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수첩을 펼치며
감리업무을 시작한 첫 신고식은 발주청에 이틀이 멀다고 거의매일 출입하여
공사진척보고와 다음단계 절차와 여건보고에 따른 승인이다
내업무가 산간오지라 전라북도와 경상북도 경계선 근처
600고지에 위치한 추량리에서 대구까지 왕복180키로를 달려
지방건설업32개 업체가 흩어져 복구하는 현장이었다.
큰회사는 추진력도 좋고 행정력이 뒷받침되나,
영세업체는 새마을 공사수준이라 서류능력이 착공및 준공계 뿐
갈수록 강화되는 품질 안전분야에 겨우 계획서내용이 사진밖에 없으니
감리가 대신 맡으라는 성격이었다 .
발주자체가 감독인원 부족이 아닌 한계상 문제로
감리용역을 시행하게된 배경이었다.
감독청 업무지원이 시공사 행정지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서 10여년 전 내모습을 회상하고자 한다/
2003년도 2월에서 1년간 그때가 감리 신고식인가?
현황판 미비, 비품지원 근절/ 난로지원은 있돼 煖房油 지원없고,
月例經費 根絶 /山間奧地
참외로 유명하다던 성주군 성주湖를 시작으로
산넘어 물건너 계곡따라 이곳 추량리 정상
까지 왔노라, 추량 관기 연화로 이어지는 고을들이여!
週中은 직원들이 있어 숙소로 단니지만
週末엔 석유난로하나로 의지하며 끄고잔다
그러면 21도에서 12도로 되어 깬다 (추워서 1시간정도로 반복)
이불도 없고, 성주숙소는 너무멀고 /아무도 없고.........(지나고보니 死線을 넘은 고비였다)
2월11일부 입사 - 2월25일/월급 入金,/
부분 날자계산 /96萬6천냥/ 첫봉투 기념보관.
2.28/퇴근후 수원행 운전에 피로엄습/
집에 간 목적은 현지조달 안되는 오리털 파카, 이불, 내복를 가질려
주말에 수원집으로 일단귀소 했다
3.3 / 공군제대후 복학준비중인 아들이 대신운전하여 수원-대전-김천- 조마-
대덕현장- 대구발주청-성주시숙소를 거쳐 함께 근무지로 !
업무협의/11:00-16:00아들은 점심도 못 먹고 기다림-왜관(아들기차로 상경)-
성주숙소로 오는 410Km거리였다
3.4/ 감독청 000 과장/현장점검 첫날: 노발대발 & 욹그락 붉구락
3.5/ 눈마저 날울려 진눈깨비내리고 어제 감리전임자 첫단추 잘못은
2달간 감리비1억을 아깝게 여기는 담당관은 괜히 용역 주었다고
덤테기 썼다고 불평듣고 / 하루종일 눈이 치적치적 내렸다.
직원5명 모두가 행정업무에 박차. 오늘은 경칩驚蟄인데, 창밖은 우수雨水다.
3.15토(비)/ 12:00경 이상하게 허기虛飢와 소나기 잠(혼수상태).
3.16일(비)/ 오늘은 결혼24주년 기념일 / 25년차 동반인과 생 이별중
어제낮 12:00부터 혼수상태(계속잠)---다음날 04:00까지 계속잠
-노동과 세월처럼 낮과 밤만 있으며 일과 잠뿐!
한달치 월급이 240여만원 기본급밖에 안되는 돈을 보며 생각한다
힘들여 12시간 전념과 온신경을 써도 기본급 밖에 안됐다
감리수습기간인 2년동안 본부에서 설계서검토 도면체크 철근량확인등
혼자 외로운 직업인데 아~ 그동안 놀멍쉬멍해도 기본급은 . . . . . .
대신 건설업계 시공사는 더욱어렵고, 감리들 역시
영향여파로 딴길찾으면 가겠다고들 하니.....
