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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알바트로스
제61차 정기합평회
(2024. 6. 20.)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고립의 꿈 | 김경 | 변미순 |
2 | 스틸 라이프 | 김영희 | 서소희 |
3 | 사랑한다고? | 김정실 | 안연미 |
4 | 책상이 생겼어 | 서소희 | 엄옥례 |
5 | 뛴다 | 백금태 | 오수미 |
6 |
고립의 꿈/김경
그토록 꿈꾸던 상황이 벌어졌다.여행지에서 발이 묶이는 행운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우연을 빙자한 피치 못할 고립이 내게 일어나 주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서른에도, 마흔에도피해가던 고립이 환상이 희미해질 무렵에야 떡하니 현실로 다가왔다.
몽골 여행을 마치고 울란바토르의 신공항에서 출국 절차를 밟았다. 비행기 탑승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엿새 동안의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마지막 쇼핑거리를 매의 눈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면세점을 샅샅이 뒤지며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전투적인 자세로 사람들은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어김없이 탑승시간은 다가왔고 일행들은 정해진 게이트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그런데 좀체 문이 열리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비행기가 이륙할 것처럼 재촉하던 안내 방송은 어느새 조용해졌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현지 가이드는 공항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며 출국 절차만 대충 일러주고는 일찌감치 돌아가 버린 뒤였다. 다른 게이트의 여행객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도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한참 뒤에야 서툰 한국말로 안내 송이 나왔다. 비행기에 결함이 생겨서 보수 중이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물을 수도 따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 와중에 이렇게 많은 한국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면서 한국어에 능통한 직원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고분고분 다음 안내를 기다렸다. 창밖의 깜깜한 어둠이 이국의 낯섦을 실감케 했다. 누군가는 우리가 나갈 게이트 쪽을 왔다 갔다 하더니 저 비행기가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창밖에는 미동도 없이 비행기 한 대가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그 사이 온갖 나라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렸다. 이제 공항 로비에는 우리 일행만 오롯이 남게 되었다.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고 보니 슬슬 불안감이 밀려왔다. 만약 저 비행기가 수리가 끝났다고 한들 그것도 믿지 못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 비행기인데 그 나라 사람들이 고칠 수 있을지 기술에 대한 불신마저 고조되었다.
다시 방송이 나온 건 사람들이 반쯤 포기하고 매점에서 사 온 술이며 과자로 잡담에 빠져있을 때였다. 한국에서 다른 비행기가 출발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멘붕이었다. 그때 몽골은 막 가을에 접어들어 있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여행하다가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한국 날씨를 고려해 모두가 공항에서 여름옷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짐을 몽땅 수화물로 보냈으니 추위에 견딜 일이 걱정이었다. 그나마 나는 긴 소매 옷이 있어 그것을 입고 사람들이 뜸한 곳에서 의자 여러 개를 차지해 누웠다.
불안이 기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다시 우리를 태울 버스가 와서 별빛 찬란한 초원의 게르로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짜릿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왠지 아쉬움이 남았던, 너무도 빨리 끝나버린 일정에 이벤트가 될 기회를 얻을지도 몰랐다. 여행은 때때로 선물 같은 이변이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니까.
웅성거리는 소리에 깨고 보니 눈앞에 희한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투명 비닐 포대를 얼굴까지 뒤집어쓴 사람들이 일렬로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수십 명이 시체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진풍경도 그런 진풍경이 없었다.찰나의 이상은 달콤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비닐 포대를 구하지 못한 나는 친구와 등을 맞대고 온기를 나누었다.
공항에 담요 한 장 없는 현실, 그 나라의 가난한 실정이 비로소 실감 났다. 비몽사몽 오돌오돌 떠는 사이 새벽하늘이 부옇게 밝아왔다. 동시에 우리를 태워갈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게이트 앞으로 달려갔다.일 초라도 더 빨리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심정은 모두가 다르지 않았다.
