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힘으로만 삼지 말고 사랑하라.
(시 18:1)
본시는 다윗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는 시입니다. 다윗이 잘했던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 대한 고백입니다. 그의 시를 읽어보면 그는 항상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은 자신의 반석이시고 요새이시며 자기가 피할 바위이시고 방패이시며 자신의 구원의 뿔이시고 산성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에 보면 그의 고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하나님이 다윗의 힘이 되셨기 때문에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사람이었지만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그가 잘했던 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는 주를 사랑했으며 주님을 향한 사랑을 입으로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이 나의 힘이시라고 고백합시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하며 삽시다.
오늘 설교는 크게 두 가지를 다루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부분에서 힘이 되시는가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떻게 살게 되는가입니다.
1.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라.
저는 이번 주에 기도원 집회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 삼국지를 읽었습니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입니다. 돗자리를 짜고 짚신을 팔던 유비가 천하를 통일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제가 삼국지를 통해서 받은 교훈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만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유비는 좋은 만남을 통해서 힘을 얻게 됩니다. 유비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사람들은 관우와 장비 그리고 재갈공명입니다. 이 세 사람이 유비에게 날개를 달아줍니다.
여러분! 사람만 잘 만나도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힘이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놀랍게 달라집니다.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영원까지 달라집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이 세상만이 아니라 영원까지 복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들에게 어떤 부분에 힘이 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영혼 구원의 힘이십니다.
사람은 죄인입니다. 사람이 죄인인 이유는 죄인인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이고 또 스스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리고 죄인된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으며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구원이라는 말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지옥 갈 사람이 천국 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죄가 해결 된 사람은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영혼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성경 벧전 1:9에서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요 3:16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멸망하는 세상을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희생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대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의 힘이신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마치 태평양 한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이 수영을 해서 그곳에서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은 수영으로는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에서 철인 4종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어도 태평양 한 가운데서 수영으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인격이 뛰어나고 능력이 탁월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멸망에서 자기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이 구원 얻는 길은 구조선을 만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멸망 가운데 있는 사람은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이유는 믿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 롬 5:9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예수님은 영혼구원의 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장치를 해놓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 주변에는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주변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사랑으로 주님을 보여주십시오.
한 일본 그리스도인의 감동적인 고백 수기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일본에서 사업에 실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샌프란시스코의 교외에서 장미농장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는 스위스에서 이민 온 한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장미농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가정은 매우 가까워졌습니다. 스위스에서 이민 온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옆에서 함께 살면서 농사도 같이 지으며 대화도 자주하고, 또 그러다가 전도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일본 사람은 조용히 미소만 짓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정은 아주 친하게 지냈고, 또 일주일에 두 차례, 세 차례는 장미를 팔기 위해서 샌프란시스코의 시내로 들어가서 같이 장미를 팔아 돌아오곤 했습니다. 농장 일은 아주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미국시민으로 귀화하지 않은 일본 사람들을 수용소에 수용하는 정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일본 사람은 아직까지 미국시민으로 귀화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결국 콜로라도에 있는 수용소로 가야만 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업 실패한 후, 미국에 와서 고생하면서 모처럼 성공한 사업인 농장을 두고 떠나야 하는 그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때 이웃집 스위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가 있는 동안 내가 농장을 잘 돌봐 주겠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일본 사람은 겉으로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가면 정말 도와줄까?’하고 의심했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스위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나의 하나님을 믿으세요. 안심하고 떠나세요.” 그가 수용소에서 2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었을 때, 전쟁이 끝나게 되었고, 드디어 2년 만에 그리운 집과 농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웃 스위스 사람이 큰 플래카드를 들고 역으로 환영을 나온 것입니다. “Welcome back home!” 그리고 집에 와 보니 농장은 자신이 가꿀 때보다 더 아름답고 깨끗하게 잘 관리되었고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엌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장미 한 송이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농장에서 나온 수익금을 저금해 놓은 통장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조그마한 카드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딱 두 줄이 쓰여 있었습니다. “God loves you!(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You could start again(당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그는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고백하기를 “당신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싶습니다.” 마침내 그는 주님 앞에 돌아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간증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사랑하면 사람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처럼 이제 우리는 내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11월 24일 총동원주일이 멀지 않았습니다. 박재열 목사님과 한 약속을 잊지 않았겠지요. 기억하시고 열심히 전도합시다.
