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 조각이 된 집문서
김종숙
딱지(아파트우선분양권)작업을 하는 정모 선배를 따라다니며 어깨넘이로 부동산을 조금씩 배웠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사람을 보는 눈썰미도 없을 때였다. 딱지를 사고팔러 다니면서 알게 된 오모 씨와 부동산소개소를 차렸다. 소개소가 해야 할 업무도 제대로 모르면서 의욕만 가지고 시작했다. 손님이 와도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막막한 상태였다. 아파트를 청약하여 당첨만 되면 프리미엄을 받고, 철거민의 딱지도 사서 팔면 프리미엄을 받을 때였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녀 두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딱지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며 본인을 소개하면서 명함을 내밀었다. 부동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공단과 하천변의 철거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아파트 우선 분양권을 사러 다니면서 초보라는 것을 절감하던 때라 저런 전문가에게 좀 더 배웠으면 하는 생각이 앞섰다. 자주 오셔서 많이 가르쳐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수원성을 복원하는 데서 딱지를 샀다며 하나 팔아 달라했다. 임시번호가 부착된 고급승용차를 여성이 운전하고 갔다.
수원성을 재정비한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어디까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시청의 담당자를 찾아 수원성 복원에 관련하여 물었다. 성곽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판자촌은 말할 것도 없고 성을 가리고 있는 일반 건물까지도 모두 철거 대상이라 했다. 그렇지만 예산 때문에 구간별로 나누어 보상한다 했다. 1차 구간인 도청에서 북문까지 성곽주변에 붙어 있는 판자촌은 이미 철거했고, 2차 구간인 북문에서 서문까지 산재해 있는 건물들은 철거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2차 구간의 건물 주인들에게도 이사 비용을 포함하여 아파트 분양권이 배정되었는데 이미 이사 비용과 분양권을 받아 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대문에 철거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이집 저집 찾아 들어갔다. 며칠을 헤매고 다녔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많은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한 장도 구입하지 못했다.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이 팔아달라고 부탁한 분양권이 더 저렴하였다. 고생하면서 돌아다니느니 이거라도 하나 잡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내가 이사 간다는 생각에 받은 명함을 보고 연락하였다. 고급승용차가 임시번호판에서 새로운 번호를 달고 왔다. 신분증과 서류를 확인하고 날인과 동시 현금을 지불하였다. 딱지를 사놓은 서류가 또 있으니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따라 나가 인사를 하면서 승용차 번호도 기록하였다. 딱지는 계약도 없이 현금과 서류를 맞바꾸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를 구입할 때나 딱지 매입을 하러 따라다닐 때도 서류를 받음과 동시에 현금을 지급했다.
찾아온 손님에게 입주권에 투자하라며 설명해 드렸다. 설명을 듣고 나가려던 손님이 돌아서면서 한 장 사 달라 했다. 사놓은 딱지를 이익을 조금 붙여 지금 팔까, 나중에 이사를 할까 망설이다가 나에게 딱지를 팔아달라고 부탁한 손님에게 전화했다. 연락해줘서 고맙다며 부부가 왔다.
딱지를 사겠다는 손님과 함께 확인을 위해 서류를 들고 시청으로 갔다. 철거민 명단을 대조하던 공무원이 이 서류는 진짜가 아니라 했다. 이름과 주소는 다 맞는데 시청에서 발행한 서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공중전화를 찾아 명함을 놓고 전화를 돌렸다. 받지 않았다. 또 돌렸다. 계속 받지 않았다. 손님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했다. 인감증명을 발행한 동사무소로 갔다. 인감증명과 주민등록 발급대장을 대조하더니 발급된 기록이 없다 했다. 급히 파출소로 갔다. 사건 경위에 대하여 소상히 설명하였다. 철거민이 이사 간 곳을 경찰관과 함께 찾아갔다. 서류를 보이며 00씨가 맞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입주권 사 간 사람을 알려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연락처를 찾아보아 달라고 사정사정하자 한참을 망설이더니 마지못해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캄캄한 밤에 또 물어물어 찾아갔다. 만나보니 돈을 받아 간 사람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더니 안으로 들어가 보관하고 있던 딱지를 보여주었다. 한방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핑 돌아 펄썩 주저앉는 나를 달래면서 빨리 경찰서에 신고부터 하라 깨워주었다. 급히 경찰서로 뛰어갔지만 이미 일과가 끝난 뒤였다.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고, 아침은커녕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경찰서로 달려갔다. 경찰관이 출근도 하기 전에 먼저 들어가 기다렸다. 막 출근한 담당 경찰관을 붙잡고 그간의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우선 대서소에 가서 고소장을 작성해오라 했다. 두 장을 작성해서 가짜 서류와 명함도 함께 제출했다. 경찰관이 명함을 보고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차량번호를 조회하더니 그런 번호가 없단다. 임시차량번호까지 확인했지만 그런 번호는 없단다. 범인이 잡히면 연락한다며 집에 가 기다리라고 했지만 허탈한 마음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 경찰서로 갔다. 아직 잡히지는 않았지만 확인을 하니 전문 사기단이라 했다. 딱지는 현금과 교환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벌린 사기극이었다. 위조 주민등록증으로 방을 얻고 전화도 신청하고 위조한 계약서류로 딱지 장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서류를 만드는 조직과 팔러 다니는 조직이 따로 두고 벌이는 전문 사기단이었다.
무지한 내가 혈기만 앞세우고 확인을 제대로 못한 죄로 너무 많은 등록금을 날렸다. 임대아파트 한 채가 휴지 조각이 된 충격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깨넘이로 조금 배운 것을 앞세워 부동산소개업 한다고 나섰다가 재산을 다 날리는 촌극을 벌였으니….
