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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7일 오늘의 역사
2021년 원주시 지정면 타이어공장 화재로 KTX운행 중단 사태 발생
201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차량 테러 사망 14명 부상 100여명
2016년 정부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그 가족의 한국입국 공개
북한 평양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태형길로 평양건설건재대학 시공강좌 교원이었으며, 어머니는 김명덕으로 서문인민학교 교원이었다.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1976년부터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 부속 중고등학교에서 4년간 유학한 후부터 북한으로 돌아온 뒤 국제관계대학을 나온 그는 북조선 외무성 8국에 배치 되었다. 그리고 베이징외국어대학 (북경외대) 영문학과 졸업하였다.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총 8년간 유학하며 중국어, 영어를 학습했다. 태영호는 곧바로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 통역관으로 선발돼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 1993년부터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 예하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곧 귀국해 EU 담당 과장을 거쳐 영국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으로 파견되어 3년 정도 근무하였다.
주영 공사로 있던 중 2016년 8월 17일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것이 확인되었다. 공사는 대사 다음 서열로, 탈북한 외교관 중에서는 최고위급이다. 대한민국 통일부에서는 이름을 태용호라고 밝혔으나, 이후 태영호가 본명이고, 태용호는 가명이라고 정정했다. 귀순 이유에 대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의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혔다 2018년 10월에는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이 제정한 제1회 북한인권상을 수상했다.
2015년 타이 방콕 중심부의 에라완 사원에서 타이 사상 최악의 폭탄 테러 사망 22명 부상 120명
2015년 한국 춤 맥 이어온 한국무용가 지희영 별세
한국무용가 지희영(池熙榮·66)씨가 17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부터 한국 신무용의 대모(代母) 김백봉(88)으로 이어지는 한국 춤의 맥을 이은 남성 무용가다.
춘천 출신인 그는 서너 살부터 춤에 빠졌다고 한다. 서라벌예대 무용과와 경희대 체육대학원을 나왔으며, 김백봉 선생에게 배웠다. 1972년 명동 국립극장에서의 첫 발표회 이후 ‘무당춤의 일인자’로 통하게 됐다.
1976년 한국민속예술단원으로 미국 순회공연을 다녀온 후 수십개국에서 한국 무용을 공연했다. “동작의 나열은 유희에 불과하고, 감정 표현 하나에도 혼(魂)이 있어야 한다” “보는 사람의 살갗이 저릿하고 솜털 하나까지 곤두서는 춤을 춰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강원도립무용단 예술감독과 김백봉춤보전회 고문, 지희영무용연구원 대표를 지냈다. ‘오열’ ‘북망산에 새 사람 있으니’ ‘무릉도원에서의 삼매경’ 등 창작 작품을 발표했다.
2010년 한화 류현진, 2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한화 이글스의 투수 류현진이 선발 등판한 2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에 성공했다. 퀄리티스타트란 투수가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6이닝 이상 투구시 3자책점 이하로 막는 것을 말한다. 류현진은 2009년 8월 1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6이닝 동안 2실점한 이후 2010년 8월 17일 29연속 퀄리티스타트를 작성했다.
퀄리티스타트는 공식 야구 통계는 아니지만, 메이저리그의 경우 1952년 이후 경기를 통계전문회사인 스태츠가 집계하고 있다. 스태츠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의 연속 최다 퀄리티스타트는 세인트루이스의 밥 깁슨이 1967~1968 시즌에 세운 26경기이며, 한 시즌 최다 퀄리티스타트는 세인트루이스의 크리스 카펜터가 2005시즌에 작성한 22경기이다. 류현진의 경우 2010시즌 23연속, 2009시즌 포함 29연속 기록으로 메이저리그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류현진은 이후 경기인 2010년 8월 26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안타 7개를 맞고 4실점을 허용하여 연속 퀄리티스타트 기록이 29경기에서 마감되었다
2009년 양용은 미국프로골프(PGA)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 꺾고 아시아 최초의 PGA 메이저대회 우승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 우사인 볼트 남자 100m 세계신기록
2009년 8월 17일(이하 한국시각) 독일 베를린 올림픽슈타디온에서 벌어진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선에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9초58의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우승했다. 종전 기록을 무려 0.11초나 단축한 기록이다.
