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역사소설]
다대포(多大浦)를 구슬피 떠도는
임란진혼곡(壬亂鎭魂曲)
[제3회]
다대포진의 일상(日常)
1
임진년 4월12일의 다대포 아침은 그 어느 날보다 더 맑고 화창했다. 간밤의 짙은 어둠에 깃들어 다대포를 짓눌렀던 죽음의 살기는 맑고 눈부신 햇살에 한낱 신기루처럼 흔적 없이 녹아들었다.
광활한 하늘은 짙푸르고 습기 머금은 산야의 녹음은 무성하며 다대포만 드넓은 대양의 시야는 청명했다. 삼라만상 또한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려는 듯 대담하게 제 속살들을 앞 다투어 드러냈다. 낱개들을 덮은 밭고랑의 봄보리[春麥] 애싹이 아지랑이에 어른거렸다. 때론 다대포 앞바다를 거쳐 온 비릿한 해풍의 끝자락에 걸려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그 모든 것들의 형상과 색채가 너무 또렷하고 맑다보니 오히려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으로 여겨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모든 근심걱정도 덩달아 부질없이 느껴졌다.
나는 마상(馬上)에 몸을 곧추세우며 말고삐를 두 손으로 힘껏 휘어잡았다. 고삐가 잡힌 늙은 말은 고개를 뒤로 한껏 꺾으며 주둥이로부터 ‘투르르…’ 흰 거품을 지저분하게 털어냈다. 이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발을 몇 번 구르고는 긴 꼬리로 거칠게 자신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엉덩이께를 치근덕거리던 날파리 몇 마리가 잽싸게 피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중요한 예식을 거행하려는 지휘관처럼 화려하면서도 한껏 멋 부린 예복을 깍듯이 차려입은 상태였다. 몸에는 모시로 만든 오색단령(五色團領)을 걸치고 명주로 만든 청철릭[靑天翼]을 덧걸친 다음 허리 주위로 남전대(藍纏帶)를 둘렀다. 머리에는 준모(駿帽)에 공작의 깃털로 장식한 검은 전립(戰笠)을 덧썼다. 그리고 허리 밑으로 ‘백진전백무퇴(百進戰百無退)’란 글귀를 새겨 넣은 장군도(將軍刀)를 길게 늘어뜨렸다. 왼손에는 말고삐와 함께 검팽나무 지휘봉을 오른손에는 편책(鞭策)을 거머쥐었다.
보다 위풍당당하고 고압적인 면에서는 예복이 갑옷을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갑옷은 무겁고 몸을 움직임에 있어 자유롭지가 못하다. 그리고 갑옷을 입었을 경우 나도 모르게 더욱 고압적인 언사가 튀어나와 그때마다 상대로 하여금 내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경향을 많이 보아왔기에 나는 가급적이면 갑옷을 입지 않으려했다. 반면에 예복은 두려움보다는 장중함과 위엄, 그리고 멋을 풍겼기에 나들이를 할 경우엔 어김없이 예복을 차려입었다.
아마 마상에 이렇게 거드름을 피우며 버티고 앉아있는 내 모습은 굳이 거울을 비춰보지 않아도 멋이 넘쳐흐르는데다 위풍당당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경외심(敬畏心)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할 것이다.
2
나는 동래부로 출발하기에 앞서 진영청사(陣營廳舍)구내부터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았다. 늙은 말 또한 내가 일일이 지시를 하지 않아도 이미 습관처럼 해온 터라 제가 다 알아서 나를 인도했다. 뒷발은 제자리 뛰기 하듯 구르고 앞발은 번갈아가며 수직으로 꺾어 내딛는 자세가 비록 한 물 간 늙은 말일지라도 여전히 위풍당당했다. 육중한 엉덩이의 근육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씰룩거렸고 덩달아 꼬리도 힘차게 넘실거렸다.
