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나라가 구제역 때문에 난리다. 방역 때문에 설에 자녀들의 귀성도 막는 형편이므로 구병산이 있는 적암리의 사정은 어떤지 몰라서 충북 보은군 마로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마을 입구에 차량 및 대인 소독기가 있으므로 거기서 소독을 하고 들어가면 괜찮다는 면사무소 직원의 말이다.
중앙, 영동, 중부, 경부 고속도로를 거쳐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속리산 요금소를 나와(09:11), 산행 들머리인 적암리 마을 앞에 있는 공터에 도착한다(09:22). 면직원이 얘기했던 대인 소독기는 보이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이 출입을 통제할지 어떨지 몰라서 약간의 긴장을 하며 마을 회관 앞길을 거쳐 동네로 진입한다(09:30).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더니, 별 말이 없다. 이 동네에는 우사나 돈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리 근처에 있는 등산 안내도 앞에서 오늘의 산행 일정을 소개한다. 카페에 공지했던 4시간이라는 산행 시간은 절터골로 해서 최단거리로 오르는 길이고, 오늘은 우측 안부를 거쳐 신선대를 지나기로 한다. 5시간에서 6시간을 예상한다.
구병산은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속리산에 가려 지명도는 조금 덜하지만, 100대 명산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은군청에서는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km 구간을 ‘충북 알프스’란 이름을 붙여 홍보하고 있다.
<구병산 등산 안내도>
마을 뒤에 있는 산 능선은 찌를 듯한 바위봉이 톱날처럼 연봉을 이루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구병산임을 알 수 있다. 단체 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간다(09:40).
<비닐 하우스 포장마차>
<고기 구워 먹기에 좋은 팔각정>
비닐 하우스로 되어 있는 포장마차를 지나니 팔각정이 나온다(09:50). 개울 옆에 있어서 여름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한잠 늘어지게 자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고, 왼쪽 경사면으로는 돌이 잘게 부서져 있는 돌무더기가 있다.
<절터골 갈림길 이정표>
조금 더 올라가니 절터골 갈림길이 나타난다(09:55). 허리가 아파서 긴 산행을 하기 힘들다는 이봉영님이 이 길로 간다고 하기에 무전기 한 대를 주어서 보낸다.
<나뭇가지 위의 산새집>
잎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 빈 산새 집이 보이고,
<성황당>
지도상에 표시된 성황당골이라는 이름답게 당산나무로 보이는 느티나무가 있고, 산기슭으로는 조그만 성황당이 있다(10:05). 성황당을 지나자 왼쪽 계곡으로 오르는 희미한 길이 있지만, 우리는 직진을 한다.
사람의 흔적을 따라 조금 오르다 보니, 성황당을 지난지 20여분 만에 능선 안부에 닿는다(10:25). 바람도 제법 분다. 지난 1월 30일 함백산에서 추위에 떨었던 것이 겨우 일주일 전인데 오늘의 날씨는 봄날이다. 장갑을 끼지 않아도 손이 시리지 않고, 모자에 있는 귀덮개를 내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부터 능선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묵은 묘 3기를 지나서 계속 오르다 보니 소나무 숲도 보이고 로프가 있는 암릉도 지나지만, 로프를 잡을 정도는 아니다.
바위 틈새로 난 좁고 가파른 길이 시간을 약간 지체하게 만든다. 험한 길은 일부 우회를 하고, 일부는 직진을 하면서 오르다 보니 앞에 여자 등산객 3명이 보인다. 눈에 힘을 주고 보았더니, 회장님과 옥경이, 얼음공주님이다. 잠깐 쳐졌다가 우리가 오른 길로 오지 않고, 계곡 쪽으로 산행을 했단다.
<신선대 정상 표지석>
갑자기 불어난 선두 일행이 표지석이 있는 신선대(785m)에 오른다(11:05). 구병산 아홉 병풍 중의 우측에서 제일 첫 번째 병풍인 셈이다. 골짜기 사이로 적암리가 조망되고, 충북 알프스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다.
<신선대에서 보이는 속리산 능선>
그 뒤로는 아주 선명하지는 않지만, 문장대로 보이는 봉우리와 속리산 제1봉인 천황봉도 보인다.
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는 동안에 후미 일행이 도착한다. 신선대부터는 능선 우측 눈덮인 길로 돌아간다. 작은 암봉을 넘고 안부에 내려선다. 신선대를 지나 853봉 가는 길은 암봉이 버티고 있거나 주로 바윗길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로프 및 발판>
하지만 위험한 곳에는 빠짐없이 로프나 사각형의 발판이 설치되어 있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등산객들이 많이 몰리는 계절에는 많이 정체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산로의 청설모>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쌍으로 보이는 청설모 두 마리가 길을 가는 우리 주위를 맴돈다. 또 등산로 곳곳에는 염소의 배설물이 보인다. 이곳에 산양이 있을 리는 없으니, 농가에서 키우던 흑염소가 탈출을 해서 야생이 되었나 보다.
