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테로스 왕국의 수도,@@@@의 중심지. 밤 늦은 시간의 궁궐에는 심야 당직 근무를 배정받은 기사들이 중앙홀에서 말없이 기둥옆에 서 있을 뿐이다. 일개 병이 아니라 무관 계급의 기사들이 경계를 서야할 만큼 중앙 홀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경비를 서는 다른 기사들은 그저 지루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멍하니 천장 위로 뚫린 - 미관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 돔을 보면서 하품이나 할뿐이다. 이때 왕좌에서 가장 가까운 기둥에 있던 이해원은 계단을 걸어 올라서 왕좌의 가까이에서 멈췄다. 다른 기사들이 보고 있지만 이해원이 무슨 행동을 하든지 말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 왕좌는 타가리엔 문중이 앉기에는 너무 아깝구나!"
"호오오오오. 우리 왕실이 아니라면 어느 문중이 이 왕좌에 앉아 있으면 어울리겠느냐!"
"................................"
(말없이 용상이 있는 계단에서 내려온 다음 담담하게 공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당직근무를 서는 일개 기사가 큰 불경죄를 저질렀사옵니다. 벌하여 주시옵소서."
"오호호호호호호호. 방금 전에 왕좌의 자격을 걱정하던 자가 이제 와서 현 왕실의 공주에게 벌해달라고 하니 너무 진지하구나. 호호호호호호호호호."
"......................................................................."
"왕좌에는 어찌하여 이리도 관심을 보이느냐?"
"천하강산을 통치하는 주상 폐하께서 앉으시는 왕좌이기에 한번 가까이서 관찰해본 것이옵니다."
"그런가~~~~ 호호호호호호호. 이 자가 왜 여기 있느냐?"
"이 자는 야간 경계를 맡은 당직 사관이옵니다. 주상 폐하가 알현을 받는 홀의 경비를 맡고 있습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이해원 바라테온이라고 합니다."
"부친이 누구인가?"
"휀트 공작님의 봉신이며 아캄 지역의 통치를 위임받은 줄리오 바라테온 상급기사이옵니다."
"아........... 바라테온. 휀트의 기수 가문중에서 봉토를 분할받은 귀족이 아니라 그저 기사??"
"그러하옵니다."
"공주님. 정식으로 봉토를 분할받은 귀족 문중이 아니라 그저 일개 기사의 문중이라면 60일간 왕실에 군무로 봉사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 기한을 채우려고 왕성으로 내려온 기사인듯 합니다."
"아아아아아. 그랬지. 대귀족의 문중에 소속되어 있는 많고 많은 기사 문중에서 바라테온의 성씨는 들어본 적이 없다. 호호호호호. 시골기사로구나."
"말씀이 지당하시옵니다."
"여자가 기사라니.......... 흥미롭구나. 여자인데도 기사 서임을 받을 수 있느냐?"
"오라버니들이 휀트 공작님에게 통치를 위임받은 봉토를 지키고 인민들이 감독하는 일에서 빠질 수 없기에 부득이하게 미천한 바라테온 경의 여식이 오라버니가 맡을 군무를 대리 수행하여 왕성으로 왔습니다."
"아아아아아. 그런가. 하긴. 시골기사 문중에서 그런 경우가 있지."
"공주님. 이 자는 불경하게 주상 폐하께서 앉으시는 왕좌에 대해서 감히 역심이 가득한 발언을 했사옵니다. 즉시 근위대에 인계하여 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됐다. 야밤에 당직 근무 서는 기사들이 왕좌에 앉아서 잡담을 나누거나 몰래 술 한병 마시는 것을 왕실 사무관이나 궁정상서가 모를줄 아느냐! 다 알면서 묵인하는 것이지. 오히려 늦은 시간에 중앙 홀에 내려오는 내가 좀 유별나지. 호호호호호호호. 뭐. 격식을 따지는 유서깊은 기사 문중이라면 딸내미에게 오래비의 군무를 대신 하라고 보내는 경우는 있을 수 없지."
"............................................................................................................"
"그대를 벌하지 않겠다. 방금 들은 발언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그대의 주군인 휀트 공작이나 그외 관계자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황공하옵니다. 공주님."
"그 옛날 타가리엔 왕실을 일으키신 초대 왕께서도 발리리아의 시골기사에 불과했다. 발리리아 중앙군에게 멸시당하고 발리리아의 천황은 내 조상님을 여러 전선에 밀어 넣고 온갖 위험한 임무를 맡겼지. 그대가 몇백년의 내 조상님과 겹쳐 보이는구나."
"공주님. 이 나라 강산을 개국하신 아에곤 대왕과 일개 기사 나부랭이를 같은 동선에서 놓고 보시면 안 됩니다."
