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 넘어」는 북한 작품
신동아와 황석영 사이에 인터넷을 통해 많은 시비가 있었습니다. 결국 황석영이 이실직고하는 것을 끝으로 표절시비는 종결되었습니다. 「넘어 넘어」는 황석영 본인이 쓰지 않았고, 누가 썼는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유령의 책을 황석영이라는 거물의 이름으로 발간해야 체포를 면할 수 있고, 많이 팔린다는 이유로 '광주조직'이 권유해서 자기 이름으로 발행하게 됐다고 인터넷을 통해 신동아에 밝혔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이 「넘어 넘어」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첫째, 이 책이 보통의 책이 아니라 북한의 역사 왜곡 작전의 가장 큰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5•18사태를 북한의 통일 역사로 만들려고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다가 실패하자 곧바로 역사 왜곡 작전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1985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드물 정도로 많이 읽혔고,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은 분들 이 책의 내용을 사실로 믿어오면서, 역사 인식에 대한 여론을 형성했고 이를 점점 더 굳혀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식인이라면 읽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어서 이 나라의 여론을 좌우하는 층에서 많이 읽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에는 이 책의 증보판이 나온다 합니다. 지난 2014년 7월 8일, 광주시 시의회 기자실에서는 정상용을 위원장으로 하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증보판 간행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모금운동도 전개합니다. 황석영, 박석무, 원혜영, 정용화, 이부영, 유인태, 강기정, 이학영, 장휘국, 이재의, 송선태 등 92명의 좌경인물들로 구성된 이들은 회견문에서 「넘어 넘어」가 "광주 민중항쟁 10일간의 상황을 종합적이자 체계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책"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과연 이 말이 맞는 말인지 함께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넘어 넘어」의 내용 중 전형적인 모략 부분들을 일부 발췌해 드립니다. 과연 이런 글들을 대한민국 국민이 쓸 수 있는 것인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넘어 넘어」는 읽기조차 민망한 저질의 북한 표현으로 가득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돌격 앞으로'하는 명령과 함께 공수대원들이 으악! 소리와 함께 학생들 사이로 뛰어들며 곤봉으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 공수대원들의 곤봉은 철심이 박힌 살상용의 특수 곤봉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살기가 돌았고, 가차 없이 머리를 후려갈겼다."(36쪽)
"한 손에는 대검을 또 다른 손에는 살상용 곤봉을 들고 눈에는 충혈이 되어 닥치는 대로 때리고 찔렀다."(42쪽)
"시위학생을 잡으면 먼저 곤봉으로 머리를 때려 쓰러뜨리고서는 서너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군화발로 머리통을 으깨버리고 등과 척추를 짓이겼으며 곤봉으로 쳐서 피곤죽을 만들었다. 투쟁이 격화됨에 따라 사망자의 사망진단은 각기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최초에는 타박상, 그 다음은 자상 그리고 총상의 순서였던 것이다. 공수대원들은 피투성이가 된 희생자가 축 늘어지면 멱살을 잡아 한 손으로 쳐들어 걸레를 던지듯 트럭 위로 던져 올렸다."(47~48쪽)
"제7공수특전단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사병처럼 육성되었으며, 시내에 최초로 투입될 때부터 살인 허가를 받은 것처럼 잔인, 냉혹하였다. 이들은 부마항쟁 때에도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던 부대였다."(48쪽)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들은 가차 없이 대검으로 배를 쑤셨다."(49쪽)
