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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mental데이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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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이드림♪ 스크랩 NewAge (뉴에이지) 대표적 뮤지션
54lover 추천 0 조회 76 08.04.06 03: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유키구라모토 (Yuhki Kuramoto)-

1951년 사이타마현 우라와시에서 태어난 유키 구라모토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학창시절에는 라흐마니노프와 그리그 등의 피아노 협주곡에 심취하여, 아마추어 교향악단에서 독주자로 활동하는 등 피아니스트로서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학업에도 열중하여 일본의 명문 도쿄공업대학교 이공대에 진학, 응용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음악가와 학자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프로뮤지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피아노 연주는 물론 클래식 작곡과 편곡 그리고 팝음악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와 학습을 하였다. 이후 프로 뮤지션으로서 클래식에서 대중음악, 가요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명음악가, 탤런트와의 공연, 레코딩 활동을 통해 경력을 쌓아 오늘에 이르렀다. 구라모토는 피아노 솔로는 물론, 오케스트라 또는 스트링 앙상블과 협연할 때도 화법이나 대위법이 완벽에 가깝다. 지난 1991년 8월에 발매된 제 7집 앨범 '리파인먼트(Refinement)'에서는 영국의 세계적인 교향악단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와도 조인트 레코딩을 하였다. 당시 그가 작곡한 곡들이 매우 뛰어나서 명 지휘자들도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지고 있다. 구라모토의 이름은 홍콩을 경유하여 동남아시아에도 파급되고 있으며, 타입은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일본의 리차드 클라이더만'이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블 텔레비전이나 레이저 디스크 등에서의 영상음악, 나아가서는 일본항공 등 항공회사의 '인 플라이트 뮤직(In-Flight Music)'으로서도 각광받는 등, 그의 명성은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내한 공연 및 한국 뮤지션과의 조인트 레코딩 등이 기획단계에 있다는 소식도 들려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유키구라모토 [본명: 기타노 마꼬토, 영문명: Minoru Kitano]는 1951년 9월 10일 일본의 사이타미현 우라와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학창시절에는 라흐마니노프와 그리그등의 피아노 협주곡 에 심취하여, 아마추어 교향악단에서 독주자로 활동하는 등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그러나 그가 일본의 명문 도쿄공 업대학 출신이며 응용물리학 석사라는 사실은 다소 의외이다. 석사학 위를 받은 후 음악가와 학자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음악가의 길을 택했고, 피아노 연주는 물론 클래식 작곡과 편곡 그리고 팝 음악 연구에 몰두했다. 전문음악가로서 클래식, 대중음악, 가요에 이르기까지 그의 폭넓은 관심과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특히 구라모토는 자신의 20-30대를 뒤돌아보면서 현재의 음악적 성공을 가능케 한 중요한 요소 두 가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우선 20대에 주로 연주면에서 피아노에 관련된 거의 모든 장르, 즉 동요에서부터 클래식, 재즈, 샹송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일들을 경험하여 폭넓은 음악성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 훗날의 음악활동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당시 가곡 / 합창곡 작곡 콩쿠르에 세번 입상한 것도, 그가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30대에는 편곡작업이 늘어나 다양한 음악의 편곡을 담당하면서 좀더 깊이 자신의 음악관을 다듬어 나갈 수 있었던 점을 들고 있다. 대기만성이라고 할까? 구라모토는 첫 피아노 솔로앨범를 발표하였는데, 수록곡 중 '루이즈 호수(Lake Louise)'가 크게 히트하면서 데뷔에 성공하였다. 그는 '당시 발표된 앨범이 다행이도 후한 평가를 얻을 수 있었고, 이것은 그 후 오리지널 작품 집을 연이어 발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기품이 넘치는 부드러운 멜로디의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곡들은 지극히 세련된 절 제와 감정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리리컬한 가운데서도 적절한 기복을 담고 있어서, 듣는 이들을 기분좋은 평온한 세계로 이끌어준다. 구라모토의 이름은 이미 홍콩을 경유하여 동남아시아에도 파급되고 있으며, 타입은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일본의 리차드 클레이더만', '동양의 조지윈스턴' 이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블 텔레비전이나 레이저 디스크 등에서의 영상음악 나아가서는 일본항공 등 항공회사의 '인 플라이트 뮤직(in-flight music)'으로서도 각광받는 등 그의 명성은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부드럽고 애절한 선율, 절제된 분위기, 서정적이면서도 단아한 연주로 국내 음반계에 돌풍을 몰고 온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는 다양한 악기 연주가 뒤섞이는 전자음들의 홍수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주는 어쿠스틱 피아노 음악으로 국내 음악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연주자입니다. 직접 작곡, 편곡한 곡으로 독특한 음악세계를 펼쳐온 구라모토는 TV 드라마, 영화 음악 작곡을 담당하며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에서 도 탄탄한 매니아층을 형성한 실력파 피아니스트입니다. 그의 음악 은, <카페라떼>, <한빛은행> 등의 CF, 라디오 배경음악으로 사용 되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져 있습니다.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은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육감적 애인이 퍼부어대는 키스 세례와 같은 직설법이 결코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남자 아이가 자신은 비를 맞으면서도 여자 아이에게 우산을 건네는 장면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순간 같은 간접화법의 은근한 매력이다. -류태형 (월간 객석)

☞ 스티브 바라캇 (Steve Barakatt) 

스티브 바라캇 (Steve Barakatt)은 1973년 5월 17에 캐나다 쾨벡주의 음악을 사랑하는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갓 네 살이었을 때 스티브는 음악에 매료되었고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그 후 10년 이상을 클래식 음악과 재즈에 이르는 음악 공부를 하였다. 열세살이었을 때 쾌백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솔로 협연을 하였으며 10대 때부터 작곡, 편곡 등에 재주를 보였다. 그는 새로운 음악적 기술을 배웠고 모든 음악 프로그래밍을 완벽하게 마스터하였다.1992년 그의 재능을 인정되어 일본 음악 기기 회사인 롤랜드(Roland) 가 그를 캘리포니아 아나헤임에서 열린 신상품 전시에 초대하였다.

1997년 스티브는 캐나다의 팝가수인 나타샤 세인트 피어(Natasha St-Pier)의 앨범과 스티브 자신이 작곡한 "Sans le savoir"가 캐나다 라디오 차트 탑5위까지 올랐으며 그의 뮤직 비디오도 캐나다 MTV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1997년 그는 캐나다 가수 Johanne Blouin에게 "C’est une promesse"과 아르헨티나 남자 가수 Guillermo Saldana를 위해 "En la arena"를 작곡해주었다.

홍콩에서도 많은 유명 가수들이 그에게 작곡의뢰를 했는데 1995년에는 Kelly Chen, Joyce Yau, Daniel Chan, Ray Chan 네명이 부른 "Mou Tian"을 작곡해 주었고, 1996에는 듀엣곡 "Song Of Stars"을 알란탐과 여명에게 선사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여명을 위해서 "Fell Leon" 앨범의 "Ni Shi Shui"라는 곡을 작곡해 주었다.

1999년에는 Yoko Oginome는 스티브 바라캇 작곡의 "We’ll Be Together"를 불렀는데 이 노래는 일본 NTV 네트웍 TVSHOW 인 "Shitteru Tsumori"의 메인 테마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스티브는 "Kaze To Kino Uta-Quebec 1608(바람과 나무의 노래 쾨벡 16088)을 작곡하였으며 이 노래는 일본 가수 Sincere가 불렀다. 최근 한국 KBS와 일본 NHK가 공동제작하였고 윤손하가 한국인 여가수로 등장하는 [もう一度キス]라는 드라마에, 200년 11월에 발매된 음반인 "A love affair"의 세 번째 트랙 'Nuit d'amour a paris'가 주제곡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콘서트를 가졌으며 2000년에는 일본에서 오끼나와에서 도쿄로 이어지는 전국 투어를 진행하였다. 한국에서는 최근 스티브 바라캇의 네 개의 앨범에서 곡들을 추린 베스트 앨범을 명음에서 선보인 바 있다.

