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북부 가나안 정복 (수 11:1-15)
초점:진리 전쟁론
요약
하솔왕 야빈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한 북부 가나안 동맹군들은 진리전쟁의
예표이다. 하솔이 모든 나라의 머리이듯 머리는 인격의 대표요 사상이 머무는 곳임
을, 하솔이 '둘러쌓인' 의 뜻이듯 사람은 이론에 둘러 쌓인 존재이며, 하솔이 전쟁의
각축장이듯 머리는 잡념의 치열한 전쟁터이며, 북쪽에 위치함은 높음과 존귀의 상징
이며, 북부 전쟁에 관한 기록이 불분명하듯 인간의 이론은 가설 투성이일 뿐이요,
집결 장소 역시 작은 메롬 물가로 이는 보잘 것 없는 세상 지식을, 막강한 그들의
세력은 인본주의의 막대한 세력을 암시한다. 이 진리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진리
는 이긴다는 승리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잘못된 생각과 사상은 발전되기 전에 물리
쳐야 하며,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게 하고, 확산을 막으며, 신앙의 참 진리성을 더
욱 밝히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하솔 만을 불사름은 세상 지식도 진리를 위해 적
절히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강해
오늘은 '북부 가나안 전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전쟁은 여호수아의
군대의 마지막 전쟁입니다. 남부 가나안을 정복하자 북부 가나안 국가들이 하솔왕
야빈을 중심으로 뭉쳐 이스라엘을 대적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본문은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생각과 이념과 사상 혹은 비진리와의 전쟁을 다루고 있
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중요한 전쟁입니다. 그동안 여
러 부분의 영적싸움을 공부했습니다. 영적싸움에서 영혼을 다스리고, 자아를 다스
리고, 사단을 다스리고, 몸을 다스리고, 죄를 다스리고, 그리고 생각을 다스리면
그것은 완전한 승리입니다. 오늘 말씀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이해되셨으리라 믿습
니다.
그럼, 먼저 본문이 보여주는 머리의 특징을 살펴봅시다.
1.머리는 인격의 대표요 지식이 머무는 곳입니다.
10절에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다 했습니다. 머리란 먼저 두령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처럼 머리는 인격의 대표입니다. 그리고 머리란 생각하는 곳,
지식이 머무는 곳, 이론의 거점이 머리입니다. 그래서 지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머리입니다.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머리에 이상이 오면 소용이 없습니
다.
2.머리는 생각으로 지배하는 곳입니다
여기 '하솔'이란 이름의 뜻이 '둘러 싸인 곳' 혹은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문자적
으로는 하솔이 대단한 천혜의 요새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사람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이론과 사상입니다. 욥을 지배했던 것은 그가 그토
록 몸부림치며 갈등한 그의 사상이었지 그를 둘러친 복의 물리적인 울타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물리적인 환경의 울타리들은 복일 뿐 신앙과 인격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인격과 신앙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언제
나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론 학문 이념 사상 등의 울타
리입니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려면 그의 성장 배경과 학문적인 배경 등을 연구
하는 것입니다. 이 울타리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 예루살렘 교회와 베드로를 보세
요. 그 교회가 유대주의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박해를 통해서만이 그들을
흩으실수 있었습니다. 가장 성령이 충만하다는 교회가 이 정도입니다. 이것이 둘
러싸인 하솔이 보여주는 사상의 울타리입니다.
3.머리 속은 수많은 전쟁의 각축장입니다.
역사를 보면 하솔은 대단히 중요한 전략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하솔은 수없
이 많은 전쟁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이처럼 머리가 그렇습니다. 머리는 갈등 번민
혹은 토론 주장 충돌 등 내부적으로 이론의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외부적으로도
이론적인 공격을 받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하고 그것이 머리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머리로 하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방황하고 불신앙적으로 변합니다. 머리
는 진리를 담는 그릇으로서만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4.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지리적으로 하솔은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가나안 사람들에게 북쪽은 언제나 높
음의 상징이요, 신들이 주재하는 거룩의 상징이요, 구름이 그곳에서 일어나 비가
오고, 축복의 원천이었습니다. 이처럼 머리는 손을 얹어 축복하는 장소로서도 중
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히 지혜를 구했는데 지혜를 구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5.인간의 머리는 불완전합니다.
