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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8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중국 사상 최악의 가뭄 초염으로 인공강우 시도
2021년 중국 윈난성 쿤밍시의 건축중이던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14동 폭파
20층 이상인 고층 아파트 14개 동이 완전히 무너지기까지는 불과 4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중국 윈난성 쿤밍시의 이 아파트들은 지난 2011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회사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2014년 공사가 중단됐고, 올해 초 개발권을 넘겨받은 회사는 공사 재개보다는 철거를 결정했다. 7년 동안 방치된 만큼 안전상 이유도 있었지만, 아파트 평형 등이 시장의 수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당초 아파트 15개 동 모두를 한꺼번에 철거하려 했지만, 기술상 문제로 한 동은 폭파되지 않았다. 개발 회사는 이 자리에 12층 이하 저층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2017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세상 떠남.
2017년 가수 조동진(70세) 세상 떠남
2014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 취임
2002년 장대환 총리 국회인준안 부결
장대환(張大煥)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 표결에서 부결됐다. 이는 지난 7월 31일 장상(張裳) 전 총리서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이후 연속으로 두 번째다.
이날 국회 표결은 재적의원 272명 중 한나라당 138명, 민주당 111명, 자민련 10명, 기타 비교섭단체 7명 등 총 266명이 참여한 동의안 표결에서 찬성 112명, 반대 151명, 기권 3명이었다. 반대표는 한나라당 전체보다 13표 더 많았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찬성을 결정했음에도 찬성표가 이날 민주당 참석자인 111명을 불과 1표 넘긴 것은 한나라당과 비교섭단체 의원들 대다수가 반대표를 던진 때문으로 보인다. 장상 전 서리 때는 재적 259명 중 찬 100, 반 142, 기권·무효 각 1표였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뒤 사표를 제출한 장대환 총리서리의 사표를 수리했다
1999년 러시아 유인 우주정거장 미르호, 13년 만에 공식활동 종료
러시아 유인 우주정거장 미르호의 마지막 승무원 3명이 1999년 8월 28일 지구에 귀환함으로 공식활동을 사실상 마감했다. 러시아 우주비행센터는 빅토르 아파나시예프, 세르게이 아브데예프, 프랑스인 장 피에르 에녜르 등 승무원 3명을 태운 ‘소유즈 TM 29’가 카자흐스탄 초원지대에 예정대로 무사히 착륙했다고 밝혔다.
미르호는 2001년 3월 23일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대부분 불타 없어졌으나 30-40톤으로 추정되는 1,500여개의 파편은 살아 남아 남태평양 해저에 떨어져 수장됐다.
1986년 2월 20일 미국과 우주사업 경쟁을 벌이던 구 소련은 3년 예정으로 미르를 쏘아올렸으나, 미르는 13년 넘게 우주에 머물렀다. 이 기간 중 미르는 지구궤도를 7만7000바퀴 돌면서 무중력 상태의 인체 연구 등 1만6500건의 실험을 수행했다. 또 외국 우주인 62명 등 103명의 우주인이 미르를 거쳐갔으며, 단일 최장 우주체류(737일)와 우주유영(82시간 21분) 등의 기록이 미르에서 작성됐다. 미르호는 ‘평화’ ‘세계’라는 뜻에 어울리게 활용됐다. 미르호에는 각국 우주비행사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다녀갔다. 27개국에 설치한 수많은 장비를 통해 이뤄진 우주 공간에서의 과학적 실험은 2만3천여건이나 됐다.
1997년 한국전기통신공사법 폐지
1996년 광주지하철 1호선 기공
1996년 우정사업경영개선기획단 발족
1996년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이혼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28일 공식 이혼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15일 이혼 절차에 들어가 6주일이 지난 이날 15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다이애나가 TV와의 인터뷰에서 혼외정 사 사실을 인정한 것과 관련, 작년 12월 찰스 왕세자 부부에게 서한을 보내 이혼을 권고했었다.
한편, 영국인들은 찰스 부부의 요란한 이혼보다는 다음 수순에 더 관심을 보였다.
