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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창작 10계명 ③> 죽은 시를 살리는 비유, 비유로 시에 날개 달자!/ 권갑하 시인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세 번째 강의 시간이다.
잘 된 비유는 강한 ‘그림 효과’를 가져다준다!
故 김종필 전 총리는 촌철살인의 어록과 비유 화법으로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중국의 지도자들도 외교 무대에서 두보나 이백의 한시를 자주 인용한 외교술로 큰 성과를 올린 외교 사례로 유명하다.
“서쪽 하늘을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 “노병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김종필>
상황에 딱 들어맞는 비유! 그런 비유는 메시지를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리게 한다. 잘 된 비유는 강한 ‘그림 효과’를 준다.
<갈매기>, <새>, <풀>이란 단어를 어떤 것이 상상되시나요?
일반적인 보통 명사라 특정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죠.
그런데 이를 괭이갈매기, 물총새, 강아지풀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의미가 명료해지고 그림이 떠오릅니다. 괭이갈매기는 괭이, 즉 고양이 이미지가 떠오르고, 물총새는 총이, 강아지풀에서는 강아지 꼬리가 그려져 대상이 특징이 명료해져요.
하지만 우리가 자주 쓰는 헌신짝이나 쥐꼬리, 달덩이, 돈벼락같은 어휘는 어떤가요?
이런 단어들은 비유의 힘을 상실한 죽은 비유어입니다.
우리 삶은 비유 속에서, 비유에 의해, 비유와 함께 영위됩니다.
죽은 비유의 사용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신선하게 표현하는 창조적인 언어활동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비유는 ‘상상력과 직관’에서 나온다고 하죠. 직관력을 높이는 방법은 대상에 몰입하여 어떤 영감, 이미지가 떠오르면 즉시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직관을 살리는 최고의 방법은 즉시 메모하는 것이죠.
풀꽃1 / 나태주(1945~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1은 오늘날 크게 사랑을 받는 대표적 시로 ‘풀꽃’을 ‘너’로 은유한 작품입니다.
흔히 시는 비유와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비유, 바람(보조관념) 같은 사나이(원관념)
*상징, 풀(보조관념)이 눕는다(원관념: 민중 생략)
상징은 원관념인 민중은 생략되고 보조관념인 풀만 남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비유법에 대해 집중합니다. (상징은 다음 강의)
소재가 참신하고 주제가 심오해도 비유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시는 좋은 시가 되기 어렵다. 비유야말로 시의 품격을 높여주고 의미를 더 깊고 높게 해줍니다.
우리말로 꾸밈새인 비유는 의미의 이동과 전환을 뜻합니다.
*비유법(의미의 이동과 전환)
- 직유법, 은유법
- 대유법(제유법, 환유법)
- 의인법, 의성법, 의태법
이번 강의는 비유법의 3인방이라 할 수 있는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에 대해 살펴봅니다.
좋은 시나 시인의 대표작은 딱 떨어진 비유의 작품에서 많이 나옵니다.
비유법을 잘 익히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지름길이라는 이야기죠.
좋은 비유란?
-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 시인의 독창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을 가시화한다
- 풍부한 시적 의미를 암시해 주기도 한다
- 정서적 충격을 주는 힘을 지닌다
-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 시적 대상을 보다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해 준다
【①직유법】
원관념(a)인 어떤 사물을 보조관념(b)인 다른 사물에 빗대는 방식, ‘b같은 a’ 구조, 즉 유사한 두 가지를 직접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처럼, ~같은, ~같이, ~듯이, ~인 양’ 등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직유는 형상 그리기 속성, 설명이고 해설 형식이다. 보조관념이 새로운 언어, 참신한 비유라야 직유가 제대로 기능합니다.
‘죽음처럼 깊은 잠’, (영화 제목이기도 함)
‘새악시 볼에 떠도는 부끄럼 같이’(김영량,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이효석, ‘메밀꽆 필 무렵’)
'나는 지금 식은 호떡 속의 차가운 꿀처럼 달콤하다.'(김경주, 희곡 ‘당선소감’)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권혁웅 시집 제목)
우리집 큰 놈은 이제
쓸모도 없는 좆만 남았다고
두 다리보다도 그게 더 길다고
막걸리 거품처럼 웃는다.
-이정록, <홍어> 마지막 연
점심으로 시킨 짬뽕을 천천히 먹으며
그 불어터지는 시간을 가만히 보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노인을 슬쩍 곁눈질 하는데
괜히 멋쩍게 웃는 폼이 이 빠진 옥수수처럼 서늘하다
-김창균, <장날 박수근 그림 생각> 부분
웃는 이미지를 막걸리 거품에, 이 빠진 옥수수에 비유하고 있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신선한 비유입니다.
