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2일, 대련에서의 둘 째날이 밝았다. 전날 추위에 혼이 빠졌던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밤새 드나들었을 기차의 기적소리도 단잠을 깨우진 못했나 보다.
13층 객실 창 밖으로 역 플랫홈에 정차한 객차의 긴 행렬과 함게 동토의 땅에서 출근길에 나선 대련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찬다. 허름한 역두 주변건물 너머로 타워크레인 비슷한 철탑들이 보이고 이에 포개져 어젯밤에 미처 보지 못한 바다가 드디어 자태를 보인다. 대련의 겨울바다는 이상스레 근엄한 풍경으로 내게 다가온다.
3성급 호텔인 일월담 호텔의 조식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세계화완 거리가 먼 중국식 일색의 중하류식당이다. 별로 위생적이지도 않고 향료와 향채류가 입맛을 떨군다. 이제껏의 어느 중국 3성 호텔 식사보다 못한 편이다. 우범지대를 연상시키는 역두 골목길의 위치와 더불어 아침 식사가 이 호텔의 가장 큰 문제점인 듯하다. 그런대로 무난한 객실과 유명하다는 5층 빠 ‘대동강’의 명성에 걸맞는 리모델링이 시급하다고 봐야 할 듯---.
9시 정각 호텔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겨울 아침의 생기가 동토를 깨우고 있는 대련 시가를 벗어나 금석탄 지구로 향했다. 아직도 전차가 다니는 대련 도심에서 신구형의 서로 다른 모델을 보는 건 퍽 이색적 체험이었다.
시 외곽의 신도시를 지나 고구려 산성이 위치한 大黑山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도로를 약 50분여를 달리니 금석탄 관광지구 안내판이 보인다.
신도시 초입에서 승용차와 소형버스의 충돌현장을 목격한 직후라 모두를 표정들이 떨떠름하다. 차량파손 상태로 보아 승용차 조수석 탑승자는 거의 사망했을 것 같다.
좌회전 신호 끊어지고도 3~4대는 기본으로 지나가는 중국식 운전법이 못내 조마조마하더니---. 아무리 올림픽이라 뭐다 해서 국가적 계도를 한다지만 문화는 일조일석에 이뤄지는 게 아님을 다시 한번 절감케 한다.
요동반도 동쪽, 그러니까 황해안에 위치한 金石灘 지역은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신도시 개발구를 끼고 있는 곳으로, 여름 피서 관광지로 유명한 황금해안의 주가를 디즈니랜드를 유치해 배가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가히 중국 대륙과 중국인들의 무서운 저력이 새록새록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우선 우리는 세계적 저명인사들과 풍물,사건들을 밀랍인형을 비롯한 각종 자료로 표구,전시한 밀랍인형관과 금석탄 해역의 기암괴석을 전시한 지질박물관, 그리고 모택동의 생애 관련 자료와 기념 뱃지를 전시한 모택동 주석 像章陣烈館 등을 거쳐 겨울 바닷바람이 예외없이 뼛속을 파고드는 황금해안에서 사진을 찍은 뒤 서둘러 식당으로 내달았다.
점심을 든 한식당은 신도시 중심가에 위치한 곳으로 한국인 여주인의 깔끔한 외모만큼이나 음식도 훌륭하고 시설도 좋아서 어제 공항 부근의 한식당과 비교되었다. 아까 모택동 진열관에서 뚜껑에 모택동이 그려진 68위안짜리 태엽시계를 40위안에 깍아 산 나는 아무래도 바가지를 선 것 같아 식사 중에도 자꾸 포켓에 손이 갔지만, 체코 여행시 산 소련제 태엽시계를 잃어버린 아들녀석에게 줄 선물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점심식사 후 우리는 대흑산에 위치한 고구려 천리장성의 최남단 발원지 卑沙城 등정을 향해 버스에 올랐다. 비사성까진 걸어서 약 40분인데, 바깥 날씨가 드세니 승합차를 이용할 사람은 인당 30위안씩 내란다. S선생이 일단 걸어가지고 사인을 보내기에 운동도 할 겸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성 아래 주차장에서 하차해 보니, 산자락이라 그런 지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일행이 승합차로 먼저 떠나고 덩그라니 5명의 사내만이 남았는데 다들 표정이 누군가 승합차 타고 가자고 먼저 말을 꺼내면 동조할 기세다. 이때 가이드가 “오늘 같은 날 걸어서 가면 얼어죽기 딱 알맞다” 돈 때문이라면 자기가 낼테니 승합차 타고 가잔다. 우리 5명은 진작 그럴거지 하며 일시에 차속으로 줄행랑쳤다.