"어떤 경우는 터미널 뒤편 막다른 골목까지 달아난 학생이 드디어 잡히게되자 자지러지게 무릎을 꿇으며 살려달라고 연신 빌었다. 대문에 나와 내려다보던 할아버지가 너무도 애처로워 몸으로 가리면서 봐달라고 사정하자 공수대원은 '비켜 이 새끼!' 하면서 할아버지를 곤봉으로 내려쳤다. 할아버지는 피를 뒤집어쓰고 고꾸라졌고 쫓기던 학생은 돌을 집어 들었으나 공수대원은 가차 없이 곤봉으로 후려친 뒤에 대검으로 등을 쑤시고는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길거리로 나갔다."(49~50쪽)
"광주일고 부근에서는 길 가던 여학생을 아무 이유 없이 붙잡아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내려 구둣발로 올려차고 상의와 브래지어를 찢어버리고는 여러 시민들이 보는데서 '이 씨팔년이 데모를 해? 어디 죽어봐라'하면서 계속 피투성이가 되어 실신할 때까지 주먹과 발길질로 난타했다."(50쪽)
"공수대원 7~8명이 반항하는 청년에게 달려들어 돌아가면서 난타한 후에 '광주 놈들은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한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안내양이 약간 반항의 기색을 보이자 '네 년은 뭐냐'면서 곤봉으로 후려갈겼고 안내양은 차 아래로 실신하여 굴러 떨어졌다."(50쪽)
"공수대원들은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눈은 술기운과 살기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시민군에 잡힌 몇 명의 공수대원의 진술에 의하면 이들은 출동하기 전에 독한 술에다 환각제를 타서 마신 상태였으며, 수통에는 빼갈을 담고 있었다."(50쪽)
"여자라도 몇 명이 붙들려오면 여럿이서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북북 찢어발기고는 아랫배나 유방을 구둣발로 차 짓뭉개고 또는 머리카락을 휘어잡아 머리를 담벽에다 쿵쿵 소리가 나도록 짓찍었다. 손에 피가 묻으면 웃으면서 그 몸에다 쓱쓱 닦는 식이었다. 그런식으로 살육을 즐기다가 군용차량이 오면 걸레처럼 희생자들을 던져 버렸다. ••• 공수부대는 그들의 작전명령이 그러했듯 '화려한 휴가'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59쪽)
"수창초등학교 앞에서는 시위 군중속에서 잡힌 청년을 발가벗기고 전봇대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는, 여러 시민들이 보는 가운데서 공수대원 여럿이서 곤봉으로 난타질 했다. 처음에는 비명이 들리더니 피곤죽이 되어 버린 청년은 축 늘어져 버렸다."(60쪽)
"공수부대는 화염방사기로 20여 미터나 나가는 불길을 뿜어댔으며, 시위대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불에 타 죽었다."(81쪽)
광주시를 뒤덮은 당시의 유언비어
위 「넘어 넘어」의 표현과 당시 광주시에 범람했던 유언비들은 맥을 같이 합니다(증5, 6). 아래 유언비어 내용들은 말 그대로 유언비어로 처음부터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계엄군과 광주시민을 이간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구성한 표현들입니다.
•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에 와서 여자고 남자고 닥치는 대로 밟아 죽이고 있다.
• 공수대원이 이화여대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3명의 팬티와 브라자까지 모두 찢어내고 구두 발로 엉덩이를 찬 후 대검으로 등을 찔러 죽였다.
• 공수대원이 광주 수창초등학교 앞 전봇대에 산사람을 거꾸로 매달았다.
• 5월 18일에 40명의 시위 학생이 죽어 금남로가 피바다가 됐다.
• 공수대원들이 젊은 놈들은 모조리 죽여 버리고 광주 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개 몇 마리 잡았느냐고 농담을 한다.
• 계엄군이 출동해서 장갑차로 사람을 깔아 죽였다.
• 김대중을 잡아 죽이고, 전라도 사람을 몰살한단다.
• 공수부대들이 호박을 찌르듯이 닥치는 대로 찔러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시체들을 트럭에 던지 고있다.
• 여학생들이 발가벗긴 채로 피를 흘리며 트럭에 실려갔다.
• 삼립빵 트럭이 시체를 실으려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 부녀자의 국부를 찌르고 유방을 칼로 도려내니 참을 수 없다.
