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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게시판 스크랩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경남대 초청 강연
이재흔8기 추천 0 조회 130 07.05.19 19:1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이런 소리 저런 얘기 - '근로자의 날' 기념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경남대 초청 강연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산별노조로 크게 단결해야 한다.” 역설
경남대지부 윤성원 지부장 사주(?) 받고 ‘주문자 상표 부착 강의’ 혐의(^.^)
제도 바꾸는 투쟁 필요성 얘기하며 기자 행태도 꼬집어 “어쩌란 말이냐!”
“정치 얘기하면 ‘노조가 웬 정치?’ 하고, 임금 말하면 ‘또 임금이냐?’ 한다.”
“아들만 둘이면 길바닥서 죽고 딸만 둘이면 비행기서 죽는다.” 복지 실태 비판도

일시 : 2007년 5월 2일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40분까지
장소 : 경남대학교 본관 4층 대회의실

 



앉아서 얘기하면 졸리기도 하니까 서서 하겠습니다. 혼자서 얘기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이따금씩 묻기도 하겠습니다.

여기 오니까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요. 나는 경남 진주에서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대동중공업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기 경남대학교 10․18광장에서 집회도 참 많이 하고 했어요. 그 때는 광장이 참 넓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아주 좁아요. 그 때 어떻게 이렇게 좁은 데서 집회를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노동자 생활을 대동중공업에서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막 바로 들어갔지요. 공장에서는 155밀리미터 대포 핵심 부품을 만들었어요. 내가 있던 부서에서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77년에 입사를 했는데(그렇다면 58년 개띠?) 아주 사람을 사람 취급을 않더라고요. 그래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열심히 생각한 끝에 혼자서는 그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자격증만 따면 잘 살고 시험에만 합격하면 앞날의 확 틔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노래 가운데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이런 게 있었습니다. 안정되게 직장 생활하면서 단란하게 사는 모습이 절로 떠오르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아니었어요. 일곱 시에 출근하면 한 시간 동안 새마을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뭐냐, 아침에 공장 청소하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청소하고 나서 돌아간 회장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앞에서 이렇게 공장을 세워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뭐 이런 감사 묵념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덟 시에 일을 시작하면 밤 열 시 끝납니다. 토요일은 철야를 하라 했고 그래서 토요일 공장에 들어가면 일요일 아침 여섯 시가 돼야 공장 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뿐입니까? 사무직은 식당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도시락을 싸 다녔습니다. 우리는 상여금을 280퍼센트 한 번에 70퍼센트씩 네 번을 받았고 사무직은 400퍼센트를 받았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빨간 날은 쉴 수 있다,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같은 4대절은 쉴 수 있다는 말을 듣고-사실 처음에는 4대절 이러니까 무슨 송광사, 통도사나 해인사 같은 절간 얘기인 줄 알았어요(웃음)-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80년 1월에 마산 3․15의거 기념탑 앞에 한국노총 경남도본부가 있었어요. 여기서 노동조합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 그 때는 방위산업체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이래서 난리가 났었어요. 대동중공업 딸딸이(경운기) 만드는 줄 아는데-요즘 여성들 앞에서 ‘딸딸이’ 뭐 이런 얘기하면 성희롱으로 걸린다는데 그런 건 아니고요-겉으로는 그렇게 돼 있었지만 사실은 방위산업체였습니다.

그 때는 노조가 산별이었어요. 산별이 잘못 되면 ‘골 때리게’ 됩니다. 그래도 그 때는 산별이었습니다. 이 산별을 기업별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갑자기 조용해짐-자기한테 대답하라 시킬까봐) 70년까지는 산별이었는데 신군부, 전두환이 들어서면서 노동조합 깼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학노조도 형식은 산별이지만 실제로는 기업별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기업별 노조를 만들어 놓은 사람이 바로 전두환입니다. 기업별 노조는 일본하고 우리밖에 없습니다. 70년대 산별 교섭을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산별노조 경남지부장이 경남 전체 노동조합의 임금 체결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부장을 한 해에 집이 한 채씩 생긴다고 그랬습니다.