비사성 정상엔 點將臺라 이름한 망루(지휘소)가 있었다. 산 정상이라 바람은 산 아래 주차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맹렬했다. 찬찬히 이곳에서 고구려인의 옛 기상과 천리장성 축성을 감독한 연개소문의 사적을 기리며 성의 구조를 분석해 보리라던 계획은 일순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체감기온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산바람은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2-3초의 간격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손을 시리게 했고, 그 2-3초의 시간을 견디기엔 너무 고통스러운 모델들의 일그러진 표정엔 광기마저 서려 있었다. 광풍이 몰아치는 험한 산성 아래의 돌산 바위 더미를 내려다 보며 이런 겨울에 여기를 공격해 오는 미친 놈은 아무도 없었을 거라며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떡여 댔다. 약간 바람이 수그러진 틈에 점장대 아랫 쪽에 위치한 천년 사찰 석고사를 잠시 구경한 우리는 서둘러 승합차에 올라 하산길을 재촉했다. 석고사에선, 경내 마당에 위치한 여러 개의 석불상과 절에서 키우고 있는, 사나운 사자 얼굴을 한 기묘한 형상의 개가 눈길을 끌었으나 조용하고 찬찬하게 경배할 시간을 가질 수 없어 아쉬웠다.
이태전, 겨울철 알래스카의 추위를 경험한 나로선, 그보다도 몇 갑절은 더 혹독한 대흑산 정상의 맹추위에 할 말을 잊었다.
따뜻한 실내가 그리워진 우리는 대련의 현대사를 장르와 문물별로 정리한 현대박물관에서 2시간여를 보낸 후, 짝퉁 잡화점과 발마사지 업소를 거쳐 딤섬 요리로 저녁식사를 들었다.
50도 넘는 고량주와 갖가지 딤섬 및 중화요리로 거나해진 틈에도 내 눈은 아까 짝퉁 쇼핑점에서 구입한 5만원짜리 이태리제 페딘 가방으로 쏠린다. 대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줄 선물인데, 딸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가이드에게 10위안 씩의 성금을 내고 대련의 밤거리를 구석구석 누벼보았다. 북풍 한설 몰아치는 거리를 직접 걷기는 자살행위라, 대련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버스투어를 택한 것이다. 돛단배가 멋있게 포진한 로터리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야경 투어는 대련의 메인로드인 인민대로 주변의 최중심 번화가(5성급 호텔 샹그릴라와 프라마 호텔이 들어선)를 거쳐, 중산광장, 인민광장, 성해광장을 순환해 호텔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되었다. 시청사와 법원,공안국이 들어선 인민광장의 휘황찬란한 야간조명과 중산광장에서 인민광장에 이르는 중산로 주변의 야광 수목들이 뻗어가는 중국의 위상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는 듯했다. 특히 야광등이 여러개 포개져 있는 소위 아카시아등이란 게 이색적이었다. 별 볼일 없이 끝나가는 2박3일의 대련여정에 별 볼일 있는 단서를 붙여준 야경 투어였다.
한국 거류민과 관광객이 맣은 도시라 그런지, 객실에서 한국 TV(KBS, MBC, SBS)를 수신 시청할 수 있어 한국보다 1시간 이른 시각(한국과 1시간 시차)에 [조강지처 클럽]. [황금신부],[겨울새] 등 한국 드라마들을 닥치는 대로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몸서리치는 호텔조식을 마친 우리는 20세기 초 러시아인이 건설한 러시아거리에서 이색적 풍광의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정시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국적기(OZ302)가 우리를 맞았다. 정확하게 13시 10분, 넓이뛰기 선수가 발판을 구르듯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는 비행기 창밖으로 동토의 땅, 대련이 아쉬운 듯 눈물짓고 있었다.
첫댓글 대련에서 2박3일, 저렴해서 좋네요... 넘 추워서...ㅎ
진정 추워보이네요...할 말이 없음 ㅋㅋㅋ
중국의 해변도시의 추위는 우리들의 추위와는 넘 달라요..뼈속까지 얼어붙는듯한 냉기.....함 느껴보도록 하까요?ㅋㅋㅋ
알래스카 보다도 더 추운곳이라면 궁굼하기도 하네요. 하지만 추운건 딱 질색이라 겁부터 나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