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은 소인이 지금의 직장에서(KTG) 약 3년넘게 근무한 곳이어서 무척 반갑게 여기는 대구에서 멀지않은 고장입니다. 특히 가을에 있는 화왕산 갈대제는 2번 갔다왔는데 창녕사람뿐만아니라 전국의 산악회원들이 즐겨찾는 가을 산행축제입니다.그런 의미에서 다른 지면에서 올린 '창녕기행'이라는 제목의 다소 긴 여행문을 부끄럽게도 회원님들에게 한번 더 올립니다. 이 가을에 가볼만한 곳을 다시 소개합니다.
"우포늪 논고동 무침에 뽕술은 익어가고"
-창녕기행-
창녕땅을 여행할 때는 답사권이 달성지역인 도동서원을 우리는 항상 먼저 들른다. 현풍시내 새로 난 도로 중간쯤에서 우회전하여 낙동강과 함께 나란히 농로를 따라 한참 달린다. 대구 근교에서 조용하고 운치있는 길중 하나이고 또 이 도동서원은 소수서원,도산서원,병산서원,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중에 하나에 속하는 서원이기 때문이다.
끊어질듯한 길을 계속 따라가다보면 야트막한 고개가 나오는데 이 고개가 다람재고개이다. 이름이 참 특이한데 언뜻 다람쥐가 많이 지나다니는데 다람쥐가 많다고 해서 지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나라는 지명이 특이한 곳이 많다.우리가 가는곳만 해도 도동서원을 지나면 나오는 '까마귀의 혀'라는 뜻인 오설리(烏舌里)라는 마을과,화왕산고개 거의 정상에 있는 환장고개라든가,저지대에 속해 큰 홍수가 나면 해마다 물난리를 겪는 창녕군의 억만리와 진창리라는 곳등이 그러한 예이다. 실제로 엉망진창이라는 단어도 홍수후의 아수라장의 마을모습을 본따서 지은 것은 아닐까.
대니산 다복솔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서면 낙동강 약간 위쪽에 위천이 보인다. 이 정취어린 강변이 위천공단 조성문제로 대구시민과 부산시민이 날카롭게 대립해 있는 곳이다.강건너로 감자생산으로 유명한 고령땅 개진이 멀리 보이고 바로 아래로 도동서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동서원은 조선유학의 대가 환훤당 김굉필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김굉필은 김종직과 조광조를 잇는 조선 사림파의 적자(適子)이다. 조의제문에 연루된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물론 나중에 그의 제자 조광조에 의하여 명예회복되었고 그를 기리기위해 건립된 건물이 바로 이 서원이다.
道가 東쪽(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학문의 정통성을 자부하기에 걸맞는 이름이다. 원래 정문은 수월루가 있는 환주문인데 보통때는 잠겨져 있어 옆쪽 전사(관리사)로 해서 들어가야 한다. 중정당에서 보면 수월루가 보이고 그뒤로 은행나무가 있고 그 뒤를 낙동강은 소리없이 흘러간다.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에서 하회강물을 보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니까 도동서원은 일직선상의 중심선축상에 주요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그 기능에 따라 수월루,환주문,정료대,서재,동재 등 진입공간,교육공간,제향공간,부대시설,담장등으로 공간이 분화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도동서원은 가을 그것도 늦은 가을에 오면 그 풍광이 절정을 이룬다. 서원 건립 당시 그 기념으로 심어진 은행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버티기 어려운지 기둥에 부축을 한채 서원 주위를 은행잎으로 온통 노오랗게 물들이는 모습에 탐방객들은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도동리로 오는 길만큼이나 또한 구지면으로 해서 창녕군 이방면 우포늪 가는 길은 아름답다. 약 1억 4천만년전에 생성된 이 우포늪은 목포, 사지포, 쪽지벌, 우포 4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그 면적이 자그만치 70여만평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람사 습지이다.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등 3개면 13개 마을에 걸쳐 있는 이 늪은 광대한 만큼 진입하는 방향이 여러곳인데 대합면 주매리, 유어면 대대리, 이방면 장제리,우산리 코스가 일반적이다.
우포늪은 사계절에 따라, 진입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5월말이나 6월초쯤 뽕이 까맣게 열린 뽕나무가 늘어선 긴 늪둑길을 걸으면 어느새 검게 물들여진 우리의 입술에는 웃음이 나오고 잠수복 입은 아낙네의 긴 장대로 건져올려진 논고동 무침에 우리의 뽕술은 익어간다.
