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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0일 오늘의 역사
2021년 이탈리아 밀라노 지상16층 지하2층 아파트 전소
2021년 뉴질랜드에서 무게 7.9kg 초대형 감자 발견
2018년 헌법재판소 교수노조 설립 금지 헌법불합치 판정
2015년 ‘공포영화 거장’ 크레이븐 감독 별세
‘나이트메어’와 ‘스크림’ 시리즈를 만든 공포영화의 거장 웨스 크레이븐(76) 감독이 3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
존스홉킨스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영화계에 뛰어든 그는 1972년 악몽이 현실로 이어지는 ‘나이트메어’를 쓰고 연출하며 공포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다. ‘인기 공포 캐릭터’ 프레디 크루거도 이때 만들어졌다.
크레이븐 감독은 감독·배우·제작자가 모두 실명으로 출연한 ‘뉴 나이트메어’(1994)로 이 6부작 시리즈를 완결하고 또 한번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전화벨 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하얀 유령 가면으로 유명한 ‘스크림’(1996)이다. 그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연출력으로 독보적 경지에 올랐다.
2015년 세계적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 별세
세계적 뇌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Sacks·82·사진) 미국 뉴욕대 신경과 교수가 30일(현지시각) 숨졌다.
임상 의사이기도 한 그는 투렛 증후군, 기억상실증, 자폐증 등 기이한 신경장애를 지닌 환자들이 존엄을 찾기 위해 싸우고 기적과도 같은 재능을 발휘하는 사례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전달하면서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국내에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마고), ‘화성의 인류학자’(바다), ‘깨어남’(알마) 등 상당수가 번역됐다. ‘깨어남’은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국내 개봉명 ‘사랑의 기적’)로도 제작됐다.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밝힌 올해 2월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나의 삶’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색스 교수는 이 글에서 경쟁적 불평등이나 전쟁 같은 거대담론도 여전히 걱정하고 고민하지만, 내 남은 시간 동안만큼은 자기 자신과 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며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일만 하겠다고 밝혀 큰 공감을 얻었다.
‘나의 삶’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한평생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특혜이자 모험이었습니다.”
2011년 헌법재판소 “정부가 위안부 배상문제 해결 위해 최선 다하지 않은 건 위헌” 결정
2010년 한국-페루 FTA(자유무역협정)협상 타결
한국과 페루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30일 타결됐다. 두 나라는 이날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통상장관회담에서 양국 경제·통상 제반 분야에서 포괄적인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타결 내용은 25개 장으로 구성된 협정문에 담겼다.
이에 따라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승용차의 경우 3000cc 이상 대형차는 협정 발효(發效·효력을 나타냄) 뒤 즉시 관세가 철폐되며 중형차에 대한 관세는 5년 내, 기타 승용차는 10년 내에 단계적으로 관세가 폐지된다.
2005년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초음속고등훈련기(T-50) 양산1호기 출고기념식
한국항공우주산업(주)(KAI·사장 정해주)는 8월30일 경남 사천 본사에서 T-50 양산 1호기 출고 기념식을 갖는다.
T-50은 초음속 고등훈련기 겸 경공격기로, 우리나라 공군과 KAI, 록히드가 공동개발했다. 지금까지 초음속 고등훈련기는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스웨덴에서만 개발되어 다른 나라에 수출되었으며, 우리나라는 세계 여섯 번째 개발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92년부터 T-50 생산을 위한 탐색개발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체계개발 비용으로 2조 1118억원이 들어갔으며 앞으로 양산비용 4조 3000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공군과 KAI는 이번에 T-50을 개발하면서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을 확보했으며, 보잉사와 록히드사 등으로부터 초음속항공기 독자개발능력을 구비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또 공군과 KAI측은 이번 T-50 개발로 독자 무기체계 개발로 군 전력증강과 기술안보역량 확보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고, 직구매 대비 약 9억불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KAI 관계자는 "T-50 양산 1호기 출고는 세계 12위권 초음속 항공기 개발이며, 첨단 전투기급의 항공기를 자급하게 됨에 따른 자주국방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게 되었다".
2004년 2004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서 관중 난입으로 반데를레이 데 리마(브라질) 1위서 3위로 추락
2004년 8월 30일 2004아테네올림픽 마라톤 36km 지점에서 1위로 달리던 반데를레이 데 리마(브라질)가 주로에 뛰어든 한 남자에 의해 10~15초 가량 레이스를 저지당하는 사건이 발생, 17일간의 열전에 큰 오점을 남겼다.
데 리마(브라질)를 인도로 밀쳐낸 난입자 코넬리우스 호런은 한때 가톨릭 사제였으며 종말론을 추종하는 57세 아일랜드 남성으로, 연행 당시 취한 상태였으며 평소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호런은 전해 2003년에도 ‘영국 그랑프리 포뮬러 원’ 자동차경기 도중 경기장에 뛰어들어 큰 혼란을 일으켜 2개월간 감옥 신세를 지는 등 수차례 경기장 난임으로 관계자의 저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테네법원은 이날 호런에 대해 3000유로(약 420만원)의 벌금 부과와 함께 3개월간 그리스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지 말라고 명령했다.