본문의 1-4절을 보면 북부는 남부와는 달리 성경 기록에 있어서 구체성이 불분
명하게 기록 되었습니다. 이런 것에도 의미가 있는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
적 비유란 그래서 오묘합니다. 보면 왕들의 이름이 일부 나오나 모두 나오지 않는
불분명성이 있습니다. 또 지명 역시 나오나 불분명하고 복잡합니다. 인간의 이론
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인간의 이론은 분명한 근거도 있지만 대개가 근거들이 희
박한 주관적입니다. 이렇게 세상이론들은 진실도 있으나 가설과 거짓투성입니다.
6.그리고 인간의 이론은 보잘 것이 없습니다.
여기 그 군대들이 집결한 장소를 보십시오. 그곳이 어디입니까? 5절에 메롬 물
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여러 개의 호수가 있지만 가장 작은 것이 메롬호
수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호수가 메롬보다 더 작은 '비르케트 엘 위쉬' 호수라
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상징입니다. 이런 작은 호수가에 진쳤습니
다. 여기서 물은 사상을 가리키고, 작다는 것은 세상 지식이란 보잘 것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쥐꼬리만한 세상 지식을 내세우며 진리를 대적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잘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했으면 얼마나 발전했다고 하나님이 있다 없다 미국의 최고 가는 과
학자들도 하나님을 믿는데 그보다 못하면서 함부로 단정들을 하는 것을 보면 정
말 메롬 물가에 진친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 작은 물이 제일인 줄 알고 거기다
진치고 대적하고,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학력은 보잘 것 없지만 태평양보다 더 넓
은 진리를 가슴에 안고 그 진리의 바다에서 진리의 물을 맘껏 마시고 있으미 얼
마나 감사합니까?
7.이 인간의 생각이 자아의 중요 거점입니다.
여기 야빈 왕은 '그가 세운다'는 뜻으로 강한 자기 주관의 상징이며, 더구나 왕
이니 이는 타인의 지시를 받지 않는 강한 완고함을 의미합니다. 이 야빈은 여호수
아에게 진멸되지만 사사기 4장을 보면 그들은 다시 나라를 부활시킵니다. 야빈과
시스라는 자아의 상징입니다. 자아는 이처럼 죽여도 다시 살아나려고 합니다. 하
나님께서는 가나안의 백성들 중 일부는 잔존시켰지만 왕은 모두 진멸시켰습니다.
이처럼 자아를 용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8.머리는 이론을 전개하는 장입니다.
하솔 왕국 앞에 전개되어 있는 넓은 이스르엘 평야는 이론 전개의 마당입니다.
그래서 본문 및 사사기 4장의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철병거 구백승을 거느리
고 이 벌판을 종횡무진 몰고 다닙니다. 사상이 잘못되면 이토록 방자하기 그지 없
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잘못된 사상으로 부모형제도 죽였던
지난 날의 민족의 비극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9.인본주의 세력은 막강합니다.
4절에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심히 많아 해변의 수
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북방 연합
군이 30만명의 보병과 만명의 기병 그리고 2만의 병거를 가진 것으로 추정했습니
다. 여기 2만대의 병거란 고대시대 전투로는 상상치 못할 막강한 전력입니다. 이
들이 모여서 이스라엘을 대적합니다. 여기 30만이나 2만이란 문자적으로는 막강
이지만 영적 수의 의미로 풀어보면 완전함과 확실함을 표방하는 그 막강함을 나
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방일 뿐 진리는 아닙니다.
이처럼 인본주의는 성도의 영적성장을 막고 나아가 역사속에서도 가장 큰 세력
으로 기독교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 세력들이 얼마나 방대하고 막강하고 추종자
가 많든지 기가 질릴 정도입니다. 무신론 진화론 공산주의 이슬람 불교 등 각종
세속종교 세속론 뉴에이지 자유주의 등등 각종 인본주의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거
대한 세력들입니까? 그들은 거짓을 가지고도 진리를 가진 우리 정통기독교인들보
다 더 진리 위세를 부립니다. 신학사상도 보면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학자들보다
하나님을 제한 변질시키거나 성경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 학자들이 학위는 훨씬
많습니다. 그들이 받은 학위의 수효와 수고의 업적이 커서 기가 질릴 정도입니다.
