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 & 영덕 여행 1박2일④
주실 마을(조지훈 생가)
청정 자연과 푸른 감성이 어우러진 마을
마을 곳곳 문학의 향기가 짙게 배어나는 곳
경북 영양군 일월면 918번 지방도로 변에 있는 주실마을은 400여년이 된 마을로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조지훈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한양 조씨의 집성촌으로 행정 구역상 이름은 주곡리다.
주실마을은 1630년 이전에는 주씨(朱氏)가 살았으나 1519년 조광조의 기묘사화를 만나 멸문 위기에 처해
전국 각지로 흩어졌는데 그중 호은공 조전 선생이 인조 7년(1629)년 사화를 피해 이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한 뒤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주실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주실마을은 산아래 고즈넉히 자리 잡은 고택들이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
마을 입구에는 외부에서 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 있는데 장승을 뜻하는 사투리를 섞어
‘수구막이 숲’이라고도 했다. 지금은 ‘시인의 숲’이라 불리우고 있다.
수령 100년의 소나무와 250여년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또 느릅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시인의 숲’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이곳 주실 마을이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였던
조지훈(1920~1968) 선생의 생가가 있는 조지훈 선생의 고향마을이기 때문이다.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는 ‘호은종택’이 바로 조지훈 선생의 생가다.
옛부터 이곳 주실마을은 붓을 닮은 문필봉이 있어 문필가나 학자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호은종택’도 정면으로 문필봉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터를 잡고있는 고택이다.
‘호은종택’은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한국 현대 시인이고 국문학자였던 조지훈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호은종택은 영양에 처음 들어온 조전의 둘째 아들 조정형이 조선 인조(仁祖) 때 지은 것으로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가의 모습을 하고 있는 ‘ㅁ’자형집이다.
이 건물은 정침(正寢)과 대문채로 나눠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7칸이며 정면의 사랑채는 정자 형식으로 되어 있고
서쪽에는 선생의 태실(胎室)이 있고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돼 있고 솟을대문이 있고 6·25전쟁 당시
일부가 소실됐으나 1963년 복구됐다.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에 들어가기 전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호은종택과 마주하고 있는 문필봉을 찾아보는 일이다.
호은종택의 대문을 등지고 맞은편을 보면 여러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중 대문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봉우리가
바로 ‘문필봉(文筆峰)’이다.
문필봉이란 풍수학에서 붓의 모양을 닮은 봉우리를 가리키는 말로 문필봉을 마주하고 있는 집이나 마을에서는
훌륭한 학자가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실마을의 문필봉은 그 봉긋한 생김새도 그렇지만 옆으로 물길까지 끼고 있어
최고의 지형으로 꼽힌다. 붓에 물이 더해지는 형국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싶다. 예로부터 주실마을에서 재물과 사람
그리고 문장은 남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의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주실마을에는 옥천종택, 조지훈 시인의 종가인 호은종택, 옛 서당인 월록서당 등 고택이 있고,
작지만 아담한 앞뜰과 실개천이 마을 앞으로 흘러 주실마을 숲으로 향한다.
주실마을 숲은 2008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이 숲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대문이자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숲에는 지훈 선생과 20살에 요절한 그의 형 조동진의 시비가 있으며, 지난 2007년 지훈문학관 개관 이후
매년 5월이면 지훈 선생을 기리기 위한 백일장 등 ‘지훈 예술제’가 다채롭게 펼쳐지면서 많은 문학도가 찾고 있다고 한다.
‘옥천종택’은 17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양 조씨 옥천 조덕린의 고택이다.
이 집의 구조는 살림채인 정침과 글을 읽는 별당인 초당과 가묘인 사당으로 구성돼있고, 살림채는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돼있는 ‘ㅁ자’형 뜰집의 전형적인 구성을 보이는데 다만 안방이 동쪽에 오고 사랑방이 서쪽으로 배치된 점만이 다르다.
집의 평면구성에 좌우가 바뀐 이 같은 형식은 18세기부터 안방과 부엌이 서쪽으로 배치되는 평면구성으로 통일되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 살림집은 지붕을 박공으로 처리하는 등 상당히 오래된 건축기법을 간직하고 있다.
초당은 전형적인 서당의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사당은 18세기 말 건물로서 일반적인 형식에 속하며,
경북 북부지방의 폐쇄적인 ‘ㅁ자형 뜰집’의 민가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월록서당’은 조선시대 문신 옥천 조덕린의 손자 월하 조운도가 만곡 조술도와 함께 후진 양성을 위해
1773년(영조 49년)에 지은 서당이다. 일월면 주곡리의 한양조씨, 도곡리의 함양오씨, 가곡리의 야성 정씨가
함께 참여해 건축했다. 영산서당이 서원으로 승격된 이후 영양군에서는 처음 지어진 서당이다.