직유법은 보조관념의 참신성이 보장되어야만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만큼 신선한 의미, 새로운 이미지의 보조관념 찾기에 감각의 촉을 세워야 한다.
겨울 남해에서 / 이상국(1946~ )
이 절도 다 됐구나
뒷산에서는 물오른 동백이 백댄서처럼 몸을 흔들고
절마당 아래까지 술집이 들어앉으니
한때는 힘깨나 썼을 부처가 오빠처럼 보이는구나
내 오늘 늙은 기러기처럼 이 땅을 지나가며
절집만 봐도 생이 헌 옷 같고
나라가 다 측은하다만
혹 다시 못 오더라도
월경처럼 붉은 꽃들아
해마다 국토의 아랫도리를 적시고
또 적시거라
직유법만으로도 이렇게 좋은 시를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제목이 직유인 작품도 있다.
국제열차는 타자기처럼 / 김경린(1918~2006)
오늘도 성난 타자기처럼 질주하는
국제열차에 나의 젊음은 실려 가고
보랏빛 애정을 날리며 경사진 가로에서
또다시 태양에 젖어 돌아오는 벗들을 본다.
옛날 나의 조상들이 뿌리고 간 설화가
아직도 남은 거리와 거리에
불안과 예절과 그리고 공포만이 거품일어
꽃과 태양을 등지고 가는 나에게
어둠은 빛발처럼 내려온다.
또다시 먼 앞날에 추락하는 애정이 나의 가슴을 찌르면
거울처럼 그리운 사람이 흐르는 기류를 안고
투명한 아침을 가져오라.
불안과 공포로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화자에게 작은 사랑이 밝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란 내용(2021.10 이정권의 ‘그리움은 버릇처럼’으로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로 재탄생함)
【②은유법】
은유는 원관념 a를 보조관념 b로 대치하는 비유법, a=b, 'a는 b이다‘ 형식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 피천득의 ‘수필’에서>
은유는 많은 보조관념으로 전이되어 의미의 변이와 확장을 가져온다.
나의 하나님 /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나의 하나님을 다섯 번의 은유로 막연한 하나님을 사물에 빗대어 구체화 하고 있죠.
은유법의 4가지 종류
1. 두 명사가 결합하는 명사 은유법 : ‘마음의 꽃다발’, ‘황금의 팔’
2. 형용사 은유법 : 명사와 그것을 꾸며주는 형용사의 결합 :
- 죽음을 뜻하는 ‘영원한 잠’,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여행’ 같은 표현
3. 부사 은유법 : 부사와 형용사, 부사와 동사 결합 (드물게 사용)
- ‘가혹하게 피어있는 꽃’
4. 동사 은유법 : ‘~이다’ (가장 많이 사용)
‘벚꽃은 봄에 내리는 눈이다.’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았습니다.’
(‘~이다’ 생략되고 한다) *만일 ~이다를 붙였다면 은유의 긴장감이 떨어져 효과도 떨어진다.
이조년의 시조에 나오는 <다정도 병이런가> 같은 구절처럼, ‘~(이)라고 한다. ’나‘, ’~(이)런가,‘ 도 동사 은유법에 해당
‘호수 같은 내 마음’(직유)
‘내 마음은 호수다.’(은유)
다소 비슷하지만 다르다.
은유는 시의 품격을 높여주고, 시의 의미를 더 높고 깊게 만들어 준다. 은유법을 잘 구사하는 시인이라야 고수의 시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인에게 중요한 비유법이 은유법이다. 은유에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거리’가 존재한다.
대상이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두 관념 사이의 거리가 짧기도 하고 멀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 가까우면 상투적인 표현이 되고, 거리가 너무 멀면 난해한 표현이 된다.
도대체 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은 바로 이 거리가 먼 은유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거리가 먼, 너무 주관적인 은유는 피해야 한다. 쉬우면서도 깊은 의미가 우러나는 은유법의 구사가 중요한 이유다.
감동적인 시는 작품 전체를 은유하는 방식의 시다.
도심 속의 포장마차를 암자로 은유한 신달자 시인의 <저 거리의 암자>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권대웅의 <가을산>, 반칠환의 <봄> 등도 그렇다.
권대웅의 가을산은 술 취한 아버지를 가을 산으로 비유한 작품이다.