2) 하나님은 가난을 극복하는 힘이십니다.
사람들이 범죄한 결과 받게 된 저주 가운데 하나가 가난의 저주입니다. 그런데 이 가난 역시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안에서 해결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을 극복하는 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범위 안에는 가난문제 해결도 포함이 됩니다. 고후 8:9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말하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부요하신 그분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특별히 주님을 위하여 가난해지는 사람들도 있고 가난의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별한 경우이고 과정입니다. 보편적인 은혜는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은혜 안에 거하여 부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가 부요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잠 10:22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22:4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여러분에게 가난을 극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 반드시 가난은 극복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믿음의 역사로 가난이 극복되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질병을 치료하는 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택은 분명합니다. 시 103:2,3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택 첫 번째가 모든 죄악을 사하시는 은택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병을 고치시는 은택입니다. 모든 병입니다. 병의 제한이 없습니다. 병이 크던 작던 주님이 하시면 문제 될 병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출 15:26을 보니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병의 의사이셨습니다. 마 8:16입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는 만병의 위원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 중에 채찍에 맞으신 고난이 우리의 건강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 53:5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시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벧전 2:24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앞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질병에서 해방되고 건강해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건강을 누리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어머니가 식탁에 진수성찬을 차려놓았습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먹는 것은 자녀의 책임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차려놓았어도 먹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건강의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건강을 위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 놓으셨으니 이제 우리가 먹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건강의 복을 취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말 4:2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약 5:15을 봅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육체에 건강의 힘이 되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은 나의 무능을 극복하는 힘이십니다.
1 더하기 무한대는 무한대입니다. 10 더하기 무한대도 무한대입니다. 100 더하기 무한대도 역시 답은 무한대입니다. 앞의 숫자가 몇이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무한대와 더해지면 답은 무한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1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10, 또 어떤 사람은 100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닙니다. 무한대이신 하나님과 더해졌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고전 1:26-31을 참 좋아합니다. 이 말씀은 무능력한 우리들이 예수님을 힘으로 삼으면 얼마든지 우리의 무능력이 극복 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미련함이 극복됩니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약함도 극복됩니다)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없는 것도 극복됩니다)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극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능력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능력은 우리가 가진 천연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노력만으로 만들어낸 후천적인 능력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능력은 예수님 안에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분출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려면 그분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하면 됩니다. 그럴 떼 우리는 초자연적인 삶을 살게 되고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능력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로 주님과 교통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게 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면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능력이 분출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무능력을 극복하게 하시는 힘이십니다.
5) 하나님은 마귀를 이기는 힘이십니다.
마귀는 우리의 멸망과 고통을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는 정신병, 육체의 질병 그리고 가정문제, 경제 문제 등 다양한 문제로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마귀의 역사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마귀의 역사를 극복하는 힘은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에 거하며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며 산다면 우리는 주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얼마든지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요일 3:8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성경에서 마귀에게 가장 비참하게 사로잡혔던 사람은 거라사의 광인입니다. 그는 군대 귀신에 들렸습니다. 그는 옷을 벗고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밤낮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로 묶어보기도 했지만 끊어버리고 사람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완전히 미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그를 괴롭히던 귀신들이 그를 떠났습니다. 그는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해 졌습니다. 천하를 꾀는 마귀도 어떤 종류의 귀신들도 예수님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귀를 이기게 하시는 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힘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려고 하고 또 힘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중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위해서 어떤 스팩을 준비했느냐? 너는 나를 위해서 일할 어떤 능력을 준비했느냐” 아닙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너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주는 가장 큰 계명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첫째가 하나님이고 둘째가 자기 자신입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이 이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다하는 사랑입니다. 마 22:37을 보면 주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도 목숨도 뜻도 다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그렇게 사랑한다면 다음과 같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만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랑해보셨습니까? 전 해봤습니다. 제 아내와 불같은 사랑을 해봤습니다. 그 때는 제 마음에 아내를 향한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저는 죄송하게도 기도하려고 머리를 숙여도 아내가 생각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아내가 생각나더군요. 사랑에 빠지면 예배에 집중을 못합니다. 전 이해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을 치면서도 찬양했고, 장수가 되어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늘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각 속에 하나님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요 14:21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사랑에 빠지면 내가 하기 싫은 일도 상대가 원하는 일이라면 하게 되고 내가 원하는 일도 상대가 원치 않으면 하지 않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원치 않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하게 되고 내가 원해도 주님이 원치 않으시면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보니 70세가 넘은 할머니가 어떤 할아버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두 분이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골초인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난 당신을 사랑하여 결혼을 하고 싶은데 당신이 담배를 피는 것이 문제다” 할머니는 30년 전부터 담배를 끊으려고 여러 가지 금연프로그램에 참가했었고 나름대로 결심도 하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금연에 실패 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할아버지와 결혼하기 위해서 담배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 글의 제목은 [사랑은 의지보다 강하다]였습니다. 사랑하면 상대의 말대로 행동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에게 우선순위를 둡니다.
