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발견’ 사진가 임재천의 <50+1> 프로젝트
50명에게 1백만원씩 후원 받아 한해 동안 제주 촬영 나서
작가가 고른 365장 중 후원자가 선택한 50장으로 사진전
지난해말 <한국의 재발견>이란 사진집을 냈다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사진가 임재천이 최근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다. 그는 2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페친들에게 긴 글을 올렸다. ‘<50+1>프로젝트, 그 첫 번째 시도’란 제목이며 글은 “살다보면 가끔 심호흡을 해야 하는 일에 맞닥뜨리게 됩니다”로 시작한다. 글은 이어서 “제가 겪은 가장 최근의 경우로는 작년 10월 23일 시작했던 <한국의 재발견> 예약 판매가 그것입니다. 그때로부터 4개월이 지난 오늘, 다시금 심호흡을 하며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과연 무슨 일 때문인지 부디 귀기울여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고 이어진다. 거창하고 진지하다. 전문은 임재천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3월 31일까지 50명의 후원자를 모은다. 후원자는 1인당 1백만원의 후원금을 임재천 사진가에게 보낸다. 50명이 다 모이면 임재천은 올해 한해동안 제주도를 촬영한다. 임재천이 직접 고른 365장의 파일을 후원자에게 보내고 각 후원자는 마음에 드는 1장씩을 고를 수 있다. 이렇게 모인 50장으로 사진전을 연다. 전시가 끝나면 후원자는 자신이 고른 작품(액자 포함, 16X20인치)을 받게된다. 한 작품당 에디션은 9장으로 제한하고 후원자는 9-1번을 받게 된다. 후원자는 전시장에 관객이 아닌 에디터의 자격으로 초청된다. 분할납부 방법이나 액자, 프린트의 재질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위 임재천의 블로그에 가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처음에 페이스북에서 이 글을 읽고 대단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임재천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다~ ”라는 센 제목을 달아서라도 그의 취지를 소개하고 싶어졌다. 6일 오후 론리 플래닛에서 맡긴 일을 위해 청산도로 가고있는 임재천과 전화인터뷰를 했다.
-소치올림픽에서 전시를 하더니 이제 론리 플래닛이란 국제적 잡지의 일도 하게 된 것인가. 대단하다.
=론리 플래닛 한국판 잡지에서 의뢰한 일이다. 2박 3일 일정이다.
-<50+1>프로젝트에 대해 듣고 읽었다. 언제부터 이런 기획을 했나?
=2010년부터 생각하던 것인데 지난해에 한국의 재발견 사진집을 내고나서 결심했다. 페이스북의 효과가 컸다. 사진집도 좀 팔리고해서 자신감이 생겼다. 이야길 꺼냈더니 주변의 지인들이 성원해주었고 그때 확신이 생겼고 페이스북과 다른 여러 경로를 통해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아직 50명이 다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실패한다면 내년을 기약하면 될 일이다. 사실 고민도 많았다. 만약 50명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게 아니라 10명도 안 되면 다른 사진가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어쨌든 시작했고 <스페이스22> 대관도 약속받았다. 프로젝트의 감사 역할을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가 맡아주셨다.
-(성사가 되면) 후원금이 5천만원이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매달 열흘씩은 제주에서 머무르며 촬영할 계획이니 1년 연세로 방을 얻어야한다. 작지 않은 곳이니 스쿠터를 하나 구입해야 하고 항공료, 식비 등 촬영경비로 쓸 것이다. 여기에 전시할 사진 프린트, 액자 비용도 모두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생활자금으로도 쓸 것이다. 나는 사진가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한 집의 가장이다. 내가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 사진을 찍으러 다닐 수도, 촬영에 집중할 수도 없다. (성사가 되면) 2014년부터 10년간 해마다 1년의 절반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집의 생계를 책임져야한다.
-(웃으면서)말이 통하지 않으니 통역비도 들지 않겠는가?
=(웃다가 갑자기 진지하게)그렇지 않아도 제주도 방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현지인들과 대화하려면 현지의 말을 반드시 알아야한다. 제주도의 ‘어머니’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5천만원이 적지 않은 돈이지만 위에서 말한 촬영경비에다 생계까지 책임진다기엔 그리 넉넉하지 않아 보인다. 프로젝트를 더 크게 하지 그랬나?
=최대한 아끼면서 촬영을 해야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방도를 생각하고 있다. 후원자숫자를 늘이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에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내 소신으로 생각할 때 전시장에 사진을 50장 이상 거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무리하고 곤란한 일이다. 후원자를 100명으로 늘리면 100장을 전시해야 하는데 그럴 순 없다. 사실 50장도 많은 편이다.
-다른 작가와 협업할 생각이 있는가?