2008년 혜성처럼 등장해 최고의 육상 스타가 된 볼트는 이번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세계육상의 금메달을 가져갔다.
북중미 카리브해 소국 자메이카의 소도시 트렐로니 출신인 볼트는 어릴적부터 키가 컸고 친형과 함께 크리켓을 시작한 후 이내 육상으로 바꾸었다.
이후 볼트는 자메이카 같은 연령대에서 최고로 빠른 선수가 됐고 2002년 세계주니어챔피언십대회 200m에서 정상에 오르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으며 2003년 세계청소년챔피언십 200m에서도 우승한 볼트는 1년 뒤 아테네올림픽에 도전했다가 다리를 다치면서 예선탈락했다.
볼트가 100m를 달리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한 밀스 코치는 자메이카 200m 최고기록을 경신하면 100m를 달리게 해준다는 내기를 했고 볼트는 곧 자메이카 육상 영웅 돈 퀘리의 기록을 0.11초 앞당겼다. 이후 볼트는 2007년 7월 그리스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처음으로 100m를 달려 우승했으며 그의 100m 기록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9초69라는 깜짝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
2008년 이란 첫 인공위성 오미드(Omid) 발사
2006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창설한 강원룡 목사 세상 떠남
2005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강제철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강제 철거가 시작된 17일, 곳곳에서 ‘마지막 저항’과 함께 유혈 사태가 일어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날 오후 요르단강 서안의 실로에서는 유대인 주민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쏴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또 이스라엘 남부 네티보트에서는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주민인 50대 여성이 철수정책에 항의 분신하기도 했다.
이날 0시를 기해 자진 퇴거 시한이 만료됨에 따라, 이스라엘 군·경은 오전 8시를 전후해 최대 정착촌인 네베 데칼림을 필두로 철거작전을 시작했다. 약 1만4000명의 병력이 동원됐다.
남은 주민과 외부 유입 시위대들은 정착촌 입구에 돌과 타이어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맞섰다. 네베 데칼림은 주민 2600명 중 절반이 저항을 다짐한 데다 외부 시위자 수백명까지 가세했다. 극렬 우파 청년들은 쓰레기통에 불을 붙이고 병사들에게 병과
약 140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자지구 내에 건설된 유대인 정착촌은 1967년 제3차 중동전 이후 이스라엘의 이주정책에 의한 것으로 이·팔 분쟁의 불씨였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 8.15 민족대축전 참가차 서울을 방문 중인 북측 대표단 일행 접견
2005년 일본인 13인 참회의 마라톤
2003년 외국인 고용허가제 국회통과
2001년 삼성,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4타자 연속홈런
삼성이 2001년 8월17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 프로야구 한화와의 홈 경기에서 사상 첫 네 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이승엽은 연타석 홈런을 때려 이 부문 단독 선두에 나섰다. ‘릴레이 축포’의 서막도 연 것도 그였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3회 1사 상황에서 상대 선발 한용덕의 시속 136㎞짜리 낮은 직구를 강타,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를 쐈다. 다음 타자 마르티네스는 한용덕의 슬러이더를 반대쪽 펜스에 꽂는 랑데부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자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바에르가도 좌측 관중석에 공을 선물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해영이 좌월 한 점 홈런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지금까지 3타자 연속 홈런이 열한 번 나왔을 뿐 4타자 연속 홈런은 처음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세 번뿐이었다. 일본엔 5타자 연속 홈런(1회)이 최고 기록. 삼성 선수들과 팬들이 열광하는 사이, 홈런 뭇매를 맞으며 대기록의 제물이 된 한화 한용덕은 마운드에서 내려가야 했다.