찰스(47)가 애인인 카밀라 파커 볼스(49)와 재혼 여부가 단연의 화제였다. 26일 영국 언론들은 하나의 큰 사진을 실었다. 미래의 영국 왕이 볼스와 주말을 같이 보냈음을 보여줬다. 이는 찰스 왕세자가 볼스와의 26년 된 관계를 끝낼 의향이 전혀 없음을 명확한 의지를 보인 것. 영국 신문 데일리 미러도 전화여론 조사결과, 응답자의 88%가 찰스와 카멜라가 결혼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 주교들은 찰스의 재혼에 ‘반대’했다.
이에 앞서 7월 12일, 버킹검궁과 양측 변호사들은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이혼조건에 합의하고 신속히 이혼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위자료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다이애나빈은 1천5백만(1백90억원)~1천7백만(2백8억원) 파운드의 위자료 외에 매년 40만 파운드(5억원)를 지원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애나빈은 이혼에도 불구, 켄싱턴궁에 자녀들과 함께 머물면서 찰스 왕세자와 동등한 양육권을 행사하게 됐다. 또 국내외 공식행사에 참석하는 등 왕실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대부분 유지한다고 영국 왕실은 밝혔다.
1995년 한국-칠레, 외교관사증면제협정 체결
1992년 기업인들의 경제협력 관계 남북접촉 신청 39건 중 34건 승인
1991년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1차 공사 통수식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 1단계 통수식이 1991년 8월 28일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가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리비아 대사막을 가로질러 설치된 수로가 이날 밤 개통되자 벵가지 시민들은 쏟아지는 물속에 뛰어들며 환호했다.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이 공동 시공한 36억달러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1단계 공사는 지난 1984년 1월 착공, 당초 1992년 12월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일부 구간이 2단계 공사와 병합시공됨에 따라 예정보다 1년 4개월 앞당겨 착공, 7년 7개월 만에 통수식을 갖게 됐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리비아 내륙산맥의 풍부한 지하수(나일강의 2백년간 유수량)를 끌어올려 직경 4m, 길이 7.5m, 총연장 1천8백72km의 송수관을 통해 공급, 리비아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 대규모 공사이다. 1단계 공사에는 연인원 1천1백만명의 국내 근로자와 연 5백50만대의 건설 중장비가 투입됐다. 가다피 국가원수는 이 공사를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격찬했다.
1990년 일본 방송위성 3호(BS-3) 발사
1988년 독일 람슈타인에서 에어쇼 중 전투기 3중 충돌 50여명 사망 500여명 부상
1987년 필리핀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기도 실패, 55명 사망
1982년 독립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 발족
1980년 대학휴교령 107일 만에 해제
1973년 김영주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 남북대화 일방적 중단 선언
김대중 납치 사건에 이후락 조절위원장이 관련되었다며 위원장 교체 요구
1970년 김민기 `아침이슬` 발표
1963년 킹 목사, 워싱턴 대행진
1955년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이 주도한 몽고메리 흑인들의 ‘버스승차 거부운동’이 성공하자 유사한 운동들이 남부 도시 곳곳에서 빈발했다. 흑인 지도자에 대한 구속과 시위금지령이 한층 강화되고 흑인들도 더욱 호전적으로 변하면서 1963년 들어서만 10주 동안 186개 지역에서 750회 이상의 시위가 일어났다.
1963년 8월 28일, 링컨기념일을 맞아 20만명의 군중이 워싱턴기념탑 광장에 모였다. 참석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1514대의 임대버스와 21편의 특별열차가 동원됐고, 남부의 가난한 흑인들은 대표를 보냈다. 오전 11시15분, 1.6km 앞의 링컨기념관을 향한 참가자들의 대행진이 시작됐다. 참석자들 손에는 ‘인종차별 철폐’ ‘일과 자유를 달라’는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 랠프 번치,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 가수 밥 딜런 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윽고 행진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마틴 루터 킹이 링컨기념관 앞에 섰다. 그리고 저 유명한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를 토해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때까지”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루터 킹은 이날 행진이 있은 지 5년 뒤인 68년 4월 4일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백인 제임스 얼 레이의 총에 맞아 피살됐다.
1962년 장면, 이주당 사건으로 구속
5ㆍ16후 1년 만인 1962년 6월1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구(舊)민주당반혁명음모사건’을 적발해 41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6월13일을 기해 무력 쿠데타를 일으켜 8월15일에 민정이양을 한다는 음모를 꾸며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7월15일, 갑자기 장면(張勉) 전 총리도 반혁명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발표되면서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반혁명이 성공할 경우 다시 총리를 맡는다는 조건으로 장면이 구(舊) 이주당(二主黨) 간부 김재우에게 100만환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주당은 4ㆍ19 이후에 등장해 곧 사라진 정당이다.