☞ 조지 윈스턴 (George Winston) 

1949년 몬타나주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몬타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낸 조지 윈스턴은 플로이드 클레이머(Floyd Cramer), 더 벤쳐스(The Ventures)부커 티 앤 더 엠지스(Booker T&The MGs), 킹 커티스(King Curtis)등과 같은 팝 연주곡들에 심취하게 되었다. 레이 찰스(Ray Charles), 지미 리드(Jimmy Reed), 샘 쿡(Sam Cook)등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과도 친숙했던 그는 라디오 뉴스직전 30초동안 흘러나오는 짧은 연주곡들을 듣기 위해 하루종일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블루스와 록, R&B, 그리고 재즈에서 감명을 받은 조지 윈스턴은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르간과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1년, 전설적인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대가 토마스 팻츠 월러(Thomas' Fats' Waller)와 테디 윌슨(Teddy Wilson)의 레코드를 들은 후 어쿠스틱 피아노로전향했다. 그 시기에 그는 작곡과 편곡을 통해 팝 연주곡들을 자신만의 색채를 입혀 솔로 피아노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여 1972년, 그의 첫 앨범 ' Ballads and Blues '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WALLER의 위대함에 이를 수 없다는 좌절감에 1977년 잠시 연주활동을 중단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R&B 피아니스트 LONGHAIR의 1949년 앨범의 심플한 음악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후 다시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뛰어난 예술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레이블 Windham Hill을 통해 1980년에 ' Autumn '을 발표하며 그의 새로운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윈스턴은 '나의 앨범 및 순회공연 그리고 느릿한 하와이풍의 기타연주 레코딩등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이제까지 나을 이끌어주고 영향을 준 LONGHAIR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라고 말했다. 이 앨범은 Windham Hill레이블의 통산 12번째 앨범으로 당시에는 크게 호평을 받지 못했으나 이듬해 발매된 그의 계절연작 2번째 작품인 ' Winter into Spring '에서부터 서서히 재즈팬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다.

1982년 발매된 계절연작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인 ' December '를 발표하게 된다. 미국이 자랑하는 탁월한 사진작가 그렉 에드먼드의 설경이 아름답게 자켓에 담겨졌던 이 앨범은 캐롤집으로 기획된 작품이었다. 'December' 는 이듬해인 1983년 내내 미국의 주요 네트워크를 떠들석하게 했으며 뒤늦게 그의 진가를 발견한 음악지들은 그를 90년대의 피아니스트란 칭호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후 그는 계절연작의 마지막 작품인 ' Summer '를 발표하였고 계속해서 94년에 ' Forest ' 그리고 96년에 ' Linus & Lucy '를 발표하며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The Velveteen Rabbit', 'Sadako and The Thousand Paper Cranes','Pumpkin Circle', 'This is America, Charlie Brown'등의 영화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Montana에서의 뚜렷한 사계절이 윈스턴의 음악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의 앨범 'All the Seasons of George Winston'(1998)은 그의 15년간의 걸친 솔로 앨범들을 편집한 완성작이다.

최근에 조지 윈스턴은 대초원을 주제로한 앨범 ' Plains '를 발매하였고 R&B, 스트라이드 피아노 작품들의 앨범 등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 또한 라이브 공연에 몰두하며 R&B 재즈 피아니스트 헨리 버틀러와 고인이 된 뉴올리언즈 R&B 피아니스트 제임스 부커의 음악을 연구하고 있다. 기타 솔로 작품에 있어써도 댄싱캣음반사의 시리즈로 하와이언 슬랙키 명연주들의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

윈스턴은 말한다. "내 모든 음악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것이 내가 음악을 듣거나 연주할 때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모든 것의 저류이다. 하와이의 슬랙키(Slack key) 기타는 Montana의 봄을, James NBooker의 R&B 음악은 도로의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는 도시의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음악, 내가 생가가하는 모든 음악, 내가 라이브로 연주하거나 녹음하는 모든 음악은 내 마음속 계절의 소리이다." 라고.....

☞ 야니 (Yanni) 

뉴에이지계의 베토벤이라 불리워지는 Yanni(본명 : Yann Chryssomallis)는 신화의 나라인 그리스의 작은 도시인 칼라마타 출신인데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영향에 의해 그리스의 전통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며 성장하게 된다.

그 후 1973년에는 고국을 떠나 미국의 미니애폴리스로 이주 하게 되는데 그때 Yanni는 미네소 타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게된다. 뉴에이지 음악과 심리학, 이 둘은 상관관계가 있어 Yanni의 음악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뉴에이지가 심리를 음악으로 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대학에서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던 그는 1974년 신시사이저를 처음 접하고 무한한 매력을 느끼게되고 Yanni는 "CHAMELECON"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프로로 데뷔, 1984년이 되어서야 마이너 레이블에서 첫 솔로 앨범 "Optimystiqui"를 발매한다. 최초의 뉴에이지 앨범은 1986년의 "Key To Imagination" 팝적인 사운드의 멋진 융화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얻어내기에 충분했으며 뉴 에이지계에 야니란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켰다. 1987년에는 "Out of Silence"를 그리고 1988년에는 "Chamelen Days"를 그리고 90년에는 collection 형태의 앨범 "Reflections of Passion"을 다시 91년에는 첫번째 베스트 앨범인 "In Celebration of Life"가 발표하게 된다.

"Reflections of Passion"은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되었으며 빌보드의 Adult Alternative Chart에 47주동안 1위에 머무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 앨범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도 등장해 그의 앨범 중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1993년 그리이스의 아테네의 Herod Atticus Theatre 에서 녹음된 "Live at The Acropolis" 고향을 떠난 지 20여년만의 금의환향 고대 그리스 문화의 산실이었으며 토론의 광장이었던 유적지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에 연주장을 마련하고 로열 필하모닉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Live at The Acropolis" '아크로폴리스'라는 장소에 걸맞는 웅대한 스케일과 박진감을 더해주고 있다. 귀에 익은 "Reflections Of Passion"이 끝을 맺을 때 쯤이면 중간중간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로 곡을 소개하던 야니의 중간 멘트가 귓가를 맴돌며 '아크로폴리스'의 정경을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1997년 공연 준비 단계에서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타지마할','자금성'공연을 묶은 앨범 "Tribute", 제목에서 암시하듯 동양의 위대한 역사유산과 그 문화에 대한 헌정의 의미로 이 앨범을 구상하고 공연을 진행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앨범에서 Yanni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곡으로는 'Adagio in C Minor'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멜로디를 풍성하게 만들고 여전히 부담없는 멜로디가 사람을 이끈다. 그리고 열번째 곡인 'Nightingale' 얼핏 듣기에는 중국의 전통 리듬이 묻어나는 이 음악은 작고 귀여운 새가 눈앞에서 뛰어 노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Tribute" 앨범 이후 3년만인 2000년에 발표한 앨범 "If I could tell you", 그리고 2001년에 발표한 "The very best of Yanni"라는 앨범으로 항상 우리 곁에 있다.

Yanni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듯한 편안함과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케니 지 (Kenny G) 

섹소폰의 마술사', '섹소폰의 연금술사'. 10여년의 짧은 음악 활동으로 KENNY G는 이렇게 불리워 진다. 그는 감미로운 멜로디와 풍부하면서도 포근한 감성, 현대적인 연주 기법등으로 소프라노 색소폰 음악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92년 말에 발표한 [BREATHLESS]또한 그의 이러한 매력을 모두 담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지금의 KENNY G를 탄생시켰는지 색소폰에 담겨 있는 성공적인 이야기 상자를 풀어보기로 하자.