투수는 바뀌었지만 삼성의 홈런쇼는 계속됐다. 이승엽은 그라운드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5회 선두타자로 나와 한화 구원 투수 신재웅으로부터 1점짜리 우중월 홈런을 날렸다. 29호. 롯데 호세(28개)를 제치고 8일 만에 홈런 선두 자리를 되찾게 만든 한방이었다. 삼성이 8대3으로 승리. 삼성 선발 임창용은 6과3분의1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 12번째 승리를 안으며 LG 신윤호와 함께 다승 공동선두로 나섰다.
2001년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등 언론사 대주주 3명 구속
1999년 미국-러시아, 전략무기감축회담 재개
1999년 터키, 7.8규모의 강진으로 2만여명 사망
1999년 8월17일 터키 서부와 중부에 리히터 규모 7.8의 강력한 지진이 강타해 만7천여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즈미트와 골주크주 등 피해 도시에서는 수백채의 건물이 형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지진의 규모가 워낙 큰데다 인구 밀집지역에서 발생해 인명 피해는 더욱 컸다.
부상자도 3만여명에 달했고 우리돈으로 10조원 규모의 재산피해가 났다.
하지만 재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석달 뒤인 11월 11일 또 다시 리히터 규모 5.7의 지진이 터키 북서부를 휩쓸고 가면서 터키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 지진으로 7백여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부상했다.
우리나라가 119 국제구조대를 파견하는 등 독일, 프랑스 등 세계 10여개국이 터키의 지진 구조활동에 동참했다.
1998년 미국 스포츠 칼럼니스트 짐 머레이 별세
미국의 저명한 스포츠 칼럼니스트 짐 머레이(78)가 1998년 8월 17일 LA 자택에서 별세했다. 머레이는 농구, 야구 등 스포츠 전 종목에 걸친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직관력, 유머로 수많은 명칼럼을 남긴 ‘스타 기자’였다.
코네티컷 트리니티 대학을 나온 머레이는 타임지 LA 통신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서부연안 편집장 등을 거쳐 1961년부터 38년째 LA타임스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있으면서 ‘올해의 미국 체육기자상’을 12년 연속 수상 등 무려 14차례나 받았고, 1990년엔 체육기자로선 4번째로 퓰리처상도 받았다.
1977년엔 스포츠캐스터-체육기자 명예의 전당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동시에 헌액됐다.
1998년 클린턴 미 대통령,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 시인하며 대국민 사과 성명 발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1998년 8월 17일 백악관에서 TV로 방영된 대국민연설을 통해 자신이 전백악관 시용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양과 ‘적절치 못한 관계’를 가졌다고 시인하고 가족, 친구와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8년 1월 폴라 존스 성희롱사건에서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갖지않았다고 부인했으나 르윈스키가 8월 6일 클린턴과 10여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고 증언함으로써 위증혐의에 몰리고 있었으며 이와 함께 위증교사, 증언간섭 등의 사법방해혐의도 받아왔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증언에서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음을 시인하되 의회의 탄핵을 가져올 수도 있는 위증을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증언을 앞두고 실시된 미 NBC 방송의 여론조사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직무수행과 관련, 70%의 지지율을 얻어 지난 1월 성추문 사건이 폭로된 이후 가장 높은 지지도를 기록했다.
클린턴은 이번 사건으로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형사적 혐의에 대해 연방 대배심에서 증언한 미국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1998년 러시아, 루블화표시 외채에 대해 90일간 모라토리엄을 선언
1997년 학술원 회원 동완씨 별세
학술원 회원인 동완 한국 노어노문학회 상임고문이 1997년 8월 1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동완씨는 국내 러시아 문학 연구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였다.
함경북도 출신인 고인은 만주 건국대학 정치과 재학시절(1939∼1943)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익혔다. 그는 1944년 일본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소련군의 포로가 돼 1949년까지 소련 영내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 6.25가 터지자 북한군에 소속 됐다가 1951년 9월 국군에 귀순했다.
