티안 아세베도는 순식간에 인간 화염으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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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쿠데타 군이 마지막으로 내 집을 덮쳤고, 내가 아내 엘리와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망명을 떠난 다음, 어머니는 친구 건축가에게 부탁해 내 서재의 판자를 하나씩 하나씩 뜯어내 해체한 다음 팔미야에 있는 우리 가족의 옛집에 그대 로 옮겨 똑같이 지어놓으셨던 것이다.
서재 안에 들어가보니, 내가 언제 서재를 버리고 떠났나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그대로였다.
내가 놓아두었던 그대로, 내 평소 습관처럼 꼭 그만큼 너저분하게, 내가 평생 동안 써왔던 종이들이며 내가 젊었을 때 썼던 극작품들, 영화 시나리오, 무대 스케치 같은 것들이 정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서재 안 공기까지도 같은 색깔이었고, 같은 냄새가 났다.
마치 내가 서재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같은 날짜, 같은 시각에 서재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회가 밀려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냐하면 그 순간 어머니가 그토록 세세하게 내 서재를 그대로 옮겨 다시 지어놓으셨던 이유가 언젠가 내가 돌아왔을 때 집이 낯설어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거나, 아니면 내가 망명지에서 죽게 되었을 때 나를 더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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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순간 그때까지의 긴 여정에서 느꼈던 것과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꼈다.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과 분노를 느꼈고, 추방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내 모험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에 무한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러나 비행기 안의 스피커를 통 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안내 방송은 다시 나를 냉혹한 현실로 돌아가게 했다.
"알려드립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비행기 티켓을 손에 들고 계십시오.
잠시 검사가 있겠습니다."
경찰인 것 같기도 하고 비행사 직원인 것 같기도 한 사복 차림의 남자 검사원 두 명이 안내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비행기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비행기 여행을 해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탑승 인원을 확인하기 위해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탑승권의 '카운터 사인' 확인을 요청하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 티켓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불안해진 나는 캐러멜을 나누어주고 있던 스튜어디스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푸른색 눈동자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이건 너무 이상하군요. 아가씨." 내가 스튜어디스에게 말했다.
"아, 손님, 잠시 기다려주세요. 이건 저희들 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위기에 처했을 때 항상 그렇듯이, 프랑키가 스튜어디스에게 몬테비데오에서 함께 밤을 새우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농담을 건네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똑같은 톤으로 우리가 타고 있던 비행기의 부조종사인 자기 남편에게 물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응수해왔다.
그런 농담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나' 속에 숨어서 사는 치욕을 단 일 분이라도 더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 로 이렇게 떠들어대면서 검사원들을 맞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모두들 엿이나 처먹어요.
나는 칠레 영화감독으로, 어머니 크리스티나와 아버지 에르난의 아들 미겔 리턴이오. 당신들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내가 내 이름과 내 얼굴을 가지고 내 나라에서 사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없소."
그러나 진실이 밝혀질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다른 나'의 보호대 안에 몸을 웅크린 채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티켓을 보여주기로 나 자신을 억제했다.
검사원은 내 티켓을 보자마자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돌려주었다.
오 분 후 우리가 탄 비행기가 석양빛에 물들어 있는 안데스 산맥의 분홍색 구름 위를 날고 있을 때 나는 내가 뒤에 남긴 육 주일은 칠레 땅을 밟았을 때 바랐던 것처럼 내 삶에 있어 서 가장 영웅적인 시간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가장 숭고한 육 주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 십 분이었다.
그 시각에 피노체트는 궁정 신하들을 대동하고 집무실을 나와 텅 빈 길다란 복도를 천천히 걸어서 양탄자가 깔린 호화로운 계단을 통해 일 층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엉덩이에 매달아놓은 삼만 이천이백 미터의 당나귀 꼬리를 질질 끌고서 말이다.
나는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레나를 생각했다.
에메랄드 빛깔의 눈동자를 가진 스튜어디스가 우리에게 탑승 기념 칵테일을 한 잔씩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묻지 않도록 미리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까 그 검사원들은 몰래 비행기를 탄 사람이 한 명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프랑키와 나는 그 사람을 위해 축배의 잔을 높이 쳐들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지." 내가 말했다.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