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휴식
구가야 아카라 지음 / 홍성인 옮김
[지은이]
정신과 의사. 미국 정신의학회 회원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첨단 뇌과학을 연구한 구가야 아키라는 현대인들의 피로와 심리적 불안, 스트레스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현재 미국에서 멘탈크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현대인의 피로가 디폴트(default-채무자가 상환만기일에 이행 못한 상태) 모드 네트워크의 과도한 활성화, 즉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순간에도 뇌가 쉼 없이 공회전(空回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뇌과학(腦科學) 이론에 주목했다. 그리고 메타 연구와 현장 경험을 쌓으면서 마인드 풀리스(mindfulness-마음 챙김)가 피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마인드 풀리스의 실질적 효능과 구체적 실행 지침 7가지를 소개한다.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이 실행하고 있는 최고의 휴식법은 일상을 더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예일대학교·UCLA 메디컬센터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 트랜스호프 메디컬센터(Trans Hope Medical) 원장으로 마인드 풀리스 인지요법. TMS 자기치료 등 최첨단 치료를 도입한 진료를 전개하고 있다.
[ 시작하며 ]
아무리 쉬어도 피곤한 당신을 위한 진정한 휴식법
‘바쁘건 바쁘지 않건 늘 피곤하다.’
‘아무리 쉬고 잠을 자도 몸이 무겁다.’
‘집중력이 부족하다. 잡념이 많다.’
만약 당신이 이런 상태라면 단순히 몸이 지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원인은 뇌가 지쳐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휴식=몸을 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거나 뜨거운 온천욕을 한다거나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거나…… 하는 등 말이다. 물론 그렇게 몸을 쉬게 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풀리지 않는 피로도 분명 있다. 바로 ‘뇌의 피로’이다. 뇌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뇌에 맞는 휴식법이 필요하다.
뇌의 피로는 육체 피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몸을 쉬어도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뇌의 피로감이 쌓이면 몸의 피로도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해소되지 못하고 점점 축적된다. 그렇게 피로가 만성화되면 늘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상태가 된다. 자연히 일에서도 성과가 저하될 뿐만 아니라 악순환이 반복되면 마음의 병을 얻기 쉽다.
과학적인 뇌 휴식법
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우스베이에서 멘탈크리닉(mental clinic-정신진료소)을 운영하고 있다. 예일대에서 연구생활을 마치고 클리닉을 오픈한 뒤 사람들 마음의 고민을 해결해왔다.
최근 미국의 정신의료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약물치료를 멀리하고 있다. 뇌를 하나의 장기로 인식하고 직접 치료하려는 뇌과학적인 연구법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뇌과학의 발전과 함께 TMS 자기치료(磁氣治療) 등의 의료기술 혁신으로 부작용이 따르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마음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카운슬링(counseling-심리적인 문제나 고민 따위가 있는 사람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한 활동) 분야에도 마인드풀니스(깨달음으로 가는 실용적인 마음 수행 ≒ 명상[冥想])를 포함한 제 3세대 인지행동요법(認知行動療法) 등이 도입되고 있다. 여기서 마인드풀니스는 단순히 긴장을 이완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영역에도 뇌과학이 접목되어 마인드풀니스가 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나는 예일대 의대 정신과에서 첨단 뇌과학을 연구하면서 이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였다. 현재 클리닉에서도 TMS 자기치료(磁氣治療)와 마인드풀니스를 기반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마인드풀니스가 상당히 간단하면서도 유효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다. 환자들의 변화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 책을 쓰게 된 까닭도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얻은 것들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서이다.
