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부자
“부자 되세요.”
지금은 덕담으로 흔히 건네는 말이지만, 한국 사람들이 원래부터 이런 인사말을 즐겨 상용했던 건 아니다. 그 광고가 있기 전까진.
때는 2000년대 초, 한 카드회사 광고에 유명 여배우가 나와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외쳤다. 광고는 대박이 났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의 기억에도 선명하다.
“부자 되세요.”는 순식간에 전 국민의 유행어가 됐다. 너도나도 서로에게 “부자 되세요.”라고 인사하며 금방이라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달콤한 꿈을 꿨다. 그 이후에 비슷한 인사로 “돈 많이 버세요.”나 “대박 나세요.”가 등장했다.
그 광고 이전에는 ’부자‘는 현실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부자는 타고나거나 자수성가한 몇몇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 보통의 사람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잘 살고 싶은 욕망이야 있지만, 잘 살기 위한 조건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것이다. 잘 산다는 게 꼭 부자를 의미하진 않는다. 적어도 그 광고 이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그 광고는 다양하고 모호했던 사람들의 목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오직 하나의 목표를 국민에게 제시했다. 부자, 부자가 돼라. 국민은 단순하고 명쾌한 목표에 열광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대한민국은 경제적 혼란에 빠져 있었다.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았고,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으며, 많은 사람이 자살했던 시절이다. 다행히 우리 집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우리 집은 IMF 이전에도 가난했고, IMF로 더 못하게 됐어도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이거 좋은 건가? 아무튼.
IMF 이후 대한민국은 돈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국가나 회사만 믿고 넋 놓고 있다간 큰일 난다는 위기의식이 퍼져 나갔다. 국민들은 불안해 했다. 때마침 나온 ‘부자가 되자’는 목표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부자는 더는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목표이자 우리의 목표였다.
이후 대한민국엔 ‘부자 되기 열풍’이 불었다. “나는 이렇게 부자가 됐다.”라는 무용담과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실제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많은 사람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부자들은 자신보다 돈이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아랫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너희들보다 위야. 물질 만능주의 사회. 그렇게 우리는 현재에 이르렀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겉으로는 “나는 부자까진 바라지 않아. 그냥 돈 걱정 안하고 살 정도로 벌었으면 좋겠어.”라고 점잔을 떨었지만, 그 말이 결국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었다. 겉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부자를 갈망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필요 이상의 많은 돈을 갖고 싶었다. 써도 써도 줄지 않을 돈을. 하지만 나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서로 “부자 되세요.”라고 응원해주던 국민 대부분이 부자가 되지 못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우리 대부분은 왠지 모를 패배감과 자괴감을 느끼며 살아가게 됐다.
처음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덕담이라고 생각했다. 돈 싫어할 사람은 없고,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라는 말은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저주는 아니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자 되세요.”는 강요처럼 들린다. “꼭 부자 되세요. 부자가 안 되면, 비참해져요. 부자가 제일 좋은 거예요. 다른 것은 별로 가치가 없어요.”라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요즘 에세이를 쓰고 있다는 말을 했더니 곧장 이런 질문이 날아왔다.
“그거 하면 부자 되냐?”
별 뜻 없이 건넨 말이었겠지만, 나에겐 이렇게 들렸다.
“그거 돈은 많이 버냐? 많이 벌지 못하면 뭐 하러 하냐? 그런 일은 아무 의미 없어.”라고.
“에이, 이거 돈 못 벌어요. 그나저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대충 얼버무렸지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나의 마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돈이 최고인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흔히 돈은 수단이어야 하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돈이 목적인 삶을 살아왔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늘 돈을 많이 벌고 싶었기에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같은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제쳐두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좇으며 살았다. 우선 돈부터 많이 벌면, 나머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이었다. 뭐 좋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됐으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돈을 좇으며 살았지만, 돈은 좀처럼 내게 오지 않았다.
첫댓글 부자되세요.라는말 이거 음.... IMF도 한몫 했지만... 지존파사건(김현양이 10억 벌때까지....OO하려고 했어요) 라는 말에 더욱더 유명해진것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광고에서도 책에서도 10억벌기라는 책이 유행했고. 또 여러분~~부자되세요. 라는 말이 유행했죠. 이때부터 생겼나요. 아마도 이런 영향으로..... 범죄가 많이 생겼죠.
그냥 제 생각인데요. 부자라는건 마음이 건강하고 따뜻하고 정신이나 몸이 건강해야 부자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ㅎㅎ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