고립을 꿈꾸지 말라! 비행기 의자에 몸을 구겨 넣자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왔다. 한밤을 이국의 공항 로비에서 거지꼴로 지새운 서러움이 내 안에 남아 있던 환상의 마지막 한 조각을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 고립의 민낯을 확인하고 보니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만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스틸 라이프/ 김영희
1병원 복도에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화병에 담긴 꽃은 은은한 파스텔 톤으로 화가의 손끝에서 물감으로 채색되고 의미화되어 완성된 작품이다. 꽃병에는 버터플라이, 수입 장미, 베고니아 등이 그려진 정물화로 스틸 라이프라 한다. 스틸 라이프란 과일, 꽃, 화병 등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물체들을 놓고 그린 그림이다.
2정물화를 보고 있으니 갇힌 생활이 일상이었던 A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애잔한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친구는 집이 덩그런 2층 양옥집에 살았었다. 학교 근처의 집이라 친구 집에 한 번씩 갔었다. 집에는 먹을 것이 많아 우리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집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적막했다. 친구는 학교와 달리 집에서는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3하루는 친구 집에 갔더니 몸이 안 좋아 일찍 퇴근했다며 A가 계셨다. 뽀얀 피부에 동양적인 이목구비는 복스러운 부잣집 마님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생기 없고 수심에 쌓인 듯한 얼굴은 마음의 상처가 은연 중 드러나는 듯했다. 친구는A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4 A는 친정에서 무남독녀로 외롭게 자랐지만 배움이 많았다. 자매가 없어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의과 대학을 졸업했다. 여의사가 되어 흰색 가운을 걸친 A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5 A의 남편은 총각 시절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 강단에서 강의했었다. 총각 집에서A의 집에 중매를 넣어 청혼이 성사되었다. A는 신여성이었지만 부모님이 정해주는 사람을 인연으로 받아들였다.
6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A는 병원 월급 의사로 근무했다. 결혼 후 아기를 낳고 개인 병원을 개업해 병원을 운영했다. A의 남편은 국립대학 강사에서 교수로 자리를 굳히며 권위와 명성을 한 몸에 누렸다.이 부부는 최고의 엘리트로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7하지만A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다. A의 남편은 일상에서 권위적이며 벽창호처럼 고집불통으로 일관했다. 자신이 최고라는 의식이 강해 주변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조언은 귓전에 흘려버렸다. 집안에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었지만 A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완벽주의 남편은 고함을 지르며 훈계하는 방식이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 A의 마음은 서서히 멍울이 져 갔다.
8 A는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퇴근했다. 남편과 함께하는 외출 외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같이 야외라도 가자는 A의 제안은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언제나 서재에서 강의 준비를 하거나, 직장과 관련된 대인관계를 하느라 집에 신경 쓸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A는 주중에는 병원 일에 주말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는 일에만 신경을 써야 했다.
9 A는 집과 병원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바깥세상을 접하지 못했다. 아내와 엄마, 의 사로서의 소임으로 청춘을 보냈다. A는 젊은 시절,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현실에 갇혀 지내는 삶에 차츰 적응되어 갔다.
10아들이 커서 의과대학에 입학 하자 A에게 한 줄기 빛이 보이는가 싶었다. A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었다. 얼굴에는 잔잔한 전율이 스치는 것으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했다. 행복도 잠시,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숙명으로 여겼다. A는 거울 앞에서“이제는 미워질 일만 남았다.”며 얼굴이 세월에 비껴갈 수 없음과 무상함을 서글퍼했다.
11주방에 가스 불을 끄지 않아 집안에 화재가 발생했다. 언제부턴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 기억이 방전되는 일들이 잦아졌다. 혹시나 하고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치매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은 믿어지지 않았다.엘리트라 자부했던A에게 치매라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여겨졌다.
12의사로서의 이상과 포부는 컸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평생 소마소마 가슴졸이며 살았다. 커다란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면 한숨이 남모르게 엉기면서 A를 괴롭혔을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사람들이 예뻐하고 부러워하는 꽃들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을까.
13치매를 사실로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A는 점점 현실과 가까운 기억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집 안에만 맴돌 뿐 집 근처 공원에 산보조차 다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액자에 걸린 정물화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아들이 스케치북에 내어주는 숙제는 빠트리지 않고 꼬박했다. 행동반경이 단조로웠던 것을 몸이 기억하는 탓일까.치매였지만 예쁜 치매에 걸려 몇 년을 두문불출하며 집안에서 생활하다 돌아가셨다.