아는 것도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때는 왜 떠올려보지 못했던가?
돈도 싫다
일구 팔팔 년 봄, 그때 나는 지금의 포항 해맞이 공원 입구 대로변에 살았다. 일 층은 부동산 중개업 사무실이었고 이층은 살림집이었다. 아침 다섯 시에 운동 겸 현장이나 다녀오려고 나가는데 사무실 앞에 사람이 앉아있었다.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부동산 주인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내가 주인이라고 대답하자 조용히 이야기 좀 하자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사무실 문부터 열었다. 시내에 있는 H동산 김모라며 명함부터 건네주었다. 낮에 오면 복잡해서 대화가 안 될 것 같아 조용한 시간에 공동중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아침 일찍 왔다고 했다.
장성동 개발 지역에 토지를 갖고 싶어 하는 손님이 여럿 있다며 적당한 물건 하나만 달라 간청했다. 요즈음은 우리도 없어 못 판다며 거절하였다. 위치와 모양도 상관없으니 아무거나 하나만 달라 사정하며 일어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수고비도 넉넉히 챙겨주겠다 했다. 수고비를 챙겨주겠다는 말에 지도를 펼쳤다.
개발지역 안이라면 자신의 손님이 무조건 사고 싶어 하니까 설명도 필요 없고, 개발 하고나면 위치와 모양이 다 바뀌니까 가볼 필요도 없단다. 쉽게 말하면 묻지 마 투자였다. 동네 김모 반장에게 전화를 해 물건 하나만 빼 오라고 했다. 잠시 후 하모 이장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시골사람들은 이장이나 반장 또는 새마을 지도자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한 건의 계약이 잘 마무리 되었다. 그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또 다른 손님이 대기하고 있으니 물건이 나오면 연락 해달라 부탁하고 갔다.
직원들이 출근하자 집에 올라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또 손님이 왔다며 빨리 내려오란 연락이 왔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헐레벌떡 내려갔다. 찾아온 손님이 반갑기야 하지만 팔 물건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손님은 막무가내였다. 무조건 사겠다며 아무거나 달란다. 하는 수 없이 계약해 놓은 사람에게 전화했다. 계약한 물건을 되팔자며 달랬다. 아직 잔금도 지급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파느냐고 되물었다. 지급한 계약금의 배로 받고 계약서만 넘겨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며 설득했다. 부인과 상의해서 연락한다며 조금만 기다려 보라 했다.
차를 한 잔하면서 기다리는데 부인과 합의가 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택시를 타고 빨리 오라고 했다. 한동안 기다리던 손님이 바쁘다며 계약금을 맡겨놓고 갔다. 팔려는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다. 살 때 작성한 계약서와 계약금을 지급한 영수증을 회수하고 손님이 보관한 돈을 지급했다. 받은 서류만 넘겨주고 간단하게 계약이 완성되었다. 계약금을 지급하고 일주일 만에 계약금의 배를 받았으니 큰 장사를 한 셈이었다. 고맙다며 다른 물건이 나오면 또 사달라며 받은 돈의 절반을 맡겨 놓고 갔다. 계약금을 맡기고 간 손님이 와서 딴소리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지만 잘 마무리되었다.
땅을 사려는 손님들이 계속 왔다. 중개업을 하는 사람들도 너도나도 물건을 달라며 찾아왔다. 본의 아니게 ‘한국부동산’이 토지도매상이 되었다. 물건을 구하려고 여러 곳을 다녀본 손님들은 땅이 있느냐고만 묻지 얼마 하는지는 묻지도 않았다. 비싸고 싸고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위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음날이면 무조건 값이 오르니까 오늘 당장 땅을 사느냐 못사느냐가 중요했다.
중개업을 하는 사람들이 땅을 구하려고 동네로 들어가 이장이나 반장 또는 새마을 지도자를 찾아다녔다. 이럴 때면 이장이나 반장은 내게 자문을 구했다. 내가 팔라 하면 팔고 팔지 말라 하면 팔지 않고 내가 어떠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85년부터 부동산값이 뛰기 시작하였다.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사오 년간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났다. 그 여파가 포항까지 미쳤다. 대구와 울산에서 온 투기꾼들이 ‘묻지 마 투자’의 포문을 열었다.
포항 사람들도 부동산에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거래하려면 당사자들과 현장 확인 등, 발품을 파느라 저녁 늦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많이 거래하는 날은 하루에 16건을 계약했다. 계약서를 작성하느라 종일토록 목이 아프고 팔이 아플 때도 있었다. 저녁이 되면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 진이 다 빠지고 축 늘어졌다. 하루에도 몇 건씩 이루어지다 보니 매일 돈이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둘 데가 없어 근처 새마을금고에서 매일 파견 수납을 하기도 했다.
돈이 들어오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몇 년 동안 일에 지쳐 살다보니 돈도 싫어졌다. 아내도 지쳤는지 우리 이제 그만 쉬자고 했다. 이러다가 나이 사십도 못 돼 돈에 묻혀 죽겠다며 서로를 보며 웃기도 했다. 함께 일한 두 사람에게도 땅을 하나씩을 보너스로 나누어주고 쉬기로 했다.
약력:
◦ 김천에서 태어남
◦ 잠언집 《행복을 담는 그릇》
◦ 글모음 《누군가 내게 말했다》
◦수필집 《가난하고 힘들어도》
E-mail : 2525-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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