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퍼온 글 입니다.
입양기관인 홀트에서 자원봉사를 해 보았었다. 입양을 하러 온 부모님의 서울시내관광 가이드를 해 드리는 것 두 번, 가족상봉 시 통역봉사 한 번을 보았는데, 실제 시내관광 가이드는 개인적으로 별로 자원봉사라는 감흥(?)을 느끼지 못해 두 번정도 하고 말았었고, 솔직히 말하면 나 말고 하고자 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가족상봉 통역봉사는 홀트의 요청으로 하게 되었었는데 뜻깊었지만 내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조금 어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추석 때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책을 한 권 사서 읽었는데 '외국어와 통역번역'이라는 최정화씨가 쓴 책이였다. 그 책 안에서 통역이라는 직업이 서비스업이라는 내용을 읽었는데 나도 가족상봉 통역봉사를 해 보면서 전적으로 그 말에 동감하게 되었다. 뭐랄까, 딱히 규정지을만한 말은 없지만 양쪽 사이에서 의사전달을 해 주는 사람, 고도의 순발력과 언어능력을 이용하는 일이지만 서비스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봉사를 하면서 많이 느꼈었다. 어쨌든, 통역이라는 일이 어떤것인지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였다. 물론 자원봉사였고 여러가지 여건들이 실제 일을 하는 것고 다르긴 하겠지만 봉사를 하면서 느꼈던 솔직한 느낌이다. 그 후에 통역봉사를 했던 그 가족들 서신번역을 해 주었는데 개인적으로 그것이 더 보람있고 쉽고 내게 맞는 것 같았다.
가족상봉 통역후에 시내관광가이드 봉사는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있어 홀트에서의 자원봉사는 하고 있지 않다가 우연히 해외입양인연대(GOAL, http://www.goal.or.kr)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어 신청을 했더니 연락이 왔다. 다음날 사무실로 찾아가게 되었고 간단한 영어면접(?)후에 자원봉사 일을 맡게 되었는데, 실제 그 곳은 입양인이 만든 단체였고 입양이 되어서 한국으로 친부모님을 찾으러 오거 한국에서의 생활을 하고있는 입양인들ㅇ게 도움을 주는 그런 단체였다. 일단 처음 1-2주동안은 주로 입양인들과 친가족들간의 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하면서도 많은 보람을 느꼈다. 편지를 읽으면서 때론 조금 슬프고 때론 따뜻해졌고 그곳을 나서면서는 추운날씨에 마음이 훈훈함과 약간의 피곤함이 섞여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한 번은 내가 번역한 편지를 보고 한 입양인의 어머니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얘기에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하루는 편지번역을 하고 있는데 입양인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월세 계약서를 가져와서는 그곳 직원에게 보여주면서 지금 사는 집이 너무 비싸 이사를 하려고 한다며 상담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이 좁아서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눈은 랩탑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편지번역을 다 끝내고 집으로 가기전에 그곳 직원분들에게 그 분이 상황이 참 안됐다는 얘기를 잠깐하고는 집으로 갔는데 다음날 전화가 왔다. 어제 그 분이 하숙집을 구하는데 좀 도움을 달라고 하는 내용이였다. 그래서 그 주 금요일 5시쯤에 그 분을 사무실에서 만나 하숙집을 구하는데 도움을 주게 되었는데, 가족상봉통역봉사와는 달리 한 쪽하고만 대화를 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어, 훨씬 부담이 덜 했고 재밌기도 했다. 하숙집을 돌아본 후에 그 분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어제는 회사에 하루 월차를 내었다. 미국에서 입양인 한 분이 남편분과 함께 왔는데 친어머니를 찾는데 도움을 달라고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회사 출근시간보다는 조금 늦은 10시부터 일정을 시작되었는데 간단하게 사무실에서 인사를 하고는 그 분이 가지고 온 주소를 가지고 해당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문제는 그 주소가 친어머니의 주소가 아니라 편지를 보내는 데 도움을 주신 어머니가 아는 분의 주소라는 것이였고, 동사무소에서 그 분을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니 벌써 그 분은 돌아가시고 따님이 그곳에 아직 살고 계시다고 했다. 따님은 아는 것이 없어서 우리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고, 다음날 돌아가는 그 분들에게 그냥 돌아가자고 할 수가 없어 일단 근처 동네로 가서 노인분들에게라도 물어자고 하고그 동네로 갔다. 마침 옆집의 할머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보니 친구분의 이름은 들어봤으니 친어머니의 이름을 모르겠다고 했고, 일단 따님을 만나고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아 나만 따로 만나 얘기를 나누어보았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동안 부동산을 했다는 할머니에게도 친어머니의 이름을 알려주었으나 들어본적이 없다고 입양인이 가지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시더니 사진이 배경을 알아보시어 사진이 어디에서 찍혔는데는 알게되는 조그만 수확은 있었다.