내가 이렇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 자신이 근무하는 청사부터 둘러보는 것은 하루를 처음 시작할 때마다 늘 해오던 버릇처럼 굳어진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런 습관이 생긴 것도 내게 있어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7년 전인 을유(乙酉)년 북동방면에서 창궐(猖獗)한 여진족의 내습(來襲)을 막기 위해 두만강 하류 남안(南岸)에 설치한 육진(六鎭)중 하나인 함경도 부령(富寧)의 현감으로 근무할 때였다. 변방에 위치한 외지고 척박한 현으로서 그 누구도 오길 꺼려하는 곳이었다. 그때 동헌(東軒)에서 정사(政事)를 펴던 중 지붕이 무너져 내려 그 밑에 깔린 적이 있었다. 전임현감이 전형적인 탐관오리로 백성들 등골만 잔뜩 후려 자신의 배만 채울 줄 알았지 정작 자신이 근무하던 청사조차 다 낡도록 방치하여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터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동헌에서 관속(官屬)들을 불러놓고 정사를 보던 중이었다. 갑자기 머리위에 놓여있던 열두 자 길이의 우람한 대들보가 ‘쩍!’하고 요란한 굉음(轟音)을 내며 두 토막으로 부러지더니 미처 피할 겨를이 없이 내게 덮친 것이다. 천정을 가로질러 지붕을 떠받쳐온 대들보는 오래되어 낡은데다 흰개미 떼가 잠식을 해온 터라 이미 그 수명을 다했으며 결국 힘겹게 지탱해오던 지붕의 엄청난 하중(荷重)을 견디지 못하고 일거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아름드리 육중한 대들보가 간발(間髮)의 차이로 내 머리를 스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천운(天運)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몸은 함께 무너져 내린 목재더미와 기왓장 파편으로 타박상을 입어 성한 데가 없었으며 나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 또한 크게 다쳤다.
그때 이후로 또 그런 변을 당하게 될까 염려하여 청사를 둘러보는 것이 내게 있어 하나의 습관처럼 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누구는 뒷간에 가서 뒷일을 볼 때 얽혔던 생각의 매듭이 잘 풀린다했고 누구는 검을 앞에 두고 명상에 잠겼을 때 진중한 생각이 떠오른다 했다. 그런데 나는 유독 청사를 둘러보는 그 시간에 그날 해야 할 일과계획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되어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버릇처럼 굳어진 것이다.
나는 청사를 한 바퀴 돌아본 뒤 이어 바로 인근에 자리한 객사 회원관(懷遠館)은 물론 나와 식솔들의 거소인 관사 서헌까지 둘러보았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을 때 관사 옆에 자리한 회화나무[槐木]에 까치 떼가 날아들더니 부산하게 울어댔다.
‘오늘은 뭔 좋은 일이라도 있으려나?’
까치 떼가 날아들면 귀한 손님이 찾아오거나 좋은 일이 있을 거라 했다. 그 때문인지 공연한 기대감에 잠시 머뭇거렸다. 수령이 삼백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회화나무엔 참새 떼나 까마귀 떼가 주로 머물렀으나 까치가 날아들면 모두 쫓겨나고 그때부터는 까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군사들 훈련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막 훈련장으로 나서려는 순간 영헌(營軒) 앞마당에서 머뭇거리던 동생 윤흥제의 손목을 서만복이 잡아채듯 이끌고 급히 서헌 사랑채 뒤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언뜻 눈에 띠었다. 틀림없이 만복이가 흥제를 끌고 행랑채에 들어가 근자(近者)에 재미 붙인 골패(骨牌) 꼬리붙이기를 하려는 낌새였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노라면 내 안에 자리한 근심걱정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헛허…, 늦게 배운 도둑질로 밤새는 줄 모른다고….”
나 역시 한직만을 떠돌 때는 마음이 심란하여 골패의 재미에 흠뻑 빠져 세월을 보낸 적이 있었던지라 골패에 정신이 팔려있는 만복이를 굳이 나무라지 않았다. 도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흥제와 재미삼아 하는 것쯤은 일부러 모르는 척 할 수도 있으려니 여겼다. 그렇다고 만복이가 제 할 일을 젖혀놓고 종일 정신없이 골패 짝만 만지작거릴 위인도 아니다. 근래 들어 만복이나 흥제 또한 왜구의 동향에 신경이 무척 예민해져 있는지라 골패놀이를 통해 잠시라도 걱정을 더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겨 일부로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재미를 붙인 골패는 지난 2월 중순경 흥제가 8년여를 머물러왔던 제주목사관을 떠나 다대포로 올 때 당시 제주목사 이옥(李沃)이 흥제를 통해 골패 한 짝을 선물로 내게 보내온 것이다.
