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VER STORY | 혁신·기업도시 ‘세종’에 울다 05] |
“이러다 ‘세종시 유탄’ 맞는다카이~” TK민심 세종시 수정안에 부글부글 …“수도권 이익 위해 희생 강요 묵과 안 해” |
대구=박재일 영남일보 기자 park11@yeongnam.com |
세종시를 바라보는 대구·경북 여론이 심상치 않다. 시민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여론 주도층과 지역 언론에서는 ‘세종시 유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고위 관계자의 토로가 이를 함축한다. “우리는 지방이란 열악한 조건 속에 맨발로 뛰며 기업과 외자 유치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 유치를 도와준 적도 없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나서서 기업들보고 충청권으로 가라고 하면, 이건 게임이 되지 않는다.” 대구-구미-포항에 걸친 10개 지구 34km2에 달하는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은 지역의 숙원 사업으로, 이를 위한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이 공식 출범한 것은 지난 2008년 8월. 하지만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의향서(MOU)를 맺은 기업이 몇몇 있지만, 공식적으로 입주를 못 박은 기업이나 외국 자본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는 세종시 땅값을 원형지 분양 방식을 동원해 3.3㎡당 36만~40만원 선으로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의 한 축인 대구혁신도시(공공기관 이전 및 첨단의료복합단지 예정부지) 조성원가가 287만원으로 추산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이처럼 열악한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의 투자 조건은 세종시 특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세종시, 대구·경북 프로젝트와 중첩 세종시 정책을 둘러싸고 대구·경북의 반발이 커진다는 소식에 정부는 의아한 시선을 보낸다. “당사자도 아닌 대구·경북이 왜?”라는 것이다. 대구시와 경북도 고위 관계자들은 “‘수정안을 주도하는 청와대나 국무총리실로부터 대구·경북에 무슨 피해가 있느냐. 있다면 다른 지원을 하면 될 것 아니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신호를 계속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대구·경북 지역 사람들은 지난해 말 행정기관 이전을 포기하는 세종시 수정안이 제기될 때만 해도 대구·경북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지는 고개를 갸웃하는 분위기였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각자 갈 길을 가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론은 세종시 수정안이 구체화되자 옹색해졌다. 아무리 살펴봐도 좁은 국토에다 한정된 대기업군, 한쪽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국가적 자원을 감안하면 세종시 특혜(싼값의 용지 공급,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의 유치)는 다른 지역, 특히 대구·경북의 희망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대구 달성군)가 원칙과 약속을 강조하면서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
전국 꼴찌 대구의 위기감
대구·경북 지역의 불만과 위기감 근저에는 대구의 열악한 경제사정이 깔려 있다. 이달 초 국세청이 발표한 전국 16개 시·도의 근로자 평균급여 통계(2008년)에서 대구는 2114만원으로 전국 최하위(전국 평균 2517만원)였다. 대구는 또 최근 14년간 지역 내 1인당 총생산에서도 16개 시·도 중 꼴찌를 도맡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구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국가산업단지가 없는 전국 유일의 광역자치단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삼성, 현대, LG 같은 대기업이 입주할 만한 땅이 없었고, 꿈도 꾸지 못했다. 그만큼 일자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구는 2009년 어렵사리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받아 이제 선만 그어놓은 상태다. 앞으로 ‘기업유치’라는 절박한 과제를 풀어야 한다.
지난달 20일 세종시 수정안 반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구·경북을 찾은 정운찬 국무총리도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비롯한 지역대표 50여 명과 면담한 자리에서 “대구·경북 지역이 이 정도로 어려운 줄 몰랐다”고 말했을 정도다.
1월15일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대구시청을 방문, 지역 인사들과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현안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국책사업으로 치열한 경쟁 끝에 지난해 8월 대구와 충북 오송이 공동 선정됐다.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전 건설교통부 차관보)은 이 자리에서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을 위한 정부 심사평가에서 대구가 1등을 하고도, 3등을 한 충북 오송(2등은 강원 원주)과 공동 선정돼 섭섭하고 의아했는데, 세종시 수정안이 나오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며 “정부가 국책사업을 선정해놓고 세종시 일원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니 바이오벨트니 하면서 유사한 것들을 집어넣으려는데 이러면 대구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반쪽짜리가 된다”고 공격했다. 홍 원장은 “전 장관도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에 이 같은 문제점을 바로 건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단순한 지역 민심을 떠나 대구·경북 지역의 전문가들이 세종시 유탄을 우려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정부는 세종시가 ‘지방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는 세종시와 대구·경북의 성장동력 프로그램이 거의 중첩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종시정부지원협의회가 공식적으로 밝힌 세종시를 중심으로 한 ‘충청권 C벨트 구상’이다. 이는 대전 대덕단지 → 충남 세종시 →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 → 오창과학산업단지를 C자형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반경 25km 이내에 걸쳐 있다.