그러나 비진리는 그 수명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화론자 다아윈도 회개
했고, 공산주의도 끝났으며, 그토록 성령을 제한하던 학자들도 체험하고는 바꾸어
지고 있습니다.
10.이 진리전쟁은 영적 싸움에서 빠질 수 없는 큰 주제입니다.
고후10:4-6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
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
여 높아진 것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말
했습니다. 이정도만 증명하고 그 이상의 증거는 이제 그들을 제압하는 방법 속에
서 또 입증되리라 믿습니다.
그럼, 진리전쟁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1.이 역시 승리의 복음에 서야 합니다.
6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
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대적해야 할 세속 이론들은 마치 태산과 같습니다. 싸울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거대합니다. 내노라 하는 쟁쟁한 사람들이 그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잘못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때 속수무책인 경우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들을 붙이셨다고 말씀하십니
다. 진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을 아주 몰살시키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 몰살이라는 표현은 이곳 밖에는 없습니다. 몰살이란 집단적인
처리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사울일 때 많은 잘못된 사상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배운 기간
은 수십 년이었고, 그 확신은 강해서 앞장 서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사도
행전을 보면 가장 앞장 선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난
후 한 순간에 그 잘못된 사상을 버렸습니다. 다른 이론이 아무리 많다 해도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미 그것들은 무용지물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몰살입
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참진리를 몰사시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을 보
면 어떤 문제 하나가 옳다고 납득이 되면 그 다음에는 그 교주가 하나님이라고
해도 믿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 교주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그 비진리
역시 몰사할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에 서야 하며 진리는 반
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2.생각과 사상은 발전되기 전에 물리쳐야 합니다.
6절에 여호와께서 "내일 이맘때에" 라고 하셨습니다.
병력을 하루만에 이동시킨다는 것은 아주 신속한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은 초기
에 제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아 심각한 상태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문제도 아닌데 문제를 만들
고 시험이 아닌데 시험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들은 즉시 물리
쳐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로 악한 화전을 막아야 합니다. 화전이란 불화살로서 이
화살을 맞으면 순식간에 타버립니다. 즉 원수들이 넣어주는 악한 생각을 받아들이
면 이렇게 심령이 상하고 불타버립니다. 그래서 염려로 가득차고 불만으로 가득차
고 분노로 가득차고 범죄를 향한 우매한 생각으로 가득찹니다. 그 때마다 말씀에
서서 믿음의 방패로 믿습니다 믿습니다로 막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7절에 "졸지에 습격"했습니다. 여기 졸지는 '눈 깜박할 사이에'라는 뜻입
니다. 오래 머물게 해서는 안됩니다. 엡4:26과 같이 분을 품어도 해가 지지 않도
록 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사단이 주는 나쁜 생각을 즉시 물리쳤더라면 죄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야 뉘우쳤으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가 뉘우쳤을 뿐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옛날 부흥
사 중에 입으로 쉬 쉬 소리를 내는 습관을 가진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
쁜 생각을 쫓기 위해서랍니다. 배울 필요는 없지만 그 정신은 얼마나 좋습니까?
루터는 '머리 위에 독수리가 날 수는 있어도 집을 짓도록 해서는 안 된다' 는 비
유로 생각을 교훈했습니다. 하루에도 잡념들이 수없이 침투하지만 즉시 물리쳐 머
물지 않게 해야 합니다.
3.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6절에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라고 했습니다.
말은 당시 기동력의 상징이요 군대의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뒷발의 힘줄을 끊게 되면 걷지 못합니다. 다윗도 말의 힘줄을 끊기도 했지
만 가나안 전쟁에서는 이곳에만 이런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언가 귀한 교훈
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나쁜 생각이 결코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1편의 복있는 자에 대한 교훈처럼 죄가 생각에서 행동으
로 행동에서 습관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가르친 것입니다. 습관이 되면
그것을 악인이라고 부릅니다.