사랑에 빠지면 우선순위가 바뀌게 됩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선이 됩니다. 피곤해서 잠을 자려고 하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하면 피곤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잠보다 상대가 우선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사랑에 빠지면 만사를 재껴두고라도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일보다 상대가 우선입니다.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물질적인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상대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 됩니다. 물질보다 상대가 우선입니다.
마 6:33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내게 실제가 되고 있다면 나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내게 실제가 되고 있지 않다면 나는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면 갈등이 없습니다.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면 수고도 손해도 갈등하지 않습니다. 주를 위해 수고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수고하는 것이 싫어서 갈등하다가 수고를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육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손해를 봐야 하는 경우가 생겼을 때 갈등하다가 손해를 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면 역시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보다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주님을 사랑하면 주일 성수도 십일조도 갈등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지 못하니까 갈등하는 것이지요.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다 줍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다 주셨잖아요. 아들까지 위를 위해서 주셨으니 못 줄 것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면 다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을 인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사랑이 하나님께 인정 되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독자 이삭을 드린 창 22장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독자 이삭을 번제로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다른 사람들이 자녀를 생각하는 것보다 특별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삭과 함께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3일 만에 도착한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제 아내는 저를 만나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돈 없는 전도사 만나서 직장생활해서 제 학비를 공급해줬고 첫 아이 모세를 가졌을 때는 임신중독에 걸려서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몸이 너무 부어서 병원에서 산모나 아이 둘 중에 하나가 죽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각서에 도장 찍고 수술을 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제 아내가 한번은 그 때를 회상하면서 그 때는 정말 힘들었답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고 하더군요. 사랑하면 모든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습니다.
5)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환경을 극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연애할 때 아내와 함께 한강 고수부지에 간적이 있습니다. 아마 가을이었던 것 같은데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내렸습니다. 상당히 추었던 것 같은데 우리는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왜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까요.