경남지부장이 (공장에) 온다면 서울에 있던 회장이 내려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합니다. 지부장은 사장실에 곧바로 가서 사장 자리에 털썩 앉습니다. 사장하고 전무 옆에 앉히고 노조에도 물어봅니다. 노조는 10퍼센트는 올려야 합니다 얘기하고, 사장 전무는 10퍼센트는 무립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 3퍼센트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럽니다. 그러면 며칠 있다가 통보가 와요, 노조가 10퍼센트 인상을 요구했지만 경영 실태를 볼 때 3.5퍼센트가 맞겠다, 그래서 3.5% 인상하기로 했다 이럽니다. 그러고는 0.5퍼센트를 자기가 챙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문제가 된다 해산시켜라, 전두환이 이렇게 나왔습니다. 80년대 영국 대처 수상이 노동조합 때려잡았습니다. 대처가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아닌 다른 대체 기구를 만들어서 노동조합 힘을 빼겠다고 해서 노사협의회를 들고 나왔습니다. 신현확이 당시 삼성 부회장이었는데 영국에서 이것을 배워와 정치자금 주면서 이것을 해 주시오 했습니다. 81년 산별 해체하고 기업별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대학 한 노조에 갔더니 민주노총 위원장이 누군지도 모르더라고. 그것도 임원들이! 사업장마다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로 양극화 현상이 아주 심하게 돼 있습니다. 노동조합도 그렇고 노동자도 그렇습니다. 같은 일을 해도 임금 격차가 크게 납니다. 대규모 사업장이냐 아니냐, 정규직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이 860만 명이라 합니다. 자본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독일 스위스는 100퍼센트 산별입니다. 그래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기업 임금을 올려주기 위해 중소기업 납품 단가를 자꾸 깎습니다. 중소기업에 기술력이 축적되지 않습니다. 아이엠에프가 아시아를 휩쓸었을 때 가장 안정되게 버틴 데가 어딥니까, 대만입니다. 대만은 대기업이 없습니다. 중소기업밖에 없습니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탄탄하게 받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바꾸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청소원 뽑는 데 (경쟁률이) 100대 1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안정된 직장이 있으니까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아이들은 어떡할 겁니까? 이 아이들을 위해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걱정입니다. 아이들 미래도 걱정되고 내 노후도 걱정됩니다.

아들만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다섯. 딸만 있는 사람? 비슷하네. 나는 아들만 셋입니다. 아들만 둘 있는 사람은 나중에 길바닥에 죽습니다. 큰아들 집에 가면 작은아들 집에 보내고, 작은아들한테 가 있으면 큰아들네 보내고 이러다가 길바닥에서 죽는 겁니다. 셋이 있는 사람은 길바닥에서도 못 죽고 논두렁에서 죽습니다. (질문, 그러면 아들 하나밖에 없는 사람은요?) 가만있어 보세요, 내가 다 얘기할 테니까.(웃음) 아들 하나 있는 사람은 양로원에 가서 죽습니다. 미리 어떻게 될는지 알고 양로원에 가기 때문에…….(웃음)

딸만 둘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요? 비행기 안에서 죽습니다. 큰딸이 유럽 보내고 돌아오면 작은 딸이 중국 관광 보내고 이러다가 죽습니다. 딸 하나 있으면? 딸네 집 부엌에서 죽습니다. 딸 수발만 ‘졸라’-이것은 욕이 아닙니다-하다가 딸네 부엌에서 죽는 겁니다.(웃음)

이런 세상은 바꿔야 합니다. 유럽은 대학까지 싹 다 무상교육입니다. 프랑스(독일이라 한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파업했습니다. 등록금 받아라 이런 요구가 나오니까 중앙정부가 지방정부한테 공을 넘겼습니다. 지방정부 너희가 먼저 받아봐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공공노조 200만 명 파업을 했습니다. 하루 파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이 파업을 빌미로 못하겠다 이랬습니다. 우리도 이런 파업 한 번 해봅시다.

우리는 대공장에 다니는 사람은 학자금까지 다 나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자식을 대학에) 보내냐. 민주노총 위원장 봉급이 얼만지 아십니까? (조용) 신문도 안 보시는 모양이네요. 한 달 156만원입니다. 그조차 두 달째 체불 상태입니다. 며칠 전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어, 당신 나가 돌아다니는 것은 그렇다 치고 월급은 들어와야 하지 않느냐 그럽디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다. 참어라.’ 이랬지요. 그랬더니 소리를 꽥 질러. 그래서 ‘알았어.’ 하고 바로 끊었지.