KENNY G는 1957년 워싱톤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케네스 고어릭(Kenneth Gorelick). KENNY G의 'G'는 본명에서 딴 이니셜인데, 1982년 첫 앨범을 발매하면서 친구들이 항상 그에게 "G-man"혹은 "G"라고 불렀기에 지금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KENNY G가 처음으로 색소폰을 불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던 10살 때인 1967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던 "에드 셜리반 쇼"를 보던 중 한 색소폰 연주자의 실제 연주를 본 후 어머니를 졸라 알토 색소폰을 구입한 때 부터이다. 청년기를 거치면서 감정을 잘 다듬는 음악을 표현하려고 많은 기회를 얻게 되는데, 시애틀의 "프랭클린 하이스쿨 재즈밴드"에 참여하면서 1974년엔 유럽순회연주를 한다. KENNY G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을 갖게 하는 행운이 17세에 오는데, 당시 시애틀에 순회 공연을 위해 온 흑인 음악의 거장 배리 화이트(Barry White)의 공연에 사흘간 게스트로 참가, 솔로연주를 하여 학교 밴드의 일원에 불과한 그에게 프로뮤지션이 되도록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KENNY G는 워싱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대학 재즈밴드에 합류하였는데, 감독관인 로이 커밍스 (Roy Cummings)는 그에게 찰피 파커, 존 콜트레인, 소니 롤린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색소폰 주자들의 음악을 듣게 하여 음악적인 재질을 갖게 하였다고 회고한다. KENNY는 또한 "Cold, Bolk & Together CC-BT"라는 흑인 펑크밴드에 가입, 소울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이 기간 중 자니 마티스, 새미 데이비스Jr., 스파이너스, 다이안 캐롤 등 리듬 앤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세션 활동에도 참여하게 된다.(1974년~1978년 사이) 대학 졸업 당시 서북부에 위치한 절친한 친구들의 펑크밴드 "Pleasure"멤버 하나가 제프 로버(Jeff Lober) 와의 연주를 취소했을 때 KENNY의 이름이 제프 로버의 관심을 끌게 되고, 둘은 의기 투합하여 전미 순회 공연을 하게 된다. 순회 공연이 끝날 때마다 KENNY에 대한 반응은 대단한 것이었고,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사의 사장 클리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눈에 띄어 첫 앨범 제작에 돌입하게 된다.

데뷔 앨범 [KENNY G]의 특징은 발라드 곡 를 포함하는 그 다양성에 있었다고 KENNY는 말한다.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신시사이저 연주곡 , 로 가볍고 흥겨운 비트가 가미된 현대적인 재즈 펑크의 독특한 매력을 연출해 주며, 그룹 이글즈의 발라드 곡을 리메이크한 에선 무드있는 편곡을 선보인다. 앨범 [KENNY G]는 빌보드 재즈차트 10위까지 올랐던 앨범으로 이후 가장 촉망받는 색소폰 연주자로 평가되었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다음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흑인 아티스트 카쉬프(Kashif)를 만나게 되어 두 번째 앨범 [G-FORCE]의 실질적인 프로듀스를 그가 담당하게 되었고, 3집인 [GRAVITY] 에서도 그와 함께 음반 작업을 같이 하기에 이른다. 2집 [G-FORCE]는 리듬 앤 블루스 앨범이라고 할 만큼 흑인 음악의 짙은 배색이 깔린 앨범이며, [GRAVITY]에서는 펑크/재즈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정제된 음악 구성을 보인다. 한편 수록곡 중 는 KENNY G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뉴욕을 활동 무대로 좁게 느낀 KENNY는 LA로 향한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과 휘트니 휴스톤의 명프로듀서인 나라다 마이클 월든과 프레스턴 글래스를 맞아 대망의 앨범 [DUOTONES]를 86년 중반에 발표한다. 어느 한편에 치중하지 않고 리듬 앤 블루스, 재즈, 전통과 진보, 분위기를 자아내는 악기 연주곡들과 보컬곡들이 적절히 융합되어 있다. 색소폰의 포근한 연주가 다른 악기들과 대비되면서 마치 수묵화를 감상할 때 느끼는 연주곡 , 여가수 샤데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곡 , 새로운 음의 영역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한 디지털 윈드 콘트롤러(Digital Wind Controller) 라는 일종의 신시사이저와 색소폰의 합주가 곡 전체에서 펼쳐지는 , 신낭만주의적 연주로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배어 있는 , 도시풍의 리듬 앤 블루스곡인 는 앨리스 폴의 세련된 보컬이 담긴 팝넘버이다. 첫 싱글인 가 평범한 인기를 거두었지만, 는 1987년 7월 11일자 싱글 차트 4위에 오르며 재즈 뮤지션이 아닌 팝스타로서 KENNY G의 인기를 상승시킨다. 또한, 앨범 또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4백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다. 또한, 가 싱글 차트 Top15에 기록되어 그칠 줄 모르는 인기를 얻고 본작은 빌보드 지에 의해 "Jazz Album Of The Decade"로 선정되었고, KENNY G 또한 80년대의 "Jazz Artist Of The Decade"로 선정되는 커다란 영광을 누리게 된다. 87년은 KENNY G의 인생을 바꿔놓은 어느 여인, 즉 지금의 부인이 된 린디(Lyndie)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그린 는 국내 팬들에게도 크게 어필하여 '영원한 KENNY G'로서의 위치를 국내 무대에도 다지게 한다. 이런 [DUOTONES]의 열풍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른 밀리언 셀러 앨범 [SILHOUETTE]가 발표된다. KENNY G의 작곡 실력의 탁월함이 엿보인 본작은 빌보드 앨범 차트 9위까지 랭크되어 3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고 있으며, 동명 타이틀 곡도 Top15에 장식하기에 이른다. 2, 3집에 비해 재즈적인 색채는 퇴조되었으나 [DUOTONES]와 맥락을 같이하는 현대적인 리듬 앤 블루스/팝 사운드를 멋지게 들려주고 있다.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CF사용곡 , 소울의 대가 스모키 로빈슨이 함께 한 , 파스텔 색조의 곡 ,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89년 8월 26일, 27일 그는 고향인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진 콘서트 실황을 담은 [LIVE]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 등이 라이브로 재구성되어 긴 호흡과 애드립으로 라이브의 명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또한 절친한 친구 사이인 마이클 볼튼이 듀엣으로 참여한 , 국내에서 유독 많은 사랑을 받은 등이 수록되어 KENNY G 본인도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지명할 만큼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후, 2년간의 휴식 기간 동안 [MONTAGE], [COLLECTION]등 2장의 비공식 편집 앨범이 발매되어 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을 결코 떠나지 않게 만들었고, 91년에는 영화 [다잉 영]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여 애절한 을 히트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4년 여만에 내놓은 정규 스튜디오 앨범 [BREATHLESS]는 숱한 화제속에 단시일내에 수퍼 베스트 셀러 앨범으로 등장하였다. 피보 브라이슨, 애론 네빌 등의 보컬 참여와 함께 특히, 는 동남아 지역에서 그의 팬들에 대한 인기에 감사의 답례로 특별히 만들어진 보너스 트랙이다. 이미 , , , 등이 각광을 받고 있으며, 끊임없는 KENNY G 신드롬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 앨범은 그러나 지나친(?) 대중적 성공으로 정통 재즈 연주인들과 재즈 매니아들로부터는 '케니지의 음악은 재즈가 아니다'며 배척받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1994년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크리스 마스 캐롤과 전통 민요 등을 리메이크한 앨범 [MIRACLES]를 발매해 처음으로 빌보드 팝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고, 1996년에도 베이비페이스와 토니 브랙스턴 등이 참여한 앨범 [THE MOMENT]를 발매해 연주곡 와 베이비페이스의 앨범에도 담긴 를 히트시켰다. 1997년엔 첫 공식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를 발매했고, 99년 7월에 리메이크 곡들로 채워진 새 앨범 [CLASSICS IN THE KEY OF G]에서는 , , , 등 시대를 풍미했던 명곡들을 다시 들을 수 있으며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발매된 [FAITH]는 [MIRACLES]에 이어 두번째 캐롤송으로 채워져 있다. KennyG 의 친필사인이 자켓에 프린트되어져 있으며 , , 등 1900년대의 마지막 성탄을 풍미하기에 손색없는 앨범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인기는 가히 독보적이다. 10여장에 달하는 음반들이 발매되어 거의 백만장에 육박하는 앨범 판매고와 더불어 수많은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방송 시그널로도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을 점령했던 KENNY G의 음악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만큼 독보적인 인기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냉철한 지성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KENNY G,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조차 맑고 깨끗한 사운드를 얻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색소폰으로 음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연주자 KENNY G, 우리는 그의 그칠 줄 모르는 마술의 세계에 언제나 빠져들기를 원한다. (참고) - 삼호출판사 / 섹소폰 연주곡집