우리는 결혼 9년 차가 될 때까지 상당히 어렵게 살았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때로는 쌀도 떨어졌고 아이 우유를 사줄 돈이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환경을 극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할 때 기독교인들은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지하 동굴에서 살았으니 환경적으로 보면 불행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행복하게 생활했습니다. 동굴 속에서 살았지만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군대 가기 전에 성가대의자에서 겨울 3번을 지냈습니다. 정말 추웠습니다. 지금이야 건물 벽이 두껍고 보온처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 안에 있으면 견딜만합니다. 그 때는 정말 추웠습니다. 정말 오돌오돌 떨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전 행복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환경을 초월해서 환경과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환경 때문에 마음의 천국을 잃어버린 분이 계시다면 주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주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만으로 만족스러운 삶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시고 담대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사랑할 때 신앙생활이 행복합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극복됩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멘토 다윗
(시 18:1-6)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18편은 다윗의 노래입니다. 중요한 것은 백발이 성했을 때 쓴
고백입니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나이 먹은 다윗! 그런데 생동감이 더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너무나도 사랑한 다윗! 우리도 다윗을 본받기
위해 우리의 멘토 다윗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오늘 1절을 보세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다윗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이유가 있어서 사랑을 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사랑은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의 전부인 것을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곳에 "갑순이와 갑돌이가 살았더랍니다." "그런데 둘은 서로 서로 사랑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했습니다." 그런데 갑순이가 시집을 가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날 밤
새도록 갑돌이는 달보고 울었지만 소용이 있습니까? 고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고백 없는
사랑은 죽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갑돌이가 갑순이를 붙잡고
"나의 사랑, 나의 갑순이"라고 했으면 다른데 시집을 가지 않습니다. 또 갑순이는 갑돌이
를 붙잡고 "나의 사랑, 나의 갑돌이" 이렇게 고백하면 무언가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겠습니
까? 사랑에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 아십니까? 언제 고백해 보셨습니까? 얼마나 되
셨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겠죠. 아니! 사랑할 이유가 있어야죠. 얼마나 힘든데---
그러나 그 유명한 시편23편1절에도 무슨 말씀이 나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인 것을 알아
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셨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다윗의 능력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표현을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반석, 요새, 바위, 방패, 뿔,
망대 등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 '나의'라고 하는 말이 들어갑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
이 경험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인 것을
믿으십니까? 내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보호해주신 것을 믿으십니까?
오늘 본문 2,3절은 다윗이 경험 한 하나님에 대해서 간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이것이 우리의 관건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
습니다. 일을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못된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
하면 다섯 명의 시체를 차에 놓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다닙니다. 많은 돈도 아닙니다. 잘못
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잘못되면 파멸, 파괴가 옵니다.
청년들! 교회 안 다니는 사람과 결혼하면 망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망하셨던 분들
이 여기에 많이 계셔요. 세상사람을 사랑했다가 망한 사람 많습니다. 같은 사랑을 해도 말입
니다. 그런데 올바른 사랑을 하면 엄청난 파워가 나타납니다. 상상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현실요법을 만든 유태인입니다.
그가 그 유명한 아우슈비치 형무소에서 죽어 가는 유태인들의 모습에 대해서 책으로 썼습
니다. 비누 재료를 쓰기 위해 아침에 독일군들이 들어옵니다. 거기서 걸리는 사람은 죽게 되
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전쟁이 끝나서 살아남은 포로들을 보니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돌아갈 것을 꿈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먹을 물을 주면 먹는
것이 아니라 세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유리로 면도를 한 것입니다. 독일 병정들이 볼 때 힘
있게 보인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무엇을 물어보십니까? 돈 있냐? 야! 너는 어느 대학 나왔니? 공부는 잘하니?
건강은 괜찮니? 아니었습니다. 세 번 강조하신 질문이 무엇입니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모든 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자 베드로의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100세 된 나이에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야속하게 말씀하십니다. 내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힘듭니다. 다 내놓으라고 하는 거예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래도 네가 나를 더 사랑하시는가 확인하시기 위함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라. 그리고 난 다음에 네가 하고
싶은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사랑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아름다워집니다. 발걸음이 분명히 달라집니다. 감격이 있습
니다. 사람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화를 받아 상담하는 분이 계십니다. 10년 이상 근무를 하니 사람 목소리를 들으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답니다. 하물며 영혼이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세상이 힘들어집니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잃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잃었습니다. 자녀의 사랑을 잃었습니다. 교인
끼리 사랑을 잃었습니다. 친구끼리 사랑을 잃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 사랑을 회복해야 하는데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사랑 받는 법도 배워야 합니
다. 능력 있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보십시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베풀지 못합니다. 결코 자기 논리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철을 다닐 때 어려운 분들 타시잖아요? 그때 "앵벌이 다른 사람들이 다 빼앗아 간다
며?" 돈 꺼내려고 하다가 다시 집어넣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참 지저분하게 사는 겁니다.
이왕 하는 것 이렇게 해보세요. 500짜리 주머니 동전에 집어넣고 다닙니다. 그리고 어디 그
런 분들이 오지 않나! 준비하는 겁니다. 찬송소리가 납니다. 아! 감격해합니다. 드디어 오셨
구나! 준비합니다. 그리고 신이 나게 넣는 것입니다. 같은 인생이지만 얼마나 멋있습니까?