골패 짝은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상아(象牙)로 만든 것이기에 반가(班家)에서는 아패(牙牌)라고도 한다. 길이 한 치 정도의 직사각형인 패(牌) 한쪽에 적(赤)ㆍ녹(綠)ㆍ백(白)의 주사위 눈이 위아래로 두 개가 새겨져 있으며 열두 점인 천패(天牌) 두 매에서 두 점인 지패(地牌) 두 매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른두 매로 구성되어있다. 놀이방법은 비교적 단순하여 서로가 딴 점수를 비교하여 승패를 가리기도 하고 때론 동점수를 순서대로 늘어놓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 언젠가 듣기론 어떤 점쟁이는 골패를 이용해 점(占)을 친다고도 했다.
10년 전 내가 진천현감으로 있을 때 잠시지만 흥제와 만복이도 그때 함께 지냈던 터라 따지고 보면 그들 또한 서로를 알고지낸지 10년 가까이 되었다할 것이다. 그러나 만복이 입장에서는 흥제에게 호감을 지녔기로 함부로 접근하거나 친밀감을 표할 입장이 아니다보니 흥제가 농을 걸거나 친근함을 표해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분명 만복이를 집사로서 후대(厚待)해왔지만 실상 그 자신은 첨사를 섬기는 일개 하인일 뿐 양반신분으로서의 정식직책이 아님을 의식하는 반면에 흥제는 양반의 신분을 지닌 데다 첨사의 친동생이며 나이도 자신에 비해 넷이나 연상임을 의식하는듯했다.
그 두 사람은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둘은 가까운 친척은 물론 친구도 없다는 공통점을 지녔기에 이왕이면 그 두 사람이 서로 허물없는 친구로서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근자(近者)에 그 둘을 불러 앉혀놓고 ‘둘이 아예 친구로 터놓고 지내라’며 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반상(班常)의 벽마저 허물어준 것이다.
“만복이는 신분을 떠나 내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고 흥제 또한 내게는 유일한 혈육이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니라. 그렇듯 내게는 너희 두 사람이 지극히 소중한바 너희 두 사람 사이에도 흉허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니라. 흥제가 나이는 만복이보다 네 살 더 많다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그깟 신분이나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는 친한 벗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형님 하명이 없다하더라도 이 양반과 난 벌써 친한 친구처럼 흉허물 없이 지내고 있다오. 그러니 나로선 망설일 이유가 없지요.”
흥제는 만복이의 손을 쥐고 흔들며 흔쾌히 동조하고 나섰다. 만복이 또한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겉으로까지 내색할 수가 없어 애매한 귓불만 주물럭거렸다.
“작은 어른께선 지겐 큰 형님이나 마찬가집지요. 감히 친구라니요. 지가 깍듯하게 형님으로 뫼셔얍지요.”
그런 다짐도 있었지만 흥제로부터 골패를 배우게 되면서 그들 둘 사이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급격하게 가까워진 눈치였다. 마흔이 넘은 적잖은 나이조차 잊은 듯 그 둘은 만나기만하면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구진 장난을 쳤다. 나이로는 흥제가 만복이보다 넷이나 위지만 계집애처럼 곱게 생긴 터라 만복이 역시 동안임에도 오히려 흥제에 비해 손위처럼 보였다.
3
나는 여느 형이 동생을 위함보다 더 흥제를 위하고 사랑해왔다. 만복이를 위하는 마음이 그에 대한 진중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라면 흥제를 위하는 마음은 아마 부모가 자식에게 조건 없이 헌신하듯 그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비록 모친이 각기 다른 이복동생이라지만 내게 있어 가까운 혈육이라곤 흥제 밖에 없다. 또 흥제는 어려서부터 나를 형이라기보다 마치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기에 더한 것이다. 게다가 흥제 모친 여영댁이 한동안 나를 거두어 뒷바라지에 헌신한 그 은혜를 생각한다면 흥제를 위해서는 그 무엇이든 다해주고 싶었고 목숨조차 아깝지 않다 여겨왔다.
어진이는 모친보다는 부친을 빼닮은지라 피부가 유난히 희고 이마가 넓었다. 그리고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눈도 시원스레 컸으며 입술이 도톰했다. 그리 썩 어여쁘다할 수는 없지만 귀염성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성격만큼은 부친이나 모친이나 그 누구도 닮지 않았다. 차분하지 못하고 덜렁거려 어찌 보면 선머슴 같았다.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거나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엔 어김없이 어진이가 그 자리에 있을 정도로 조심성이 없고 반면에 겁은 많았다.
“계집애가 그렇게 조심성이 없이 덜렁거리면 누가 널 데려가겠나.”
