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넷째주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마르 4.35-41)
공부는 잘하니?
(가경웅 신부. 미리내 천주성삼성직수도회 강화분원장)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맨 처음 본 시험에서 30점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공부를 잘 하는 거라고 착각했다.
짝꿍이 자기는 20점이라며 30점 맞은 내가 부럽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에 기분이 좋아 30점이 적힌 시험지를 들고
동네방네를 뛰어다니며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다음 날부터 나는 수업이 끝나면 몇 명 친구들과 남아
선생님이 내준 나머지 공부를 해야만 갈 수 있었다.
공부가 어렵긴 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원로 신부님을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를 보신 신부님께서 먼저 물으시는 것이다.
공부는 잘하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뭇거렸더니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상. 중. 하 중에 뭐라고 생각하니?
이 질문에 나도 모르게 중...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내 표정을 보시더니 다시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이다.
중. 중에도 중상이 있고. 중하가 있는데 그중에는 뭐니?
결국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는 공부가 너무 힘이 듭니다.
공부를 못하는데도 괜찮은 걸까요?
신부님께서는 고민을 들으신 후에 말씀 하셨다.
공부를 못해도 사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사제는 필요 없다.
그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신부님은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때는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공부는 턱걸이로 간신히 통과하며
신학교를 졸업하고 서품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사제가 되고 여러 가지 일을 맡아 하다 보니
내가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사제도 사람인지라 잘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분명 못 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것!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뿐이다.
강풍 속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위험에 처한 예수님을 살리기 위해
그 어떤 일도 해보려 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모습일 수 도 있다.
그저 예수님께 해달라고 부르짖을 뿐.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모든 일에 만능일 수 없듯.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차츰 그 깊이를 더해갈 수는 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분명 당신의 은총으로 응답해 주실 것이다.
몸과 마음 다해 그분께 다가가려는 노력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발견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