500원으로 이 이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영혼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사
랑을 경험하길 원하십니까?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을 사랑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삶이 기도였습니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 찬송 받으실 여호와라고 했으니까 다윗이 찬송을 누구께 했습
니까? 하나님, 여호와께 한 것입니다. 그리고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아뢴다는 말
은 '기도하리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결국 다윗은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찬송, 하나님께 기
도, 하나님께 영광, 다윗은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였을 뿐이요, 수단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수단으로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께 찬송, 이 하나님께
기도, 이 하나님께 영광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만났더
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목적으로 믿었기 때
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마음에 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왜 왕의 자리
인들 주시지 않겠습니까? 영화와 부귀를 왜 주시지 않겠습니까? 영화를 목적으로 하면 안
되지만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다 보면 영화는 얼마든지 주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다윗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도우심)을 체험하고 나의 사
랑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전부였습니다. 결코 한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하이든이라고 하는 사람을 알고 계시지요?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 사람입니다. 유명한 작
곡가입니다. 믿음도 끝내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가 작곡한 '천지창조'라고 하는 오
라토리오를 비엔나에서 연주할 때입니다. 우리 나라 나이로 76세 때에 이제는 너무 늙고 병
들어서 하반신을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휠체어에 실려 비엔나에서 공연하는 장소까지
가서 참여하여 발코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공연이 끝나자 얼마나 우뢰와 같은 박수
가 터져 나오는 지 모릅니다. 일반 청중들은 하이든이 왔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사회하는
사람이 하이든을 소개를 합니다. 박수가 그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영광이 몽땅 자기에게
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라고 외칩니다.
그래도 박수가 끝나지를 않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일어났습니다. 결국 쓰러졌습니다. 청중들
이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멈추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도 "나는 아니다."라는 것입니
다. "오직 하나님께 이 영광을!"이라고 계속합니다. 1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77세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나는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 이 영광을!"
그리고 운명합니다. 이 하이든에게 하나님이 자기의 전부였습니다. 음악인에게는 음악이 전
부가 아닙니까? 음악을 통해서 돌아오는 영광을 전부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의 음악은 전
부 하나님을 위한 음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부분으로 믿지
마시고 또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은 우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고백이 바로 "나의 전부, 나의 하나님." 다윗과 같은 고백 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윗의 가장 탁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자기의 인생을 기도로 삼았습니다. 다윗
의 탁월한 특징은 인생 자체가 기도입니다. 삶은 기도로 채웠습니다.
예를 들면 많은 분들이 운전을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운전을 하기 전에 기도하는 분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
문에? 아니오! 더 중요한 것은 내 생활 하나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복을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잘 때 기도하면 꿈을 안 꿉니까? 아니오! 내 삶의 전부가 하나님이 함께 하
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한번 볼까요? 다윗의 삶 자체는 기도였습니다. 모든 것이 기도제목이었습니다.
다윗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왕입니다. 당시에 왕은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
님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예! 반석, 요새, 피난처, 산성 등으로 부릅니다. 전쟁에서 질 수
도 있습니다. 그때 피하는 곳이 요새요 산성 피난처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아! 얼마나 감동 있는 고백입니까? 실제적인 고백입니까?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뜬구름의 하나님이 아
닙니다. 우리 아이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내가 걸을 때 함께 걷는 하나님! 내 인생
을 함께 하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지금 여기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학생들은 하나님께서 내 눈에 보이는 전공 책입니다.
만약 음식장사를 하는 분들에게 불이 없으면 안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마치 음식을 데
울 때 불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자기 신앙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화장이 촉촉하게
되는 기초화장품과 같은 분이 하나님이시군요 라고 하는 실제적인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현주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충청도에서 영성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이사를 갔습니
다. 갔더니 바퀴벌레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식구들이 잠을 잘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퀴 약을 놓고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아서 다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
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바퀴를 없애달라고? 아멘?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할렐루야! 우리주
님께서 바퀴를 없애 버리셨습니다. 믿습니까? 아니에요. 어느 날 갑자기 바퀴 한 마리가 목
사님을 쳐다보는 거예요, 뚫어지게. 그래서 파리채로 죽이려고 하는데 말을 하더라는 겁니
다. "날 왜 죽이려고 하냐?" 그러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글쎄 너는 바퀴벌레잖아!"