그렇게 큰 수확없이 발길을 돌리자니 아쉬움이 남아 근처 경찰서로 발길을 돌렸다. 민원실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 가족찾기 신청을 했고 내 전화번호를 남겨두었고 그곳에서 이름으로 검색을 한 결과 나이대가 비슷한 분이 10분이 나왔다고 실제 일일히 연락을 하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나중에 찾게되면 내 연락처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경찰서를 나섰다.
아침 10시부터 길을 나섰는데 그때가 거의 2시 정도였고 3시에 YTN의 '입양인의 영상편지'라는 코너를 찍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 기사님이 영어를 조금 하려고 하셔서 이런 저런 얘기를 물어보셨고 그렇게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 남대문 근처에 YTN본사에 2시 30분에 도착 근처 칼국수 집에서 만두국을 하나씩 먹고는 방송국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순간 낯익은 얼굴, 뉴스앵커같은데 이름은 모르겠다. 아무튼 담당자분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입양인 분은 할 얘기를 적고 연습을 조금 하고는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을 하는 동안 PD로 보이는 분께서 그동안 촬영을 하면서 있었던 일을 얘기를 해 주셨다. 방송이 나가서 가족을 찾은 이야기, 자매분이 나와서 촬영을 했던, 촬영내내 감정을 주체못하고 우는 바람에 짧은 1분 30초의 촬영이 한 시간이 넘어갔던 이야기등을 해 주셨다. 하지만 나와 함께 했던 그 분은 이미 50이 가까운, 25살 결혼한 아들이 있는 분이였고 지난 세월 때문인지 하는내내 담담함을 넘어 웃음까지 보여주시는 여유를 보이면서 3번만에 촬영을 끝니셨다.
촬영후에 비디오를 보면서 내가 그 분이 하신 말을 번역을 해야 해서 10여분을 더 보내서 촬영팀과 단체사진을 찍고는 방송국을 나섰다. 그때가 오후 4시, 원래는 동사무소와 YTN 방송일정만 도와주기로 했었는데, 내일 가신다는 말에 그래도 그분이 입양기관인 홀트에 들러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홀트로 향하게 되었다. 홀트 건물에 가서 안내를 받으니 입양기록과 부모님을 찾는 업무는 다른 건물에서 한다고 알려주셨다. Post adoption ???였는데 기억이 안 난다. 암튼 걸어서 20여분이 걸려 그곳에 갔다. 마침 이번주에 재미동포무슨 연합회에서 후원해 많은 입양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행사때문에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고 해당문서를 볼수가 없어 정보를 줄 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쪽에서 내게 먼저 연락을 하고 오지 않고 온 것, 그리고 행사때문에 담당자가 없는 점등을 약간은 원망섞인 투로 얘기를 하셨는데, 그 내용을 바로 그 분들에게 얘기를 해 달라는 했다. 그래서 바로 말씀을 드렸고 말씀을 드리는 끝 부분에 그 분이 바로 얘기를 받아서 영어로 얘기를 하는 것에 의아했는데, 굳이 나에게 왜 입양서류를 보여줄 수 없는지를 얘기하라고 한건지, 왜 본인이 직접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하루종일 고생아닌 고생을 한 피곤한 상태라서 약간은 언짢은 순간이였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밖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곳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을 끝냈다.
친어머니를 찾는 것이 그렇게 하루만에 되는 것이 아닌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얘기를 듣고 하루를 시작하였지만 딱 손에 잡히는 소식을 접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그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드렸고, 그 분들도 많이 고마워 하셔서 기분은 좋았다. 중간에 이렇게 도움을 주었는데 우리가 조금 돈을 주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셔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고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린 후라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각자의 호텔로 집으로 가기 위해 가는 길에 지하철 표라도 사 드려야 된다고 천백원을 손에 쥐어 주셨다. 괜찮다고 했더니 이거라도 꼭 받으시란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와, 오늘 제가 천백원 벌었네요 그랬더니 크게 웃으셨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그 분들은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고 연락처와, 혹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면 연락을 드리겠다는 말고 함께 작별인사를 하고는 헤어졌다. 정말 긴 하루였고 집에 와서는 바로 쓰러질 정도로 피곤한 하루였지만 이런 자원봉사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자원 봉사 하거 싶네요~~ 쪽지 주세요
멋있네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