1954년 외국어대 노어과 교수가 된 그는 러시아어로 된 책이면 무조건 불온문서로 여기던 시절에도 꿋꿋하게 러시아 문학계의 토대를 다졌다. 호주가였던 그는 강의가 끝나면 제자들과 선술집에서 어울렸고, 제자들은 주석에서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고려대 노어노문학과의 창설에도 참여, 1975년부터 198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후학들을 길러냈고, 말년에 학술원 회원, 한국노어노문학회고문을 지냈다. 역서로는 고골리의 `대장불리바`, 톨스토이의 `부활` 솔제니친의 `암병동` 등이 있고, `노한사전`도 펴냈다.
1995년 경제학자 박현채 별세
경제학자 박현채씨(61)가 17일 오후 1시 서울시 강북삼성병원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1934년 전남 화순 출생으로 1959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박씨는 60년대 이후 ‘민족경제론’을 주창해 진보계열의 경제학계와 문화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1989년부터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민족경제론’, ‘한국경제와 농업’,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등이 있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외국자본에 의존한 박정희 정권의 성장제일주의 전략을 비판, 자립경제를 주창함으로써 주목을 끌었으나 80년대 중반 이후 그의 비판과는 반대로 경제 호황이 지속되면서 호소력을 잃었다. 하지만 97년 IMF사태를 겪은 후, 신자유주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자립을 강조한 ‘민족경제론’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재평가는 일방적 찬사나 부정을 뛰어넘어 비판적 계승을 시도함으로써 80년대의 지적 탐구에 대한 진보적 사회과학계의 반성과 새로운 가능성 모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70~80년대 비판적 지식인 사회의 한 축을 이끌어온 박 교수는 스스로는 한평생 ‘경제학자’가 아닌 ‘경제평론가’로 불리길 고집했다. 1964년 인혁당 사건과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하면서 교수가 될 기회를 놓쳐 야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생활 28년만인 1989년 조선대에 자리를 잡았으나, 한국 자본주의사를 다시 쓰겠다는 다짐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992년 정부, 하노이에 베트남주재 한국연락대표부 개설
1990년 이라크 군 기지에 미국인들 억류
1989년 폴란드 동유럽 최초로 비공산당 정부 수립
1988년 파키스탄의 대통령 자아 울 하크 비행기 사고로 사망
1987년 루돌프 헤스 전(前) 나치 부총통 감옥에서 사망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루돌프 헤스가 1987년 8월 17일 베를린의 슈판다우 연합군 교도소에서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공식발표는 자살이었으나 네오나치주의자들은 타살 혹은 자살방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독일인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난 헤스는 제1차대전에 참전하면서 애국청년이 된다. 1920년에 나치당원이 되었고, 1923년에는 뮌헨반란으로 히틀러와 함께 란츠베르크 육군형무소에 수감된다. 그 곳에서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받아 적으면서 히틀러의 신임을 얻게된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부총통이 되어 히틀러, 괴링 다음의 나치 서열 3위에 올랐다.
헤스는 영국과 강화해야만 對소련전에서 독일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 독일 지도부에 자신의 계획을 알리지도 않은 채 혼자 영국과의 협상을 시도하다가 영국의 포로로 잡혀 감금됐다. 전쟁이 끝난 후 헤스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슈판다우 연합군 교도소로 이송된 후 1987년 오늘 자살했다.
1986년 서독 올림픽위원회,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부상품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를 손기정씨에게 반환
1986년 8월17일 서독 올림픽위원회가 손기정 선수에게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부상품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를 반환 했다
베를린 올림픽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아마추어 선수에겐 메달 이외의 부상을 줄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청동투구를 수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5년이 돼서야 이 사실을 알게된 손기정선수가 투구행방을 찾아내 반환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 청동투구는 보물 904호로 지정되었으며 손기정 선수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1985년 ‘민중교육’ 창간호 내용이 문제돼 실천문학사 주간 송기원과 교사 2명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1985년 5월에 발행된 ‘민중교육’ 창간호(실천문학사)와 관련, 검찰이 내용의 이적성을 문제삼아 실천문학사 송기원 주간과 양정고 김진경 교사와 성동고 윤재철 교사 2명을 1985년 8월 17일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했다.
