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사건 사고가 나는 이유
법신(法身) 각요무일물(覺了無一物)
본원자성(本源自性) 천진불(天眞佛)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다.
지난 구절에 “환화공신(幻化空身) 즉법신(卽法身)” “허깨비비 같은 빈 몸이 곧법신이로다”라고고 했다. 즉, 법신(法身)은 허깨비 같은 빈 몸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에 의해 결국 모두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한 물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 모두가사라지고 없어질질 것에 굳이 집착하고욕심낸다면면 그 인과(因果)로 인하여 괴로움이생긴다고 했다다.
그러므로 이 같은 근원의 자성(自性)을 살펴 보아하니, 이를 천진불(天眞佛) 즉, 이름하여 모두가 진짜 부처라는 말이다. 이 또한 마음을 깨친 상태에서 분별심(分別心) 없이 바라보는 것이니, 따라서 생사(生死)도 없고, 생멸(生滅)도 없으며, 고락(苦樂)도 없고 시비(是非)도 있을 수 없다. 이 같은 성품을 천진불(天眞佛)이라 이름한다.
이 세상의 모습이나 이 세상을 만드는 마음의 모양은, 인과(因果) 인연의 규칙대로 한 치오차 없이이 생겨나고 사라짐을 반복할 뿐인데, 거기에 집착하고 욕심을 냄으로써 즐거움에 의한 인과(因果)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즐거움도 괴로움도 결국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허깨비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득실(得失)과 고락(苦樂),시비(是非)야말로로 인과(因果)를 반복하는 귀찮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도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고,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과 절망을 이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진으로 인하여, 마을 전체가 함몰됨으로써 엄청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파묻혀서 아비규환(阿鼻叫喚)을 이루고 있다.
어떤 것이 파괴된다는 것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법칙에서 본다면 당연한 인과(因果) 과보(果報) 현상이다. 이루어졌으니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은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이로 인하여여 사람들의몸을 다쳐쳐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의 업(業)을 들여다본다면, 죽거나 다치거나 하여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지난 시간을 거치면서 몸과 마음을 통해 즐거움과 기쁨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 치 오차 없는 인과(因果) 인연의 필연(必然)에 의해 사고가 생기면서 고통을 겪게 되는 악연(惡緣)을 만나게 된다.
설사,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락(苦樂)의 악연(惡緣)을 짓지 않았음에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전생의 인연까지를 따져봐야 분명하게 그 원인을 알게 될 것이나, 이같이 몸과 마음을 통해 생기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는 몸과 마음 깊숙한 곳에 잠재적인 업장(業障)으로 숨어있다가 때가 되면 나타나게 된다.
업장(業障)이 두터운 사람은 고락(苦樂)의 업(業)이 그만큼 많이 오고 감으로 하여, 즐거운 일이나 기쁜 일이 많은 동시에, 괴로운 일이나 슬프고 불행한 일도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반대로 마음을 깨쳐서 업장(業障)이 전혀 없는 이는, 고락(苦樂)의 업(業) 또한 오고 갈 것이 없으므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사건 사고에 의해 고통과 불편함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정작 마음을 깨친 당사자는, 고통이나 괴로움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되니, 이는 바로 이 사람의 마음 근원인 자성 자체가 이미 천진불(天眞佛)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넘어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만약 지금 그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걱정 근심이 있다면, 이는 아직 인과(因果)의 과정에 머물러 마음을 깨치지 못한 상태로서, 지금도 허깨비 같은 그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걸려있으니, 이는 아직까지 쓸데없이 집착하거나,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 할 것이다.
그 어떤 일에도, 그 어떤 것에도 고락 시비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여서, 지금 당장 마음이 편해야 한다.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 중에 오늘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4화 마음을 통솔하는 방법
오음부운공거래 (五陰浮雲空去來)
삼독수포허출몰 (三毒水泡虛出沒)
오음의 뜬구름이 부질없이 가고 오며
삼독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한다.
‘오온(五蘊) 또는 오음(五陰)’이라고도 하며, 즉,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다섯 가지를 가리킨다.
색온(色蘊)은 형상(形相) 즉, 물질의 모양을 가리키고, 수온(受蘊)은 기욕(嗜慾) 즉, 고락(苦樂-즐거움과 괴로움)의 감정을 말하며, 상온(想蘊)은 의념(意念) 즉, 생각을 말하고, 행온(行蘊)은 업연(業緣) 즉, 움직임에 의한 만남의 인연을 뜻하며, 식온(識蘊)은 심령(心靈) 즉, 인식의 알아차림을 의미한다.
몸과 마음은 이렇게 오온(五蘊)에 의한 것으로, 아상(我相)을 일으켜 나라고 착각한다.
오온(五蘊), 또는 오음(五陰)은, 보이지 않게 쌓이고 쌓여서 업(業)과 업장(業障)을 이루어 악순환하며 반복에 반복을 계속하는데, 모래 위에 세운 사상누각과 같으니, 뜬구름이 부질없이 오고 가는 것처럼, 제대로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하며, 집착하고 욕심내어 스스로를 헷갈리게 하고, 스스로 힘들게 하니, 우이독경(牛耳讀經-쇠귀에 경읽기)이다.
또 삼독(三毒)은 탐진치(貪嗔痴-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의 세 가지 독을 말하는데, 탐욕이란 즐겁고, 기쁘고, 좋고, 행복한 것을 취하려는 욕심이다.
이러한 탐욕(貪慾)은 인과(因果)의 법칙에 의해, 취하거나 취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만큼, 괴롭고, 슬프고, 싫고, 불행한 과보(果報)를 낳게 되므로, 괴롭고 슬프고 싫고 불행함을 피하려고 또 다른 탐욕을 일으키며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러한 삼독심(三毒心)은 먼저, 나쁘고 싫은 것을 피하려고 좋고 맘에 드는 것을 원하게 되는데 이를 탐욕(貪慾)이라 칭한다.
또 이러한 욕심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져서 진심(嗔心) 즉, 화를 내게 되게 되는데, 이를 진심(嗔心)이라 이름한다. 그다음, 어떻게 하면 내 맘에 드는 것을 얻게 되는지를 곰곰이 궁리하게 되는데, 이는 인과(因果)를 모르는 무지의 얄팍한 소견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망상(妄想) 즉, 치심이라 이름한다.
이 같은 삼독심(三毒心)은 모두 인과(因果)의 과보(果報)에 걸림으로써,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고, 한번 즐거우면 한번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물거품과 같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헛됨의 연속으로서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뜬구름과 같고 물거품과 같은, 오온(五蘊)과 삼독심(三毒心)에서 벗어나려면, 첫째, 모든 일에 있어서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하는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감정을 얹지 않도록 항상 감정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둘째, 이러면 어쩌나 저러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근심을 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은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한 치 오차 없이 인연 지어지는 법이니,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미리 정해 놓거나 집착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셋째, 미리 마음을 정해놓지 말고, 내 마음에 맞추려고 하는 습관을 버리려면 먼저, 좋고 나쁜 분별심(分別心)을 갖지만 않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지니, 그러면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충실해질 것이고, 다음을 걱정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 근심이 끊이지 않는 것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아직 남아있다는 증거이니, 이는 인과(因果)의 법칙에 의해 그 과보(果報)를 받아 또다시 고통과 괴로움을 면할 수 없게 될 터이므로, 늘 마음을 살펴야 한다.
그렇더라도 마음을 잘 통솔하기 어렵다면, 이때는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밖에는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시작하고 볼 것이다.
[불교신문 3804호/2024년1월23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