또한 초여름 위토평 마을앞 늪가에는 보라색 자운영꽃이 만발해 있는데 물위에 둥둥 떠있는 천연기념물 가시 연꽃은 줄곧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낙동강 지류인 토평천 유역에 위치한 이 우포늪에 여름 홍수후 물이 빠질 무렵 가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포플러 나무들은 수해(樹海)를 이루고 부들, 창포, 벗풀, 붕어마름등 수초들이 서로 뒤엉킨 그 사이로 생명 출산후 뻑뻑한 태반이 김을 내뿜고 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 내밀해있는 카오스적 세계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합일되는 이 세계를 헝가리 문예이론가이자 사상가인 게오르그 루카치는 소설의 형식을 규명하는 자리에서 총체성이 완벽하게 구현된 세계, 그리고 그 시대(고대)를 황금시대라 하였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그 별빛이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
- 게오르그 루카치,소설의 이론중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의 인간소외현상, 훼손된 가치속에서의 물질만능주의, 물화(物化)현상을 극복하고 자아와 세계, 현상과 본질,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합일을 꿈꾸는 즉 총체성의 회복이 우리 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자연환경의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자연생태기행으로 많은 방문객들이 이 우포늪을 찾아오고 또 겨울에는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으새가 저멀리서 자맥질을 하는 가운데 탐조객들은 철새떼처럼 날아와 힘찬 날개짓으로 비상을 꿈꾼다.
천직인 교직을 버리고 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창녕환경운동연합 회장 배종혁씨, 우포늪 방문객의 안내와 홍보 그리고 모니터링으로 온종일 우포늪을 지키고 있는 그의 부인,그리고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뜻있는 지역주민등 이러한 환경지킴이들이 있기에 자연은 인간과 분열하지 않고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곧 세상에 나오게 될 우포늪 안내책자와 더불어 저녁무렵 울려퍼지는 황소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이 우포늪의 감동은 점점 우리의 가슴에 메아리칠 것이다.
불꽃같은 봉우리의 기세로 지척에 흐르는 낙동강의 물기운을 다스려주기를 바라면서 불렀던 불뫼, 화왕산(火旺山)이 아까부터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화왕산과 맞닿아 있는 뒤쪽 관룡산 옥천저수지옆 식당에서 우리는 배를 채운다. 미리 주문한 송이백숙이다. 보통 백숙요리에는 밥을 넣는데 송이백숙에는 밥을 넣지 않는다. 아주 소량만 넣은 향긋한 송이향기와 그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다.
이 옥천지역은 송이버섯으로 유명한데 장마전후 나는 6월송이와 가을송이가 있다. 일본에서도 그 맛을 알아주어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한참 비쌀 때는 한근에 오십만원을 호가할 때도 있다. 보통 사람이면 먹기에 엄두도 못낼 가격이다.
그래도 이 시기에 맞추어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나는 송이버섯을 대접하기도 한다. 얇게 썰은 송이를 약한 불에 살짝 구워서 소고기와 함께 곁들여 먹는 그 맛은 아직도 나의 입안에 맴돈다. 그때 물고기들은 싱그런 물위로 자꾸만 튀어오르고 있었고 그때마다 옥천못물은 몸을 뒤척였다.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고풍스런 전통찻집, '다천산방'이라는 곳에서 우전차로 향수에 잠시 젖는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대흥사터에서 발굴한 불상, 부도5기, 석조광배등 보물이 옮겨져 있는 청련사 올라가는 길안쪽에 있는 이 전통찻집은 가끔씩 목공예도 전시하고 있는데 나그네의 시심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세상에 나온 후로 답사여행이 부쩍 늘었는데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답사전문가가 안내하고 그 뒤를 답사객들이 우러러 몰려 다니는 그런 여행으로는 이처럼 느긋한 여행을 즐길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여행에 대하여 뜻이 통하는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오롯이 자가용으로 자료 몇장 달랑 들고 길 나서기를 좋아한다.직접 운전해서 초행길을 물어가는 재미와 관광버스가 못 지 나가는 그런 여정을, 항상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달릴 때 여행의 감동은 배가된다. 이는 문화유적답사, 생태환경기행, 맛기행, 등산, 오지여행을 모두 아우러는 여행이다.