결국 경기는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발디니가 2시간10분55초의 기록으로 우승, 1위를 차지했고 데 리마는 2시간12분11초로 동메달을 땄다. 한국 이봉주는 2시간15분33초로 아쉽게 14위에 머물렀다. 이후 데 리마에게 공동금메달을 수여해야 한다는 브라질 올림픽위원회의 요구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4년 SIX커뮤니케이션(주) 주관, ‘뉴스 파우치’ 광고 국내 첫 선
신문과 DM(Direct Mail·우편발송 광고)의 장점을 결합한 ‘뉴스 파우치’(News Pouch·광고문구를 새긴 신문 행낭) 광고방식이 국내 처음으로 도입됐다.
토털 마케팅 전문회사인 SIX커뮤니케이션㈜은 29일 “2005년형 일본 도요타 렉서스(Lexus) 신차 ‘New ES330’ 광고를 새긴 비닐 파우치(행낭)에 30일자 조선일보를 담아 구독자에게 전달하는 ‘뉴스 파우치’ 광고를 30일부터 본격 시작한다”고 밝혔다.
SIX커뮤니케이션㈜은 “뉴스파우치 광고는 이날부터 3일간 서울 강남·목동지역 30여곳의 조선일보 지국 배달망을 통해 실시되며, 구매력과 구매성향을 고려해 해당 지역의 조선일보 구독자들을 광고 타깃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뉴스 파우치는 신문구독자가 가정과 직장에서 신문을 받아볼 때 비닐 파우치의 겉장에서 산뜻한 광고내용을 접하게 하고, 포켓 섹션부분에는 별도의 DM이나 상품 견본, 우대쿠폰 등을 넣을 수 있어 광고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SIX커뮤니케이션은 밝혔다.
이우성 대표는 “뉴스 파우치 광고는 전국 신문구독자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광고전달 방식이며, DM과 달리 광고크기와 무게 등에 제한을 받지 않아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SIX커뮤니케이션㈜은 안산공장에 광고 파우치 가공설비시설과 자체 디자인팀을 갖추고 있다
1995년 한국-아르헨티나, 범죄인 인도협정 체결
1992년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 사망
1989년 서해중부 해안지방 해일, 남포방파제 등 2만여m 유실 선박630척 침몰 파손 피해액500억원
1987년 소설가 현민 유진오 사망
1984년 교황청, 공식문서로 해방신학 규탄
1981년 이란 수상관저에 폭발사고, 라자이 대통령과 바호날 수상 피살
테헤란에 있는 이란 수상관저에서 1981년 8월 30일 강력한 폭발물이 터져 모하메드 자바드 바호날 수상과 라자이 대통령, 그리고 다른 관료 5명이 사망했다.
폭발사고는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혁명정부에 반대하는 반군에 의해 자행됐다. 이 사고는 지난 6월 28일 강력한 당지도자인 모하메드 베헤스티와 70명이 사망한 이슬람 공화당 집회에서의 돌발사고 이후 가강 강력한 것이었다.
1980년 중국 실용경제 선언
1980년 중국 제5기 전국인민대표자회의 개막
1979년 미국 동부와 카리브지역에 태풍 데이비드 강타 사망 1,100명
1978년 부산서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 개막
1976년 한국 최초 한의학박사 5명 탄생
1972년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평양서 개막
1972년 8월 30일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이 평양 대동강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남북의 이산가족찾기를 위한 쌍방간의 적십자회담은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 총재 최두선이 제의하고 북한적십자사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성립되었다.
9월 20일 판문점에서 개최한 제1차 예비회담에서는 상설회담 연락사무소 설치와 직통 전화 가설 등에 합의,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북측과 남측간에 상호접촉의 대상자 및 제약조건에 이견을 보임에 따라 회담은 난항에 빠지게 되었다.
1973년 7월 13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7차 본회담을 끝으로 회담은 별 성과 없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다가 12년 만인 1985년 제8차 본회담을 서울에서 열고 남북한 이산가족 등의 교환방문 추진에 합의했다. 양측 실무대표는 3차례의 접촉끝에, 8월 22일 쌍방 각기 151명(단장1, 고향방문단50, 예술공연단50, 기자30, 지원인원20)의 교환방문에 합의함으로써 분단 40여년 만에 서울-평양 동시방문이 실현되었다.
1967년 한일항공협정 발효
1966년 파월 백마부대 본대 부산항 출발
1963년 박정희 의장 예편 공화당 입당
1963년 워싱턴, 모스크바간 핫라인 개통(한국시각-8.31)
1962년 한국-엘살바도르, 국교 수립
1953년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유엔의 함정과 항공기 초계활동의 북쪽 한계를 정하려 서해에 북방한계선(NLL) 선포
1951년 미국 북한 상호안전방위조약 조인
1949년 대한민국 최초 국비유학생 6명 미국으로 출발
1945년 국군준비대 결성
일제때 징병 당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군사집단. 1945년 8월 17일 귀환장병대로 출발하여 국군준비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요 간부진으로 총사령 이혁기(李赫基), 부사령 유치옥(兪致玉), 참모장 최영(崔榮), 경리부 이재복(李載馥), 정보부 장도용(張道用), 훈육부 김한영(金漢永), 감찰부 송태익(宋泰翊), 서무부 김철구(金徹龜), 외교부 연정(延禎), 계몽부 이영호(李永鎬), 위생부 차성기(車星基) 이다.