☞ 케빈 컨 (Kevin Kern) 

리얼 뮤직의 아티스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연주자 중 한 명인 케빈 컨은, 이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노 발라드의 새 선두주자이다. 리얼 뮤직을 통해 발표된 석장의 최근 앨범은 리얼 뮤직이 추구하는 음악적 노선을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으며, 또한 리얼 뮤직 팬들 뿐만 아니라 피아노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 모두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연주자이다. 섬세한 터치와 감성어린 발라드,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친근하고 익숙한 멜로디... 케빈 컨이야말로 우리나라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리얼 뮤직의 히든 카드이다. 이미 국내 TV, FM 라디오를 통해 방송 배경음악, 시그널 음악으로 인정받고 꾸준히 판매되는 케빈 컨의 1집 "In The Enchanted Garden(RM 2525)"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던 어떠한 피아노 음악보다도 대중적이고 멜로딕한 감성적인 타이틀로 매니어층까지 형성되었다. 이후 1998년 8월에 발표된 "Summer Daydreams(RM 2575)"는 1999년부터 국내 FM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과 배경음악, 그리고 공중파 드라마에서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방송국에 많은 문의전화가 현재까지 쇄도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케빈 컨은 놀랍게도 생후 17개월만에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네 살 때 정식으로 Geri Baurs에게 개인 지도를 받았으며 열 네 살 되던 해에 정식으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연주를 통해 프로로 데뷔했다. 이후 디트로이트 심포니 수석 피아니스트 미샤 코틀러를 사사하고 미시간 음대,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the New England Conservatory) 등에서 학위를 수여했다.이후 보스턴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하던 케빈 컨은, 1990년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긴 뒤 많은 공연과 마스터클래스를 가지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 리얼 뮤직의 창립자 테렌스 얄롭(Terence Yallop)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주하고 있는 케빈 컨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강한 인상을 받은 얄롭은 케빈 컨을 초대하여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도록 배려했는데, 이렇게 해서 케빈 컨의 데뷔 앨범 "In The Enchanted Garden (RM 2525)"이 발표된다.

피아노의 섬세함을 최대한 보여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데뷔작에서는 처음 들어도 마치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친근감있는 멜로디가 부드럽고 편안하며 사색적인 감상의 시간을 제공해준다. "1996년은 제게 매우 흥미로운 한 해였어요. 'In the Enchanted Garden'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의 청중들에 의해 내 음악을 느끼고 즐길 수 있으니까요. 2집 Beyond the Sundial은 멜로디 지향의 제 작품을 좀 더 섬세한 멜로디 지향의 음악으로 끌어간 것입니다. 멜로디의 중요성은 스티비 원더나 바흐 모두 중요시하는 것이지만 전 특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멜로디에 온 정성을 다 쏟았고, 그 노력의 결과물이 2집 Beyond the Sundial입니다."

데뷔앨범 In the Enchanted Garden의 성공에 이어 더욱 섬세하고 부드러운 피아노 멜로디로 다가오는 케빈 컨의 2집 Beyond the Sundial에서는 케빈 컨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가 또다시 청자들을 사로잡으며, 이번에는 특히 오보에와 폴 맥칸들레스가 연주하는 잉글리쉬 호른이 첨가되어 더욱 새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다.

1998년 8월에 새로이 공개되는 "Summer Daydreams(RM 2575)"는, 레퍼런스용 레코딩으로 성가를 높인 섬세한 바이올린 주자 제레미 코헨(Jeremy Cohen)을 영입하여 더욱 성숙한 음악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아트워크와 함께 첫 곡 "Le Jardin(정원)"에서부터 흐르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왜 케빈 컨이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열광적인 팬들이 형성되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감성적인 멜로디에 얹힌 아름다운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의 하모니... 어느 한 곡이라도 버릴 것 없이 총 열 곡이 흐르는 동안 아름다운 피아노 발라드의 세계는 매니아들을 포함, 피아노 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미국과 동시에 배포된 3집 Summer daydreams는 국내 TV 드라마와 FM 라디오 프로그램들에서 배경음악용으로 경쟁적으로 사용하면서 또한번 케빈 컨의 파문이 일고 있는 중이다.

☞ 데이드림 (The Daydream)의 Dreaming앨범 

한국 뉴에이지 음반 최초로 세계 6개국 수출!!
감성적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데이드림(The Daydream)'의 "Dreaming… (piano solo collection)"
어쩌면… 영화 같은 애틋한 당신의 사랑이야기…. 최고의 감성과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사랑 받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데이드림'의 꿈결같은 음악 Dreaming… 가슴 저미는 우리들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처럼 가슴에 긴 여운을 남기며 뉴에이지 피아노의 진수가 느껴지는 슬픈 피아노 이야기…

뉴에이지가 이제는 더 이상 자연의 언어만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의 생활 속 섬세한 언어들로 다시 태어난다... 맨흙을 밟아본지가 언제였지. 그 흙의 부드러움보다는 흙탕물의 지저분함과 번거로움을 먼저 떠올리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가고, 콘크리트를 깨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묻힐 때가 되어서야 난생 처음 흙으로 가는 우리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한다. 한편의 영화 같은 데이드림의 DREAMING…  'The Daydream'의 음악에는 보편적인 추억이 있다. '원태연'이나 '류시화'의 시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추억과 향수,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는 말이다. 경박하지 않게, 소란스럽지 않게, 잔잔하고, 소박하게, 추억을 읊조리고 있다. 곱게 먹인 파운데이션위로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의 절제된 슬픔이 느껴지는 , 조지 윈스턴을 연상케 하는 도입부와 이후의 한 박자씩 처지는 리듬의 조화가 그리움의 복잡다단한 심경을 표현한 듯 여겨지는 , 저음의 도입부가 눅눅하고 나른함을 느끼게 하는 ,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개성 있게 변주한 등, 총 13곡이 담긴 'The Daydream'의 앨범 『Dreaming』은 전곡이 피아노 솔로이다. 피아노 솔로라는 점이 얼핏 단조로움을 연상할 수 있지만 'The Daydream'의 앨범 『Dreaming』은 한편의 영화 같은 곡 구성으로 그 단조로움을 뛰어넘고 있다. 각각의 곡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에 충분할 만큼 다채롭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진솔하다.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가장 큰 설득력을 갖는 건 바로 진실이다. 뮤지션이 화려한 수식이나 과장법을 배제한 채 슬픔, 기쁨, 추억 등을 이야기한다면 듣는 이는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서는 " Out of sight, Out of mind "보다는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날 울리는 것은 /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어요… [사랑의 측량] 中 한용운" 에 더 가까이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 사람의 감정으로 눈을 돌린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The Daydream' 의 음악에서는 한국인만의 정서가 느껴진다. - 글 : 최 종 필(음악 칼럼니스트)