“안 데려가면 말구…. 또 누가 시집가기나 한데요? 난 이대로 아부지랑 살래요.”
“징그럽다! 누가 너랑 평생 살줄 알고?”
“피…! 그러면 나 혼자 살지 뭐!”
“저런, 저런… 버르장머리하고는….”
당돌하고 언변에 능하여 말로만 하는 싸움 같으면 그 누구든 어진이를 이길 자가 없어보였다.
4
나는 말을 몰아 성내 연병장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쳐들고 문득 바라본 동문(東門) 패인루(沛仁樓)에 걸린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다. 패인루의 보초군졸이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창을 들어 예를 갖추는 모습이 햇살에 어지러이 흔들렸다. 일천오백여 평 너른 연병장에 도열한 오백여 수군(水軍)들로부터 쏟아져 나온 기합(氣合)소리가 하늘을 가르듯 우렁찼다. 일거수일투족이 절도(節度)를 보였으며 그들이 쥔 병장기가 현란한 현(絃)을 그어댔다. 아침부터 훈련에 임하는 수군들은 천이백여 수군들 가운데 뽑힌 나름의 정예로서 군사다운 면모를 제법 갖추고 있었다.
사열을 마치고 다대포진성을 나서서 다대큰샘터를 지날 즈음이었다. 저희끼리 찧고 까불며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의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황급히 빨래감을 치우고 몸을 일으켜 엎디느라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한 젊은 아낙이 낯이 익은지라 가던 길을 멈춰 섰다.
얼마 전 아낙 남편이 목장리(牧場里) 마(馬)꼴 남새밭을 서리하다 기찰포교(譏察捕校)한테 들켜 잡혀 들어왔을 때 부득불 쫓아 들어와 염치불구 용서를 간청하던 아낙이었다. 그때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다 풀어헤쳐진 너절한 저고리 사이로 수밀도 같은 뽀얀 젖가슴이 훤히 드러난 것조차 모르고 질펀하게 울어대던 아낙이었다. 결국 그 아낙으로 말미암아 불거진 동정심 때문에 곤장 열 대를 다섯 대로 감해주었던 것이다.
문득 아낙의 그 탐스럽던 젖가슴을 떠올렸다. 그런 망측한 생각을 떨쳐내려 했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아낙의 그 희디흰 젖통과 분홍빛 유륜 그리고 볼그스레한 젖꼭지가 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그래, 니 서방은 볼기맞은 데가 성하더냐?”
아낙은 그때의 그 당돌함은 어디로 갔는지 한껏 수줍어하면서 들릴 듯 말듯 모기소리보다 작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야… 첨사나으리께서… 관용을 베푸셨는지라. 애들 애비는… 무사하지라우.”
“니 서방 이름이… 관수(冠壽)라고 하였더냐?”
“첨사… 나으리께서… 어찌… 미천한 애들 애비 이름까지… 다 기억하신다요?”
“관수라면 글공부도 했겠다, 항차 쓸만한 재목이 될 것인즉… 관수는 지금 뭘하고 지내느냐?”
“지금… 아마 연병장에서 훈련받고 있지라요.”
“아, 그렇겠군…. 혹여 식솔들은… 굶지는 않더냐?”
“……!”
아낙의 얼굴빛이 금세 흐려지고 말문을 열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굳이 대답을 들려주지 않더라도 그 속내를 뻔히 알만했다.
“쩝…!”
입맛이 썼다. 굶기를 다반사로 하는 백성들이 한심했다. 그렇다고 진영 군량창고(軍糧倉庫)에 식량이라도 넉넉하다면 눈 딱 감고 얼마라도 풀어 보릿고개[春窮期]에 보탬이 되도록 해주겠건만 그렇지 못한 것이 마냥 딱했다. 그러나 다대포 너른 바다에 널려있는 것이 해산물인지라 굶어죽는 이는 없어보였다.
다대포진영에서 관할하는 평림리(平林里) 대티리(大峙里) 목장리 감천리(甘川里) 독지리(禿旨里) 장림리(長林里) 다대리(多大里) 그리고 너른 들을 지닌 망후촌(望後村) 등에 자리 잡은 민호는 모두 1천4백여 호에 불과하며 망후촌 외엔 대부분 영내 백성들은 농토가 빈약한 탓에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다행히 다대포일대는 다대반도와 두송반도에 둘러싸여있는 천연의 소만입(小灣入)으로 기후가 온화하고 가뭄이나 장마피해도 덜했다. 게다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낙동강하구에 위치한 터라 멸치나 재첩 새우 굴 미역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뿐만 아니라 규모는 작지만 염전도 있어 귀한 소금도 얼마간 생산된다. 그러니 조금만 부지런을 떨어도 춘궁기라 하여 굶어죽을 까닭이 없었다.
