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28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충주 비료공장
제가 충주비료공장을 첨본 시기가 국민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가서 보았지요 16만평 대지위에 지여진 그 웅장함이란 지금도 잊을수가 없군요
고향을 떠나 살때도 충주비료 포장지만 봐도 남다른 애향심이 들곤 햇는데 1977년 동양최대에 여천 남해화학 비료공장이 설립되면서 하향길을 걷게된 충주비료공장은 1983년 암모니아
공장과 함께 그 생명을 다한 충주비료공장이 없어 진다고 할때 한편으론 섭섭한맘 금할길 없었답니다 (글 문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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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충주비료공장은 당시 충주발전의 핵이라 할수 있었죠.
당시의 비료공장의 유명도가 어느정도냐 하면요
시외전화를 걸때 충주라하면 잘 몰랐는데 비료공장 하면 알정도었으니까요.
더구나 대한뉴스를 들으니 극장에서 공연전 필수항목 대한뉴스 이었던 것을요
잊혀저가는 옛 추억 되살려 주시어 감사 드립니다.
내가 충주비료 공장에 대한 추억은 당시 세도가 리기붕 도장만 받으면
충주 비료공장 취직이 일사천리로 되였다고 하더군요
당시 영화전에 필수로 보여주던 대한늬우스엔 충주비료공장과 구로동에 자리한
리기붕이 짓다가 완성못하고 죽은 건빵공장(현재 제일제당)이 빠질수 없었답니다
충주인에 자부심이 비료공장 아닙니까 ?
귀한 자료를 보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충주비료공장은 제게도 추억입니다
그 당시 전 어린꼬마였지만 저의 형님께서 회장 부속실에 근무를 하며
손가락 사고로 퇴직하였으며 유일하게 목행동에 공동 목욕탕이 있었던 시절
목욕탕에서 관리를 하며 저희 부모님께서 붕어빵장사를 하며
처음으로 오뎅을 마음껏 먹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고운 자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런 아스라한 어린시절 추억이 서려 있군요
저는 고향이 충주가 아닌 영월이지만
어릴적 1961년도부터 몇년 충주 시장안에서 부모님이 장사를하여 살았습니다
그때 충주 비료공장에서 몰래 곱돌을 가져와
땅에 놀이용 그리기를하고 놀았던 기억이 떠 오르는군요
곱던 추억을 생각하며
잘 보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요 선생님 ^^
곱돌이란 단어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낱말이군요
어려서는 마당에 사방치기나 원두막 가이생 또는 사다리
넘기대회 같은 노리를 할때 곱돌로 하얀선을 긋고
놀이하던 아스라한 추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귀한 댓글 주시여 감사합니다 백초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