14정물화를 보고 있으니 평생 액자처럼 갇혀 생활한 A가 떠오른다. 그림은 액자 속에 든 정물화라 가까이 다가갈 수 없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자신이 꿈꾸었던 능동적인 삶을 살았더라면 불행은 먼 이야기였을 텐데. 정물화는 멀리서 보면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꽃병에 꽂힌 꽃에 불과하다. 병원 복도에 걸린 그림에서A의 얼굴이 투영된다. A는 친구의 엄마이다.
사랑한다고?/김정실
1.시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탔다. 카드를 대니‘사랑합니다.’라는 멘트가 났다. ‘웬, 사랑합니다, 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보니 타는 사람마다 멘트가 다르게 나온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2.일반인이타면‘감사합니다.’학생들이 타면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나이든 사람이타면 ‘사랑합니다.’하는 소리를 했다. 나는 순간 머리에서“찡”하는 울림이 오면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지금 공짜로 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일이 아닌가. 옆에 앉아있는 사람도 듣기가 거북한지 소리가 너무 크다고 중얼거렸다.
3.동사무소에서 무임교통 카드를 받고 기분 좋아 했다. 그런데 그 카드가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라는 것을 알리면서 폄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무임교통카드를 부탁한 적이 없었다. 기분이 엄청 더럽고 동냥 받는 꼴의 모양 세가 되였다. 서울에는 ‘건강하세요.’라고 한다는데 그 말에도 기분이 나쁘다는 말들이 많다.
4.정작 내가 화가 나는 것은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데 대한 씁쓸함이었다. 사랑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아무데서나 아무에게 마구 사용 할 말이 아니다. 그들이 언제 나를 보았으며 알았다고 ‘사랑합니다.’를 쓴단 말인가. 사랑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5.사랑은 표현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진실 된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이 된다.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다. 아니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무언으로 느껴오는 감동이 있다.
6 요즘시대에는 이 표현을 자주 할수록 사람의 마음과 생활이 편안하고 넉넉해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생각 없이 듣기 좋으라고 마구 잡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참되고 진실 된 사랑이 팽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엿장수 마음대로 가위질 하듯이“사랑합니다.”라는 멘트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보였다.
7.다시 예전 쓰던 교통카드를 사용했다. 얼마만큼 쓰고 나니 보충을 해야 했다. 친구들 모임에서 불평을 했더니 구박을 받았다. 우리는 무임교통카드를 쓸 수 있는 자격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여태 것 생활해 오면서 나라에서 내라는 세금은 날짜 어겨 본적 없고 적십자 회비 꼬박 꼬박 지금까지 내고 있다고 하면서 당당하다고 했다. 무슨 소리를 하든 무임인데 어떠냐고…….
8.한 친구가 칠성시장을 가야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집에 외손자가 와있어 뻥 튀기기 종류의 과자를 사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과자는 어느 마트에 가든 얼마든지 있다고 하면서, 11층에서 지하 식품점에 가면 된다고 했더니 그녀의 말은 이랬다. “시간도 있고 차비도 내지 않는데 다리운동과 시장구경 삼아 간다는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고 친구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9.다시 한 친구가 이유 있는 설명을 보태었다. 멘트를 구분하는 것은 버스회사의 회계 상태의 데이터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루에 성인, 학생, 노인, 몇 명으로 회사의 수입 상태를 알려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무언지 모르게 나에게는 거부감이 왔다. 기사들은 자리를 찾아 앉는 것이 느리고 어둔한 사람에게는 빨리 앉으라는 재촉을 해댔다. 이런 것이 그들이 멘트로 내 뱉는 사랑이란 말인가?
10.한 편으로 일반 카드 오 만원 보충은 금방 없어진다. 십 만원 보충을 해야 어느 정도 사용을 할 수 있다. 이러고 보니 내속에서 두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친구 말대로 우리는 당당하고, 무슨 소리를 하든 어떠랴. 무임교통카드를 사용할까 하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11.다시 무임교통카드를 찾으니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서류 두는 곳에 두었나 싶어 보니 없다. 그날 들었던 핸드백에 있나 싶어서 열어 봐도 역시 없었다. 다시 발급을 받으려면 동사무소에 가서 삼천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다.