뇌(腦)는 ‘가만히 있어도’ 지친다.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의 다른 이름은 마음 챙김 명상이다. 명상(冥想)이라고 하면 왠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볼 수도 있다. 왠지 종교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굳이 그런 번거로운 것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 뇌가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지활동(認知活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뇌가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점점 에너지를 소모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뇌는 체중의 2퍼센트 정도의 크기지만 신체가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사용하는 ‘대식가(大食家)’다.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라는 뇌 회로에 상용된다. 이는 뇌의 안쪽 전전두엽과 후방대상피질, 설전부(쐐기앞소엽), 하두정소엽(아래마루소엽)으로 구성되는 뇌내 네트워크로 뇌가 의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작동하는 기초 활동이다. 자동차의 아이들링(공회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즉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공회전하며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예일대에서 연구를 하던 시절부터 바로 이 부분에 관심을 가졌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발견자인 마커스 라이클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구하기도 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뇌가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 중 무려 60~80%를 사용한다. 즉 가만히 있어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뇌는 점점 지치고 만다. ‘하루 종일 가만히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피곤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스스로 다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활성화 되지 않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화하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과도한 활성화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뇌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진정한 휴식을 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당신이 느끼는 피로감은 뇌의 현상이다. 물리적인 피로 이상으로 뇌의 피로가 우리로 하여금 ‘지쳤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렇기에 뇌를 쉬게 하는 ‘뇌 휴식법’을 익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집중력과 일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세계 엘리트들이 선택한 휴식법
마인드풀니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미국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이 마인드풀니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마인드풀니스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명상을 통한 뇌 휴식법’ 전반을 의미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명상 실천자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 구굴에서도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라는 마인드풀니스 사내연수프로그램을 실시해 실질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그 외에 페이스 북, 시스코, 파타고니아, 애트나 등 유명 기업에서도 마인드풀니스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세일즈포스닷컴의 마크 베니오프, 링크드인의 제프와이너, 홀푸드마켓의 존 매커 등의 CEO나 트위터를 창업한 에반 윌리엄스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실리를 중시하는 미국인, 그것도 정말 도움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엘리트들이 왜 마인드풀니스를 실천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뇌 휴식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마인드풀리스가 ‘최고의 휴식법’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마인드풀니스의 뇌과학적인 증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에 여러 번 등장하는 매사추세츠대학의 저드슨 브루어(Judson Brewer)는 예일대학 의과대 정신과에서 함께 연구했던 연구자이다. 그는 마인드풀니스를 통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주요부위 활동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며 마인드풀니스가 ‘과학적으로 올바른 뇌 휴식법’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사실 그 외에도 다양한 연구 결과가 이미 마인드풀니스가 가장 실질적이고 과학적인 휴식법이라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다. 그러니 당신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마인드풀니스가 비과학적이고 종교적이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지치지 않는 몸과 마음을 위하여
이 책에서는 ‘최고의 휴식법’인 ‘마인드풀니스’에 대해 소개한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야기 형식) 형식을 빌어서 가능한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무대는 예일대학 의학부, 등장인물은 모두 가공의 인물이지만 인용한 연구내용은 실제 자료들이며, 그 내용은 참고문헌을 통해 자세하게 소개했으니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이 궁금하다면 참고하면 좋겠다.
이 책에서는 마인드풀니스가 뇌과학의 최전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사실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동시에 당신의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뇌의 피로를 해소하는 최고의 휴식법’을, 7가지로 제시하였다. 전체를 다 읽지 않는다고 해도 이 7가지 방법만 익혀도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은 ‘휴식’이란 말을 들으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혹시 임기응변적인 응급처치를 상상하는 건 아닌가? 단언컨대 궁극적(窮極的)인 휴식(休息)은 단순한 ‘충전’이 아니다. 뇌는 변화하는 성질, 즉 뇌 가소성(可塑性-고체가 어떤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을 없애도 본디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충전’이 아니라 ‘쉽게 지치지 않는 뇌’로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다. 자신의 뇌를 바꿔서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마음’의 근력을 갖는 것이 『최고의 휴식』의 진짜 목적이다.
그 점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 프롤로그 ]
뉴헤이븐의 은자(隱者-세속을 벗어나 있는 사람)
나는 결국 학교의 정신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연구실이 보였다. 활짝 열려있는 연구실 문 안에서 분주하게 오가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오, 나쓰!”
이 지하 연구실 주인인 랄프 그로브 교수(일명:요다) 이다.
20세기 후반부터 혁신적인 뇌과학 연구 결과를 차례로 발표한 이 노인은 나를 ‘나쓰’라고 부른다. 엄연히 오가와 나쓰호라는 이름이 있지만, 미국인에게는 기억도 발음도 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슈퍼! 다시 만나다니!”
‘슈퍼’는 멋지다. 놀랍다. 라는 의미로 그가 자주 쓰는 말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구겨진 흰색 가운, 사방으로 뻗친 덥수룩한 머리, 싸구려 샌들에 보플투성이 양말……. 그로브 교수는 여전히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그로브 교수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의 외모를 100퍼센트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요다’와 똑같다고 말하는 거다. 실제로 직접 그를 본 사람은 너무 닮은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하하, 오랜만이야. 연구는 잘 돼?”