그랬더니 "아니 벌레라고 죽이라는 법이 어디 있냐?" 째려보는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
니 맞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럼 나가라! 여기 우리 집이야" 그랬더니 벌레 왈 "무슨 소리야 우리
가 몇십 대 여기서 살고 있는데---" 그래서 목사님이 지금도 함께 더불어 살고 있답니다.
그 후로 조화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은혜를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삶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고. 굶지 않고 먹이지? 들에 있는
백합화를 봐라, 예쁘게 있지? 백합화도 입히시거늘 너를 벌거벗고 살게 만들겠니?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네 삶을 보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보십시오,
적어도 현재 나를 내 주위를 보십시오, 대단하지 않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 헛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연결시켰습니다. 그러
니 놀라운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연결시킨다고요?
기도입니다. 기도밖에 없습니다. 내 전공을 기도합니다. 내 사업을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썩습니다. 도리어 세상에서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여러분들은 남들이 못 본 것을 보신 분들이 계십니다. 남달리 은혜를 경
험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돈이 기도로 연결돼야 합
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이 기도로 연결돼야 합니다.
혼자서 클래식 들으면 어떻게 됩니까? 썩습니다. 가지고 있는 은사를 함께 그 지식과 음
악을 나누는 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그때 음악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치유를 드러낼 수 있
는 겁니다.
다윗도 악기를 기가 막히게 탔습니다. 그러나 혼자 즐기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기도가 있
었습니다. 그래서 그 악기를 통해서 악령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제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지 않으면 썩습니다. 저는 저희교인들이 싱싱한 성도들
이 되시길 바랍니다. 삶을 기도로 드리십시오. 기도로 여러분들의 나태한 삶을 살려 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금요기도회를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엎드려야 합니다.
셋째. 다윗은 세상 속에 뛰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면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본문 4-6절을 보면 다윗은 벌벌 떨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어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만하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변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늘 나라가 가까운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쉬겠다는
겁니다. 참 우스운 것입니다.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여유 있다 못합니다. 어떤 분은 신앙 생활
을 열심히 하라고 하면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왕년에 개척교회에서 정말 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요. 사람들한테 부딪
칠까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은 집에서 성경이나 읽고 기도하고 사
셔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 생활 잘 하실 것 같죠? 아닙니다.
초대교회 유명한 제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상과 담쌓고 정결하
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새장 만한 방에서 수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는 나중에 그런 말
을 하였습니다. "이 안에 있으니 더 욕망만 생기고 미움만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새장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인! 변화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강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렇게 많은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가
지고 세상에 뛰어든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33-34절을 보십시오. "나
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
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어디 구석에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암사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찰스 윌리엄스라는 사람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죄악 속에서 승리를 이끄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으니 세상이 나를 그냥 놔둡니까? 여전히 세상은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
니다. 컴퓨터만 키면 음란물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목사한테도 하루에 '오빠 열어봐.' 이런
것이 매일 와요. 제가 무슨 지 오빠입니까? 매일 지우고 차단해도 계속 옵니다. 그러니 여러
분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영성을 붙들어야 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성벽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다윗은 처음 성벽이 목동시절에 짐승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골리앗을 넘었습니다. 마
지막으로 자신의 장인인 사울 왕을 뛰어 넘었습니다. 늘 뛰어 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웃인 아파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뛰어 넘어야 합니다. 시간을 내서 커피
를 꽁짜로 주는 벽이 있습니다. 조용히 말을 걸어야할 벽이 있습니다. 아마 문에서 박대 당
할 벽도 있을 겁니다. 창피하시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마지막 날에 너를 모르겠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 모두가 우리의 멘토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다윗을 통해서 세 가지를 붙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사랑하면 위대한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
다.
둘째는 우리 인생을 기도로 연결해야 썩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왜? 곧
썩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하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세상 속에 뛰어 들어가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향력을 주
어야 합니다. 사명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조용히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말씀의 능력
붙들고 세상에 뛰어들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종들이 되는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