독일이나 이런 나라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는지 아십니까? 김대중 대통령 됐을 때 생산복지 열심히 했습니다. 직장 다니는 사람은 복지를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이제는 생산복지를 넘어 국민복지로 가야 합니다.

경남대에서 창원전문대 다니는 비정규직 (자녀의) 학자금 대 주겠습니까? 아닙니다. 유럽은 노조들이 주체로 서서 무상교육 시킵니다. 산별 노조의 힘입니다. 우리나라는 실업계 (고교)도 80퍼센트가 대학에 간다고 합디다.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졸업까지 하는 이는 20퍼센트도 안 된답니다. 학력이 달리거나 공부하는 돈을 대지 못해 중도 포기한답니다.

아이하고 싸웠는데 졌어. 실업계 가라, 이랬지요. 그렇게 하는데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 좀 봅시다, 합니다. 아버지도 실업계 어머니도 실업계 아들도 실업계 이래서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 인식 속에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밀려서 가는 데가 바로 실업계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런 것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기업별 노조에 물들다 보니까 모든 것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고용 임금 복지 제도 이런 것들이 모두 사업장 울타리에 갇혀 있습니다.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사학연금 받게 되지요? 국회에서 국민연금 수급률을 줄여놓았습니다.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국민연금 줄이고 공무원연금 조지고 그 다음에는 어덯게 할 것 같습니까? 사학연금입니다. 반드시 사학연금 손대게 돼 있습니다.

노동운동 달라져야 합니다.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고용보험 9조원이 넘는데 이것이 일자리를 확대하는 데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 관리 주체가 지금대로라면 그대로 놔둘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식 투자하고 정치자금으로 빼먹고 그러다가 바닥나게 됩니다. 이제 노동조합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서야 합니다. 이 돈을 갖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건설교통부 장관을 만났을 때 제안을 했습니다. 아파트 유럽형으로 짓습니다. 대형으로 주상복합 해 가면서 크게 짓습니다. 그래 내가 그랬어요, 아파트 껍데기만 유럽형으로 하면 뭐 하냐, 알맹이를 유럽형으로 해야지. 유럽형은 70퍼센트가 임대고 30퍼센트가 자가(自家)입니다. 강남 아파트 한 해 1억원씩 딸깍 딸깍 올라갑니다. 가만있어도 노동자 일한 이상 재산이 늘어납니다. 아이엠에프 때 인천에 집을 3500만원 주고 샀는데 1억원으로 올랐습니다. 기분 좋더라고……. 그런데 3억5000만원 주고 샀는데 10억원 오른 사람은 얼마나 기분 좋겠어요.

일단 이런 대답을 들었습니다. 재개발에서 26퍼센트를 임대로 하겠다, 같은 단지 안에서 (자가와) 표시 안 나게. 최소 50%를 요구하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제도를 바꾸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작년 개털 때, 사무총장에서 쫓겨나 개털 됐을 때 한 사업장 교육하러 갔는데 노조 대표가 임금 인상은 얘기하지도 말라고 합디다. 그래 ‘노동운동을 하는 놈이냐?’ 내가 이랬지요. 그랬더니 ‘지난해 40억원 적자가 났는데 올해는 원청업체에서 원가 절감 이따위 소리를 해대며 10퍼센트를 깎자고 나오는 바람에 적자폭이 100억원으로 늘어날 것 같습니다’, 이러는 것입니다. ‘야 이 놈아! 그러면 그 공장 앞에 조합원 데리고 가서 납품 단가 깎지 마라 데모를 해야 하지 않느냐?’ 그랬습니다. 돌아오는 답은 이랬습니다. ‘아이고, 그랬다가는 곧바로 납품이 끊어집니다.’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사실 임금 인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교육비 얼마나 올랐어요? 맞벌이도 한 사람 일해서 먹고 살기 어려우니까 하는 겁니다, 아닙니까?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 갔더니 투쟁하러 갔더니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그래서 갔는데 값이 1만5000원입니다. ‘눈깔’ 튀어나오더라고. 그래도 안 먹을 수가 있나,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은데. 나중에 받을 때 보니까 10퍼센트가 더해진 1만6500원이야. 1500원은 서빙하는 사람 임금입니다. 정해진 급여 없이 받은 손님 숫자대로 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임금이 퇴직금이나 이런 거 아예 없어. 에프티에이 체결되면 바로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대학노조 경남대지부 투쟁 열심히 했고, 또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라요. 사람 잘라내는 구조조정 피할 수 없어요. 왜냐 앞으로 가면 갈수록 학생이 줄어들게 돼 있기 때문에. 따라서 단위 조직 차원에서 ‘우리는 걱정 없어’ 이러면 안 되고 (산별노조인) 대학노조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내가 해고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해 봤어요. (손 치켜들고) ‘파업이다!’ 하면 노조가 파업을 했고 그래서 보안사 끌려가서 개처럼 맞고 해도 조합원들 다시 파업을 하면 풀려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이 딱 다가오더라고. 바로 해고됐지.