요다(나는 속으로 그를 그렇게 불렀다.)는 힘껏 쥐어짠 스펀지처럼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며 귀에 거슬릴 만큼 큰소리로 웃었다. 그는 나와의 재회가 기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연구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했다.
“선생님……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마음속에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어서 앉아. 차 한 잔 어때?”
요다는 내 말은 개의치 않는 듯 도자기로 된 찻잔에 녹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는 순간 옆에 수북이 쌓여있던 학술지가 눈사태를 일으키듯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연구실도 그의 외모만큼이나 어수선했다.
“후하하하.”
그가 웃으며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였다. 가운 옆구리의 누런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언제부터 세탁하지 않은 걸까. 하긴 이 역시 익숙한 광경이었다.
“나쓰, 왠지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피곤하면 얼굴의 빛이 사라지는데 말이야. 하긴 피곤하지 않은 현대인이 어디 있겠어. 후하하.”
요다의 말 대로였다. 나는 지금 이런저런 문제들로 골치가 아팠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 지쳐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만한 기력도, 체력도 바닥나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신기하게도 내 발걸음이 저절로 이곳을 향했다.
눈앞에 있는 괴이한 노인이 자리 잡고 있는 지하 연구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곳.
그곳에 내발로 다시 찾아왔다.
요다가 따라준 따뜻한 녹차를 한 모금 마시자 지금껏 외면했던 피로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왔다.
“선생님, 사실은…….”
-이것은 내가 최고의 휴식을 얻기까지의 이야기이다.
1. 세계 최고의 엘리트의 휴식 법
무기력하고 패기가 없다면
지금 뇌가 지쳐있지 않은지 점검해보자.
당신 스스로 제대로 쉬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최고의 휴식을 얻을 수 있다.
내 이름은 오가와 나쓰호. 29세, 뇌과학 연구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일본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예일대학의 연구원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일본에 있을 때는 전도유망한 인재였다.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세계적인 저널(journal-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신문이나 잡지)에 논문도 발표했다. 다른 사람이 5시간으로 만족하는 것을 나는 10시간을 들여 연구했다. 그만큼 남보다 많은 시간을 연구에 투자했다.
게다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이성이 적지 않을 만큼 외모도 나쁘지 않았다. 재능과 노력 모두 겸비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의기양양하게 미국으로 건너와 최고의 연구원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을 열심히 보낼 작정이었다.
미국 명문인, 엄선된 엘리트만 모이는 최고 학교 중 나는 예일을 선택했다. 예일대 의대 신경정신과는 〈US뉴스〉 조사에서 매해 세계최첨단 랭킹 5위에 들 만큼 평가를 받는 곳이다. 세계최첨단 멘탈 케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에 ‘최첨단 뇌과학을 통해 마음의 고민을 해결하고 싶다’는 내 바람을 이곳에서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앞으로 펼쳐질 연구생활에 가슴이 설렜다. 명성답게 신경정신과가 있는 건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의 연구실이 줄지어 있었다. 유전자연구실, 임상실험연구실, 최첨단 뇌 과학 연구실, 역학연구실, 화상(畵像)연구실……. 그곳을 둘러보며 기대대로 내 심장은 더욱 요동쳤다.
그리고 내가 랄프 그로브 교수-요다의 연구실에 배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최첨단 뇌과학을 전공하는 연구자 중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연구 성과를 거둔 연구자였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 까진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요다를 닮은 외모가 가져다준 현실과 이상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그로브 교수, 옛날하고는 달라.”
“하필이면 연구실까지…… 아무튼 안됐어.”
대부분의 동료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학자로서의 그의 명예는 실추된 것 같았다. 몇몇에게 들으니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연구실로 옮긴 후로는 아무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로브 교수가 최첨단 뇌 과학 연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이었다.
∙∙∙
나는 왜 짜증이 나고 무기력한 걸까
“교토에서 나고 자랐다고? 슈퍼!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정말 멋진 곳이더군.”