☞ S.E.N.S

혼성 연주 듀오 S.E.N.S.(센스)는 일본 음악계의 폭넓은 저변을 확인할 수 있는 그룹이다. 지난 1988년 데뷔한 이들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TV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사운드트랙, 광고 음악 등의 분야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이며 베스트 앨범과 솔로 앨범을 포함해 무려 28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1997년 발표한 TV 드라마 삽입곡 베스트 모음집인 [Heaven's Song]을 99년 봄 우리나라에 선보이기도 했다. 작곡과 신서사이저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 래밍과 믹싱 등 센스의 사운드의 핵을 이루고 있는 남성 멤버 후카우라 아키히코(1959.5.13)와 역시 작곡과 피아노 연주, 컴퓨터 프로그래밍 그리고 소프라노 보컬까지 담당하고 있는 여성 멤버 카츠키 유카리(1956.4.1)로 구성된 이들은 1988년 NHK TV의 다큐멘터리 [Silk Road Of The Sea]의 사운드 트랙 [The God Of The Sea]를 내놓으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후 프로그램의 사운드트랙 [Malasa Tea Walz], [Kyara]를 연이어 내놓으며 그 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이들 3부작의 베스트 트랙 모음집인 [Sailling]을 발표했다) 또한 이듬해에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悲情城市(A City Of Sadness)]의 사운드 트랙과 광고 음악 앨범 등을 꾸준히 발표해 왔고 1996년에는 [Palace Memories], [Palace Sketch], [Palace Seeds]등 중국의 북경과 대만 타이페이의 궁전박물관을 통해 웅대한 중국의 역사를 보여주었던 NHK의 특집 프로그램 [Kokyu]의 사운드트랙 연작 앨범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은 2000년에 들어서도 스물 여덟 번째 앨범인 [Future]를 발표하는가 하면 사운드트랙으로는 1989년 [비정성시]에 이어 두 번째인 영화 [Lichgensan]의 수록 싱글 [Moonlight Dream]을 일본에서 활동중인 강수지의 보컬을 담아 내놓기도 했다.

* 후카우라 아키히코 (深浦 昭彦)
1959.5.13 구마모토현 출생 록 밴드「Hot Point」의 키보디스트로서 아마츄어 시대를 보냄 1975년 엘 모션 페스티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 1988年 S.E.N.S.를 결성. 작곡 이외에도 신디사이져, 콘퓨터 프로그래밍 믹싱을 담당

* 카즈키 유카리 (勝木 ゆかり)
1956.4.1 후쿠오카현 출생 싱어 송 라이터로 아마츄어 시절을 보냄 1976년 해피 포크 페스티발 큐슈 대회에서 그랑프리, 전국대회 수상 1977년 야마하 포퓨러 송 콘테스트 큐슈대회에서 그랑프리 1978년 야마하 포퓨러 송 콘테스트 본선에서 CHAGE&ASKA 등과 입상 1988년 S.E.N.S.를 결성 작곡 이외에도 센스 멜로디에 있어 중요한 피아노 보이스, 콤퓨터 프로그래밍을 담당 혼성 연주 듀오

☞ 데이비드 란츠 (David Lanz) 

데이비드 란츠는 미국 시애틀 출생이고,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4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70년대에 캐나다의 록 그룹 브라만(Brahman)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그후 여러 록 그룹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자극적이고 비정서적인 사운드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다시 피아노의 건반과 마주하였다. 오랜 외도를 끝내고 피아노 앞에 돌아온 그는 신명과 정열을 바쳐 완성한 첫 앨범 'Heart Sounds'를 1983년에 출반하고 뉴에이지 아티스트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였다. 정열이 넘쳐 다소 거친 느낌을 주는 데뷰작에 이어 1984년에 'Nightfall'를 발표했고, 이 앨범은 데뷰작과 함께 그가 발표한 초기의 걸작으로 자리를 잡았다. 1985년, 그가 소속한 나라다 레코드의 대표적 아티스트의 한명인 마이클 존스와 함께 조인트 앨범 'Solstice'를 발표했다. 그는 이 앨범에서 스코틀랜드의 민요 'Green Sleeve'와 조지 윈스턴의 앨범 'December' 에도 수록된 'Improvisation On A Theme, Adapted From Pachelbel's Canon In D Major'를 연주하여 호평을 받았다. 계속해서 동년에 네번째 작품집 'Natural States'를 폴 스피어와 함께 출반한 그는 꾸준한 작품활동과 연주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축적하였으며, 1988년에는 'Cristofori's Dream'을 내놓아 뉴에이지앨범 차트에서 무려 21주간이나 정상을 차지하는 대중적인 빅히트를 기록한다. 동명 타이틀곡이 걸작이란 평을 얻었고, 그룹 프로콜 하럼의 대표작 'A Whiter Shade Of Pale'은 그룹에서 키보디스트를 맡았던 매튜 피셔가 직접 가담하여 원작의 정신을 살린 작품으로 인기를 모았다. 1990년에 발표한 후속타 'Skyline Firedance'는 무디 블루스의 'Nights In White Satin'의 원작의 장중함과 애석함을 그대로 표현했고, 동명의 싱글과 'Dark House', 그리고 2월의 내한공연도중 들었던 도깨비에 대한 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Masque Of Togaebi(도깨비의 가장무도회)'가 인기를 누렸다. 뉴에이지가 군소 장르의 영역에서 벗어나 일반화된 80년대 후반에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데이비드 란츠는 피아노를 도구로 사용하여 음악세계를 정립한 아티스트이다. 작곡가로서도 안정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그는 정선되고 짜임새가 좋은 일련의 작품들로 뉴 에이지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Cristofori's Dream
뉴 에이지(New Age) 음악을 표방해온 명실상부한 나라다(NARADA) 레이블의 간판스타, 피아니스트 데이빗 랜츠(David Lanz)가 99년을 맞아 빌보드 뉴에이지 차트에서 6개월간 1위를 기록했던 88년작 '크리스토포리의 꿈(Cristofori's Dream)'을 그의 열 다섯번째 앨범으로 다시 완성했다. '크리스토포리(Cristofori)'는 지금의 피아노를 개발한 이태리 연주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Bartolomeo Cristofori / 1655 ~ 1731)로, 데이빗 랜츠는 '피아노'라는 '그의 꿈이 담긴 악기를 만든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이 한 장의 앨범에 담은 것. 장르구분을 떠나 누구나 무난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앨범에는 명곡 < Cristofori's Dream >을 비롯, 그룹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록클래식으로 프로콜 하럼의 오르간주자 매튜 피셔가 참여한 < A Whiter Shade Of Pale >, 보너스 트랙인 경건한 느낌의 소품 < Madre De La Tierra(대지의 어머니) > 등이 추가된 총 여덟개 트랙이 함께하고 있다.

1950년 미국 시애틀 출신의 데이빗 랜츠는 시애틀 합창단 피아노 반주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전통재즈와 비틀즈를 접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후 그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교류를 하는 등 음악 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행위예술가인 친구로부터 세미나에 쓰일 배경음악을 의뢰 받게 된다. 이 세미나를 위해 제작된 음악이 당시의 음악들과 구분되는 독특함을 지닌 연주로 세인의 이목을 끌면서, 이에 힘입어 데이빗 랜츠는 1983년 대망의 첫 솔로앨범 'Heartsounds'를 발표하게 된다. '뉴에이지'란 명칭이 다소 생소한 때였지만 그렇게 시작된 데이빗 랜츠와 동반자 나라다(NARADA) 레이블과의 관계는 지금까지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 이루마 (Yiruma) 

순수한 영혼과 맑은 눈을 가진 한국 뉴에이지 아티스트 이루마, 11세의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클래식 공부에 뛰어든 그는 영재들만이 다닐 수 있다는 퍼셀 스쿨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 후, 런던대 킹스컬리지에 진학하여 현대음악, 클래식, 작곡 등을 공부하며 실력파 뮤지션으로 명성을 얻는다.