지금 이 나라의 운명을 재촉하는 반역의 신부 조직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정의구현사제단'이고, 다른 하나는 주교회의라는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입니다. 광주에 끔찍한 유언비어들을 제작해 퍼트린 조직은 북괴 정치공작원들과 '정의평화'로 위장한 천주교 신부 조직이었습니다. 종교 신분의 공신력을 악용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들이 앞장 선 증거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책의 조금 뒤에 소개되는 「찢어진 깃폭」입니다. 이 「찢어진 깃폭」은 가히 광주 유언비어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유언비어로 쓴 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량적으로도 「5•18분석 최종보고서」의 부록으로 21개 면을 차지할 정도인데다 그 내용이 모두 지어낸 창작물이니 가히 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유언비어 단편소설' 역시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광주사태 종결 1주일 후인 1980년 6월 5일 일본에서 '일본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천주교 신부들이 광주의 유언비어를 총 지휘하여 제작하고 확산하는 반역의 앞잡이 역할을 담당한 것입니다.
둘째, 이런 유언비어를 뒷받침하기 위해 광주 신부들은 얼굴이 으깨진 사진 15개를 컬러사진첩으로 여러 쇄에 걸쳐 제작하여 유포시켜 오고 있습니다. 이들 사진과 「찢어진 깃폭」을 읽으면 누구나 공수부대가 그들의 표현대로 "귀축과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고 믿을 것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 대학가가 이 「찢어진 깃폭」으로 도배되어 '민주화폭동'의 에너지를 축적했던 것입니다.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1987년 9월 「5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라는 제목의 컬러사진첩 발행을 통해 15개의 으깨진 얼굴의 컬러사진을 게재했고, 글자 메시지를 통해서는 이런 만행을 저지른 계엄군 및 당시 국가를 용서하지 말자고 호소하였습니다. 이어서 북한이 응수했습니다. 1990년 5월 18일, '한민전 평양대표부'가 「아! 광주여!」라는 제목의 컬러사진첩을 냈습니다. 이 두개의 사진첩에 들어있는 15개 사진들은 똑같습니다. 북한이 발간한 사진첩에는 통일노래의 가사가 변조돼 있습니다. 광주폭동이 적화통일을 위한 혁명이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신부들이 북한과 공모 공동하고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증거인 것입니다.
처참한 사진들은 대구폭동이나 제주 4•3사건에서 빨치산들이 저지른 만행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들이 너무 처참해서 보는 것조차 혐오스럽습니다. 한국군은 별나라에서 온 청년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들들입니다. 우리의 자식들은 이렇게 악랄한 형태로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이런 시체들은 계엄군의 총에 맞은 시체가 아니라 저들이 모략용 사진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짓이겨진 주검들입니다. 사람을 잔인한 모습으로 살해해놓고 이를 이웃사람들에게 보여주는 DNA는 오직 빨갱이들에게만 특허돼 있습니다.
이런 사진들과 함께 유언비어들이 나돌면서 광주 시민들을 격앙시켰던 것입니다. 정의평화를 앞에 내건 광주신부들이 북한의 정치공작원들과 공동하여 만든 후 유포시킨 것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천주교정의평화워원회'는 지금도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사회적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국정원 및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규탄, 세월호법 즉시 추진, 주한미군 철수, 원전 반대, 국책사업 반대, 안보사업 반대, 쇠고기 파동 선동 등을 적극 주도해 왔습니다. 이 '천주교광주정의평화위원회'는 1995년 5월에도 「5월 광주」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시체 사진첩을 제작했습니다. 5•18을 이용한 국가파괴에 진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위의 황당한 유언비어들을 가득 담아낸 황석영의 「넘어 넘어」, 소준섭의 「광주백서」 그리고 저자불명의 「찢어진 깃폭」 등이 널리 읽히면서 '대한민국의 5•18역사'는 완전히 북괴에 부역하는 광주 사람들에 의해 가공된 모략물들로 가득 채워지게 된 것입니다. 불순하기 이를 데 없는 광주 사람들은 지금도 이 혐오스런 사진들을 자꾸만 인쇄해서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광주의 '5•18 체험학습장'은 오늘도 광주의 어린이들에 이런 유언비어들과 각종 사진, 영상물들을 가지고 국가를 증오케 하는 반-대한민국 정신을 길러주고 있습니다.