12.동사무소에 가야지가야지 하면서 여태 미적거리고 있는 마음은 찾으면 나오겠지 하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에게 했던 소리가 들린다. “헛 똑똑히.”하고 중얼거렸다.
책상이 생겼어/ 서소희
1)오래 전 책상이 없었어. 책을 읽을 때는 소파에 앉아 읽었고 글을 쓸 때는 다탁에서 쓰고는 했지. 물론 한창 공부하던 학생 때도 책상은 없었어. 그런 환경에서도 부모님은 공부해라고 했어. 대체 책상도 없는데 어디서 공부하라는 것인지.
2)숙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는 밥상을 폈어. 밥상이 책상 역할을 했어. 그나마 집에서는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독서실이라는 곳과 시립 도서관이 있었어. 생각해 보면 시립 도서관을 많이 이용했어. 그때 입장료가 백 원이었는데 그것도 몇 년 지나니 공짜가 되더라. 독서실과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고 해서 공부를 잘 한 것은 아니야. 그나마 그곳들이 있어 꼴지는 면했던 것인지 몰라.
3)학생시절이 지나고 처녀시절에도 주로 도서관에서 놀았어. 나는 남들보다 처녀시절이 길었어. 한마디로 노처녀 딱지를 오래 붙이고 다녔어. 아침이면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고 점심을 사먹었어. 저녁이면 퇴근하듯 도서관을 나왔지. 그곳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문학책을 읽었어. 한 달에 두 번 도서관이 휴관을 하면 갈 곳이 없었어. 텔레비전도 시시하고 세상사는 것이 왜 이리 심심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 그 시절 도서관은 가장 좋은 놀이터였단다..
4)누구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었냐구? 처음에는 누군가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 책을 읽다가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실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말이야. 난 혼자가 편해.도서관을 다니다 보니 혼자인 것이 좋았어.
5)매일 도서관에 있는 나를 향해 누군가 그러데. “너 집이 불편하구나.”글쎄?그때는 노처녀 딱지가 딱 붙어 있던 때였기에 친구들은 내가 집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야. 집이 불편해서 도서관을 좋아했던 것일까.그건 아닐 거야.
6)직장을 다니지 않고 마냥 노는 듯 보였지만 사실 마냥 노는 것은 아니었어. 일정한 수입이 있었으니 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은 받지 않았던 거야. 가끔 경주,혹은 전주 등으로 간다고 했던 것 기억나니? 그럴 때마다 자식 키우기에 바빴던 너는“팔자 좋네”하며 약간 비꼬기도 했지. 아마 여행을 가는가 보다 생각했던 모양이야. 하지만 일하러 갔던 거였어.
7)집에서 천덕꾸러기가 아니었으니 도서관이 피난처는 아니었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믹스커피를 마시면 인생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 믹스커피는 달달하고 책속의 이야기는 재미가 있었어. 그때부터 책 읽는 습관이 붙은 것 같아.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슬쩍슬쩍 닦기도 하고 졸리면 엎드려 쪽 잠도 잤지. 잠깐 졸고 있어나면 머리가 개운해졌단다. 너도 나처럼 그런 기분 느껴 본적 없니?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런 기분 모른다구. 그래, 애석하게 대부분의 사람이 책 읽는 것을 즐겨하지는 않지.
8)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넒은 공간에 있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좋았어. 이상하게 도서관에 있는 책상에 앉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랄까.아마 내가 도서관에서 제일 좋아했던 것은 눈앞에 펼쳐지는 확 터인 공간과 책상이었던 것 같아.
9)노처녀였지만 결혼보다 분가를 생각하고 있었어. 인생에 있어서 혼자만 한번 살아보고 싶었어.나만의 집이 생기면 그때 꼭 큰 책상을 먼저 마련해야지 하는 상상도 했었지. 결과적으로 결혼 전까지는 분가를 하지 못했어. 부모님께 얹혀사는 것이 편했고 경제적으로도 덕이었기 때문이야. 물론 부모님도 노처녀가 혼자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단다.