잡지발행 3개월이나 지난 내용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문교부가 관련교사 15명을 파면조치하기로 결정하고 이 방침을 각 시도교육위원회에 시달하면서부터였다. 결국 관련교사들에게는 10명 파면, 7명 사직, 2명 감봉, 1명 경고 등의 조처가 내려졌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잡지에 실린 논문을 쓴 교사나 좌담회에 참석했던 교사는 물론 내용상 아무런 문제없는 수필, 서명 등을 기고한 교사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 좌경화 여부를 수사해 이날 2명의 교사를 구속함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교육문제를 제기했던 현직교사들에 대해 정부가 민감하게 과잉반응을 보임으로써 교육문제에 대한 인식은 더욱 확산되었으며 전교조 결성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1985년 이라크, 이란의 하르그도(島) 폭격작전
1985년 구병삼 고려대교수팀 국내최초로 냉동정액 인공 수정아기 출산 성공
1984년 인도서 반(反)간디 유혈시위. 11명 사망
1983년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과 상업은행 김동겸대리 구속
1983년 8월 17일 대검 중수부는 명성그룹 회장 김철호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김철호에게 1천여억원의 사채자금을 변칙 조달해 준 상업은행 혜화동지점 김동겸 대리를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의하면 김철호는 1979년 4월부터 김동겸을 통해 은행예금을 빼내 기업을 확장하기 시작,1,066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횡령, 재벌회장으로 행세하면서 사기극을 벌였고 탈세액만도 46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어 검찰은 뇌물을 받은 윤자중 전교통부장관 등 10여명의 공무원을 구속했다.
이 사건으로 김철호는 징역 15년에 벌금 92억3천만원을, 윤자중은 징역7년에 추징금 8,186만원을, 김동겸은 징역1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1981년 스리랑카 전국에 비상사태 선포
1979년 소련의 두 여객기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충돌 사망 173명
1978년 필리핀 민다나오섬 지진. 8천여명 사상
1975년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의문사
사상계 발행인이자 민족통일 운동가였던 장준하씨가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56세였다. 1953년 4월 월간 종합교양지 ‘사상계’를 발행하면서 자유언론투쟁에 앞장섰던 그는 1970년 5월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을 게재한 것이 빌미가 돼 그해 9월 지령 205호로 폐간당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장씨는 1974년 1월 대통령긴급조치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가 12월 3일 형집행정지로 출감했었다.
이날 장씨가 등산도중 실족해 추락사했다는 검찰 발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등산에 능했던 장씨가 위험한 굳이 추락지점을 하산로로 택했다는 점, 14,7m나 되는 높이의 벼랑에서 떨어졌는데도 전신에 골절상과 찰과상이 없었고 옷이 찢겨지지 않고 말짱했다는 점, 사망 당시 장씨의 팔목시계를 차고 있던 김용환씨가 추락사고 발생이후 행방을 감춰버렸다는 점 등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의 타살 의혹은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등의 군사정부 시절에는 그저 입소문으로만 돌았으나, 1993년 ‘장준하선생 사인규명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여전히 ‘의혹’ 수준에만 머물러있는 상태다.