=다른 사진가를 이야기한다면 그럴 순 없다. 프로젝트의 취지상 임재천이 본 한국땅이기 때문에 사진은 혼자 해야한다. 전시나 책에 글이 필요하다면 작가와 함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도 출신이든 외지에서 갔든 상관없이 제주를 찍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지에서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해녀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을 잘 알고 있고 또 돌담이나 오름을 흑백으로 찍는 분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같은 제주 땅과 바다지만 그분들의 작업과 나의 작업은 테마가 겹치지 않는다. 나는 제주민의 삶에 관점을 두고 있다.
위의 질문은 노파심에서 꺼내본 것이다. <한국의 재발견>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임재천의 사진이 형식과 내용에서 다른 사진가를 흉내낸 것이 아님을 잘 알 것이다. 다른 사진가의 테마를 슬쩍 곁눈질할 임재천이 아니다.
» 페이스북에 올라온 임재천의 글
-이번 프로젝트는 획기적이다. 그리고 성공할 것으로 본다. 다른 사진가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반반 정도의 반응이 있을 것이다. 우선 나의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고마워할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사진만으로 먹고사는 것이 힘든 한국의 풍토에서 최소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지 않겠는가? “왜 사진가가 사진만 찍어야지 나대고 다니나? 왜 영업까지 뛰어야하나?”라는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좀더 자세히 말해도 좋다.
=나는 사진가라는 사람이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파는 사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나는 분야가 다를 뿐이며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 삶의 목표를 위해 산다는데는 아무 차이가 없다. 다만 사진가라는 업의 특성은 사라져가는 것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기록한다는 점에서 직업상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어느 직업이 더 우월하고 그렇지 않고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진가도 자신의 업을 직접 돌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아야…….
이 대목에서 임재천은 묻지 않은 이야기를 조금 더 끌어나갔다. 경청하며 받아적었다.
=나는 ‘사진가’이라고 생각하지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진가는 창작하지 않고 기록한다. 이 땅에서 사진가들이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사진가를 위한 매체는 거의 고사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론리 플래닛을 위한 작업(어싸인먼트)을 하러 간다고 하니 동료 사진가가 “어싸인먼트란 단어가 멸종된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더라. 지금 방식으로 사진가들이 살다보면 스스로 고사하는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지난해에 내가 촬영을 하러 다닌 날짜를 세어보니 30일밖에 안되더라. 사진가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고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묻지 않은 이야기를 스스로 꺼냈다. 50명이 안모이면 어떻게 할지를 물어봐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날짜로 33명이 모였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직 3월은 삼분의 일도 안지났으니 성공할 것 같아서 그 질문은 안하려고 했다고 답했다. 인터뷰가 좀 두서없어졌지만 누가 묻고 누가 답하는지 개의치 않는 편이라서 그냥 진행했다. 임재천의 답변이다.
=6일 오후 현재 35명이 모였다. 그렇지만 50명이 안될 수 있는 일이니 그 경우를 대비한 답을 하겠다. 만약 한 명이 모자란 49명이 된다면? 그 땐 강제로라도 동생을 시켜서 50명을 채우겠다. 만약 3명이 모자란 47명이 된다면? 그 땐 취소하겠다. 처음에 약속한 내용을 지킬 것이다. 절대로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한다. 임재천은 사진가로 한 눈 팔지 않고 살고 싶고 지금대로 가다가는 사진가 전부가 고사할 것이란 고민을 정말 깊이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번 한 약속은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이번 프로젝트는 꼭 성사시키고 싶으니 1명 정도가 모자라면 동생을 “협박해서라도” 채우겠는데 3명씩이나 모자라면 47명에게 일일이 설명드리고 계획을 접겠다는 이야길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가 임재천의 양심에서 1명과 3명의 차이는 얼마나 되는 것인가? 1명만 모자라도 계획을 접겠다는 말보다 더 절절한 진심이 느껴져서 잠시 인터뷰를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어서 다음 질문을 던졌다.
-말이 나온김에 현재 35명이라는데 그 중에 가족, 친척, 고향 선후배는 몇 명이나 될까?
=(급하게) 단 한 명도 없다. (학연 지연 같은 것을 이용해, 강제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35명을 다 확인해봤다.
-다시 한번 대단함을 느낀다. 그럼 35명 중에 혹시 이름을 밝혀도 되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달라.
=고두심선생. 맞다 그 탤런트 고두심. 예전에 하던 카메라 동호회의 후배가 자기 아버지에게 이 프로젝트를 이야기했는데 그 아버지와 고두심씨가 친구였고 고두심씨가 이 프로젝트 이야길 듣더니 고향을 찍는다니 나도 동참하게 해달라고 했다더라.
-전시장에 50장을 건다고 했고 그 50장은 후원자들이 1장씩 선정한다고 했다. 이렇게 전시를 해도 전시의 질에 문제가 없을까?