요다는 오랜만에 자신의 연구실에 온 일본인 연구원을 크게 환대했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불결함만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괴짜 노인 밑에 있다가는 내 귀한 연구생활을 낭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연구실에 배속된 지 2주일도 채 안 되었을 때 학과장을 찾아가 ‘당장 연구실을 바꾸고 싶다.’고 요구했다. 그렇게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학과장을 설득해 첨단 뇌과학연구실로 옮겼다.
풀죽은 요다를 팽개치고 쟁취한 새로운 연구 환경은 내가 꿈꾸던 그대로였다. 동료들은 소름끼칠 만큼 집중하여 연구에 몰두했고, 정신건강에 관한 뇌과학의 현주소를 확인할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대로 우울증이나 불면증과 뇌의 관련성이 밝혀진 것을 너머, 이미 뇌를 직접 치료하면서 증상을 개선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는 약물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최첨단 뇌과학연구실은 어쨌든 내게는 놀라운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는 첨단지식의 보고였다. 뇌과학을 통해서라면 인간의 뇌를 만드는 시대가 곧 도래 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게 생겼을 정도였다. 나는 그동안 충전해둔 에너지를 한 번에 터트린 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에만 몰두했다.
∙∙∙
“그런데 왜 다시 이 늙은이가 있는 곳에 들어온 거지?”
나의 씁쓸한 회상을 꿰뚫기라도 한 듯 요다가 물었다.
“그게…….”
한 마디로 나는 패배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인류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는 별다른 연구 성과를 내지 못했다. 첨단뇌과학연구실은 신경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경쟁이 심했다. 어느 날, 어렵사리 신청한 연구조성금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순간 나는 연구실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눈물, 오열, 과호흡증상이 이어져 결국 연구실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진 그날 이후 연구실에 나가지도 못하고 하숙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폐인이 된 것 같았다.
‘그냥 일본에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수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고 빈정대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 절대 돌아갈 수 없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초조함에 나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학교와 가까운 곳에 계신 큰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큰아버지는 코네티컷 뉴케이넌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정말 힘들 때는 큰아버지를 찾아가.”
미국으로 오기 직전 어머니는 큰아버지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큰아버지와는 20년 넘게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혈육이지 않은가. 분명 큰아버지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렇게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는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과 가능하면 큰아버지의 일을 돕고 싶다고 솔직하게 메일을 적어 보냈다.
다행이 큰아버지는 ‘알았다’며 가게 위치가 담긴 답신을 보내주셨다. 메일 끄트머리에 붙어있던 인터넷주소를 클릭하자 ‘모멘트’라는 베이글(딱딱한 롤빵) 가게의 홈페이지가 열렸다. 오랫동안 손보지 않아 낡은 디자인의 홈페이지,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일단 가게로 찾아가보기로 했다.
∙∙∙
뉴케이넌 중심가는 전체적으로 뉴잉글랜드 특유의 역사가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큰아버지의 베이글 가게는 빨간 벽돌건물이 늘어선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귀퉁이에 있었다. 낡은 외관만으로도 어렴풋이 느낌이 왔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선 순간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
아무리 내가 연구실에서만 지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른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가게 안에는 스태프 몇 명 외에 손님은 없고, 큰아버지 같은 남자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베이글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는데 종업원의 응대는 무뚝뚝했고, 테이블과 바닥에는 뭔지 모를 얼룩이 들러붙어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나온 베이글은 인사말로라도 맛있다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별로였다. 커피도 미지근하고, 한마디로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최악의 가게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순간 난데없이 어디선가 일본말이 들려왔다.
“형편없지? 네가 본 그대로야. 이러니 내가 뭘 도와줄 수 있겠니?”
깜짝 놀라 돌아보니 중년의 일본 남성이 서 있었다. 큰아버지였다. 아주 어렴풋한 기억이기는 하지만 큰아버지는 분명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20년 만에 만났다. 아무리 반갑지 않다고 해도 그 사이 성인이 된 조카에게 ‘많이 컸다’는 인사 한마디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은가.
“사장인 내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어. 이 가게는 희망이 없어. 벌이도 시원치 않아서 네게 월급도 줄 수 없단다. 나쓰, 네 엄마에게 연락받았다. 일본으로 돌아가! 그녀석도 상태가 안 좋다고 하니 말이다.”