첫댓글 장로님도 이제 바알과 아세라의 거짓 선지자 노릇 그만 하시는 것이 어때요?
성도들은 이 땅의 음녀와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바벨론의 금잔에 담긴 포도주에 참여하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는 말씀을 들어 본 적은 있습니까?
바벨론의 우상의 거짓 영이 님의 영혼을 잠식했다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돌이켜 회개 하셔야 살 수 있습니다.
거기서 빨리 도망치세요!
장로님, 어지럽고 혼란하고 불법이 가득한 시대에는 우리 주님을 향한 사랑과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충만히 채워야 만이 이러한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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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께서 다신 멘트에는 아직 견해가 달라서 의견은 다를지라도 저에 대한 장로님의 사랑이 절절히 배어 있음에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간질 하는 사탄은 우리 사이에 상반된 정보를 주므로 서로를 미워하고 정죄하고 비판하고 불신케 하나 우리가 주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간직하기만 하면 이 모든 사탄의 이간질에서 능히 놓임받아 승리할 줄 믿습니다
수정바다 장로님 사랑합니다 다시 말하노니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저같은 죄인을 사랑했던 그 사랑이 너무
@예수님은 내임금님 크고 놀라운데 이제는 저도 주님의 형제 자매를 위해 목숨버려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봅니다
장로님 제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해도 장로님같은 주의 백성과 한국교회를 위해 목숨버려 사랑하길 원합니다 똥물 장로로서 진실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샬롬
@예수님은 내임금님 바벨론의 금잔의 포도주에 취해 비틀거리는 장로님의 영혼을 봅니다.
거기에 참여하지 말고 빨리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1980년 8월 서울 명동성당 앞에 전시되었던 사진과 같습니다.
그 때에는 사진 크기가 A3내지는 A4사이즈로 전시되었습니다.
5.18광주 사태에서 발생한 사진들이라고 하여 적지않니 놀랬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보아도 혐오 스러워 두번 반복하여 볼 수 없군요.
저 사진은 1969년 흑산도 무장공비 사건때 우리 공수부대원들이 죽인 무장공비들의 사진입니다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광주 광천동 터미날에 다 가 저 사진 뿐만 아니라 열 다섯 명의 죽은 시체 사진을 나란히 가지런히 죽 이어서 전시해 놓으니 어느 살아있는 전라도 사람치고 원통함과 울분이 터져나오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계엄군이 광주에서 자행한 것이 아닌 1969년도에 흑산도에서 일어난 사진임을 밝히는데는 삼십년이 넘어서서 얄게 된 겁니다 샬롬
@예수님은 내임금님 호국단, 선무대 작품일 것이다!에 투표합니다.
윗글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의 운명을 재촉하는 반역의 신부 조직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정의구현사제단'이고, 다른 하나는 주교회의라는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입니다. 광주에 끔찍한 유언비어들을 제작해 퍼트린 조직은 북괴 정치공작원들과 '정의평화'로 위장한 천주교 신부 조직이었습니다. 종교 신분의 공신력을 악용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들이 앞장 선 증거들이 있습니다."
왜?
천주교 신부들이 나서서 북괴정치공작원들과 협조하여 해괴한 짓거리를 할까요?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요한계시록 17:4
계시록에 나오는 자주빛과 붉은 빛 옷을 여자가 천주교일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위하여 그 짓거리를 천주교 예수회가 자행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광주사건을 국내 사건으로 보지 마시고 땅을 망하게 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인 세계단일 정부의 "국가 멸망 시키기" 아젠다의 일환으로 파악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천주교의 예수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문재인씨도 예수회와 관계 있으리라 봅니다
@예수님은 내임금님
제 생각도 같읍니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요한계시록 17:4-5
@보혈의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요한계시록 17:6
@예수님은 내임금님 피의 인명 제사를 누가 바치고 있는지를 보시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여수 순천 민간인 학살 사건,
제주 민간인 학살 사건,
10.26암살사건과 인혁당 사건,
광주 시민 학살 사건,
천안함 장병 수장 사건,
세월호 학생 수장 사건......