=365장을 내가 먼저 선정하고 그 중에서 50명이 1장씩 고른다. 365장 중에서 뭘 골라도 좋다는 뜻이다. 365장의 완성도는 고르게 준비할 자신이 있다.
-그런 뜻이 아니라 50명이 각자 고르면 계절, 장소 등에서 서로 겹칠 수도 있고 전시란 것은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 상품이니 전시 구성의 완성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는지 묻는 것이다.
=그런 고민도 벌써 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의 전문에 보면 나오는데 후원자들에게 작업일정과 내용을 수시로 알리고 또 오프라인 모임도 하면서 대화를 해나갈 것이다. 전시장엔 큐레이터가 필요하니 <스페이스22>의 큐레이터와 후원자와 사진가인 내가 함께 모여 전시방식과 촬영내용에 대해 상의하면서 풀어나갈 것이다.
-제주도를 촬영할 때 후원자가 동행해도 좋을까?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당연히 동행하면서 촬영하는 것을 환영한다. 같이 다니면서 같은 동선을 소화하고 찍고 밤에 리뷰도 하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다. 꼭 어떤 규모의 워크숍이 아니더라고 같이 사진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내가 뭘 코치한다기보다는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찍는지 내 사진을 그날 밤에 바로 보여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후원금이자 사진값인) 100만원은 적절한 가격인가? 몇 장이나 프린트하는가? 후원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전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가?
=20X30인치 정도면 100만원이 적당하다고 본다. 에디션은 9장으로 제한할 것이다. 나는 20X30 이상으로 인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또한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진가격도 300만원이상으로 판매하는 것도 반대한다. (9장) 한도안에서 전시장에서도 판매한다. 다만 그 때는 갤러리지분(갤러리Fee)을 봐야하겠지만 200~250만원 선에서 판매할 것이다. 후원하면서 사진을 선구매하는 사람과 차별성은 두는 것이 당연하다.
-나중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임재천의 사진값이 3백만원 이상으로 거래가 된다면 어떨까?
=(좀 고민하더니) 사진을 하는 분들에겐 좋은 일이긴 하겠는데…….
-지난번 인터뷰에서 디지털로 작업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프로젝트는 필름이라고 명시되어있다.
=맞다. 이번엔 일단 포지티브필름이다. 그것은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분들을 고려하여 결정한 것이다. 그 분들이 필름작업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다음주에 포지티브 필름을 종류대로 들고 가서 시험촬영을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만약 필름으로 했는데도 내가 원하는 질(퀄러티)이 나오지 않으면 후원자들과 상의해서 디지털로 전환할지 판단하겠다. 게다가 나의 프로젝트는 올해를 시작으로 10년이 예정되어있는게 한 5년 후엔 내가 사용했던 포지티브의 브랜드가 단종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고민이 많이 된다. 지난번 기사의 약속은 지키고 있다. 이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나의 다른 개인작업은 디지털로만 찍고 있다.
인터뷰를 마쳤다. 4년이나 고민하다 시작하는 프로젝트이니 꼼꼼하게 준비했고 평소의 임재천답게 확고한 의지를 여러번 보여주고 있다. 이번 <50+1>프로젝트는 한국의 사진계에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로 다가올 것이다.
1. 사진시장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기존의 사진시장은 몇 갤러리와 몇 작가들이 임의로 사진값을 형성하여 소수의 구매자들과 자기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왔다. 따라서 사진값이 수천만원대로 오르기도 했는데 이것은 사진계 전반을 고사시킨 주 원인 중의 하나였다. 정당하게 사진값이 매겨지는 구조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값이 오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진가들에게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격의 상승이 사진가에게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 게다가 일부만 그것을 향유하는 것은 거품만 형성할 뿐이고 대부분의 사진가들에겐 딴 세상의 이야기다.
2. 사진가, 사진작가의 권위에 변화가 올 것이다. 사진가는 구름위에 있고 관객들을 호령하거나 압도하거나 부리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기존 사진계의 현실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계획 시작전부터 진행과정, 선정과정, 전시까지 모두 (사진가가 아닌) 일반인들과 함께한다는데 큰 특징이 있다.
3. 사진에 입문하는 사람들과 기존의 다른 사진가들에게도 힘이 될 것이다. 이런 방식의 펀딩이 유효하다는 좋은 사례가 된다. 자신이 있다면 이런 방식을 빌어서 각자 시도하라. 규모를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생활사진가들도 시도할 수 있다. 임재천사진가는 지나치게 엄격한 편이라서 지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제 사진에 취미를 붙인 생활사진가라면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동네에서 소규모 전시를 해도 좋다.
임재천과 그 후원자들, 임재천의 페이스북 친구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임재천사진집의 구매자들과 미래의 관객과 독자를 위해서 이번 프로젝트가 10년간 꼭 지속하길 희망한다. 아울러 이런 훈풍이 사진계의 다른 지점에 있는 이들에게도 전달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