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다음 블로그의 내 소개 130523
2013-05-23 18:31:29
난, 이런 사람이에요
본 전주 김, 모친 순천 김씨 원적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 웅상동 10번지
본적 부산 가야동 150-1 서울 출생 을미년, 서울 회현동살때 우석병원 생,
본명 다윗, David, named by the first missionary John Abernathy(나요한) of Southern Baptist Church to Korea.
혹 학벌자랑한다고 할까봐 쓰다가 지웠는데, 우리 큰누이는 만주서 유치원까지 다녔다는데 나는 유치원도 못다녔다. 하지만, 박통의 516덕분에 시험보고 조선 최고 명문 (이때 서울 리라가 아직 없을떄? ㅋㅋ) 인천교대부국에 당당하게 들어갔는다.
많은 문제중 노랑색만 못맞치었다.(그때 나의 애창곡은 한명숙의 노란샤스였는데 ㅋㅋ)
그때 침례교고아원이 문을 닫아 원장이시던 만주 둘째양복장이셨던(첫째는 큰아버지) 부친은 미군복을 받어다가 김승호의 '마부'에 나오는 당고바지(일제 기마복)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것을 인터뷰때 '빵꾸나시?'를 해서 먹고 산다고 해서 대박을 쳤다. 그것이 내 일생의 첫번째 대박이자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는 부잣집 자녀들 사이에서 기가 죽었는지 조용히 살앗다.
그리고 상인천중과 인천고를 졸업하고, 나의 생애에 가장 자랑스러운 국립부산수산대학교(National Busan fisheries University-아무도 왜 종합대학교 University인지 모르고 있지만...) 교육학과 기관전공을 마치고, 고려대학교교육대학원 에서 상담심리학을 2년 마치고(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심리전공은 떨어졌는데, 이유는 영어를 죽쓰고, 대학 교육학 4년동안 한번도 배워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조선 교육학사'에 대한 논술 문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면접에서 수대에서 나의교육담당교수 였던 철학 김위성교수와 서울대 동기였던 그분은 내꿈이 섬마을선생인것을 이해하고 필기시험을 잘 보았는지 염려해 주었다.)
그리고,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대학원때 같이 공부하던 여러 선생님들도 보고 싶고 미화선생도 보고 싶고, 내가 좋아하던 노처녀 선옥선생도 보고 싶고... 혹 보시면 연락들 하시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