위험 표지판이 있어서 우회를 하다가 암릉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기에 그 위로 올라갔더니, 양쪽 다 아찔한 길로 이어진다. 다시 내려갈까 하는데, 염승호님이 먼저 간단다. 뒤에 있는 회원들도 이왕 왔으니 그냥 가잔다. 아직 올라오지 않은 회원들에게는 우회하라 이르고, 소등을 타는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암릉을 통과한다. 바위를 타고 오른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가야할 방향으로 암봉들이 우쭐우쭐 솟아 있고, 그 뒤로 구병산 정상이 멋진 모습을 보인다. 암릉과 암봉에 뿌리를 내린 청청한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다.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힘찬 지능선들,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지는 평화로운 들녘. 힘들여 오른 수고를 단숨에 보상해주는 기막힌 조망이다.
<853봉 정상 표지석>
다시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853봉이다. 능선의 중간에 있는 데다 우람한 덩치가 돋보여 구병산의 주봉같은 853봉의 정상석이 반으로 갈라져 있다. 구병산의 의미가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면, 9개의 각 봉우리마다 이정표로 표시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왼쪽부터든, 오른쪽부터든 제 1봉이 어디고, 제 9봉은 어디다라는 팻말이라도 붙여 놓았다면, 구병산 산행을 하는데 있어서 좀더 보람되고 의미있는 산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좋은 예는 홍천의 팔봉산과 경북 영덕의 팔각산을 들 수 있겠다.
<점심 식사 메뉴인 라면>
853봉에서 내려오니 절터 갈림길 표지판을 통과해서 야트막한 봉우리에 점심 자리를 잡는다(12:10). 약간 경사가 지고 좁아서 그런지 런던님을 비롯한 몇 분의 회원들은 정상 밑 안부까지 가서 식사를 하겠다고 먼저 출발한다. 버너를 켜고 라면을 끓여서 식사를 한다.
<정상 밑 안부의 이정표 - 위성 지국 방향이 하산길임>
식사를 한 후에 구병리 갈림길 표지판 두 개를 지나니 안부가 나오고 정상이 0.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다(13:02). 여기가 하산길이다. 먼저 출발했던 회원들도 정상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만난다. 많은 사람들의 발로 다져져서 미끄러운 슬랩을 서너 개의 로프를 잡고 정상에 오른다(13:07).
<구병산 정상석>
구병산 정상(876.5m)에는 정상석, 삼각점, 이정표가 있다.
<정상에서 본 적암리 조망>
탁 트인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충북 알프스 능선이 힘차고, 사방으로 펼쳐진 조망이 시원하다. 보은 위성지국의 접시형 안테나도 잘 보인다. 지도에는 정상 부근에 여름에는 찬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는 풍혈이 있다지만, 가기에 귀찮아서 사진 몇 장을 찍고는 하산길에 오른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아이젠을 착용하고 다시 안부에 도착한다. 정상에 먼저 올랐던 10여명의 회원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옆을 지나 하산을 한다. 로프와 방부목으로 만들어진 지그재그 계단길을 지나니 경사가 가파른데다가 낙엽 밑에 잔돌과 얼음이 깔려 있어서 많이 미끄럽다. 시종일관 급격한 내리막길에 너덜 지대가 계속 이어진다. 구병산 정상에서 KT 위성 지국으로 하산하는 길은 편한 구석이 별로 없이 그저 아래로 아래로 내리닫는다. 이 코스로 들머리를 잡는다면 사람들이 땀깨나 흘릴 게다.
<철 계단>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쌀난 바위>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바위 근처의 철계단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위벽에 커다란 구멍 하나와 몇 개의 작은 굴이 보이는, ‘쌀난 바위’다(13:47). 안내판도 없이 지도상에만 적혀 있다. 이곳 바위에서 쌀이 나와서 굶주린 백성들을 구했다는 전설이 있을 법도 한데, 지금은 굿터인지, 기도터인지 모르겠다.
쌀난 바위를 지나 20분 정도 내려오니 길은 편안해진다.
<보은 위성 지국의 대형 접시형 안테나>
집터와 철도 침목으로 된 길, 빨간 목제 다리를 지나니 이정표가 있고,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접시형 안테나가 몇 개 있는 ‘보은 위성 지국’ 시설물을 지난다. 중요 시설이어서인지 촬영 금지 표지판도 있고, 경비용 망루도 보인다.