첨사영 근처에 위치한 다대큰샘은 보다 더 아래쪽에 위치한 아래샘에 비해 샘솟는 우물의 크기도 곱절은 컸지만 수량이 풍부하고 주변공간도 널찍했다. 게다가 빨래를 헹구기 위해 만들어놓은 별도의 저수조(貯水槽)까지 갖춰져 있어 빨래하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래서 가뭄철이 아니더라도 다대포일대뿐만 아니라 제법 먼 곳에서도 아낙네 몇몇이서 무리지어 일부러 찾았다.
다대큰샘터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진종일 아낙네들로 붐볐다. 평소 수줍기만 하던 아낙네들도 샘터에만 오면 수다스러워져서 샘터는 늘 장터처럼 소란스럽고 일대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일들도 샘터를 통해 소문으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다대큰샘의 수량(水量)만큼은 여전했다. 종일 퍼내고 또 퍼내어도 그 다음날에는 물이 철철 넘치도록 고여 있어 일대의 백성 모두가 식수는 물론 빨래나 허드레 물로도 충분히 사용하고 남았다.
5
다시 갈 길을 재촉하려는데 야망대(也望臺)에서 야간 순번(順番)을 마치고 내려오던 수군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앞을 막더니 납작하니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문안을 여쭈었다. 어렸을 적 이름은 ‘바위처럼 단단하여 아프지 말고 잘 크라’는 의미로 바우라고 붙여졌으나 언제부턴가 물개처럼 수중잠수를 잘 한다하여 바우라는 본디 이름보다 해구(海狗)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젊은 사내였다. 사내는 한쪽 다리를 조금은 절었으나 생긴 모습부터 참으로 어질고 순박해 보였다.
다대포구로 들어서자 생선 썩는 비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그리고 은빛날개로 햇살을 튕겨내며 낮게 나는 갈매기들이 수시로 정박해놓은 배위와 부두에 쌓아놓은 그물 주위로 빙빙 맴돌았다. 어부의 절반가량이 훈련에 동원된지라 포구는 여느 때와 달리 비교적 한산하게 느껴졌다.
포구를 휘 둘러보는데 저 멀리 걸음마를 한창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늙은이가 눈에 띠었다. 뭐가 못마땅한지 한 손에 쥔 담뱃대로 연신 하늘을 향해 쿡쿡 찔러대는데 그 짜리몽땅한 풍채로 보아 선주 최필달(崔弼達)이 분명해 보였다. 선주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며 보유하고 있는 어선도 열두 척이나 되고 휘하에 거느린 어부도 서른 명이 넘는 알부자란 소문이 있었다.
“필경 저 영감탱이가 날 보고도 지레 못 본 척 딴 짓하고 있구먼. 봄멸치철이라 가뜩이나 일손이 딸리는데 저들 어부까지 강제로 훈련에 동원되었으니 분명 저 짓거리는 내게 욕질하는 것이 분명할 터…. 헛허허허허….”
나는 말을 달려 영감을 따라잡았다. 영감을 골려주려는 생각에 일부러 거칠게 말을 몰았다. 말발굽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자기 쪽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앞발을 번쩍 치켜들며 일어선 말의 위용에 크게 놀란 듯 최필달은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네 이노오옴~! 최필달이…! 내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더냐?”
짐짓 언성을 높여 죄인 다루듯 추궁을 했다.
“에고! 지가 뭔 잘못이라도 했능교?”
영감은 얼른 자세부터 가다듬고 땅바닥에 납작 엎디었다. 그러면서도 이왕 죽을 값에 할 말은 다하겠다는 듯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첨사영감, 입은 삐뚤어짔어두 말은 바로 해야 한다꼬, 얼마 전 애꿎은 죄명으로다 어부 넷을 목 친 것은 그렇다 치고… 일쏜을 다 뺐긴 터에 어찌 불만이 없을 수 있겠소까. 지금이 봄멸치 낚기로 젤루 바쁜 철인디 괴기부터 잡고 봐야하덜 않겠소까?”
‘어럽쇼?’