영국 음악교육을 통해 테크닉보다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 수 있었다고 자신하던 그는 2001년 5월 데뷔 앨범 「Love Scene」을 세상에 공개한다. 그 동안 갈고 닦은 음악성을 유감 없이 발휘한 그의 앨범은 일본 일색의 뉴에이지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전했고, 앨범 또한 아시아 5개국에서 발매되는 등 그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시킨다. 앨범에는 11곡의 자작곡 외에 영화 「남과 여」의 테마를 편곡한 ‘男 & 女 (Un Homme Et Une Femme)’, 「미션」의 테마인 ‘Gabriel’s Oboe’를 편곡한 ‘Gabriel’ 등 두 곡의 영화 테마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2001년 11월, 이루마는 데뷔 앨범과 몇 개월의 공백을 두지 않고 두 번째 앨범 「First Love」를 선보인다. 그만큼 왕성한 창작력을 선보인 그의 모습이었다. 전작에 비해 대중성을 강하게 고려했다고 전하는 이 앨범은 세계 정상의 스튜디오인 영국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에서 녹음하는 등 그의 가능성을 인정한 기획사의 아낌없는 배려 속에서 완성되었다. 이 앨범에는 재즈 스탠다드인 ‘Dream a Little Dream’, 친숙한 멜로디의 샹송 ‘Qui A Tue Grand Maman’을 편곡한 ‘When the Love Falls’이 그만의 섬세한 터치로 개성 있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When the Love Falls’는 인기리에 방영된 KBS 드라마 「겨울연가」에 삽입되어 대중들의 많은 관심이 한꺼번에 그에게 쏟아지기도 했다.

퍼셀 스쿨에서 공부할 적부터 작곡에 재능을 나타내던 이루마는 킹스컬리지 시절에는 연극과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난 2000년 4월에는 한·영 친선 문화 교류 기념으로 열린 런던·서울 공동 제작 연극 「태」의 음악을 담당한 바 있다. 그러한 그가 이번에는 정식으로 영화음악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는 자신의 첫 작품으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선택했다. 이창동 감독 역시 감상적이면서도 순수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루마의 음악이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자신의 영화 「오아시스」와 아주 잘 어울릴 것이라는 판단에 흔쾌히 작업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내 뉴에이지 음악계와 국내 영화계의 자존심인 두 사람이 만나 작업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화계에선 벌써부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OST가 발매도 되기 전에 그는 또 한번의 모험을 시도한다. 바로 이름부터 생소하기만 한 「오아시스」의 ‘이미지 앨범’을 공개한 것!! 이미지 앨범이란 영화 OST와는 달리 영화가 소개되기 전에 영화가 지닌 분위기와 이미지를 음악으로 미리 전달하는 앨범으로 국내에선 최초로 시도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이 앨범에서 자신이 모든 곡을 작곡·편곡하였으며 피아노 연주는 물론 프로듀서까지 혼자서 다 해내는 열정을 보였다. 그리고 피아노 연주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가사가 있는 가요를 작곡하였으며, 이 외에도 트럼펫, 현악 사중주 등을 사용하여 영화가 주는 감정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분명 이번 이미지 앨범은 뉴에이지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영화 음악가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어주고 있다.

따뜻한 감성과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 그리고 로맨틱한 분위기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루마, 그의 음악은 영국 음악의 고급스러움과 동양의 정감 어린 정서가 함께 살아 숨쉰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제는 그의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를 감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2002년 세계 음반 박람회 ‘미뎀’에서 국내 최초로 초청 공연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의 음반이 일본, 홍콩, 대만, 유럽 등지에서 라이센스 발매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어, 현재 음악팬들 뿐만 아니라 세계 음반 시장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영국 생활을 거쳤고, 한국계 영국인이라 불리고 있는 그이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을 펼칠 곳으로 주저없이 고향인 한국을 선택했다. 늘 한국의 문화를 그리워했다고 전하는 그는 오랜 외국 생활에도 불구, 한국말도 수준급이다. 일본 뮤지션 일색의 국내 뉴에이지 시장에서 홀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그의 커다란 날개짓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그의 아름다운 선율이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가길 진심으로 바라며, 더 나아가 그의 따뜻한 음악이 따뜻한 조국, 한국을 아낌없이 그려내길 한껏 기대해본다. 글 / 아시아뮤직넷 MEER (dasmeer@asiamusic.net)

 

☞ 브라이언 크레인 (Brian Crain) 

미국 캘리포니아의 헐리우드에서 태어난 브라이언 크레인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작곡을 해왔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매우 어렸을 때 항상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누군가 그에게 무슨 곡을 불고 있냐고 물으면 브라이언은 "나도 몰라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불고 있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여섯살때 그의 부모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작은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었으나 그는 건반에는 관심이 없었다. 열 살이 되었을 때, 브라이언은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였으나 곧 싫증을 내고 그는 새로운 관심사인 야구에 빠져 피아노는 소홀히 하였으나 그의 작곡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은 야구 경기장에서 연습이나 시합 중에 종종 휘파람으로 그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의 브라이언은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프로 야구선수를 꿈꾸었다. 그는 십대 때 야구 이외에 영화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이 시기에 브라이언은 때때로 거의 잊고 지냈던 피아노 앞에 앉아 있곤 했는데 그는 휘파람으로 했던 것처럼 바로 건반 위에서도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휘파람으로 작곡을 하던 그의 습관은 작곡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는 20대 초반에 어린이 영화음악을 작곡하였고, 또 한편으론 여전히 야구선수가 되는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팀들과의 시합에서의 실패 후, 야구에 대한 꿈을 포기했다. 이 시기에 가족들은 그의 피아노 작곡을 녹음해 CD로 발매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그는 자신의 곡들을 CD로 낼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 , 큰 호평을 받았다. 그 계기로 그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작곡하고 녹음하는 데 보내고 있으며, 자신의 음악이 그들의 삶을 바꾸어 주었다는 열성 팬들에게 용기를 얻고있다. 그는 이제 '그에게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았던 일은 자신이 프로 야구선수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농담을 하는 여유를 보이곤 한다. 미국의 오하이오주의 로키산맥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그의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브라이언은 그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사주신 피아노와 오늘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사오 사사키 (Isao Sasaki)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는 우선 음색 그 자체가 아름답다.그의 피아노는 강약에 대한 뉘앙스의 섬세한 표현에 신경 쓴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무모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섬세한 터치로 각 곡을 연주하였다. 여기에서는 서정미의 강조와 더불어 인간적인 깊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현악기, 관악기처럼 자신이 음을 만들 필요가 없이 건반을 두드리면 누구나 음을 낼 수 있으므로 피아노 터치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연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사오 사사키'처럼 피아노의 터치가 섬세하게 표현되면 음악의 매력이 증가함과 동시에 피아노를 노래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1953년 북해도에서 태어나서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기타, 플룻, 오르간 등의 악기를 연주하였으며, 19세가 되어 재즈 피아니스트로 전향하였다. 그 후 안스쿨을 거쳐 프리랜서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하던 중 1978년 뉴욕으로 가서 '스즈키', '밥 모제스' 의 레코딩에 참여했다. 귀국 후 오리지날 작품을 중심으로 피아노 솔로 앨범 『Muy Bien』을 발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두 번째 앨범 『Wind Drive』를 비롯하여 『Serenade』, 『Stone』, 『Moon & Wave』, 『Star & Wave』, 『MALLORCA』 등을 꾸준히 발표함과 동시에 여러 도시에서 Concert를 가져 호평을 받았다. 재즈 피아니스트이면서 한 때는 Classic을 지향한 그의 피아노는 아주 섬세한 터치로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느껴져 일본의 죠지 윈스턴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SUZUKI BAND", "YAS-KAZ", "야마모토", "시노자키" 등의 라이브 콘서트와 레코딩에 피아니스트로서 참가하였고 TV 드라마, 영화, 광고 음악 제작 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 시크릿 가든 (Secret Garden) 