경남대지부 2년째지요? 2년째는 잘 나갈 수 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10년이 되면 권태기도 오고 무관심도 오고 이럽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잘 나갈 때 가장 어려울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17년 해고자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복직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대동중공업 위원장이 여기(5․1절 기념 남북노동자 통일대회) 왔어. 한국노총 소속입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해고자 신분이어서야 되겠느냐는 말이 나왔지? 그래서 이북 직총도 있고 하는 자리에서 그랬습니다. ‘위원장 복직 안 시킬 거냐.’ 그 자리에서는 ‘당연히 그래야죠.’ 했습니다. 그러고는 나중에 찾아와서는 ‘민주노총 위원장이 큰 일 하셔야지 대동중공업에 다시 들어오시려 합니까?’ 이럽니다.(웃음)

(대책을 세워 놓으려면) 크게 조직해야 합니다. 같이 행동을 해야 합니다. 아시아나항공 파업하면 대한항공이 돈 많이 법니다. 같이 파업을 하지 않으니까 사용자가 누구도 겁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 조직으로 뭉쳐야 합니다. 유럽에 갔더니 공항 노조가 파업을 합디다. 우리나라 같으면 환불해 내라 난리일 텐데 이 나라는 파업을 국민들이 지지를 합니다. 산별노조의 위력입니다. 또 개별 요구도 있지만 국민 전체의 생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들 보면 농업을 포기한 데가 하나도 없어. 스위스가 스페인이 미국과 에프티에이 협상하다가 농업 포기하라니까 나 안해! 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우리는 기름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기름뿐 아니라 밀도 수출한다는 사실 아십니까? 파이프 묻고 비싼 물 가져와서 사막에다 밀을 심습니다. 기름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지금은 밀이 질이 안 좋아 모두 다 수출하고 대신 질 좋은 밀 들여와 먹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사회적 의제를 갖고 투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산별노조라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업별 노조는 이런 일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저께 남북노동자 통일대회 했지만 통일 이것도 중요한 의제다. 전쟁 없어져야 한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노동조합이 해야 합니다.

현대자동차 파업한다, 이런 보도가 나가면 민주노총 조합원조차도 ‘저 새끼들 왜 저래?’ 합니다. 보도를 그대로 보지 마십시오. 한 번 더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렇게 하는 데는 무슨 까닭이 있겠지, 그 까닭이 뭘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보도를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절대 안 됩니다. 크게 단결합시다. 여러분! 산별노조를 만들어서 사회를 바꿉시다!

바꾸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 일터가 없어집니다. 베트남으로 말레이시아로 일자리 구하러 나가야 하는 일이 현실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보기를 하나 들겠습니다. 민주노총은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습니다. 부자 자식은 그런 데 안 가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자식이 그런 데 가기 때문입니다. 이 앞에 병사 한 명이 죽었지 않습니까? 제가 문상을 갔습니다. 부모가 저를 붙잡고 그럽니다. ‘민주노총이 왜 반대했는지 알겠다. 고맙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기자들이 묻습니다.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이 왜 정치 쟁점을 갖고 싸우느냐? 그런데 임금 갖고 싸우면 기자들은 다시 이럽니다. ‘지겹다, 또 임금 갖고 그런다.’ 정치 쟁점도 다루지 말라, 임금 투쟁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민주노총더러 무엇 하라는 말입니까? 이런 데 휘둘리지 맙시다.

여러분이 민주노총입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내 발길……’ 이런 노래도 있지만 나그네 되지 맙시다. 주인이 됩시다. 민주노총의 주인이 되고 세상의 주인이 됩시다.


여러분이 바로 민주노총이니까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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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5.26 22:58

    첫댓글 재흔 선배님 이분은 누구십니까? !!! 우리 전북기공인 이시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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