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염상섭'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나의 생각
이광수에서 김동인과 염상섭으로 넘어가는 강의를 듣고 난 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의 동영상 강의는 끝났지만 여운이 남아 직접 김동인이나 염상섭의 단편 작품을 찾아 읽어 보았다.
오늘 수강한 강의를 평가하기에는 내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하니 2번과 3번 문항에 답을 이으면서 강의를 통해 느끼고 배우고 생각한 점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두운 곳에서 비로소 빛이 보인다. 일제강점기라는 우리 민족의 어둠속에서 찬란한 빛을 종이 위에 새겨 넣었던 문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2. 김동인이 말한 ‘무시무시한 햄릿이 나타났다.’라고 한 말의 의미에 대해 기술하시오.
'나는 햄릿이오. 결국 생각으로 행동하오. 내게는 이 의식이라는 잘 벼린 칼 한 자루로 내가 닥친 세상을 베어낼 그 의식이 충분하오.'
이것은 내가 느끼고 생각한 대로 염상섭이라는 작가를 표현해 본 문장이다. 문제에 나온 키워드 '햄릿'을 활용하였는데 마치 내 자신이 순간적으로 연극 무대에 올려진 햄릿에라도 빙의된 양 어설프게나마 꾸려본 문장이 되겠다.
우리가 맨 앞선 시간에 한국 근대 문학의 개명으로서 이광수를 배웠다면, 그에 이어 김동인과 염상섭을 배운 이 시점에서는 주로 관철해야 할 키워드들이 계몽주의에서 동인지 문학, 자아의 확립, 근대 소설 형식의 정립 등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1920년 7월 25일 <폐허>라는 문학 동인지가 창간되었다. 당시는 가장 말도 못할 추악한 수준으로 일제강점기에 짓눌려 온 조선이 고통에 시름시름 앓아가던 때. 말 그대로 조국 어디를 둘러봐도 죄- 폐허였기에 동인지 제목인 폐허라는 단어가 그리 눈에 튀지도 않을 것이었다. 廢墟. 독일 시인 실러의 “옛것은 멸하고 시대는 변하였다. 새 생명은 폐허로부터 온다”는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바로 이곳에 <폐허에 서서>라는 머리말을 쓴 사람이 횡보 염상섭이다. 아마 잔재뿐인 조선에도 조만간 새 생명을 품은 희망의 씨앗이 자라나야 한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누가 뭐래도 1920년대는 동인문학의 시대다. 작가들은 각자가 원하고 추구하는 문학 스타일과 지향에 따라 자유롭게 모였다 흩어졌다. 이 과정에서 염상섭 또한 1921년 <개벽>이라는 잡지에〈표본실의 청개구리>라는 소설을 쓰게 된다. 이것이 한국문학에서는 처음으로 나타난 자연주의 소설이다.
현대의 눈으로 봐도 다소 그렇지만 당대로서는 정말 다분히 실험적이며 낯선 느낌을 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자연주의 소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초기 소설을 프랑스 작가인 에밀 졸라가 처음 제시했던 그 자연주의 문학과는 별개로 봐야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또 골똘히 생각해 보니 왜 염상섭을 일컬어 한국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거목이라고 하는지 이해되는 부분이 상당수다.
우선 이 소설은 3.1운동 직후 무기력함과 허탈함에 잠식되어버린 지식인층의 끝 간 데 없는 허무와 방황의 내면심리를 추적하고 있다. 여기서 주인공 '나'는 알코올와 니코틴에 푹 절어 있는데 그야말로 마취약에 푹 절여진 해부실습용 청개구리들의 신세와 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결국 날카로운 메스에 이리 찢기고 저리 갈리는 청개구리와 당시 조선의 많은 청년들이 겹쳐보이며 우중충하고 특유의 마취약 냄새로 늘 몽롱하게 유지되는 실습실이라는 공간이 곧 일제 치하 조선의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곱씹어 볼수록 해당 단편 소설의 제목과 구성과 작법의 일치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 학생들이 소설 속에서 생물을 해부해서 하나하나 그 안을 전시하고 뜯어보듯 작가 염상섭 또한 한 시대와 그 안의 고뇌하는 인간을 조목조목 들여다보고 해부하며 문장을 잇지 않았는가. 이런 점에서 나는 그를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작가'로서 매김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뿐인가. 그가 몸담고 있던 <폐허> 동인 특유의 퇴폐적이고 음울한 분위기까지 소설에 덧칠해져 이로써 차라리 우리는 저 먼 서구와는 또다른 우리만의 자연주의를 창조해냈다고 말해봄직도 할 것인데.
‘이 사람이 소설을 썼다.’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그 작품을 보았다. 그러나 연재물의 제1회를 볼 때 벌써 필자의 마음에는 큰 불안을 느꼈다. 강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과도기의 청년이 받은 불안과 공포의 번민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나타난 것은 그것이었다. 필자는 상섭의 출현에 몹시 불안을 느끼면서도 이 새로운 하므레트의 출현에 통쾌감을 금할 수 없었다.
— 『김동인 전집 6』(삼중당, 1976)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창조파' 김동인과 '폐허파' 염상섭이라는 두 불꽃튀는 천재들의 대결과 화합의 날들에 대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목을 빼고 이 다음 강의를 기다릴 심산이다. 천재를 꿈꾸는 범재의 마음으로. 늘 그렇듯이.
3. 염상섭의 ‘중성적 세계관’에 대해 기술하시오.
염상섭의 소설 세계관을 다룰 때 흔히 중성적 세계관/중립적 존재로서의 작가를 이야기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보는 염상섭은 완전한 중립으로서의 자기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타고난 민족주의자였다. 그 누구보다 일제에 치열하게 문학으로써 저항했던 인물이었기에 중용이나 중도라는 조금 더 다양한 단어군을 통해 그를 설명하고 싶다.
원래 인간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본다.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그런 양상은 더욱 심해졌다. 무산계급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봉건과 근대라는 가치관의 대립에 더해 사회주의 운동이 사회문화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바로 여기서 염상섭은 민족적 유산계급과 사회적 무산계급으로 나뉜 당대를 굳이 둘로 생각한다거나 어느 한편을 애써 선택하려 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어차피 그때 우리가 가야할 길은 끝에 가서는 하나였다. 빛을 되찾는 것.
이는 그의 장편소설인 <삼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염상섭은 일제 강점기를 효과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일제에 대응하는 우리 민족'을 먼저 설정했다. 나아가 리얼리즘 문학으로서의 <삼대>를 그려냄으로써 당시 우리 민족의 핍박 받고 차별 당하는 식민지 생활로서의 삶을 매우 밀도 있게 그려냈다. 그리고 최후에는 손자 조덕기라는 인물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이 깜깜하고 막막한 현실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지 논했다. 소설 속에서 조덕기는 극중 인물들의 다양한 서사적 삶의 관점에 대해 어느 쪽도 지나치게 편을 들거나 비판, 부정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선 살아남아야 함에 주목한다. 복잡다단하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암담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입장을 절충하는 중립적 삶의 태도, 즉 손자 조덕기의 중도적 입장처리는 곧 작가 자신이 독자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의 함축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