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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10.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길, 상한 자, 구원 기도 유백선 목사
민수기 21: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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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외수 작가가 쓴 “길에 관한 명상”이란 글에서 말했습니다.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에 떠날 때는 길이 있었는데 돌아올 때 길이 없어졌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선사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여러분은 누가 짐을 져야 발걸음이 가볍다고 생각합니까?) 길을 가는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 안에 있다.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여러분! 인생은 계속 길을 가는 과정입니다. 길을 가다가 갈림길에서 수없이 망설이다 잘못 선택을 하면 나중에 자책하고 후회합니다. 길을 가면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인생의 길이 거칠고, 고통스러울 때, 길 위에서 지칠 때, ‘괜찮아, 이 길 끝에 행복이 있을 거야.’ 생각하면, 다시 힘을 내서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길을 가면서 무엇을 배웁니까? 한낮에 햇빛이 쨍쨍 내리쬘 때 구름이 가려주고, 산들바람이 불고, 이른 비와 늦은 비가 고맙다고 느껴진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 가는 그 길(진리)을 알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홀로 있을 때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 그래서 내가 부족함이 없다. 여호와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이다.”(시 23:3-4) 인간이 험난한 길을 잘 가려면 4가지를 잘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는 믿음과 마음(의지)이 강해야 합니다. 둘째는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셋째는 기술과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넷째는 생활습관과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험난한 길을 갈 때 비굴하지 않습니다. 험한 길에 잘 적응하고, 잘 견뎌내야 목적이 있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네가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동행하고 계신다. 너를 인도하고 계신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민수기의 말씀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삶을 살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믿음훈련을 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길로 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고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본문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여기서 “호르산(메호르 하하르/רהה רמ/mehor hahar)”은 이두메와 수리아에 있는 산봉우리입니다. 에돔의 사암 산 전체 지역 중에서 가장 높은(해발 1,593m) 산입니다. 아론이 이 산에서 죽어서 “아론의 산(자발 하룬)”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의 옷을 벗겨서 그의 아들(엘르아살)에게 임히게 하셨습니다.(민 20:24,2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가까운 길(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땅)로 인도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것을 예상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3:17) 전쟁은 쌍방에게 폐허와 죽음의 비극만을 남깁니다. 참혹한 잔인함이 마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사악함이 영혼과 몸을 파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전쟁은 누구도 승리자가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 손무(孫武)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읽었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전략적으로 알려준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위태롭지 않)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승리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마음이 상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더 가까운 길로 가기 원했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에돔 땅을 통과해서 가면 더 가깝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굳이 먼 길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광야의 길을 오래 행진하면서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먼 길로 돌아가는 것에 마음이 상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상하다(티케짜르 네페쉬/שׁפנ רצקת/thiqetsar nephesh)”는 말은 “생명력을 줄이다, 영혼이 낙심하다, 생명을 괴롭히다, 마음이 싫어하다, 자아를 괴롭히다, 마음을 슬프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도 먼 길로 가겠다고 하면 좋아하겠습니까? 마음이 피곤하고 심히 상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신음합니다.(시 38:8) 영혼이 낙심하면 불안하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다는 의미입니다.(시 42:5)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마음이 상합니다. 그래서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생명나무입니다.(잠 13:12) 마음에 근심이 심령을 상하게 합니다.(잠 15: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중심에 통회하는 사람을 구원하십니다.(시 34:18)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않습니다.(시 51:17)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상하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본문 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기서 “원망(/예다베르/רבדי/yedaber/)”은 “말하다, 선언하다, 파괴하다, 경고하다, 연습하다, 약속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미련함으로 자기 길을 굽게 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잠 19:3) 사람들은 마음이 상하면 두 가지를 원망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 8:7-8) 현재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구원하셨는데 어찌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구원하셨습니까?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주를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2)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생존의 필수품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먹을 것이 없다, 마실 물이 없다. 하찮은 음식을 싫어한다.’ 하지만 이 원망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도록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주셨습니다. 백성들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을 준행하는지 시험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진에 덮여서 고기로 먹게 하셨습니다. 메추라기 고기가 그들의 이(齒) 사이에 끼어 있을 정도로 많이 먹었는데도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아침에는 이슬과 함께 떡으로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매일 새벽에 가족의 수대로 먹을 만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출 16:4,8,13,14,16)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는 생명을 위한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신앙적인 이유들이 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사람들에게 만나주신 은혜입니다. 광야에서는 인간의 능력으로 양식을 구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절대 한계점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셔서 믿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래야 심판을 면하게 될 것이다.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신다.”(약 5:9)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성도가 마음이 상할 때 이 두 가지를 경계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원망하고 불평과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불뱀을 보내서 물게 하셨습니다. 본문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여기서 “불뱀(하네하쉼 하쎄라핌/םיפרשׂה םישׁחנה/)”은 “불타는 뱀, 독이 있는 뱀”입니다. 불뱀이 옛 뱀이요, 큰 붉은 용이요(계 12:3), 마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원망하면 불뱀에 물려서 고통을 겪게 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 중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탄은 불화살로 시험합니다.(엡 6: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신 이유는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이유가 다 낮추시고, 시험하셔서 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신 8:14-16)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죽는 것을 보고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죄를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범죄를 범했습니다.’ 본문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도 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고백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음에 임박할 때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17)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할 것이다.(눅 13:3)” 사도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행 2:38-39) 사도 요한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신다.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일 1:9)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주시면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회개하면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딤후 2:25-26)
세상에서 70여년을 살면서 최고의 지성인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무신론자로 살았던 어느 무신론자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시(詩)를 썼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 하나님, /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 때 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 가슴 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를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뱀들을 우리에게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매달아라.” 본문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여기서 “불뱀(싸라프/ףרשׂ/sharap)”은 “독 있는 뱀, 불같은 뱀, 그 구리색의 생물, 스랍 천사”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에게 해독제를 처방하셨습니다. 본문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여기서 “놋뱀(네하쉬 네호세트/תשׁנ שׁחנ/nechash nechosheth)”은 “구리 뱀, 황동 뱀”이란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뱀에 물린 사람을 해독하려면 해독제를 몸에 주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없이 놋뱀을 보고 해독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적입니다. 놋뱀이 불뱀의 독을 해독하는 처방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입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이 놋뱀을 쳐다보자 모두 치유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치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듣고, 믿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탄(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자로 오셔서 영생의 복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3:14,15)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들려야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기적이 따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표적이 따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새 방언을 말합니다.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습니다.”(막 16:17-18)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엡 1:20)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 속에서 역사하십니다.(살전 2:13) 험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기 원하십니다.(딤전 1:16)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상한 심령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받아 선한 일에 힘쓰고, 진리를 떠난 사람들을 구원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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