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3일부터 2월4일까지 33박 34일로 결혼 50주년 기념으로 다녀온 후기입니다.
결혼 10. 20. 30. 40. 50주년 기념 여행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서 올립니다
2019. 1. 8(화)
이동거리 357.9 km
08:30 -18:00 이동시간 8h 23m
브로드워터 선라이스(Broadwater Sunrise)~ 맥린(Maclean) ~틴데일(Tyndale)~클라렌자 -울굴가(Woolgoolga)~
코프스 하버(Coffs Harbour)~남부카 헤드 (Nambucca Heads) ~포트 매쿠아리 브레이크월(Port Macquarie)
8:30 Broadwater Sunrise Caravan park.
정결한 캠핑장의 샤워실과 세면대와 화장실 ; 저렴한데 비하면 인상이 좋았다.
뒷편에 리치몬드강과 브로드워터교
우리 생애 첫번째이며 어렵사리 찾아든 캠퍼밴 캠핑장이라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맥린 휴게소
9:29AM 셀 주유소 ; Tyndale Tourist Park Roadhouse
처음 들린 주유소.주유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주유를 한 후에 카운터에 가서 주유구 번호를 말하고 카드나 현금을 주면 되었다.
50L=70$. 알고보니 옆에 캠핑장이 보였다. 함께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용 요금도 저렴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주유소와 마트가 함께 있다.
마트에서 주유소를 하는 것인지, 주유소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것인지?
할인의 유혹은 어디서나 강하다.
샌드위치 2$. 밀크커리+딸기우유+모둠과일+17$ 모둠과일은 별로였다.
주유구 위치 착가으로 한 번 돌고 당연히 제일 앞쪽에 주차하였는데 넘버 91 주유기가 없다.
그래서 또 한번 돌아서 2번 주유기로.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다.
10:06:AM 울굴가(Woolgoolga)비치. 기대했던 것보다는 소박했다.
'울굴가'는 이 지역에서 자란 '검은 사과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초기 인도 시크교도들의 이민 중심지였다고 한다.
1901년 백호주의가 시행되기 전에 이주한 시크교도 중 일부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 울굴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전시 노동력 부족으로 바나나 산업에 관한 비유럽 노동 금지가 완화되었기 때문인데, 전쟁 후 바나나 농장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호주에서 시크교/펀잡인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현재 바나나 농장의 90%를 소유하고 있으며 블루베리로 다양화하고 있다고.
1970년에 설립한 울굴가 시크 사원(Guru Nanak Sikh Temple) 빌려온 사진
코프스 하버
코프스 하버(Coffs Harbour) 지역의 원주민은 검베이잉기르(Gumbaynggirr) 족
수천 년 동안 살아 왔으며 뉴사우스웨일즈에서 가장 큰 해안 원주민 국가 중 하나를 형성하고 살았다.
11:30 AM 코프스 하버(Coffs Harbour) 파크비치. 모래가 참으로 부드러워 보였다.
코프스하버(Coffs Harbou); 오랜기간 목재 운반항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낚싯배와 개인 요트와 유람선들이 주로 사용하는 듯
초창기 선착장은 모두 이런 형식으로 만들었던 듯(Coffs Harbour Jetty)
1:02 PM 남부카 헤드의 Bellwood 파크
남부카(Nambucca)는 원주민어 ngambugka("구불구불하거나 구부러진 강", "물로 들어가는 입구)로 다양하게 번역된다고.
원주민 Ngamba(거인)이 무릎(Baga Baga)이 창을 찔렀던 곳이 강의 굽은 부분이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란다.
1:22 PM
남부카헤드 ; 캡틴 쿡 전망대(Captain Cook Lookout)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쿡 전망대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 일명 캡틴 쿡)
8년 반 동안 30만㎞의 바다를 누빈 위대한 해양 탐험가
중고등학생 시절 몇번씩 읽었던 위인전집. 탐험가열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 그리고 아문젠. 피어리. 스코트의 일대기와
제임스 쿡선장 전기와 영화를 보면서 세계일주여행 몽상에 빠지곤 했는데.
남부카헤드 쿡전망대 안내판;
Today, you stand on the Land of the Gumbaynggirr ; A people froud, strong and Loyal.
오늘, 당신은 굼바잉거르의 땅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자랑스럽고, 강하고, 충성스러운 한 민족입니다
쿡 전망대 다음 로타리전망대(Rotary Lookout)에서 본 가아갈 왕간 국립공원(Gaagal Wanggaan National Park)
1:22 PM Rotary Lookout;
남부카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가아갈왕간 국립공원 해변. 사구가 너무나 유연해 보였다.