5ㆍ16후,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연금됐다가 6개월 만에 풀려나 기독교 서적을 번역하고 화초를 가꾸며 소일하던 장면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100만환은 자신의 제자이고 대부간였던 김재우가 가정적으로 어려워 생활비로 준 돈이라고 항변했지만 군사정권은 이를 믿지 않았다.
8월28일, 군법회의 검찰부는 장면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고는 바로 구속시켰다. 징역10년(1심) → 48일 만에 보석 출감 → 징역3년 집행유예5년(2심)을 거치는 동안 고통의 나날을 보내긴 했지만 장면에게는 군사정권의 날카로운 칼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1962년 전남 순천 저수지와 하천 둑 붕괴 사망 163명 실종 63명 이재민 8,988명
1961년 민족일보 사건 3명(조용수 안신규 송지영) 사형 선고
이상두 양수정 이건호 정규근 등 5년-15년형 언도, 조용수는 끝내 사형 집행
‘민족일보 사건’=4월 혁명 이후 조용수가 진보적 언론기관의 창출을 절감하던 서상일 이동화 고정훈 등 혁신계 인사/이종률 조윤제 등 학자, 민자통과 민민청의 청년운동가들과 협의해 민족일보 창간(1961.2.13.), 민족일보는 비동맹운동과 중립화선언 등 국제정세의 데탕트 흐름을 자세히 보도하고 농촌의 궁핍한 현실 및 학생들의 통일운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등 조국의 통일과 근로대중의 이익 대변을 사시로 함, 5.16 쿠데타 이후 혁명재판부가 중립화와 평화통일 적극 추진하는 민족일보 92호만에 폐간시킴
1960년 미주(美洲)기구(OAS)외상회의서 중남미공산화 확대를 경고하는 산호세 선언 채택
1960년 중앙전화국 용산분국 EMD 자동식 교환시설 개통
1960년 EMD방식 자동전화교환기 재개통
1957년 미국, 중거리탄도탄(IRBM) 실험에 성공
1955년 우주인(1947.7 미국 뉴멕시코 주 로즈웰에 추락한 UFO에서 발견) 시신해부사진 22개국 TV 통해 방영
1952년 한국-일본 간 독도분쟁 발생
1950년 6.25발발로 제1차 화폐개혁 단행
전쟁은 화폐가치를 한순간에 폭락시켰다. 차 한잔을 마시려면 1백원 짜리 지폐를 50장이나 준비해야했다.
제1차 화폐개혁이 단행됐다. 화폐개혁은 1950년 8월 28일부터 1953년 1월 16일까지 6.25기간 동안 5번에 걸쳐 기존의 조선은행 1백원권을 한국은행 1백원권으로 바꿔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제1차 화폐개혁은 6.25전쟁의 산물이었다. 한국은행이 일제시대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은행권`을 대체할 새로운 `한국은행권`을 발행하기도 전에 발발한 6.25전쟁은 화폐개혁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한국은행은 전쟁 발발 13일전인 6월12일 설립됐다. 6.25전쟁이 터진 날은 일요일. 월요일인 26일부터 군대와 경찰, 기업과 시민들이 돈(조선은행권)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한국은행은 26일과 27일 이틀새 화폐발행액(6월24일 현재 5백58억원)의 7분의 1이나 되는 돈(76억8천만원)을 국고금과 은행예금 지급용으로 지급해야 했다.
정부가 남하하면서, 한국은행도 피란 행렬에 끼였다. 문제는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된 지금은(地金銀·금은 덩어리)과 현금들. 하지만 철도를 통한 수송작전이 불가능해 구용서 초대 총재가 국방부를 방문, 군의 지원을 받게 됐다. 6월27일 오후 2시, 군에서 제공한 트럭 1대에 순금 1천70㎏, 은 2천5백13㎏ 등 89상자를 싣고 극비리의 수송작전이 시작됐다. 이 금은덩어리는 이틀 뒤인 29일 진해 해군통제부에 도착했다가 8월1일 부산을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미처 옮기지 못한 순금 2백60㎏과 은 1만5천9백70㎏, 미 발행 조선은행권 등은 6월28일 한국은행 본점 건물이 북한군에 접수되면서 전부 북한군 손에 넘어갔다. 정부가 갖고 있는 미 발행 은행권은 40억원뿐이었고, 새로 돈을 찍을래야 조폐공장마저 북한군 치하에 들어가 있었다. 한국은행은 동경 지점에 1백원권과 1천원권을 일본에서 인쇄하도록 긴급 지시했다.