"그대는 당장 일어나서 제 위치로 가라."
"예! 알겠습니다."
바라테온 기사는 일어서서 공주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자신이 경계를 서는 기둥 옆 자리로 돌아갔다. 홀에서 당직을 서는 다른 기사들은 피식 웃으면서 그녀에게 애정 넘치는 쪼인트를 작렬했다. 사실 공주와시녀들은 문을 열고 들어 오는데도 일부러 바라테온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바라테온이 왕좌를 보고 있다고 해도 바로 밑에 있는 기사가 알려줬으면 바로 왕좌가 있는 계단에서 내려왔다. 타가리엔 공주는 아버지의 용상에 털썩 앉았다. 왕의 여식이 아버지의 용상에 앉는다고 해서 불경스러운 일은 아니기이에 당직 기사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인데도 기사라........... 나도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전선을 누비고 싶구나."
"어머나. 공주님. 정숙하셔야 하실 고귀하신 분께서 그런 실언을 입에 담으셔서는 안 됩니다."
"왜. 여자가 전선에 나가면 안 된다는 법률이라도 있느냐??"
"중전 전하께서 들으시면 경을 치실 것입니다. 말씀을 자제하소서."
"명색이 기사 문중의 자제가 결혼하지도 못하고 남자처럼 갑옷을 입고 오라버니의 임무를 대행한다는 것은 문중에서 적당한 혼처를 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인의 몸으로서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왕성에 온 것이고 즉 혼인하지 못하고 평생 오라버니와조카들의 임무 대행이나 하다가 홀로 죽을 운명입니다. 지배계급의 딸로 태어나서 결혼하지 못하고 저렇게 사는 것 자체가 불쌍하고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호오. 그래. 난 그렇게 안 보는데."
"누가 봐도 일개 시골기사의 문중을 이어갈 아들을 보호하고자 시집갈 혼처가 없는 여식을 번거롭고 위험한 임무에 보낸 것이 아닙니까."
"여식을 시집 보낼 여건이 되었다면 가장을 계승할 아들이 직접 오지 여식이 임무 대행으로 오지 않습니다."
"재정이 빈곤하고 봉토가 적어서 정치적 역량에 한계가 있는 시골 기사 문중에서는 가끔 있는 경우입니다."
"하다못해서 처갓집을 대신해서 군무를 수행할 사위조차 맞이할 수 없을 정도도 열악한 현실의 기사 문중인듯 합니다."
"왕국에서 가장 강대한 대귀족중에 하나인 휀트 문중의 봉신중에서 저런 기사 집안이 있다니..... 휀트 공작이 금화를 적게 주는감?"
"그 명성을 알린 적 없는 바라테온,이라는 성씨라면 휀트 공작 휘하에 여러 귀족 문중에서 하청에 하청을 받는 기사 문중입니다. 아무리 강대하고 재정이 부유하다고 한들 휀트 공작께서 모든 기사들을 다 감독하는 것도 아니고 하청을 받은 귀족 가주들 각자 봉토를 분할해준 기사들의 재정 여건은 봉토를 어떻게 통치하느냐에 따라서 각자 다릅니다."
"적어도 휀트 문중의 직할 봉토를 분할받은 기사 문중이라면 저렇게 열악할리 없습니다. 휀트 공작의 체면이 있고 기사 집안의 여식을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군무 대행을 보낸다면 휀트 공작님께서 해당 집안의 가장을 불러서 크게 호통 치실 것입니다. 틀림없이 휀트 문중의 봉신 중 하나를 섬기고 있는 기사 집안입니다."
"기사들도 힘들겠어. 부유한 기사가 있는가 하면 빈곤한 기사도 있네. 방금전의 이해원처럼 말이야."
"기사들 각자 나름대로의 여건이 다릅니다. 거기에다 특정 봉신의 직속은 아니고 봉신에 준하는 상급 기사 아래에 서열대로 기사 집안이 정해져 있는데 이해원 바라테온은 가장 낮은 서열의 기사 집안의 여식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궁궐의 중앙홀 경비를 담당하고 있다면 그렇게 낮은 계급의 기사 집안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야간 경계를 명령받아 홀에 있는 기사들은 왕성으로 올때 최소한 휘하에 병사와수행원을 합쳐서 50명 가까이는 대동하고 오는 부류다."
"낮에 관련 문서를 읽어 보았는데 이해원 바라테온은 왕성에 출입할때 고작해야 수행원 15명을 대동하였습니다. 병사 7명,종자6명,의사 2명뿐이었습니다."
"뭐라고...............(0_0) 그런 애라면 고작해야 궁궐 정문 경비나 서겠지."