옥천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우리는 신라 진평왕 5년에 창건한 절집인 관룡사를 찾는다. 이 고즈넉한 산사는 원효대사가 제자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파한 신라8대 사찰의 하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웅전, 약사전, 석조여래좌상, 약서전 3층석탑, 원음각등 9점의 지정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절옆에는 고려 공민왕때 개혁정치를 주도한 신돈이 출가한 절터, 옥천사 폐사지가 있기도 하다. 지금 제대로 남아있는 유적은 없지만 동북방향인 옥천계곡 중턱에 웬 갓바위가 보인다. 팔공산 갓바위가 아니라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이다.
석굴암의 본존과 같은 통일 신라초기의 작품으로 계곡물소리에 항상 눈과 귀를 씻으며 앉아 있는 2m 조금 못되는 높이의 돌부처이다. 개인적으로 무슨 소원을 빌때는 팔공산 갓바위보다 영험한 인적이 드문 이 돌부처를 찾아온다.
청룡암을 거쳐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관룡산 정상에 서면 지나온 길은 아득하고 그 뒤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10리길 능선은 진달래꽃길이다. 지금쯤 만개해 있을 이 꽃길을 사뿐히 즈려 밟고 화왕산에 이르면 키높이만한 억새밭이다.
봄, 가을 등산시즌 화왕산을 찾는 외지인들은 실망한다.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인파에 지쳐 짜증부터 낸다. 주로 창녕여중에서 등산기점을 잡아 자하계곡을 거쳐 환장고개를 지나고 화왕산 정상을 오르는데 가장 힘들고 별 재미있는 등산로가 못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길, 관룡산으로 등산해서 화왕산 정상을 거쳐 목마산성쪽으로 하산하는 우리는 마주치는 그들을 측은해한다.
여행중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명소나 비경을 발견했을 때 너무나 황홀하여 다음 또다시 오고싶고 주위의 사람에게도 알리고싶은 마음과 이런 장소가 자꾸 알려져 방문객이 많아져 그런 경치가 없어지면 어쩔까싶어 차라리 안 알려졌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때가 가끔 있다. 실제로 좋았던 처음 그 추억의 여정을 더듬어 먼훗날 다시 찾았을 때 예전과 같지 않은 쓸쓸한 그 광경에 실망하는 경험은 모두가 있을 것이다.
비사벌의 얼이 숨쉬는 문화의 고장, 창녕읍에 우리는 도착한 것이다. 만옥정공원에는 가야국의 일부였던 비화가야, 지금의 창녕땅을 신라 진흥왕이 정복하고 그 기념으로 세운 진흥왕 척경비가 있다. 나라 밖으로는 만주에 있는 광개토왕비가 가장 오래이나 나라안으로는 이 비가 가장 오래된 것중 하나이다. 높이 1.8m 정도되는 척경비는 내용의 일부만이 판독가능할 정도이다.
그리고 국보 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술정리 동3층석탑은 경주의 석가탑에 버금가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석탑으로 직선미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옆에 서3층석탑도 있는데 상층기단의 각 면석의 조각에 곡선의 아름다운 인상이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비사벌이 신라에 병합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형성해갔으면 문화가 더 융성하여 지금의 경주처럼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을 것이다. 그래서 창녕을 제2의 경주라 부르기도 한다.
탑금당 치성문기비, 창녕석빙고, 송현동석불좌상, 송현동 고분군을 둘러보고난 후 영산면의 연지못, 만년교를 지나는 우리는 이 땅의 널부러진 문화재가 많은 문화재 전문가나 답사가에 의해 좀더 널리 조명이 되기를 기대한다.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노시인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에서처럼,
....(중략)/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추억의 한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탑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돌멩이 하나, 기왓장 하나도 생명이 부여되고 의미가 주어지면 문화가 될 것이고 金이 되면 누구의 말처럼 우리나라는 국토박물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부곡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는 것으로 창녕기행을 마친다. 사실 일요일, 공휴일 대구 근교의 온천을 찾으면 물꼭지 하나 잡기 힘들고 비싼데 반해 부곡온천은 조용히 온천을 즐길수 있다.
IMF 이후 목욕료가 많이 싸져 삼천원 이하면 부곡온천 호텔급 사우나에서도 충분히 온천욕을 할수 있다. 나는 로얄호텔 사우나를 즐겨 찾는데 실내가 깨끗하고 물이 매끄럽다. 그 옆 파크호텔 사우나는 이천원으로도 목욕이 가능한데 사우나 티켓구입시 반드시 지방으로 끊어달라고 해야한다. 지방사람은 이천원, 외지사람은 삼천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인인지 외지인인지 구별을 못하니까 확인은 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