10)삼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결혼을 했지. 그 후, 비로소 나만의 집이 생겼어. 그렇다고 책상이 생긴 것은 아니야. 그때는 책을 읽을 때는 소파에 앉아서 읽고 일기를 쓰거나 글을 쓸 일은 거의 없었어. 그러니 딱히 책상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큰 책상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잊어버렸단다. 하지만 다 잊었다고 살아가면서도 문득문득 이상하게 갖지 못한 책상이 아주 잠깐씩 떠오르고는 했어.
11)드디어 나도 책상이 생겼어.언 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 버렸을까. 내 나이 벌써 오십을 훨씬 넘겨버 렸어. 몇 년 전 이 아파트로 이사를 올 때 남편은 나만의 책상을 만들어 주었어. 건축 자재상에서 넓은 나무판을 사와서 책상을 만들었단다.길이가180센티미터야. 넓이도 적당해. 거실과 작은 방은 가벽으로 분리되어 있었지. 그 가벽을 부수고 두 공간을 텄어. 그리고 헐어진 가벽자리에 책상을 앉혔어.또 그 앞에 소파를 두었지.거실과 서실이 하나의 공간에 존재하게 된 것야.
12)얼마나 다행이니 반백년을 넘긴 지금 넓은 책상을 가졌다는 것이. 다 늙어서 뭔 책상이 필요하냐구? 너 모르는구나. 넓은 책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 얼마나 맛있는데. 그리고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지고 책도 읽고 싶어지는 법이야. 또 매끄러운 책상을 만지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나기도 해.
13)나는 오래전부터 꿈이 있었어.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넓은 공간에 커다란 책상이 있는 서실을 갖는 것이 꿈이었지. 참 단순한 꿈이지.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기도 해. 책상이 있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고 또 그 만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도 숨어 있는 거야.
14)흰머리 늙은이가 돋보기를 끼고 낡고 손때 묻은 커다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봐. 영화의 한 마지막 장면처럼 멋지지 않니? 나는 그렇게 늙어가고 싶어. 하여튼 그 꿈이 첫 발을 내디딘 거야. 책상에 앉으면 거실과 창밖의 푸른 숲이 보일거야. 숲을 바라보다 책을 읽고 혹은 글을 쓰다 창밖의 숲을 쳐다보기도 할 작정이야.
15)요즘은 책상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텔레비전도 보고 책도 읽는단다. 책을 비롯해, 수첩, 노트북, 필통과 볼펜을 책상에 다 올려 져 있어. 그렇다고 책상 위를 자주 치우지도 않아. 혹시 내 책상을 볼 기회가 되면 어질러 놓고 사용한다고 욕하지는 말아줘. 그러다 또 마음에 동하면 깨끗하게 치우기도 하겠지.
16)딱히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책상을 만지면 손때를 묻힐 거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식은 시간이 지날때마다 묻혀진 손때가 아닐까 싶어. 너도 가끔 와서 책상에 손때를 묻혀줄래? 초대만 해 달라구? 좋아, 좋아. 언제 같이 넓은 책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어보자. 그러다보면 너도 너만의 책상이 갖고 싶어질지도 몰라. 책상에서 책을 읽고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우리 늙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어때? 좋다고? 그럼 우리 함께 멋있게 늙어가 보자.
뛴다/ 백금태
1) 얼마 전, 초등학교 동기회에서 봄놀이를 갔다. 졸업한 지6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세월이다. 80여 명의 졸업생이 누구는 하늘로 가고, 아프고, 타지로 떠나는 등등의 이유로 쉰 명 남짓 남았다. 그나마도 여행길에 오른 이는 삼십 명 내외였다.쭈글쭈글한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우리 건강하자고 억지웃음을 짓는다.
2) 초등 동기회가 결성된 지50년이 넘었다. 신년회, 송년회, 봄가을 나들이, 체육회 등등 동기회 행사는 끝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 자식들의 혼사가 시작되니 행사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동기의 자녀 결혼식 날이 바로 동기회 날이었다. 혼주가 주는 답례금을 두둑이 받아쥐고는 식당으로, 야외로 자리를 옮겨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고 먹으며 동기의 정을 쌓아갔다. 이제는 결혼식 날의 동기회도 차츰 빛을 잃어간다. 집마다 절혼 했거나 몇 남은 자식은 결혼을 포기했는지, 아니면 인연을 찾고 있는지 결혼 소식이 뜸하다.
