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채소소프
어느 고기 애호가의 매커니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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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作
♬
이리저리 헤매이다 앞길이 막혀도 또
어찌저찌 발길은 계속 이어지더라고
얼핏 설핏 찢어지던 마음이 아파도 또
얼기설기 붙이면 언젠간 낫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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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의 충동적인 범행이 아닌 축산업이라는 미명하에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학대에 소름이 끼쳐서
썸네일 사진조차도 몇 장 보지 못하고 인터넷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앞선 학대 뉴스에서처럼 나는 분노하지 못했다.
분노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니터 속 동물을 학대하는 저 사람들은 하얀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 고기를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해야 하니까.
왜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해야 하냐고? 고기 소비가 전 세계에 넘쳐나니까.
치킨이나 돈까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초고의 음식이고, 특별한 날에는 '에이뿔','투뿔' 운운하며
등급을 매긴 한우를 사 먹고,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를 우아하게 썰어 먹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고!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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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의 채소 코너가 엄청 넓어서 다양한 채소를 접할 수 있었다.
샬롯,솎음배추,두릅,방풍,세발나물,아욱,루콜라,로메인상추,고추냉이잎,브로콜리,
방울양배추,적겨자잎,씀바귀,브로콜리니,비타민,카이피라,아스파라거스,펜넬,스낵오이,토란,봄동,근대,콜라비
이름들이 어쩜 이리 하나같이 이쁠까.
정말 채소가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다 똑같은 풀때기로 보였다.
그러다 하나둘 사와서 이런저런 걸 요리하다 보니 조금씩 친숙한 채소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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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의 고단함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지만 집사들은 알 것이다.
밤이 되면 고양이들 볼 생각에 매일 퇴근길이 설렌다는 것을.
현관문을 열고 애들을 보는 순간, 하루의 고단함이 싹 가신다.
집구석이 이 모양 이 꼴이어도 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우리 집이 세상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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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구 환경을 파괴한 시대,인류세.
삼엽충 화석이 고생대를, 암모나이트 화석이 중생대를 대표하듯이 현 인류세의 대표 화석인 플라스틱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대표 화석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먹다 남긴 닭뼈이다.
현재 닭은 한 해에 700억 마리라는 어마무시한 양으로 소비되고 있으니까.
후대가 우리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든 말든 별로 상관없지만 좀 창피하긴 하다.
플라스틱과 닭뼈로 남은 시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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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교통수단이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
햄버거를 한 번 먹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를 운전한 만큼 지구를 뜨겁게 만든다.
육류를 생산해 가공하고, 이를 햄버거로 만들 때 약 2,50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다시 말해, 30일간 샤워를 한 번도 안 하며 물을 아껴도
그깟 햄버거 하나만 먹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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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채 먹어도 되는 유기농 참외라고 해서 바로 주문을 하려고 보니 품절이다.
상품을 준비할 때까지 품절이 떠 있는 것도 괜찮다. 기다리면 된다.
필요한 건 바로바로 살 수 있고
택배도 오늘 주문해서 오늘 저녁에 받아볼 수 있는 빠른 속도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느린 속도에도 맞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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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중년 남성 연예인이 반려묘는 자녀가 없는 자기에게 신이 준 선물이라며,
그동안 인간에게 받아본 적 없는 위로를 고양이한테서 받는다는 말을 했다.
어떤 팬이 자신에게 "사람이 고양이를 구조한 것 같죠?
고양이가 당신을 구조한 거예요."라는 댓글을 남겼다며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힘든 시기에 그에게 큰 위로가 된 반려 고양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 댓글에 나도 공감했다. 내 곁에 있는 고양이들 덕에 버티는 순간이 많다.
나를 버티게 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그건 그거고 오늘 일찍 나가봐야 돼.저녁에 보자,이쁜이들.
첫댓글 ㄱㅆ)얼마전 사는 지역에서 로컬푸드매장이 열려서 구매한 책이에요.
제목도 공감가는데 전반적인 이야기가 제 얘기같아서 참 와닿았어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채식 레시피가 사찰 사이트에 있단 것도 흥미로웠구요.
사진은 얼마전 만난 눈동자가 예쁜 동네고양이,음악은 요즘 빠진 소낙별의 노래입니다:)
커뮤 첫댓에 대한 부담이 크시잖아요?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을 첫댓글로 남겨봅니다
따뜻하게 봐주시는 마음에 언제나 되려 큰 위로를 받습니다
야옹이가 어쩜 저리 눈이 맑고 순할까요..
발췌글을 보니 애써 미뤄두던 지구와 환경에 대한 부채감을 돌이키게 되네요. 자주, 자꾸 생각하고 맞닥뜨려야 하는 주제인 것 같아요. 글 감사합니다!!
사서 읽어봐야겠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