1950년 7월13일, 군용기편에 실려 김해비행장에 도착한 1천원권 60억원이 최초의 한국은행권이다. 다음날 1천원권 92억원, 1백원권 2억3천만원이 더 도착했다. 이 당시 1천원짜리 앞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1백원짜리에는 광화문이 들어 있었다. 북한군이 약탈한 조선은행권을 남발하고, 인민권도 강제 유통시키는 바람에 엉망이 된 경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는 1차 화폐개혁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
1946년 북조선노동당 결성 11월 23일에 서울에서 남조선노동당 결성 1949년 6월 24일 북로당이 남로당 흡수해 6월 30일 조선노동당으로 이름 바꿈
1945년 호지명 베트남공화국 임시정부 수립
1935년 이탈리아 전시(戰時)경제관리 단행, 회사배당 제한, 잉여금의 국채투자 명령
1933년 전국에 풍수해 가옥피해 25,650호 선박유실 3,878척
1931년 전국에 홍수 741명 사망 실종 가옥피해 25,000호
1927년 현제명 전 미국 현상음악회 1등 당선
1924년 총포화약류취체령(銃砲火藥類取締令) 시행규칙 공포
1922년 미국 뉴욕서 최초로 라디오 방송 광고(WEAF방송국)
1916년 독일, 루마니아에 선전포고
1912년 서양화가 이인성 출생
1911년 대구전기 설립
1899년 장면 제2공화국 국무총리 출생
1893년 국어학자 이극로 출생
1861년 화가 안중식 출생
1749년 독일 문호 괴테 출생
26세(1775) 바이마르 총리가 됨, 시 소설 희곡은 물론 지질학 광물학 등 자연과학에도 뛰어남. 비교해부학 선구자로 1784년 동물에만 있고 사람에게는 없다고 알려졌던 간악골 발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친구 약혼자 샤를 로테라는 소녀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쓴 작품 『파우스트』=23세 때 쓰기 시작, 죽기 1년 전인 1831년(83세) 완성 “모든 산봉우리위에/안식이 있고//나뭇가지에도/바람소리 하나 없으니//새들도 숲속에 잠잔다./잠시만 기다려라//그대 또한 쉬리니.”(나그네의 밤 노래)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1654년 옥센셰르나 사망
17세기 북유럽의 난세를 헤쳐나간 인물이자 스웨덴 역사상 가장 유능한 총리로 불리는 악셀 옥센셰르나가 1654년 8월 28일 사망했다.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나 로스토크와 독일 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칼 9세 밑에서 대신으로 근무했다.
1612년 즉위한 구스타프 2세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자 ‘북방의 사자’라는 별명답게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하며 국왕 구스타프 2세를 도와 내치에 힘씀으로써 근대 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의회제도와 행정기구를 정비하고 중상주의를 도입했으며, 학교법을 제정해 교육에도 관심을 쏟았다. 구스타프 2세가 전사(1632년)한 뒤에 독일을 비롯한 덴마크, 폴란드 등과의 전쟁 결정권을 갖게 되자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을 체결, 30년 전쟁을 자국에 유리하게 매듭지었다.
크리스티나가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자 5명의 섭정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 8년 정도 실질적인 통치를 하다가 여왕이 친정을 하게 되자 외교와 종교정책, 후계자 문제 등을 놓고 여왕과 갈등을 빚게 된다. 그러나 이후 1650년부터 관계가 호전되어 죽기 전까지 총리로서 확고한 지위를 누렸다.
1645년 네델란드 법학자 그로티우스 사망
1552(조선 명종 8) 임란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태어남
1231년 몽고 제1차 고려침입
1221년 십자군 패배
1215년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출생
754(신라 경덕왕 13) 황룡사 종 주조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430년 기독교 사상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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