‘그 녀석’은 큰아버지의 동생, 그러니까 내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와 아버지 사이는 정말 최악이었다. 내 아버지는 교토에 있는 주지스님이시다. 어릴 적부터 좌선이며 힘든 수행을 시켰다. 아주 어릴 때야 그냥 시키는 대로 참고 했지만 나는 사춘기 무렵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좌선, 수행…… 그런 비과학적인 것으로 어떻게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겠어요!”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 과학적인 방식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뇌과학으로 나를 더욱 몰아붙였는지도 모른다.
예일 행을 결정한 직후 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아버지는 내가 미국에 가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만둬, 너한테는 무리야!”
“아버지가 어떻게 알아요!”
마음속에 있던 오랜 불만은 병든 아버지 앞에서 결국 그렇게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 진심으로 분했다. 그러니 더더욱 연구자로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기 전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그렇게 결심했다.
“여기서 일하게 해주세요!”
나는 큰아버지에게 매달렸다.
내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 가게를 살려내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다. 완고한 성격의 큰아버지였지만 내가 한 시간 넘게 물고 늘어지자 노골적으로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결국 두 손을 드셨다.
“멋대로 해! 이런 가게…… 무슨 희망이 있다고.”
∙∙∙
다음 날 아침, 큰아버지의 적당한 소개로 모멘트(베이글 가게)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쪽은 예일에서 뇌과학을 연구하는 조카 나쓰, 오늘부터 가게 일을 도와줄 거야.”
모멘트에서 일하는 사람은 큰아버지를 포함해 전부 여섯 명이었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문제가 있었다. 적당히 비위만 맞추는 살살이, 주의 산만에 지적을 하면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반항적인 사람, 불손하고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까지. 게다가 모두들 주체성 없이 수동적이고 부정적인데다 무기력했다. 하나같이 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느릿느릿 게을렀다.
나는 그들에게 보란 듯이 가게 이곳저곳을 바쁘게 움직이며 스태프에게 거침없이 주의를 주었다. 홀에서 직접 주문도 받고 서빙을 하며 본보기를 보이려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경영을 공부했고,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내가 의욕을 갖고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스태프들은 이전보다 더욱 지친 얼굴들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게을러졌을 정도였다.
나 역시 피로와 짜증이 쌓여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결국 손님 앞에서 스태프 중 한 명에게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다음날 스태프들은 작당이라도 한 듯 모두 일하기를 거부했다. 큰아버지에게 ‘저 사람을 해고하지 않는 한 일 하지 않겠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미안하지만 네가 그만두어야겠다. 자, 일주일치 수고비.”
큰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지셨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완전히 지쳤다. 미국에 와서 몇 달째 쉬지 못했다. 아니, 일본에 있을 때도 제대로 쉰 기억이 없다. 머릿속은 늘 생각으로 차있었다. 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쉬려고 해도 쉴 수가 없었다.
∙∙∙
뇌에 쌓인 피로를 풀어라
“그래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연구실 앞이었다?”
요다는 잔뜩 구기며 웃었다. 억울하지만 그의 말 대로였다.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요다 교수뿐이었다. 사실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나를 무조건 환영해준 사람은 요다 외에는 없다.
“내가 별 도움이 못 될 것 같은데……. 보다시피 나는 뉴헤이븐의 한 귀퉁이에서 마인드풀니스(명상)에 빠져있는 늙은이일 뿐이거든.”
사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첨단 뇌과학 연구를 그만둔 요다가 마인드풀니스 명상에 빠져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연구실에서 명상을 하는 그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참을 수 없었다. 그의 모습에서 좌선수행을 하는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과학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뇌과학을 공부하러 예일까지 왔는데 그 지긋지긋한 수행을 또 지켜봐야하다니!
하지만 지금은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은가. 더 이상 그런 기분에 얽매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다가 마인드풀니스는 미국에서 엄청난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학교, 병원, 많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이야기는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으려 애쓰던 내 귀에까지 들려왔을 정도였다. 구굴, 애플, 시스코,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기업에서도 속속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도입하고 있고, 일류 경영자들이 마인드풀니스를 실천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마인드풀니스라면 모멘트의 패기 없는 스태프들과 큰아버지를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일까요?”
요다는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 뻔뻔스러운가, 하긴 일방적으로 내 생각만 늘어놓고 연구실을 나가버린 주제에 이제 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니 내가 요다라도 나 같은 인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요다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음……, 할 수 있어. 모멘트라고 했지? 확실히 바뀔 수 있어.”
