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부터 12일까지 나라奈良ㆍ교토京都ㆍ오사카大阪에 다녀왔습니다. 몇 가지 주제로 답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번 이야기에서 『일본서기』라는 책이 도대체 얼마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책이길래 대한민국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 그리고 대일항전기(일제강점기)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마니시 류, 쓰다 소키치, 쓰에마쓰 아스카즈 등)이 『삼국사기』의 기록은 부정하고 오직 『일본서기』의 기록만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고 했다.
오늘은 『일본서기』가 어떤 책인지 간단히 알아보자
『일본서기』라는 책
『일본서기日本書紀』는 720년에 편찬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보다 8년전인 712년에는 『고사기古事記』라는 책이 편찬된다. 그럼 먼저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된 역대 왕의 수명을 비교해보자
일본 역대 왕의 수명
▲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기록된 일본 역대 왕의 수명. 두 사료 모두 제1대 왕부터 제15대 왕까지 왕의 연령이 대부분 100세 이상으로 되어 있다. 또한 『고사기』가 편찬되고 불과 8년 후에 『일본서기』가 나왔는데 역대 왕의 평균 수명이 판이하게 다르다. ⓒ 『일본 고대사의 진실』
<표 5-5>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제1대 왕(진무神武)부터 제15대 왕(오진應神)까지 왕의 연령이 대부분 100세 이상으로 되어 있다. 이같은 수명은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16대 왕 이후의 왕의 연령을 알지 못한다면 그 전의 왕의 연령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후기 시대인 제16대 왕 이후의 왕의 연령은 대부분 기록하지 않았으면서 이보다 앞선 시대인 15대 이전의 왕의 연령은 일사불란하게 기술하였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이러한 왕의 수명은 『일본서기』보다 불과 8년 전에 나왔다는 『고사기』에 기록된 왕의 수명과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두 사료에 기록된 왕의 평균수명은 판이하게 다르다. 즉 그 수명은 후세에 조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16대 왕과 제21대왕의 수명은 그것이 허구일망정 『고사기』에는 기록되어 있는 데 반해 『일본서기』에는 기록이 없다. 반대로 27대 왕과 33대 왕의 수명은 『일본서기』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고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일본서기』에는 제1대부터 제15대까지의 왕의 수명은 거짓이라 하더라도 모두 기록된 반면에 제16대부터 제40대까지의 왕의 수명은 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일본 역대 왕과 왕 사이에 왕위가 비어있는 기간(공위 기간, 空位期間)
▲ 일본 역대 왕과 왕 사이의 공위 기간(空位期間). 왕조국가에서 왕이 없는 기간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일본서기』에서는 아주 흔하다. 1대 왕부터 33대 왕까지 13번이나 된다. 기간도 1년은 아무것도 아니고 심지어 3년 9개월동안 왕이 없었던 기간도 있었다. 이것은『일본서기』가 거짓투성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위서(僞書)다. ⓒ 『일본 고대사의 진실』
왕이 존재했다면 왕이 없는 기간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가령 현재의 왕이 580년 2월 4일에 죽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 왕이 즉시 왕위를 잇기 때문에 새로운 왕의 시대는 580년 2월 4일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일본서기』를 보면 이러한 경우는 오히려 예외에 속하고 대부분 앞의 왕과 그 다음 왕 사이에 짧지 않은 이른바 '공위 기간(空位期間)'이 존재한다. 현명한 독자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곧 간파할 것이다. 제1대 진무(神武)왕부터 제30대 비다쓰(敏達)왕까지 이러한 공위 기간은 13곳에 존재한다. 왕이 교체되는 사이에 공위 기간이 13회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위 기간의 시간적 간격을 보면, 11~12개월의 공위 기간이 4곳에 있고, 1~2년이 5곳, 2~3년이 2곳, 그리고 3~4년이 2곳으로, 공위 기간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기록에 일관성이 없음을 알려 준다.
공위 기간이 가장 짧은 것은 7대 고레이(孝靈)왕과 8대 고겐(孝元) 왕 사이로 그 기간은 11개월 5일이며, 공위 기간이 가장 긴 것은 1대인 진무(神武)왕과 2대인 스이제이(綏靖)왕 사이로 그 기간은 무려 3년 9개월 26일이다. 그 다음으로 긴 것은 18대 한제이(反正)왕과 19대 인교(允恭)왕 사이로 그 기간은 3년이다.
120년을 더해야 실제 역사가 된다?
'주갑제周甲制'란 용어가 있다. 주갑이란 환갑還甲, 회갑回甲과 같은 말로 60년을 뜻한다. 1주갑은 60년, 2주갑은 120년, 3주갑은 180년이다.
이 용어는 『일본서기』의 기사가 120년 정도를 끌어내려야 역사적 사실과 맞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의 서기 255년 기사는 120년을 더해서 서기 375년 기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서기』 기사의 사실 여부를 판단할 때 『삼국사기』와 비교해 그 진위를 가린다. 즉 『삼국사기』가 진위를 판정하는 저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 그리고 대일항전기(일제강점기)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마니시 류, 쓰다 소키치, 쓰에마쓰 아스카즈 등)은 『일본서기』 기사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삼국사기』 기록을 가짜로 몰고 있다.