4.7월/ 당일치기; 설계변경 심사차 감리부출장
밤 12:03발 왜관 출발/ 비맞은 새처럼 비에 흠뻑 젖은채
비가 장마 비처럼 오는데 Bus를 탓다 야간용 우등버스로
동대구 버스터미날에 도착하니 밤11시/
굵은 빗속에 대구거주 시공업자는 자기집 가고 /
난 다시 왜관행 버스에 올라타 왜관역 밤12시반 도착했다/
그리고는 이곳 역 광장에 세워둔 My Car로 농가숙소(낡은 빈집)로 돌아왔다.
부엌방은 직원방으로 언제나 그렇듯 불이 켜진채 잠들고
마루를 개조한 내방은 그대로였다
내려올 때, 버스는 뒤뚱 거리며 계속 빗길..
야간, 확장 작업장구간 그리고 왜 버스는 유난히 출렁거리는지
영 불안하여 피곤하여 눈은 감기나 잠이 오지 않았다
기차는 얼마나 안전하고 빗속에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것이
창문에 비치는 야간열차 내부풍경이 스크린 같아 운치가 있었다/
계속 되는 비로 트렁크에 우산, 비옷도 잃고서 맞고 단니다가
밤 새로 1시반 숙소도착함 /
목적; 본사 감리부 방문하여 /
6월말 1차 철수시 상기 본인은 업무가 감당 안되어
철수하고자 하오니로 시작되는 건의서를 들고 도중하차 건의함
그날회답-현장을 死守하란다
밖은 밤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02시 00분 메모
10. 01 4월11일에 쓴 메모는 산에는 진달래 가신님 무덤가에 진달래라고
현장사무실 2층난간에서 빤히보이는 눈앞 무덤가에 진달래가 만발하였다.
모두들 겨울모직 동잠바 속에 근무하는 00엔지니어링 감리부직원들밖은 이렇게 봄이고,
봄에 맞는 복장이건만 석유난로에 의지한 채 일하는 가운데 모처럼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어제만해도 온화한 날씨가 시월일일 되니
음산한날씨 무거운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
대덕면 경상북도와 전라북도 도경계고개에는
삭막한 바람이 인정사정없이 불어댄다!
‘2003年 10月01일 ; 오늘 10월1일
강풍은 불고 비와 햇살이 교차하건만 !
아~ 언제 내고향 내가정으로 돌아갈까?
자꾸자꾸 미루어지고 연기되는 공사장!
당초 6월말 끝날 일이 칠팔구월 드디어 10월까지 미루어졌지만
나날이 달라지는 추위! 추어지는 날씨에 은근히 걱정된다
초겨울 찬바람은 벌써 불고 인적은 끊어지고 추량리고개 적막은 무서워지는데 . . . . 10. 01. 15:15
문풍지 흔드는 스산한 바람이 인다.
솨악하고 한줄기 바람이 불고 잔별이 보인다.
솨악하고 물 흐르는 소리 같기도 한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미닫이 문이 가볍게 흔들린다.
삭막한 북풍이 .
초겨울 강풍이 낮에는 휘몰아치고. 밤에는 밤새 비는 안오지만 빗소리에 시달리고
(아침에 보니 집뒤 느티나무 고목에서 떨어진 마른가지와
나뭇잎이 바짝 말라 구르는 소리가 빗소리 같았음)
혼자있는 시간이 많으니, 나 때문에 많이 울었고 ,
또 날 위해 울었던 아내를 생각하고 福으로 여긴다
개라면 싫어하는 마누라한테 맡긴 늙은개는 (5년째 산 복실이 스파니엘잡종)
앞으로 애꾸눈으로 어떨지 3 - 5년 더 살런지 모르겠다
4월4일에 이곳 성주읍에서 이곳 김천시 황정리 농가로 와서 반년이 됐다
계절의 변화를 감나무로 느끼고 감잎 나고 붉은색으로 변하는 자두나무 숲을 지나
느티나무 아래 갈색 낙엽을 본다. / 10월10일. 06:00
감이 열리고 익어가는 감나무 정경이 계절의 시계 같다.