나는 놀란 눈으로 요다를 쳐다보았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신통치 않은 외모의 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요다의 두 눈이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요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탈진한 직장일수록 마인드풀니스가 효과를 발휘하지. 마인드풀니스는 최고의 휴식법이거든.”
“네? 그럼 모멘트를 살리는데 도움을 주시는 건가요?”
나는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물론이지! 단, 조건이 한 가지 있어.”
“조건이요?”
“그래, 물론 아주 간단한 건데 나쓰 자네도 내가 가르쳐주는 휴식법을 실천하는 거야. 내가 보기에 나쓰는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해. 나쓰 얼굴이 어떤지 알아? 몇 년은 쉬지 못한 것처럼 보여. 그러니 나쓰부터 휴식을 취하는 거야. 어때, 나와 약속할 수 있어?”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슈퍼!”
평소 입버릇과 쥐어짠 스펀지처럼 구겨진 얼굴의 스마일.
우리의 ‘최고의 휴식법 수업’이 시작되었다.
ㅡ ( 매주 토요일에 계속 됩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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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고 2023년 , 새해 들어서며 한마디~~! "세상에는 감사할 일들로 참 가득차고 넘치네유~~!" 그중 내가 하는 일도 하나 있다.ㅡ 내가 도서관에 출입한지 어언 4년이 넘어 5년에 들서섰다.ㅡ 이곳 아산시 온양으로 온지, 그러니까 2017년 11월 27일! 운동 한다고, 2km 정도 걸어, 둘레길 5km 정도 되는 신정호 공원 돌며 2018년 내내 4철 꽃구경 하고, 카페에 올려 꽃 자랑도 했는데, 이제 좀 재미가 없던 차에, 누가 노인복지관에 가면 장기, 바둑, 당구, 탁구, 붓글씨, 아코디언, 색스폰 등등....! 각종 강의도 있어 공부도 할수있고, 천원짜리 점심도.ㅡ 좋은 얘기들만 듣고 솔깃해서 2019년 초 아산시 노인종합복지관에 등록했다. 등록번호 10,592번.ㅡ 그러니까 지금 만 4년 넘어 이제 5년 채 들어섰다.ㅡ 그런데 등록하고 보니 노인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어느 분야고 사람이 밀려 차례를 기다려야 한단다.ㅡ 그런데 좀 시끄러워서 있을 만한 곳이 마땅치않아 고민하던 차에 옆 건물 '근로복지관'에 '남산도서관'이 다른곳으로 옮기고, 그자리에 '작은도서관'이 있다기에 가 봤더니 조용하고, 많은책 읽을 수있고, 컴퓨터도 할수있고, 하! 이런 곳이 있었구나!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좋은 글 있으면, 컴퓨터에 '자연에서 배우자'라는 내 카페에 올리기 시작했다.ㅡ 처음에는 치매 예방에 손가락운동이 좋을것 같아 시작했는데, 몇십 년 전 책 한권 쓰느라 컴퓨터 초보부터 시작해서 타자도 좀 치던 것이 오랜만에 쳐보니 굳은 손가락이 자유롭지 못하다.ㅡ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좀 손가락이 풀리는 것 같다.ㅡ 지금은 책을 몇 권 올리다보니 읽어주는 이들도 꽤 되는 것 같다.ㅡ 그래서 해보는 생각! 읽는 사람중 젊은이가 있다면, 내가 젊어서 해보지 못했던 어른 노릇, 내 글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해보는 느낌이다.ㅡ 매주 토요일 새벽에 올리는데, 두 권은 다 쳐 저장해놓았고, 세권채 쳐 저장하는중이다.ㅡ 그러니까 오는 6월분까지 저장돼 있고, 이제 7월분 저장하는 중이다.ㅡ 지금으로선 언제 갈진 모르지만, 정신이 있는 날까진 계속 될 것이다.ㅡ 1937 정축, 음정윌 스무이틀, 너무 오래 살다보니 가족들에게 짐이되어 미안하기 짝이 없다.ㅡ 그나마 이런 시설이 있어 두손 모아 감사 감사 한다.ㅡ "하이고 참 세월두 빠르구먼 유~~~~ㅠㅠ" 한껏 기지개를 켠다.~~~~~~! 2023년 1월 7일 카페지기 이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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