그런데 2주갑, 즉 120년을 더해야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은 황당하다. 왜냐하면 어떤 기사는 60년을 더하고, 어떤 기사는 120년을 더하고, 또 어떤 기사는 더하지 않는다. 기가 막힌다. 소설책이 아니고서야 역사책에서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아래표를 보자
▲ 『일본서기』의 2주갑 인상론의 모순. 『일본서기』는 120년을 더한다고 모순이 해결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위 <표-8>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본서기』는 2주갑 인상한다고 모순이 해결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다.「신공 55년(255)」조는 120년을 끌어올려서 해석한다. 「신공 56년(256)」조는 121년을 끌어올려서 해석한다. 「신공 65년(265)」조는 120년을 끌어올려서 해석한다. 그러나 「신공 66년(266)」조는 연대 조정을 하지 않고 그대로 266년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가 다시 신공 69년(269)은 120년을 끌어올려서 해석한다. 같은 「신공기神功紀」인데, 2주갑 120년을 인상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책에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을 1830년에 일어났다고 적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어떤 역사학자가 이 책을 해석할 때 120년을 더해야 역사적 사실이 된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그 책을 역사책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책의 기본 중의 기본은 연대年代가 맞아야 한다. 연대가 뒤죽박죽인 『일본서기』를 어떻게 사실을 기록한 역사책이라고 할 수가 있단 말인가? 1~2년이 다른 것도 아니고 120년을 잘못 기록했다는데, 이걸 믿으라는 얘기인가? 이것을 초등학생은 믿겠는가?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일본서기』는 역사책이 아니다.
나이토 토라지로(內藤虎次郞: 1866~1934)의 고백
▲ 교토대 교수였던 나이토 토라지로(內藤虎次郞)의 고백. 일본인들도 『일본서기』의 연대가 의심스러워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등 한국기록에 나오는 연대를 참고했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일본서기』가 사실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우백단열린겨레학교 강의자료.
나이토 토라지로(內藤虎次郞: 1866~1934)라는 역사학자가 있다. 일본 역사학의 양대 축이 도쿄제대(東京帝大)와 교토제대(京都帝大)인데, 교토제대 중심의 교토학파를 이끈 역사학자다.
이 나이토 토라지로가 조선총독부 이마니시 류(今西龍: 1875~1932)의 『삼국사기』불신론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원래 아방(我邦:일본)의 고대사연구가는 『일본서기』의 기년(紀年: 연대)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유력한 방증(傍證)으로서 조선고사(朝鮮古史: 『삼국사기』등)의 기년을 참고하고 더욱이 그 기사의 내용까지도 조선고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마니시 류 박사가 양국 고사(古史)의 근본적 연구 및 『삼국사기』가 이용한 지나사적(支那史籍: 중국사료) 등의 연구로부터 종래 연구법을 일변하여 일본고사(『일본서기』)에 실려 있는 사실(史實)에 무게를 두게 되었다”
나이토 토라지로의 말은 이런 내용이다. 이마니시 류 이전에는 일본 학자들도 『일본서기』 연대年代에 의심을 품고 그 연대뿐만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삼아 연구했다는 것이다. 2주갑 인상론 운운하는 이야기도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삼아서 『일본서기』 연대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등이 『삼국사기』는 가짜고 『일본서기』는 진짜라고 우기기 시작했는데, 이 억지가 통해 『 삼국사기 』 는 가짜로 몰리고 『일본서기』가 사실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쓰다 소키치나 이마니시 류가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장한 이유는 왜(倭)가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사실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일항전기(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의 이 허무맹랑한 논리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강단사학계에서는 단 하나뿐인 정설이다.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쓰다 소키치의 고민
『삼국사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일본인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1873~1961)는 1942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금고 3개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다.
"혹은 스진[崇神, 10대 천황]ㆍ스인[垂仁, 11대 천황] 이조二朝의 존재를 가정한다고 말하거나, 또 혹은 제기帝紀 편찬 당시에 있어서 쥬아이 [仲哀, 14대 천황] 이전의 역대歷代에 대하여서는 그 계보에 관한 재료가 존재한 형적이 없고 그에 관한 역사적 사실도 거의 전하여 있지 않다는 등 황공하게도 진무 [神武, 초대 천황] 천황으로부터 중애천황에 이르는 역대 천황의 존재에 대하여 의혹을 품게 할 우려가 있는 講說강설을 감히 함으로써 황실의 존재를 모독하는 문서를 제작하고......"
일본 제15대 오진應神천황 이전의 천황들은 그 실재가 불분명하다는 쓰다 소키치의 말이 황실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쓰다 소키치가 대표적 황국사관론자라는 점에서 이는 『일본서기』가 갖고 있는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14대 쥬아이(仲哀)천황까지는 아무리 찾아도 흔적이 없다. 『일본서기』 초기기록은 사실로 볼 수 없는 내용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윤내현 교수(전 단국대학교 역사학과)의 글을 소개하면서 『일본서기』 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마친다.
"역사가의 임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실 자체를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전자가 후자에, 사실이 해석에 우선한다. 이것은 역사가의 상식이고 철칙이다. 그런데도 당신들(매국식민사학자들)은 사실을 외면하고 해석에만 몰두한다. 왜 그러는가? 사실없는 해석,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다음에는 네 번째 마지막으로 성덕(聖德, 쇼토쿠)태자에 관한 이야기다
출처
1. 『일본 고대사의 진실』, 최재석, 2010.
2.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II - 임나일본부는 일본열도에 있었다』, 이덕일, 2022
3.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2012.
4. 『고조선과 21세기』, 김상태, 2021
5. 우백단열린겨레학교 강의자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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