이제부터는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넓은 잔디밭이 있고, ‘광산 김씨 가족묘’라는 표석이 있다. 잠시 올라서 보니 구병산 일대가 관광지가 되는 바람에 조상들의 묘를 한 곳으로 모았다는 설명이 있다. 원형으로 된 아주 조그만 봉분 앞에는 ‘몇 세손, 이름과 생몰 연월일’이 적힌 비석이 있다. 관리도 쉽고, 보기도 괜찮다.
아침에 왔던 길을 따라 경로당 앞을 지나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감 식초를 사란다. 미안한 마음에 정중하게 사절을 하고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마을 입구의 시루봉>
마을 밖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정면으로 오똑하게 솟은 시루봉(421m)이 눈길을 끈다.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 산 아래에서는 토목공사가 한창이라, 공사가 끝나고 또 건물들이 들어서면 시루봉 주변 경관이 어떻게 변할까 걱정스러워진다. 뒤로 보이는 구병산 암봉들이 제법 고산 같은 풍모를 보인다.
버스에 도착해서(14:35) 커피 한 잔을 타 마신다. 시간 여유가 있기에 마을 입구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도로에는 차량용 방역 초소 외에도 대인 소독기가 있다. 공중 전화 박스같이 생겼는데, 발에는 소독약으로 소독하고, 몸은 붉은 자외선으로 소독을 하는 장치다. 보은 장학회를 설립한 사람의 송덕비와 충북을 알리는 캐릭터, 장승, 느티나무 등을 두루 살펴 보다 보니 후미도 도착한다.
돼지고기 김치 찌개를 안주 삼아 하산주를 하고는 귀갓길에 오른다. 속리산 IC로 진입하여 춘천까지 오는데, 전혀 밀리지를 않는다. 매번 우리가 산행을 할 때마다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번 구병산 산행은 설 연휴 뒤끝이고 산의 지명도가 비교적 낮아서인지 24명의 소수 인원만이 참가한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산행 후기를 접는다.
|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구정 연휴라서 많은 인원이 참석치 못해 아쉬움은 컷지만, 100대명산으로서의 위용은 자리하고 있었던것 같네요. 그러나 보은군수님께서는 산에 대한 애착이 별로라는걸 느꼈습니다. 위험한 구간은 좀 더 등산로를 안전하게 정비를 해서 그 누가 찿아와도 항상 안산, 즐산, 행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눈이 녹지 않고, 암릉도 많아서 힘든 산행이셨죠? 그래도 비교적 한가한 때에 산행을 해서 시간이 지체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눈에 힘을 주고 보면 다 보이는 소금강님...
소머즈의 눈을 가지셨군요.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요새 노루막이님을 산행에서 자주 뵐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계속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충북알프스의 시원스런 조망과 간간이 로프도 타구 아기자기하구 지루하지 않은 산행이었습니다. 포근한 날씨도 완전 조았구요~ 어제 하루 즐거움과 낭만과 추억을 다시한번 만끽하구 갑니다. 아참 그리구 언제한번 다시 한차례 오르구 싶은 산입니다.. 산행지 추천을 해주신 런던님! 참 탁월하신 선택이심니다,,ㅎㅎ
예, 좋은 산행이었습니다. 꽃피는 봄이나 단풍드는 가을이면 더 좋을 듯 싶군요. 그대신 등산로의 지,정체는 책임 못 집니다.
인지도와 달리 산이 매우 좋네요,,, 오랫만에 아이들이랑 한 산행이 너무 좋아 기분도 업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현정이와 지훈이가 반가웠습니다. 한 가족이 같이 산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지훈이와 현정이는 참 기특합니다.
형님 아들 딸이었나요. 전 잘모르고....... 죄송합니다. 후배가 어리석어서요. 형님과 저는 만난지 오래지 않지만 그래도 저가 푸른산악회를 통해 연이이어진 것 같습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진심으로.....
산행후기의 사진들이 김광석의 노래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화려하진는 않지만 정감이 가는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너무 행복해 보여서 좋습니다. 저도 조만간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프도 많고, 우회로도 많은 산이지만 홍천의 팔봉산 생각이 나는 산이었습니다. 산행을 하지 않으셨으면서도 관심을 갖고 댓글을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언제나 처음 가보는곳, 처음 대하는 것들에 대한 설래임이 있어서 좋은데 이번 구병산은 그 설레임에 보답을 갑절로 해주더군요. 단촐한 인원의 산행이라서 더 아기자기했던것 같아요.한주산행하고 나면 수요일까지는 그 추억에 행복해하고 목요일부터는 다음산행을 기다리며 행복해하니...... 이 산에대한 중독을 어찌합니까? 돌아와서 이렇게산행후기글 읽는 재미도 항상 주시는 소금강님 감사합니다.~~~
뭐든지 중독이 된다면 좋지 않겠지만, 산에 대한 중독은 좋은 중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중독에 빠지셔서 오랜 기간 동안 같이 산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