4:16 PM 포트 맥쿠아리 브릭크월 홀리데이 파크(Port Macquarie Breakwall Holiday Park)
4:16 PM 포트 맥쿠아리 브릭크월 홀리데이 파크(Port Macquarie Breakwall Holiday Park)
어제밤에 늦게 입장하는 것의 불편함을 경험하여서 오늘은 16시에 캠핑장에 입장하였다.
큰후기에서 본 칼라풀한 Breakwall이 있는 캠핑장 Port Macquarie Breakwall Holiday Park. 37$ 생각보다는 저렴했다.
입구와 화장실 비밀번호를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경내가 넓어서 지도를 보고 내 주차 사이트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17;15분 ; 주차와 볼 일을 다 본 후에 산책하다.
사실상 제대로 된 첫번째 캠핑장; 캠퍼밴도 많고, 종류도 참 다양하였다.
내 자리를 찾아 주차를 하니까 이웃에서 먼저 환영인사를 해 주었다.
일주일은 기본, 한달 동안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달동안 무엇을 하며 지낼까?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난 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4:16 PM 포트 맥쿠아리 브릭크월 홀리데이 파크(Port Macquarie Breakwall Holiday Park) 캠핑장의 명물인 Breakwall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젊은 숙녀 분 덕분에 남길 수 있었다.
브레이크 월( Break wall 방파제); 바위마다 예쁜 폐인트로 장식하고 갖가지 사연을 써놓았다.
바다에서 포트메구아리 강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기 위해 1897년에 시작하여 1904년에 완성했다고.
그저 평범한 방파제가 유명해지고 포토존이 된 것은 1995년에 열린 예술대회 이후라고 한다.
이후에 이곳이 아웃도어 갤러리가 되어 모든 바위가 작품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운 사람과 반려 동물을 추억하는 글 그리고 다짐하는 글들을 읽다보면 가슴이 뭉클해 진다.
일가족이 함께 바위에 칠을 하고 있었다. 직원인듯한 사람이 무엇이라고 안내해 주는는 것 같았다.
아마도 온 가족이 사랑하던 누구(동물)을 기념하려고 함께 온 것 같아 보였다.
인성교육상으로 좋을 것 같다. 기한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페인팅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았다.
4:31: PM 다양하고, 큰 캠퍼밴 사이에 좀 초라해 보이는 우리의 쥬시. 산책을 끝내고 첫번째 식사를 준비하다.
검색하여 보니 포트 맥쿠아리는 슬프고 끔직한 역사와 이야기를 갖고 있는 곳이었다.
1821년, 뉴케슬의 범죄자 정착지에서 2차 범죄를 하여 구제불능으로 분류된 죄수를 격리시키는 장소로 선택받은 지역이였다고.
'채찍질을 좋아했던 사령관' 제1대 프란시스 올먼(Francis Allman 1821-24) 시절에는 지옥이 되었다. 최대 100대까지 채찍질을 하고, 편지도 제한했다. 장애인 죄수들을 수용. 외팔이들은 돌을 깨고, 목발을 가진 남자는 배달원이 되고, 시각 장애인들은 야간 작업을 시켰다고 한다.
7:00 PM ; 골드코스트에서 후배가 사준 햇반 +짜장 그리고 호주 제자가 싸준 김치와 멸치조림
설거지를 위한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둔다. 그러나 이 물로 설거지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설거지는 캠핑장이나, 동네 화장실에서 하였다.
7:10: PM; 산책하다가 본 일몰의 황혼. 좀 늦어서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 옛날 그 죄수들은 이곳에서 일출과 일몰의 황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할 감정은 남아 있었을까?
그래도 황혼이 항상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나이 때문인가보다.
실제적으로는 오늘이 캠퍼밴 여행의 첫날이라 쉽사리 잠들지 못할 듯 하였다
그러나 내일을 위하여 절제하고 오늘의 여정을 끝내고 잠을 청해 보기로 하다.
어제 밤과는 달리 여유로움, 낭만스러움. 꿈만 같은 호사로움.
왠말인가, 왠 일인가. 이 호사. 이 축복. 그리고 지난 50년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우들을 통하여 베푸신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은혜가 물밀듯 가슴 벅차옴을 느끼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