겉보기와는 달리 영감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나왔다.
“네 이놈! 추상같은 군율을 어긴 죄인의 목을 쳤기로 네 놈이 무엄하게 따질 이유라도 있는 게냐? 그럼 네 놈도 항명으로다….”
영감은 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기 아니고라…. 그건 지가 잘못했구먼요.”
“그건 그렇고…. 이보게 필달이! 그렇잖아도 내 자넬 한번 봤으면 했네.”
내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정겹게 말을 건네자 영감이 기운 차린 듯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로 자기를 봤으면 했는지 제 딴엔 궁금했던 모양이다.
“첨사영감께서 날 봐서 뭘할라꼬요?”
“자네가 선주들 가운데 젤 연장자고 젤 큰 선단을 거느리고 있어 젤 영향력이 크다 할 수 있잖은가.”
“그런디요?”
“그래서 자네 도움이 필요하다네.”
“지깟놈이 뭐 그리 대단타고 첨사영감이 뭔땜시 지깟것 도움이 필요할까요? 말씀해보소.”
“나라가 망하면 자네나 나나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어려울 터…, 고기 잡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나라부터 구하는 게 급선무 아니겠는가.”
“왜요? 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해뿐데요?”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네. 지금 쓰시마섬에 왜국이 오만 넘는 군사들과 수백 척 넘는 전함들을 대기하고 곧 이쪽으로 쳐들어올 낌새를 보이고 있다네.”
“글씨요. 전부텀 하두 그런 말들을 들어놔싸서…. 걸핏하믄 쳐들어올끼다 그랬잖수.”
“말뿐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쳐들어올게 분명하네. 지금 그 일을 의논하기위해 동래부사로 가는 길일세.”
“첨사영감 말씀맨으론 뭔 말인지 당최 실감이 나질 않수.”
“이보게. 쓰시마섬에 왜군 오만과 수백 척의 군함이 뭐 때매 모여 있겠나? 쓰시마섬은 이곳 다대포와 엎어지면 코 닿을 지척이네. 꼭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고 내말은 믿기질 않는가?”
영감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납득한 모양이다.
“아닙죠 첨사영감. 첨사영감 말씀이래면 백번 믿어야 마땅하디요.”
“그들 왜구들은 인정머리도 없어 눈에 띄는 모든 집이며 배며 불사르고 보이는 사람마다 죽여서 코를 베어간다고 하네.”
“귀를 베간다면 모를까 하필 코를 베가다니요? 뭐에 쓸려고?” “코를 많이 베어갈수록 포상도 받고 승진도 한다고 들었네.”
“하긴 그런 오랑캐들이….”
“오랑캐들이라서 능히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네.”
“말만 들어도 삭신이 떨리는구먼요. 그럼 지가 뭘 어찌해야 할까요?”
“선주들과 어부들을 잘 설득하여 전쟁준비에 힘을 합치도록하게.”
“알았씸다. 첨사영감. 정히 그렇다면 지도 힘을 힘껏 보탤거구만요.”
“정말 고맙네. 몸이 불편할 텐데 마냥 엎뎌있지 말고 어여 일어서게나.”
나는 일부러 말에서 뛰어내려 영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는 자상함까지 보였다.
나는 평소에 시간만 나면 영내 고을을 쭈욱 둘러봤다. 다대포구로해서 독지리와 감천리 포구를 둘러본 다음 목장리 군마(軍馬)사육장에 잠시 머물렀다가 배오개를 넘어 망후촌의 후망소(侯望所)에 들렀다. 그리고 호복구(虎伏口)밑으로 해서 강둑을 지나 장림포(長林浦)와 보덕포(補德浦) 거쳐 봉수대를 들렀다가 홍티마을 등을 경유하여 다대포진영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한번 둘러보는데 대략 두 시진(時辰)이면 족했다.
다대포진영에 속하는 민호라곤 통 털어 1천4백여 호에 불과하고 백성의 수효 또한 젖먹이까지 포함해봐야 8천8백여 명에 불과했다. 2개월여 그렇게 고을 백성들 삶에 관심을 갖다보니 고을 백성들 살림형편은 대략 어떠어떠하다는 것하며 주민들 이름까지는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도 얼굴보고 누가 누구라는 것쯤은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200자 원고지 76매 분량)
- 제4회에 계속 이어짐 -
첫댓글 행복하소서,
행운이 함께 하세요.
건강 하세요.
소망이루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