북구의 혼성 그룹 시크릿 가든(Secert Garden). 노르웨이의 작곡가 롤프 러브랜드(Rolf Lovland)와 아일랜드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피오뉼라 셰리(Fionnuala Sherry)를 주축으로 1995년 결성된 그룹이다. 피오뉼라는 아일랜드 Killdeer에 있는 Naes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음악을 즐기고 자주 연주했고 이런 분위기가 그녀로 하여금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열정을 갖도록 만들었다. 결국 음악 공부를 위해서 더블린으로 이사한 그녀는 아일랜드의 트리니티 대학과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RTE 콘서트 오케스트라의 단7으로 활동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계속 연주했지만 그녀의 음악적 관심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음악의 다른 모든 장르에 관심을 갖고, 시나드 오코너(Sinead O’Connor), 반 모리슨(Van Morrisson), 크리스 드 버그(Chris De Burgh), 보노(Bono) 등 팝 뮤지션들과도 함께 음반 작업을 했으며, 할리우드의 영화 'The River Rins Wild', 'The Mask'의 사운드트랙을 연주하기도 했다.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며 키보디스트이기도 한 롤프 러브랜드(Rolf Lovland)는 노르웨이 북부 Kristiansand에서 태어났다. 그가 처음으로 악보에 음표를 그려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은 9살 때의 일. 그는 Kristiansand의 음악학교에서 수학하고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Norwegian Institute Of Music에서 학위를 받음으로써 음악가로서의 기반을 충실히 닦았다.

시크릿 가든의 결성 이전에 이미 롤프는 노르웨이 그래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바 있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성공한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1985년에는 'La Der Swinge'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했으며 노르웨이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는 네 차례나 우승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가 조직적인 하모니와 멜로디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을 무렵 바이올리니스트 표뉴알라를 만나게 됐고 시크릿 가든이 결성됐다. 그리고 1995년 그들의 첫번째 앨범 [Song From A Secret Garden]이 발매됐다. 시크릿 가든은 1995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노래가 아닌 연주곡 'Nocturne'으로 우승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연주곡이 콘테스트에서 수상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로 인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역사가 새로워졌다. 사람들을 경악케 했던 그들의 연주곡들은 이후 성공을 거듭했다. 'Nocturne'이 수록된 데뷔앨범 [Song From A Secret Garden]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으며, 유럽, 캐나다, 미국, 호주, 멕시코, 아시아 각국 등 60개국에 퍼져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머지 않아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 미국 빌보드 뉴에이지 차트에서 101주 동안 머물르는 기록을 낳았다. 첫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프로모션 겸 공연으로 투어를 하고 있을 무렵, Fionnuala는 사고로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어깨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롤프의 창작활동은 멈추지 않았고 그녀도 다시 연주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치료에 매진했다.

1996년 롤프는 새로운 앨범을 위한 자신의 자작곡들을 모두 준비했고, 표뉴알라도 재기를 꿈꾸며 전력했다. 그리고 1997년 롤프의 창의적인 곡들을 수록한 두번째 앨범 [White Stones]이 발매됐다. 여전히 표뉴알라의 팔은 고통으로 떨렸지만, 새로운 곡들에 실린 그녀의 연주는 전보다 더 기교가 넘치고 도전적이었으며 부상에 대한 구차한 변명따윈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더 많은 용기를 얻어 전보다 더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해나갔다. 이렇게 준비된 2집 [White Stones] 역시 전작 [Song From A Secret Garden]처럼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80주 이상 랭크됐으며, 전 세계적으로 5십만장이 팔려나가면서 그들의 음악은 점점 발전했다. 2000년을 1년 앞두고 발매된 3집 [Dawn Of A New Century]와 최근 발매된 그들의 베스트 앨범 [Dreamcatcher]까지 그들은 5년여 밖에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들의 음악은 듣는 이를 음악의 절대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 롤프 레블랜드 (Rolf Lovland)
올해 42세인 롤프 러블랜드는 노르웨이 남부 출신으로 작곡가, 피아니스트 겸 키보드 연주자입니다. 그는 아홉 살 때 이미 밴드를 조직하고 작곡을 하는 등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성장한 후 러블랜드는 노르웨이의 크리스찬샌드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노르웨이 오슬로 음악원에서 클래식을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노르웨이 출신의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레코딩 작업을 하면서 작곡가, 편곡자, 프로듀서로 활동했습니다. 러블랜드는 지식인의 풍모를 짙게 풍기는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2회 수상한 것을 비롯, 노르웨이 그래미상, 국립 라디오 방송국이 주최하는 '올해의 최고 음악상'을 2회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TV 방송국의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한 바 있습니다

* 피오뉼라 쉐리 (Fionnuala Sherry)
바이올린 올해 34세인 아일랜드 태생의 이 매력적인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는 더블린 음대와 트리니티 대학에서 클래식 바이올린을 전공했습니다. 그 후 RTE 콘서트 오케스트라에서 10년째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밴 모리슨, 시너드 오코너, 보노, 클래너드, 크리스 드 버그 등 내로라 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작업에 함께 참여했던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또한 그녀는 등의 영화음악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아일랜드의 TV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자신의 음악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그녀는 '시크릿 가든' 멤버로 활약하는 외에도 작곡과 프로듀싱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앙드레 가뇽 (Andre Gagnon) 

 

특유의 순수하고 서정성 가득한 피아노 연주로 한국에 많은 팬들을 거느린 피아니스트 앙드레 가뇽(Andre Gagnon)은 탄탄한 클래식적 기본기를 바탕으로 신비롭고 향기로운 그만의 음악 세계를 만든다. 그의 앨범은 1990년대 이후에 국내에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곡을 좋아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며 'Les Jours Tranquilles(조용한 날들)', 'Un Piano Sur La Mer(바다 위의 피아노)', 'Souveniors Lointains(머나먼 추억)'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42년 캐나다 퀘벡주의 쌩 빼꼼에서 태어난 앙드레 가뇽은 4살 때 피아노 수업을 시작, Con Servatoire De Musique De Montreal에서 화성, 작곡과 같은 음악 이론에 대한 정규 클래식 음악 교육 과정을 마쳤다. 클래식 연주자였던 그는 20대에 이르면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었는데, 1970년대의 미니멀리즘이나 1980년대 초 뉴에이지 음악을 미리 예견해 피아노 솔리스트로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1967년 [Pour Les Amants]로 데뷔한 그는 1974년 [Saga]를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Neiges]를 발표, 캐나다 전역에서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 앨범은 캐나다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30만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고 캐나다의 주노 시상식에서(Juno Awards)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 앨범의 수록곡 중 싱글 앨범으로 제작된 'Wow'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 24주간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활동 범위를 넓혀 영화음악, 뮤지컬, 오페라, 방송 프로그램 제작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1977년에 21회 올림픽 다큐멘터리 음악의 작곡, 편곡을 담당했으며, 이듬해에는 영화 'Running'의 사운드트랙을 작곡, 편곡했다. 그는 음악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뛰어들어 각기 다른 음악들을 만들어 왔으며 점차 캐나다 뿐 아니라 국외로도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그에게 1979년 캐나다 정부는 'Office Of The Order Of Canada' 칭호를 내렸으며 그는 캐나다 국민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 또 [Le Saint-Laurent](1977)가 그 해 처음 설립된 펠릭스 상(A Quebec Music Industry Award)에서 최고 연주 앨범상을 수상하면서 연주인으로서도 탄탄한 실력을 인정 받았다.