1970년 소련 우주선 베네라 7호 처음으로 금성 표면 착륙, 지구 이외의 행성 최초의 착륙
1969년 독일 물리학자 슈테른 사망
1967년 중국, 광주(廣州)서 제43군 반란
1967년 제1회 한국기자상 시상
1964년 한국기자협회 창립
한국기자협회가 1964년 8월 17일 창립됐다. 정부가 언론을 장악할 목적으로 언론윤리위법을 제정하려 하자 이의 철폐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언론인들의 연대의식을 결집시킬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협회는 창립시 자질향상, 언론자유수호, 권익옹호, 국제교류강화를 4대 강령으로 채택했다. 회원들의 결집과 효과적인 활동 홍보를 위해 창립 3개월 만인 11월10일 `기자협회보`를 창간했다. 처음에는 월간 4면으로 출발했으나 1968년 8월3일 지령 40호부터 주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기자협회보는 1975년도 조선-동아 언론인 집단해직사태의 보도로 문화공보부에 의해 1975년 3월10일 폐간됐다 8개월후 복간됐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다시 폐간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1962년 반혁명 음모사건 관련 혐의로 장면 불구속 기소
1960년 가봉, 프랑스로부터 독립
1955년 한국인의 대일왕래 금지, 8.18대일무역 정지
1955년 공군 T-33A 훈련기 도입
1950년 장사동 철수작전 실시
1949년 해군, 북한도발 응진 몽금포 작전 성공적 수행
1945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1945년 프랑스 페탕원수 무기징역
1943년 퀘벡 회담 개최
1933년 조선금융조합 연합회령 공포
1928년 중국-독일, 통상조약 조인
1927년 제등실(사이토마코토) 제5대 총독에 재임명
1924년 조선노동당 결성
1910년 유인석, 이범윤 등 연해주교포, 합방 반대투쟁 전개
1906년 칠레의 바르파라이소 대지진, 수천명 사상
1901년 서울시내 전등 시점식(始點式) 거행
1887년 우리나라 최초로 경복궁 건청궁에 전기가 점등된 이후로 1900년에 와서 민간점등이 시작됐다.
한성전기회사는 전등사업을 본격화하여 동대문발전소에 200KW 발전설비를 설치, 전차와 전등에 전력을 공급하게 됐다.
민간점등은 서울시내 전차의 야간운행을 위한 것이었다.
1901년 6월이 되면서 전등 보급이 더욱 확대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진고개(지금의 충무로)에는 일본인 상가가 밀집해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민간조명용 전등 600개가 보급된 것이다.
정부의 고관대작, 외국사절, 상인을 비롯한 수많은 구경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치러진 진고개의 점등식은 서울을 떠들썩하게 만든 성대한 이벤트였다.
이러한 민간전기의 보급이 확대되는 가운데 한성전기회사의 동대문발전소에서 서울시내의 전등시점식을 거행했다
1896년 연호(年號)를 건양(建陽)에서 광무(光武)로 고침
1894년 흐루시초프 출생
188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통치자 카를1세 출생
1883년 서울에 신식인쇄소 박문국(博文局) 설치
1845(조선 헌종11)년 오늘 한국 첫 번째 신부 김대건(안드레아) 서품(24세)
1807년 로버트 풀턴, 최초의 증기선 `클레몬트호` 시운전 성공
미국의 로버트 풀턴이 1807년 8월 17일 세계최초의 증기선 `클레몬트호` 시운전에 성공했다. 풀턴은 최고 24마력의 증기기관을 장착한 전장 45미터의 증기선을 제작,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서 성대한 진수식을 가졌다.
올버니까지 운행할 것이라는 풀턴의 발표에도 사람들은 이 실험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허드슨강가에 모여들었다. 쓸모없는 통나무 모양을 한 클레몬트호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배는 바람과 파도를 가르며 상류를 거슬러 침착하게 항해했고 배의 굴뚝에서는 32시간 240Km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연기가 뿜어나왔다.
풀턴은 미국 펜실베니아 사람으로 원래는 보석상이었지만 프랑스에서 만난 로버트 리빙스턴과 함께 뉴욕에서 증기선 제작에 착수했다.
1800년 벨기에의 독립을 가져다준 1830년 벨기에 혁명의 지도자 로지에 출생
1786년 프러시아 프리드리히 대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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