2003년10월10일 밤10시10분 보름달을 보며 서성거리다.
10월14일; 밤바람이 차다 어제는 젖은 낚엽이 딩글고
오늘은 가랑잎이 구르는 작업장아침부터.
찬이슬에 쏴아하는 밤까지 바람이 차다.
19일 (일); 추적추적 비가오고 젖은 낙엽이 딩글고 추량의 아침!
쏴아하는 소리, 벌써 이곳은 엄동설한의 겨울풍경.
21일; 초겨울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24일 01:15 산바람이 왱왱 운다
/ 유리조각댄 미닫이 창호지 문이 흔들린다
/ 차거운 서풍이 구름을 휘몰아친다
07: 42 / 경상북도 무릉군 증산면 황정리와 대덕면 추량리 경계는 엄동설한의 겨울풍경!
석유난로을 하루종일 켜고 부분준공후 업무량 축소로
다섯명에서 남은두명은 춥다고 한다.
10월 28일; 강풍! 강풍! 강풍!
10월 29일; 황량한 벌판, 겨울바람. (오전에 보건소를 가서 인플렌쟈 주사를 맞음) 끝.
후기;
2004년3월25일 / 여기 오기전에 그동안 2년간 20개월 현장미투입으로 감리 자격상실 위기속에서
추량고개(秋良)는 날 구해준 현장었다 (3년간 현장 미투입이면 사전심사에서 탈락)
1) 水害復舊工事와의 因緣과 經驗을 나의 遺産으로
2) 추량고개 비탈면과 추량교가 나의 土木生活에 金子塔
3) 여기서 현장대리인들과 맞남을 소중히 여긴다. /끝
첫댓글 아이구 ... 생생한 삶이야기 들려달라고 했더니 ... 이렇게 어려운 고난의 세월을 올려주셨네요 ㅎㅎㅎ
그런 힘든 고통의 세월도 ..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요?
그렇게 힘든 일들이 지금은 많이 대견하시겠습니다 ㅎㅎㅎ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 당시의 힘듦보다는 낫겠지요?? ㅎㅎㅎ
님의 어려웠던 시간을 이렇게 편안히 앉아서 읽고 갑니다
이제는 고생 끝 !!! 행복 영원하실겁니다 ㅎㅎㅎ
한가롭게님 저녁이후 한잠자고 일어나 컴에 앉아습니다/ 즐거운기억은 안남고 어려웠던 일만 남아서요
그해도 비가 계속자주오고 성주湖가 넘치더니 대구지하철사고가 크게일어났고 급기야 가을추석
태풍매미號로 철도길이 사다리그네처럼 걸리고/
각현장은 계곡길따라난 도로옆파헤친 토사더미가 곤죽되고 거푸집은 둥둥떠단니고/
길떠내려 간다고 캄캄한 밤비속에 지켜보는 일이 지금은 추억입니다/
매미태풍으로 신문과 각지역 피해보고가 올라오자 그때서야 다시 복구계획서가 접수되었지요 . . .
天災로 인정못하겠다는 발주청과 현장관리 잘못해서 생긴 人災라고
삶의 이야기는 왜 휴식하시나요?
엄청 오래전의 얘기도 아닌데 고생 하셨네요
아무튼님 관심가져주어서 감사하지요
삶이야기가 手記가 되고 각자 살아온 얘기다보니 인생을 2배는 산느낌이지요
이제는 旅行記 3편을 쓰자니 좀 준비와 탈고가 필요해서요/ 건강하세요
공사현장에서의 고생하시는분들의 대표작을 생생히 들려주셨네요
그래도 몸과 맘 건강 잘 챙기시면서 즐겁게 행복하시길 바람니다
좋은 경험담 잘 읽었습니다.
본인도 공직30년하다가 명퇴후, 감리교육4주후,수주되어
3년간 호남선전철화 책임감리단장 시절에 남도의 먹거리들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