1983년 그는 자신의 13번째 앨범 [Impressions]을 발표, 전 세계적으로 1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해 화제를 낳았다. 이 앨범에서 그는 인상주의 회화에서의 영감과 느낌을 9곡의 피아노 발라드곡으로 묘사했으며 이를 통해 '가뇽 스타일'을 확립하기도.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는 그 동안 그의 음악에 대단한 반응을 보인 일본에 까지 진출, 수 차례 투어 공연을 가졌다. 그가 1989년과 1991년에 일본의 에픽 소니 레이블에서 발매한 [Presque Bleu(푸른 빛깔 풍경)]와 [Les Jours Tranquilles(조용한 날들)]는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이나 데이빗 란츠(David Lanz)와 같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들과 차별성이 있었으며, 그만의 서정성을 충분히 선보임으로써 일본뿐 아니라 캐나다, 유럽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1992년 그는 크리스마스 앨범 [Noel]을 발표, 2년 후에는 세계적인 하모니카 연주자 토미 라일리와 함께 연주한 [Romantique]를 발표했다. 또 같은 해에 영화음악 모음집 [Twolight Time(황혼)]이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해 솔로 피아니스트로서는 드물게 성공을 거두었으며 국제적인 스타 자리에 올랐다.

1997년 일본의 하꼬네 야외 미술관에서 공연을 하던 그는 한국의 소니 레이블로부터 앨범을 발매할 것을 제의 받았고 [Monologue]가 드디어 한국에 첫 선을 보였다. 다음 해 [Le Pianiste]가 한국에 발매됐으며, 프라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체코에서 녹음한 크리스마스 앨범 [Noel], [Presque Bleu], [Reves D'Autumne]가 연이어 선보이면서 많은 팬을 확보했다. 이후 그의 솔로 피아노 음반 [Solitude], [Saisons] 등이 발매, 그는 국내 팬들을 갸뇽 스타일의 연주음악 세계로 물들였으며 몇 차례 내한 공연을 통해 최고의 인기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거듭나고 있다.

☞ 수잔 시아니(Suzanne Ciani)

수잔 시아니(Suzanne Ciani)는 뉴에이지의 특징을 확실하게 담고 있는 거물 아티스트다. 이미 국내에 몇장의 앨범이 소개되어 전혀 낯설지 않은 뮤지션인 데다가 그래미 시상식에 다섯차례나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호평을 받으며 뛰어난 음악성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도 지나칠 수 없다. 웬만한 뮤지션이라면 단 한차례의 노미네이트로도 상당한 음악적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에 비춘다면, 수잔 시아니의 경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올라있다. 지금까지 모두 12장의 앨범을 발표해 다섯차례나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면 정규 앨범으로는 거의 매번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셈이다. 이번에 발표된 앨범 [Turning]는 뉴에이지적인 편안함과 실내악적인 품격과 감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시아니가 현재 푹 빠져있다는 동양의 정서와 뉴에이지의 안정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앨범이다.

 

☞ 조 히사이시 (Joe Hisaishi) 

우리 나라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의 음악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TV 드라마, 다큐멘터리, CF, 일본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초월하여 실용음악의 리더로서 방대한 작업량을 자랑하고 있으며 작곡, 편곡, 지휘, 피아노 연주, 프로듀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낸다. 1950년에 태어난 그는 4살 때까지 바이올린을 배웠고, 1969년 국립 음악대학 작곡과에 입학, 음대 재학시절 중 이미 창작 오페라를 자신의 지휘로 무대에 올리면서 뛰어난 음악성을 보이게 된다. 젊은 시절부터 폭 넓은 음악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1982년 주식회사 '원더 시티'를 설립하면서 솔로 앨범 [Information]을 발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84년 오늘날 조 히사이시와는 특별한 관계가 되어버린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게 되면서 음악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 나우시카'의 음악감독 겸 프로듀스를 맡아 앨범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게 되고 그후 레코딩 스튜디오를 설립,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다. 이후 이야자키 하야오와 조 히사이시는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 배달부', '이웃의 토토로', '붉은 돼지', '원령 공주' 등 제패니메이션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작업했다. 85년 그는 '바람계곡 나우시카'로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수상했고 차게 앤 아스카 (Chage & Aska) 등 일본 인기 가수의 앨범 편곡, 솔로 앨범 제작 등을 하면서 왕성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 엔야 (Enya) 


Enya(Eithne Ni Bhraonain; Bhraonain의 딸이라는 뜻)는 아일랜드 북서쪽 끝에 있는 귀도(Gweedore)에서 9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일랜드 토박인이지만 서양과 동양의 이미지를 함께 지니고 있는 Enya는 어린시절부터 교회성가대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후천적인 노력보다는 Enya의 음악적 재능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지방에서 유명한 싱어이자 색소폰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독학으로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의 음악광이었다. 따라서 Enya의 감수성은 그런 풍성한 음악적 환경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Enya는 이미 10대에 그녀의 가족들과 결성한 패밀리 그룹 "클리나드"의 일원 으로 키보드를 연주 하기도 했으며 대학에서 고전음악과 피아노를 공부한 후에는 82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이 무렵 Enya는 직업 프로듀서 니키 라이언과 그의 부인이자 시인인 로마 라이언을 알게된다. Enya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한 부부의 도움으로 Enya는 영화 "개구리 왕자"의 사운드 트랙과 BBC TV의 시리즈물인 "Celts"의 음악을 담당해 대중적인 인기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견도 있지만 공식 솔로 데뷔앨범은 "Watermark"(1988)이고 그후 3년이 지난 1991년 그녀는 두번째 앨범 "Shepherd Moons"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으로 Enya는 뉴에이지 계에서 Enya의 위치를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 세이코 수미 (Seiko Sumi) 

정작 자신은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여류 피아니스트 세이코 수미(Seiko sumi)는 독일 국립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에 입학, 저명한 E.악센힐트 여사로부터 사사받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독일 연주가 자격 국가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한 이후 독일, 벨기에를 중심으로 솔로와 실내악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펼쳤다. 유럽 각국에 그녀의 레코딩 앨범을 발매하여 영국 '그라모폰紙', 미국 'DRS 저널紙', 프랑스, 벨기에 각종 음악잡지에서 격찬을 받았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수준 높은 연주를 보여주는 세이코 수미는 확실한 실력과 뛰어난 재담을 지닌 보기 드문 존재로 현재 일본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 김광민  

1960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한때 스튜디오 뮤지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였으며, 김민기, 양희은, 조동진등 의식있는 가수들의 연주 활동에도 많은 참여를 하였다. 그러던 중 음악적인 번뇌와 고통 속에서 삶의 한계를 느끼던 그는 1986년 1월 도미를 결심하고, 고교시절 이미 피아노 협주곡집을 작곡한 실력과 끈질긴 음악에의 집념으로 명문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다. 보스톤의 뉴 잉글랜드 음악원 (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재즈와 클래식을 배우며 음악의 철학에 깊이 빠진다. N.E.C 재학시절 데뷔앨범  Letter From The Earth를 발표한 그는 세계 시장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고급 수준의 연주곡이라는 찬사 속 , , 등으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특히 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가수 유재하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곡으로 그의 순수한 음악적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효과를 최대한 살린 연주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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