사실상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 국방경비대보다 빨리 결성된 군사집단인 것이다. 상비군 1만 7천, 예비군 7만의 숫자의 규모였다고 하니 1개 연대 규모로 시작한 조선 국방경비대보다 훨씬 규모에서도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외에도 학병동맹, 해방병단 , 육해공군출신동지회 등 다양한 크고작은 군사단체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1945년 장개석, 중경에서 모택동과 회담
1945년 미-영-프-소 독일관리위원회 설치
1941년 홍난파 사망
한국 최초의 작곡가·한국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처럼 난파(蘭坡) 홍영후(洪永厚)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다. 난파는 천상 음악인이었지만 한때는 문필가의 길을 걸었을 만큼 문재(文才)도 뛰어났다. 음악과 문학을 아우른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창간한 것도 난파였다. 그가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 것은 “개천지 통만고(開天地 通萬古)에서 두 가지 예술로 대성한 천재가 누구냐?”는 변영로의 충고가 있은 뒤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난파는 전문음악기관인 조선정악전습소 양악부와 일본 우에노음악학교를 거치면서 개화기 우리 음악계의 선구자요 스타로 우뚝 올라섰다. 난파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살아 있는 것은 ‘봉선화’ 때문이다. ‘봉선화’는 1920년에 난파가 바이올린곡으로 작곡한 ‘애수’에 5년 뒤 김형준이 가사를 붙여 만든 곡으로, 한민족의 한과 설움을 고스란히 담아내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암울했던 식민지시대에 한민족의 대표곡이 됐다.
‘옛동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등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가곡을 작곡했다. 또 ‘나소운(羅素雲)’이라는 예명으로 21곡이 되는 대중가요까지 작곡한 팔망미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1941년 8월 30일 “내가 죽거든 연미복을 입혀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37년 고등보통학교 학과목서 한문 폐지
1919년 이동휘, 임시정부 국무총리에 부임
1914년 독일 비행기 파리에 폭탄을 투하, 세계최초의 공습
1914년 뉴질랜드 독일령 사모아 무혈점령
1910년 대한매일신보가 매일신보로 개칭, 총독부의 기관지가 됨
1900년 귀인 엄씨를 순빈, 왕자 강(堈)을 의왕, 은(垠)을 영왕으로 봉함
1897년 소설가 횡보 염상섭 출생
1882년 제물포조약 체결 (임오군란으로 인한 일본측 피해 보상)
1882년 대원군 청 군함에 강제 납치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 마건충, 오장경, 정여창은 대원군을 연회에 초대한다는 구실로 청군의 병영으로 유인했다. 이어 대원군 측근들을 한 명씩 따돌리고 홀로 남은 대원군을 납치해서 천진으로 압송하여 보정부에 감금하였다. 이는 대원군 정권의 붕괴를 의미하였으며 군인폭동자들에 대한 청군의 무자비한 군사적 공격을 단행하는 계기로 되었다. 청군은 조선왕궁을 점거하고 대원군 세력을 숙청하는데 달라붙었다. 훈련대장 이재면(대원군의 맏아들)을 체포하여 남별궁에 감금하였으며 무위대장 이경하, 장어대장 신정희 등 삼군부의 총수들을 유배형에 처함으로써 대원군 정부의 군부실권자들을 모두 제거해버렸다. 대원군 일파로 보이는 성원들을 투옥하여 하룻밤 사이에 대원군 정부를 완전히 전복해버렸다.
1878년 파리서 제2회 국제화폐회의
1871년 원자 물리학의 기초 확립자 어니스트 러더퍼드 출생
1852년 1901년 최초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물리화학자 호프 출생
1797년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 출생
1785년 중국 청대의 정치가 임칙서 출생
1448년 숭례문 신축
1448년 8월 30일 서울 도성 남쪽정문인 숭례문이 세워졌다. 숭례문은 남쪽을 가리키는 예(禮)를 숭상한다는 뜻으로 정궁인 경복궁의 방향으로 정문이 되었다. 숭례문은 국보 제1호로 원래는 태조5년인 1396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이날 개축되어진 것이다. 이 문은 화강석의 무지개문을 중앙에 둔 거대한 석축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세워져 있으며,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상하층 모두가 겹처마로 되어 있다. 또, 숭례문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성문중에서 가장 크고, 다포계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됐다.
1934년 일본이 `남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로 지정했으나 1996년 문화재 재평가 작업으로 다시 숭례문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 4가에 위치하고 있다.
1170년 정중부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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