4.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6절에 "그 병거를 사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병거란 굉장히 위력적인 무기입니다. 여러 필의 말이 끄는 것으로 그 속
력 또한 대단합니다. 문헌을 보면 애굽왕 힉소스가 바퀴를 살로 한 가벼운 병거를
만들어 빠른 속력으로 이집트와 수리아 지역을 제압했다고 합니다. 이 병거들은
철갑으로 보강되어 있었고, 어떤 병거는 바퀴에 칼이 달렸으며, 장식으로 치장되
어 권위를 세웠고, 병거에는 2-3명의 전사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사상은 그 전파력과 파괴력이 굉장합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각
종 메스콤을 통하여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그 위력이 놀랍습니다. 한
번 메스콤의 피해를 받으면 회복불능입니다. 잘못된 보도가 나가면 정정 보도가
나가도 거의 중상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가장 큰 폭력은 메스콤을 통한
폭력입니다. 또 악의 사상은 화려합니다. 더 합리적이고 논리정연한 것 같고 더
호소력이 있는 듯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력이나 학력은 더 화려한 듯
합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학자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악한 사상들을 불
살라야 합니다. 과거에 근거 없는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미명으로 나타나 얼마나
피해를 주었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창조과학자들이 많이 나와서 진화론의 허구성
을 입증하고 창조의 타당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훌
륭하게 길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해
야 합니다.
5.분명한 진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8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
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고 했습니다.
여기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과 미스바가 무엇입니까?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은
서쪽 지중해 해변가 베니게의 대표적인 도시들입니다. 거기까지 쫓았다면 더 이상
쫓을 곳이 없을뿐더러 앞에는 넓은 지중해만 보일 뿐입니다. 이것은 확실한 진리
를 연구하여 시원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만 부리는 것이 진리의 싸
움이 아닙니다. 사11:9처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세상에
충만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스바 골짜기 역시 그렇습니다. '미스바'란 '전망대, 망대'라는 뜻입니다. 미스바
는 높은 헤르몬산에 위치하여 가리운 곳이 전망이 좋습니다. 이렇게 시원스럽게
진리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여 영원한 진리를 보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미스바의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 세상이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
다.
마지막, 본문에 나타난 무기를 연구해 봅시다.
1.불이 사용되었습니다.
13절에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에는 불과 칼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 하솔만이라고 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국가
중에서 하솔만 태웠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불사르되 일반 공부까지 다 사를 필요
는 없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주제만 불사르면 됩니다. 그러면 이 학문들은 도리
어 진리를 옹호하는데 사용되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공부하지 말라 학교도
가지 말고 유학도 하지 말라 하면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데 그것은 잘못
입니다. 더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알아야 그들을 대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
경이 진리임을 입증해야 하고 비진리를 척결해야 합니다.
2.칼이 사용되었습니다.
12절에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그랬습니다. 칼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잘못된 생
각과 이론을 다스리는 길은 성경 밖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단의 시험을 말
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이 진리의 싸움은 내 안에서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모두들
실직을 당해 굶겠다고 두려워 해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주의 말씀에
서십시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 이 말씀을 하루에 열 번씩
만 외우십시오. 그러면 불안한 생각은 사라지고 믿음이 차오르는 것을 발견할 것
입니다. 누가 위험해 죽을지 모른다고 말해도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하십시
오. 혹은 사람들이 할수 없다고 낙심해도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
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외치십시오. 말씀에 서십시오. 이것이 진리 전쟁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믿음이 오고 승리가 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비진리의 온갖 잡념으로 갈등하고는 계시지 않습니까? 진리로서 이
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견고히 서시기
를 바랍니다. 먼저 내 안의 비진와 사우고 나악 이 세상의 잘못된 사조와 싸우십
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다 물결과 같이 가득하도록,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
하는 소리가 곳곳마다 가득하도록 진리의 싸움을 하십시다. 모두 이 영적 전쟁에
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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