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사)한국고전머리협회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고전에관한 이런저런글- 스크랩 동명왕신화(고구려 건국신화)
사무국 ^&^ 추천 0 조회 75 12.07.07 10: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동명왕신화(고구려 건국신화)

 
〈고구려건국신화〉 또는 동명왕의 이름을 따 〈주몽신화 朱蒙神話〉라고도 한다. 동명왕에 관한 내용은 국내 문헌에서는 〈광개토왕릉비문〉 서두,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 〈제왕운기〉,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청장관전서〉 등에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 문헌 중에는 왕충의 〈논형 論衡〉·〈양서 梁書〉·〈위서 魏書〉, 〈주서 周書〉·〈수사 隋史〉·〈북사 北史〉·〈통전 通典〉 등에도 전하는데, 자료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다. 동명왕신화라 하면 흔히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을 제일로 치는데, 내용면에서 이것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동명왕편〉 등에 공통되는 내용을 추출하여, 이 신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몽의 아버지는 천제인 해모수였는데, 성북 청하에서 놀고 있는 하백의 딸 유화와 인연을 맺고 하늘로 돌아간다. 이 일로 하여 유화는 하백에게 쫓겨나 우발수에 있다가 금와왕에게 구출되고, 후에 해[日]에 잉태되어 1개의 알을 낳는데 이것이 주몽이다. 알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마구간과 깊은 산에 버려지지만 짐승들의 보호를 받고 태어나 어머니에게서 양육된다.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아 주몽이라 불렸는데, 부여 왕의 태자들이 그의 능력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유화는 주몽에게 남쪽으로 가 뜻있는 일을 하라고 한다. 주몽은 계략을 써서 왕실의 준마를 얻고, 세 현우(賢友)가 함께 길을 떠나 엄체에 이르렀을 때, 그를 도우러 나타난 물고기와 자라들이 만든 다리를 밟고 강을 건너 추격병을 피한다. 주몽은 유화가 보낸 보리씨를 비둘기로부터 받고, 남쪽으로 내려와 경개가 좋은 곳에 왕도를 정하고 나라이름을 고구려라 한다. 비류국 송양왕과의 언변 및 활쏘기 시합에서 크게 이겨 송양왕의 영토를 빼앗고, 성곽과 궁실을 크게 짓는다. 재위 19년에는 부여에서 온 아들 유리와 부러진 두 조각의 칼을 하나로 맞춰본 뒤 그를 자식으로 인정하고 태자로 삼는다. 죽어 용산에 장사되었는데, 시호를 동명성왕이라 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평양 대동강가의 조천석(朝天石)에 있는 말발자국이 바로 동명왕이 타던 말의 발자국이라는 전설이 실려 있다. 동명왕이 아침마다 하늘로부터 내려와 구제궁의 기린굴을 통해 이 바위를 밟고 하늘로 돌아갔기에 여기에 그 발자국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명왕신화〉는 고구려의 건국에 관한 여러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뛰어난 한 인물이 온갖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국가를 세우는 과정을 투쟁적·영웅적으로 그리고 있는 서사물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중요성을 갖고 있다. 〈동명왕신화〉는 바로 우리 민족의 영웅서사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서사물에는 3대기를 서술하는 특징, 심부담(尋父譚 : 아버지 없는 가운데 태어난 아이가 이후 성장하여 아버지를 찾는 모티프를 담고 있는 이야기)적 요소, '영웅의 일생'[고귀입공(立功)-죽음(승천)]이라는 서사전통이 있는데, 〈동명왕신화〉는 이런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신화는 우리 서사물의 전통을 마련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화에는 또한 난생신화적 요소도 들어 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