가을산 / 권대웅(1962~ )
술 취한 아버지 대낮에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어딜 그렇게 올라 가세요
낙엽 긁어모으며 바람 불면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 계속
녹슨 세월의 송전탑
숨은 아들 대답하지 않는데
되돌아오는 메아리만 가슴을 태우는 산
자꾸 뭐 하러 올라 가세요
그게 아니다 애야 그런 게 아니라고
붉은 손 흔들어 길 막는 너도밤나무
온통 아픈 울음 가득 토해 내도
아버지 넘어지며 자꾸 넘어지며...
붉게 물든 단풍은 아버지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입니다. 아들이 말리고 말려도 높이 올라가는 세월의 산, 그 속에서 힘겹게 산 아버지의 연륜이 느껴지는 시편입니다.
치환은유, 병치은유
■ 치환은유(옮겨놓기) : 포개어짐 ; 의미의 제시
비유의 본질은 두 사물간의 유사성이나 이질성을 통하여 대상을 설명하는 어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비유 : 의미의 전이(이동) : 대치론 → 치환은유(옮겨놓기)
- 두 사물 간의 비교가 아니라 자리바꿈 : a=b
‘이상은 쌍두마차였고, 현실은 만가였다.’
■ 병치은유(마주놓기) : 통과함; 존재의 창조
서로 각각 대결 상태를 유지하면서 제3의 효과나 의미, 정서를 자아내게 하는 방법이다.
치환이 포개어짐이라면 병치는 통과함이다. 치환은유가 의미를 제시함에 있다면 병치은유는 존재를 창조함에 있다.
‘한 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구조의 대리석, 그 마당(사원) 한 구석 잎사귀가 한 잎 두 잎 내려앉는다.’ (김종삼, ‘주름간 대리석’ 시 일부)
이 시는 마당에 두 개의 상반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낡은 구조의 대리석과 내려앉는 잎사귀가 그것이다. 이처럼 마당 모퉁이와 마당 구석에 대칭된 자리에 대리석과 낙엽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사성이나 동일성으로 보고 옮겨보기가 아닌 전혀 이질적인 사물들이 대립의 상태죠. 이러한 병치는 한 사물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아닌 새로운 분위기나 의미를 창조하려는 목적이다. 이를 통해 존재의 리얼리티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환이 의미 제시라면 병치는 존재 창조라는 의미는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질적인 사물들이 마주 보는 대립 상태, 병치는 한 사물을 설명하려는 의도 아닌 새로운 분위기나 의미 창조가 목적이다. 이를 통해 존재의 리얼리티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존재 창조)
지하철역에서 / 에즈라 파운드
군중 속의 이 유령 같은 얼굴들
젖은 검은 나무 가지 위의 잎사귀들...
*한 행이 다른 행의 은유적 표현(병치은유)
에즈라 파운드의 ‘지하철역에서’라는 시는 시각적 대조를 통해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는 시편입니다. 이미지 정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 행이 다른 행의 은유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병치은유 시라 한다.
확장 은유
섬 / 이홍섭
바다가 기르는 상처
만약
저 드넓은 바다에
섬이 없다면
다른 그 무엇이 있어
이 세상과 내통할 수 있을까
바다가 섬이 있어 세상과 내통할 수 있듯 인간에게도 상처가 있어 세상과 내통할 수 있다는 명제를 들려주는 시이다. 일련의 비유와 사고의 연장으로 확장 연장되고 있다.
암시적 은유
원관념은 한마디도 나타내지 않고 보조관념만 표면에 나타내어 원관념을 유추하게 하는 은유다.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 지은이 미상, <청구영언> 수록
‘남자’를 ‘나비’에, ‘여자’를 ‘꽃’에 은유하여 남녀 간의 애정을 노래한 시조다.
은유는 새로운 단어 형성, 즉 조어에 크게 기여한다.
저울눈, 바늘귀, 보조개(볼+조개) 같은 은유 조어.
한 번도 맺어진 일이 없는 새로운 관계를 발견해 결합시킨 것
은유적 조어 만들기는 단어에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에 창작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나만의 ‘조어’ 만들기에 도전해보자.
직유와 달리 은유는 시를 깊게 한다.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영감을 전달한다.
은유법이 구사된 시, 오래 기억되고,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은유는 힘이 세다!
과거에는 <직유와 은유?, <제유와 환유>(대유법)가 짝을 이루었다. 최근에는 <은유와 환유를 맞짝 개념으로 인식한다.