많은 학자가 배출됐으며, 일월산 아래 서남향으로 위치해 주변의 경치가 수려하고 학문을 연마하기에 좋았던 곳으로 알려졌다.
‘만곡정사’는 조선 정조 때의 유학자 조술도가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1790년 영양 원당리 선유굴 위에 건립한
강정을 문하생들이 주곡동으로 옮겨 미운정이라 했고 그 뒤 현 위치로 옮겨 만곡정사라 했다.
이 서당은 중당협실형 평면이나 좌측 온돌방 뒤쪽의 물건을 넣어 두는 수장공간과 폐쇄형 마루 등의
독특한 구조와 나무를 다듬는 방식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2004년 문을 연 ‘지훈 문학관’
지난 2004년 문을 연 ‘지훈 문학관’은 2,792㎡(846평) 대지에 문학관과 시청각실, 전시실, 등 각종 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미망인 김난희 여사가 직접 쓴 ‘지훈문학관’ 현판이 걸린 입구에 들어서면 지훈의 대표적인 시 ‘승무’가 흘러나온다.
문학관에는 지훈의 소년시절 자료와 청록집 관련 자료를 비롯 격정의 현대사 속에 남긴 여운, 지훈의 가족 이야기,
미망인 김난희 여사의 글과 글씨, 지훈의 시와 산문, 학문 연구의 핵심 내용, 선비로서의 지훈의 삶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전시물 중에는 지훈이 쓴 주례사와 여러 곳에서 받은 감사장이나 위촉장, 표창장 등을 비롯해 평소 쓰던 문갑과 서랍,
30대 중반에 썼다는 검은색 모자와 가죽 장갑, 40대에 사용했던 부채, 세상을 뜨기 6~7년 전부터 애용했던 담배 파이프와 안경,
외출할 때 즐겨 입었던 외투와 삼베 바지 등 지훈의 삶의 궤적을 더듬을 수 있는 유품이 망라되어 있다.
마을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며 2005년 개장한 지훈 선생의 시(詩)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조지훈은 누구인가?
조지훈(趙芝薰,1920년 12월3일~1968년 5월17일)은 일제 강점기 이후로 활동한 수필가, 한국학 연구가, 시인으로
청록파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다.
독학으로 중학 과정을 마치고서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여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그는 1939년 《문장》지에 〈고풍의상〉과
〈승무〉를 추천받아 문단에 등장했다. 광복 후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와 동국대학교 강사,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61년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 시인 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석했다.
이듬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장에 취임하면서 민족문화 개발에 주력했다.
●조지훈의 대표적인 시(詩)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양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청록파의 한 사람으로 명시를 많이 남긴 조지훈의 시는 주로 자연, 무속, 선을 소재로 한민족다운 색채가 짙고
불교 세계를 향한 관심은 종교의식을 일깨워 작품에 반영됐다. 박목월과 박두진을 비롯한 다른 청록파 시인이
후에 시 세계를 근본으로 변혁했는데 조지훈은 초기 자연과 친화한 시 세계를 꽤 많이 유지했다.
1956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로도 활발히 문학활동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68년 5월 고혈압으로 토혈한 후 입원, 고혈압과 기관지확장증의 합병증으로 5월17일 49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위치 :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1길 5 (전화 054-680-6413)
*이용시간 : 연중 개방(연중 무휴)
*입장료 : 무료 / 주차요금 : 무료 / 애완동물 동반 가능
<참고 자료> 영양 문화관광. 인터넷 서핑.
<방문일 : 2023년 7월30일(일)>
첫댓글 조지훈 시인의 시.
참 좋아합니다.
곧 서울엿 도착이 이따가 밀양 갈 때
천천히 읽을게요.
우선 다녀간 흔적만.....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셔요.
'댄스의 미학'에 열정적이신 지기님,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ㅎ
글 영상 따라힐링하며 좋은하루보냅니다
감사 무더위식히고즐거운하루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씨,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영천어디 가다보니
사원같은곳이 주씨마을
가을쯤에 함 방문해볼까 합니다.
언제 그 먼곳까지 용타기남
방문허셧에요.
역마살남자 용타기님. ㅋㅋㅋ
이곳은 시간적 여유(한 3~4시간 정도)를 가지고 돌아보면 좋은 곳입니다.
언제 시간되시면 방문하셔서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힐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상세설명과 곁들여 보는이로 하여금 설레게 하네요 카페를 더욱 활성화 시킵니다 수고많았습니다 ~~
격려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카페를 통해서나마 자주 소통하는 기회로 삼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