"저어어어어어. 홀 담당 야간 당직을 설 인원이 모자라서 이해원이 오자마자 근위대장이 곧바로 야간 당직을 명령했습니다. 왕실의 규정대로라면 재정이 빈약하고 수행원 숫자가 적은 기사는 궁궐 내부의 경계임무에 배정받지 못합니다. 옛날 같으면 있을 수 없지만 주상 폐하의 5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선대 왕부터 의무적으로 왕실에 봉사하는 기사들에 대해서 규율이 느슨해졌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수행원이 스무명도 되지 않는 기사 집안의 여식이라서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근위대장 이 양반도 참으로 게을러 터졌네. 왕실 수관이 알면 참으로 볼만하겠어."
"왕실에 의무적으로 봉사를 해야 하는 기사들의 기강이 많이 무너졌사옵니다."
"그보다는 휀트 공작이 크게 지적해야 옳은 일이 아닌가. 휀트 공작 역시 왕실에 대한 충의가 너무 방만해졌어."
"북부의 카스타크 공작이라면 어느 정도 성의를 들이기는 할겁니다. 최소한 본가를 대신하여 여식이 군무를 수행하려 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정말로 흥미로운 여자야. 이해원 바라테온."
그날 아침 해가 떠오르자 낮은 서열의 기사들이 경계를 서는 야간 당직이 끝났다. 궁궐의 시종들이 홀 청소를 하러 들어오자 기사들도 기지개를 펴면서 아침 식사를 하러 궁내의 식당으로 찾아갔다. 이해원은 가볍게 식사를 먹고 난 이후에 자신의 주군이며 아버지의 직속상사인 휀트 공작을 찾아갔다. 실질적으로 바라테온 문중의 직속상사인 - 위임받은 봉토가 더 넓고 왕성에 올때 수행원도 500~600명은 편성 가능 - 상급기사가 있지만 그는 왕성에 오지 않았다. 정작 모든 기사와봉신들이 섬겨야 하는 대귀족이었던 휀트 공작은 인사치레라고 해도 정해진 규칙대로 왕성에 왔건만. 바라테온 문중을 포함한 낮은 서열의 기사들에 하청을 주는 특정 상급기사가 진짜로 미쳤다고 모든 봉신들의 맹주인 휀트 공작을 우습게 보면서 자신의 영지에서 눌러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의 상급자인 특정 봉신/귀족 역시 왕성으로 오지 않았기는 마찬가지다. 휀트 공작이라고 해서 많은 봉신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는건 아니다. 유사시에 병력규모를 최소 천명,최대 3천명 이상을 편성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등급에 분류되어 있는 봉신이 아니라면 봉신에 봉신,하청에 하청을 주는 봉신들이 몇명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신경쓸 대귀족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휘하에 봉신과 기사중 한명이라도 해도 이해원의 알현 요청은 그에게 약간 놀라운 일이다. 이해원이 절차를 무시하고 공작에 알현(개인 면담)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휀트 공작의 광활한 봉토에 소속된 지배계급은 원칙적으로 그의 인민이며 봉신들이다. 이해원은 휀트 공작앞에서 엎드리며 궁궐 경비 당직을 소홀히 하였으며 왕실의 공주앞에서 타가리엔 왕실에 대하여 불경죄를 저질렀음을 보고하고 벌을 내려달라고 말하였다. 이를 듣고 휀트 공작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가문의 집사가 설명해주자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고작 그런 거 가지고 가지고 벌을 달라니 말라니 하는가!(^^;) 그런 것으로 따지면 주상의 용상에 앉아서 포도주 한잔을 음미하던 기사들은 모두 작위를 박탈하고 단두대에 묶여서 수급이 잘려야겠구먼. 허허허허허. 괜찮아. 괜찮네. 본좌가 죄를 묻지 않을 것이네. 옛날에 군법이 엄격하던 시절에도 이런 일을 가지고 벌을 내리지 않았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공작님. 차후에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참으로 듬직한 젊은이야. 남자가 아니라 아녀자이기는 해도.... 바라테온 가장에게 이런 아들이 있었다면 당장에 기사가 아니라 귀족 작위를 내려줬을 것이야. 크크크크큭. 이보게 사무관. 이 젊은이에게 금화 한주머니라도 내려 주라고. 아. 자네 빵은 먹었나?"
"궁궐에서 간소하게나마 먹고 왔습니다."
"아. 그렇지. 그러면 저녁이라도 먹고 가게. 점심에는 주요 명사들과 식사 예약이 있어서 말이야. 점심시간에 구내 식당은 경비를 서는 병사들이나 직급이 높은 기사들이 다 몰려 오니까 자네가 앉을 자리는 없을거야. 한산한 저녁시간에 꼭 오게나."
"그리 하겠습니다. 공작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