■제유법 : 이끌 제(堤)자 ; 대상의 전체 중 하나를 끌고 와 대신 표현(같은 종류)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들=국토 의미)
- ‘흰쌀밥에 고깃국’(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의미)
■환유법 : 바꿀 환(換)자 ; 특징 유사한 다른 것으로 바꿔 표현(다른 종류)
- ‘펜(문화)은 칼(무력)보다 무섭다’ ; 문화 도구로서 ‘펜’이 대신 사용됨
- ‘간판을 보고 신이비사원을 뽑는다’ ; ‘간판’이 외모나 출신학교 대신 사용됨
최근엔 <은유와 환유>를 맞짝 개념으로 인식한다.
은유가 a를 b로 ‘대치’의 개념이라면, 환유는 부분으로 전체 ‘대표’하는 비유법
- ‘사각모’로 ‘대학생’을 비유하는 방식이 환유법
■은유법 : 실제 대상과 대신하려는 표현이 같이 나옴
- ‘사랑은 하트’ ; 사랑과 하트 직접 언급, 사랑=하트
■대유법(환유, 제유) : 실제 대상은 쓰지 않고 대신하는 표현만 온다.
- ‘너에게 하트를 조고 싶어’ ; 사랑이란 단어 대신 하트만 언급, 사랑≠하트
비유법의 세 번째는 【③의인법】
의인법은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무가 춤을 춘다.’ 의인법의 표현이다. 창작에서 의인법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안도현 시인은 의인법을 잘 구사하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저 물푸레나무 어린 새순도>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 안도현 시인이 의인법을 시 쓰기에 자주 활용하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인간을 인식하는 시인의 세계관과 연결된다.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시인(1961~ ), 1981년 매일신물 신춘문예 당선 등단
눈발=여린 생명
자연물인 강과 눈을 사람으로 보는 인격을 부여한 의인법 작품이다. 화자는 겨울강의 모습을 통해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함과 희생적인 사랑의 가치를 형상화하고 있다.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늘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시인은 봄을 너로 비유하고 있다. 봄이 인간이 되면서 실제 사람과 달리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 기다림을 상실했을 때도 오는 봄이 된다. 이런 봄이 기웃거리고 한눈을 팔고, 싸움도 하는 것을 보면 봄 너는 건달인 것 같다. 화자는 그런 건달 같은 봄이 좋다고 말한다. 그래야 이 형편없는 고통, 가난을 물리치지 않겠냐는 진술입니다. 너 봄은 그래서 희망과 꿈, 유토피아를 상징합니다.
의인법, 활유법
의인법과 유사한 것이 활유법이다.
활유법은 무생물과 생물처럼 표현하는 비유법이다.
- ‘발해는 안장을 벗고 가로 누워 있었다’ (권갑하, ‘동모산을 바라보며’)
의인법은 인격화된 표현이다. 그런 차이는 있다.
- ‘민들레꽃이 환히 웃고 있다.’
‘모든 산맥(원관념)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보조관념) 때도’ 이육사의 시<광야> 한 구절
원관념 ‘산맥’, 보조관념 ‘바다를 연모해 휘달리는’ 이런 경우는 의인법도 되고 활유법으로도 볼 수 있다.
의인법은 아무리 독창적으로 구사한다 해도 결국 장식적 효과밖에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법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한 편의 시 전체를 의인법으로 이루어지게 써보는 것이 좋다.
복어 / 이형기
복어는 늘 화를 내고 있다.
최근의 화는 아직 부글부글 끓고 있다.
부글부글 메탄가스처럼
그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복배가 튀어나온
만화 같은 불평분자
그러나 끓고 끓어서
청산가리 13배로 농축된 그 알맹이는
창자 속에 또는 피 속에 차갑게 간직된다.
사람들은 그 진짜는 질색이다.
세심한 주의로 모조리 제거하고
무해무득한 부분에만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속이 확 풀린다니 천만다행이다.
‘늘 화를 내고 있다’던가, ‘아직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표현이 복어를 직접적 의인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복어를 비정의 대상으로 변질시켜서 형상화 한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들은 정치적인 풍자를 할 때 많이 사용된다.
좋은 비유는 시를 독창적이고도 새롭게 살려낸다.
따라서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지 말고 새로운 눈으로 창조하고 독창적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번 영상에서는 비유에서 소위 3인방이라 부를 수 있는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법만 제대로 익혀도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좋은 비유가 좋은 시를 만듭니다.
<출처 : 권갑하 감성TV. 좋은 시 창작 10계명 ③ 죽은 시를 살리는 비유, 비유로 시에 날개 달자!/ 권갑하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https://youtu.be/XG_YkbSID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