이 글의 전제가 황석영이 쓴 글이 아니라는 전제로 마치 북한이 만들어낸 글이라는 허위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신동아에 자백했다고요? 허허
http://m.pressian.com/m/m_article/?no=65643#08gq
황석영이 사실을 조사해서 쓴 다큐멘터리 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해명글을 조만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ㅡ에스더 장님의 댓글ㅡ
광주사태가 민주화로 둔갑하도록...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바람잡이 역할을 했군요.
이렇게
선동선전 유언비어가 광주사태의 사실처럼 위장보도되었는데도...
사실상 그 곳에 살고 있던 저를 포함한 광주시민들은 외부와 외신보도가 어떻게 다루어 지고 있는지 잘 파악하지 못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 광주에 살고 있던 저와 제 학교 친구들과 제친척들중에도....
광주사태 당시에
광주에 살았던 제 주변의 어느 누구도...
광주사태 시위에 참여하거나 ...
군인들에게 희생당했거나...
죽은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인명 피해자가 없었습니다.
사실상
그 당시 광주 학생들과 광주시민들은 학교가 1달간 휴교해서 학비보상과 노동 시간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단지 광주사태 이후로...
뒷골목의 깡패 불량배들과 양동시장 주변의 복개천에 거주하던 거지들이 잠시 사라진 것입니다.
망월동에 묘지를 만들면서 광주사태 시체팔이로 국민들의 마음을 분개하도록 유도한 것 입니다.
@예수님은 내임금님 갈 수록 강팍해 지는 똥장로님~!
그들이 백성의 피를 짜내기 위해서 폭동으로 조작을 하고
앉아 쏴 자세로 조준 사격을 가해 수 많은 인명이 죽고 무고한 피가 흘린 것을 부정하고 싶으세요?
광주 학살 사건은 바알신에게 바친 인신제사입니다.
미친 년
저한테 데리고 오세요 귀싸데기를 때릴테니
장인댁에 대학생들이 계엄군 피해 들어온 것을 과외선생이라고 보호해주었는데
당시에 몽둥이에 두들겨 맞는 대학생들이 부지기수였소
@봄날5
정확한 날짜가 중요합니다 1980년 5 월 며칠 인가요?
@예수님은 내임금님 그것보다 에스더 장이 누구인지 실명부터 밝히세요
아니면 출처라도...
@예수님은 내임금님 충장로 양장점 남편은 충장로에 유일한 무등맨션 아파트 내에서 날아온 유탄에 머리를 맞아 절명했구요
이런 말도 안되는 댓글 퍼나르는 저의가 뭡니까
개또라이도 아니고..
@봄날5 감사합니다 언제 입니까? 날짜가 참으로 중요한 핵심 포인트입니다
임산부 최미애씨를 죽인 것도 계엄군이 아니란 증언이 나왔습니다 북괴군이 계엄군 복장을 했는데 장발이기에 알아본 겁니다
@예수님은 내임금님 1980년 5월 18일 광천동 터미널의 거짓 시신 사진 사건과 그것에 걸맞는 거짓 유언비어가 광주사건의 핵심 키워드 중에 하나 입니다
말세지말이 되면 마귀 사단들의 발악이 득시글 댈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읍니다.
어디에서는 개 이야기도 나옵디다. 개는 짖는게 습관이지요. 이유는 개만이 알아요. 그러하니....
개가 짖으면 그냥 지나치면 돼요. 개짖는것을 시비하면 개와 사람의 싸움이 되고요.... 사람이 손해예요.
상아래 개도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네 믿음이 크도다 내가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고 대한민국을 회복하리라 우리 주님 개에게 말씀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