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실망하여) 아아, 여기에도 역시 아니 드신 모양! (조용히 흐느끼며) 태자님, 산을 타고 하늘로 오르시었소?흙을 쓰고 땅으로 드시었소? 개골산 수많은 계곡, 주름잡아 헤매어도 앞서느니 첩첩태산! 길을 물을 짐승조차 없으니 어이된 일이시오?
나를 알아보는 당신네들은 누구요?
(유밀들을 일일이 뜯어보더니) 급찬 김곤․ 시랑 김비․ 사빈경 이유․ 낭중 한공달! 모두 태자님을 모시고 잇던 분이 아니시오!
태자님의 소식을 모르시오? 태자님 계신 곳을 가르쳐주오. 태자님의 거취를 알 분은 당신네들뿐
일 것이오.
(유민들의 시선에서 바위 위에 정좌한 사람을 발견하고) 저 돌 위에?
(바위 위를 우러러보며) 저 돌이 산 사람이면 저렇게 몸에 이끼가 끼고 앉은자리에 고드름이 달 렸을 리 만무하오.[공주] 신라는 이미 고려의 한쪽이 된 것을...
[공주] (눈물을 씻으며) 태자님, 이 땅에 살으신 이, 태자 한분 아니어든, 무엇 때문에 홀로 그 죄를 지시어 산등성이 모진 바람에 연한 살 여위시고 뼈까지 깎으시오? 설사 그 죄를 쓰시고 속죄를 하신다 하시어도 이렇게 참혹하게 그 육신을 괴롭히지 아니하시어도 될 일이오. 이리 내려오시어서 법당이나 암자로 가소서. 거기서 불전에 향불 올려 편안히 앉으셔서 기도를 올리시오. 자, 어여 내려오소서. 어여! 어여! 어여! (거센 바람소리만 들리고 태자는 꼼짝하지 않고 앉았을 뿐이다) 아, 어이하여 말이 없으시오?
아니오, 소녀의 지친 모양 보기가 싫으시기 때문일 것이오.
그러면 이 몸도 태자님과 같이 돌이 되겠소. 그래서 태자님 곁에 앉아 낮이면 감싸도는 구름이불 함께 덮고 밤이 오면 반짝이는 별의 빛을 같이 받아 말없는 산과 같이 천만년 살터이오 아, 야속하여라. 태자님만 뵈오면 다정히 맞으시어 이름이라도 불러주실 줄 알고십년의 긴 세월을 하루같이 헤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