3) 동기회 행사의 꽃은 단연코 붐,가을 나들이였다. 일 년에 두 번, 50여 년을 이어왔으니 거의 횟수로100번은 족하다. 매년 참가하는 사람 수만 줄었을 뿐이지 지금도 행사는 여 축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동기생 모두가 목을 매는 행사인지도 모른다. 나들이를 위해 며칠 아니 몇 달 전부터 체력보강을 한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나들이를 무사히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4) 나들이 날 꼭두새벽에 관광버스에 오른다. 밥이며, 떡이며, 과일이 관광버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는다.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이 술이다. 소주에 맥주에 막걸리까지 동원된다.사정이 좋은 해는 양주까지 곁들어진다. 그 많은 것을 어찌 다 처리할까 걱정하지만 돌아올 때쯤에는 거의 다 동이 난다. 사람의 뱃 속 크기는 얼마 만일까 궁금해진다.
5) 관광버스가 출발 시동을 걸고 바퀴가 움직이자 아이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회장은 술병을, 총무는 술안주를 들고 술잔을 건넨다. 술잔은 바꾸지 않고 하나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의 침이 묻든,병이 옮든 개의치 않는다. 따라 준 술을 한 방울 남김없이 비워야 다음 사람에게로 술잔이 넘어간다. 술을 피하려 해 보지만 버스 안이니 도망갈 곳도 없다. 그렇게 술잔이 한 순배 돌고 나면 술 따르기 바통이 넘어간다. 전 회장, 전 전 회장 등으로 몇 순배 돌고 나면 너네 없이 정신이 알딸딸하고 얼굴은 불콰해지며 기분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때부터 춤판이 벌어진다. 차 통로는 발 디딜 틈 없이 복작거린다. 엉덩이에 엉덩이가 부딪히고, 젖가슴 위에 젖가슴이 포개어진 채 흔들어댄다. 운전기사도 더 격하고 신나는 음악을 틀어 광란의 몸짓에 힘을 보탠다. 차 바퀴가 구르는 이상은 뛴다. 휴게소에서는 쉬는가 싶지만, 그 시간마저도 아까워 화장실 갔다 오기가 바쁘게 주차장 마당에서 또 한숨베 뛰고 올라온다.그 랬는데 영원할 것 같았던 동기들의 체력도 세월 앞에는 버틸 수 없는가.
6) 올해도 동기들은 어김없이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리가 듬성듬성 여기저기 비어있었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리가 모자라 보조 좌석까지 채우지 않았던가.해가 갈수록 빈자리가 늘어갔다. 아침밥을 먹고 회장이 술병을 들고 권하지만 너도나도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회장도 예전처럼 술잔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미 건강을 염려하는 나이가 되었다. 밥 먹기 바쁘게 뛰던 체력은 어디로 갔는지 조용하다. 술도 먹지 않았으니 맨정신으로 뛰기가 좀 머쓱하리라.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소곤소곤 정담을 나누는 이, 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이, 버스 안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는 것이 영 어색했다. 참다못한 몇몇이 옛날 분위기가 그리워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7) 점심시간,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들어갔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져 있었다.회를 비롯한 해산물이 술을 불렀다. 하지만 상에 올려진 술병은 뚜껑도 열리지않은 채 괄시받고 있었다. 너도나도 밥그릇에만 열심히 손이 갔다. 점심을 마친 이들이 누가 빨리 나오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듯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것 또한 전과 다른 풍경이었다. 점심에 반주를 곁들이다 보면 술에 취해 기분에 취해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음 일정을 다그치지만 벌어진 술판이 끝나지 않아 일정에 차질을 초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었다. 마시지않은 술병을 반납하기 위해 주섬주섬 챙기던 총무가 한마디 던졌다. “다 됐다,다 됐어.빨리도 일어나네. ”무슨 말인가. 서로 쳐다보며 씁쓸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8) 나들이하면 뛰기가 전부였던 동기들이었다. 펄펄 날던 힘이 소진되어 가고 있다. ‘뛴다’라는 단어가 점점 더 그리워지리라.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숨 죽은 초등 동기회 나들이 버스 안의 풍경에 세월의 무상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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