이 같은 벨트는 대구·경북이 희망해온 내륙형 연구 중심의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중첩된다. 정부는 C벨트가 이른바 K벨트로 확장돼 대구·경북도 포함된다고 하지만, 수도권을 배후로 한 충청권에 이런 강력한 벨트가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수도권에서 먼 대구·경북까지는 올 것이 없다.
실제로 한때 세종시로 갈 것으로 알려졌다가 빠진 삼성전자의 바이오시밀러(특허 만료된 복제약 제조)도 대구시가 유치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 또 모 그룹 제약사도 현지를 답사하는 등 대구 진출에 상당히 적극적이었지만, 세종시 논란이 가열되면서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다고 대구시 관계자들은 전한다.
세종시에 진출하기로 한 삼성의 LED 산업도 마찬가지다. 대구시는 지난해 정부 요로에 삼성 LED 사업 유치를 희망했지만 결국 본사는 수원으로 결론이 났고, 제3공장은 이번에 세종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경구 교수(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는 “종전의 행정중심 복합도시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발하기로 했지만,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각종 프로젝트를 동시에 발주, 2015년까지 집약적으로 개발하기로 하고 인구도 17만에서 50만명(25만 일자리)로 늘렸다”며 “집약적 개발로 충청권을 제외한 타 지역은 당분간 지역개발의 순위에서 크게 뒤처질 가능성이 높고, 고급인력의 이탈도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종시에는 더 이상 기업에 줄 땅이 없다고 하는 것도 허구라고 반박한다. 세종시를 중심으로 충청권 벨트에 강력한 기초 인프라가 깔린다면, 향후 그 주변으로 기업은 오지 말라고 해도 갈 것이고 땅은 배후에 널렸다는 공박이다. 2월3일 대구시의회는 김범일 시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세종시 주제를 놓고 의원들과 1대1 격론을 벌였다. 정해용 의원(한나라당 대구 동구)은 “김 시장은 세종시 수정안의 부당성과 형평성 문제를 주장하다 정부안 발표 이후 냉정하게 실익을 챙기자는 쪽으로 대응방식을 바꾸었다”며 “시장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고 공박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이 지나치게 몸을 낮춘다는 지적이다.
전면투쟁론에서 실익론까지 미묘한 차이 김 시장은 이에 대해 “정부안이 처음 제기됐을 때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비롯해 지역 프로젝트가 세종시의 기능과 중복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일부는 반영됐다”며 “단체장으로서 선동적이고 과격한 대응은 지역의 이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영남권 신공항(경남 밀양)을 비롯해 국가과학산업단지 내 대기업 유치 등 실익을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종시를 놓고 대구·경북 내 여론 주도층의 대응방식은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려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실익론’에서부터 ‘전면 투쟁론’까지 주장이 엇갈리는 것. 2월9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대구시의회 주최로 열린 ‘정부의 세종시 수정계획에 따른 대구시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김기혁 교수(계명대)는 “2003년 이후 서울과 수도권, 충청권 인구는 늘고 있지만 대구·경북만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인구가 줄고(10만명가량 감소) 있다”며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재훈 교수(영남대)도 “세종시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같은 내륙으로 프로젝트가 중첩되는 대구·경북”이라며 “수정안은 서울의 피해 없이 충청권을 달래려는 일종의 꼼수”라고 주장했다. 이철우 교수(경북대)는 아예 “지리적 입지란 측면에서 보면 세종시는 애초에 국토 중심의 행정도시에 적합하다고 선정된 곳이다. 경제과학도시로 선정된 곳이 아니다”며 “공동묘지 부지를 주택단지로 바꾸겠다는 것과 같은 꼴”이라고 공박했다. 실익론도 대두된다. 어차피 세종시 문제는 지역에서 떠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만큼 실익이나 챙기자는 뜻이다. 양명모 대구시의원(한나라당 대구 북구)은 “정치적으로 과잉 대응하기보다는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비롯한 국책사업의 밑그림을 잘 그리고, 또 지역이 희망하는 대안을 구체적으로 추려 정부에 체계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COVER STORY | 혁신·기업도시 ‘세종’에 울다 06] |
인프라 완비…21C 해양수도로 순항 사전 작업과 적극성으로 한 발 앞서 출발 … 금융·영화 클러스터 터잡기 한창 |
부산=이설 기자 snow@donga.com |
〈르포〉 공사 진척률 1위 ‘부산 혁신 도시’ 혁신도시추진단에 따르면, 전국 혁신도시 10곳 가운데 부산시의 공사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르다. 엎치락뒤치락 간발의 차이도 아니다. 두 번째로 속도가 빠른 제주는 49.5%, 꼴찌인 충북은 3%. 진척률 78.6%인 부산은 ‘학실하고 하끈하게’ 1위를 기록했다. 부산시 혁신도시건설팀 정완식 팀장은 “이전기관과 부지 선정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시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은 모두 13곳. 이들은 금융 클러스터인 문현 지구, 영화 클러스터인 센텀 지구, 해양 클러스터인 동삼 지구에 나누어 입주한다. 대연 지구는 공동 주거지인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 회 한 접시 먹고 시 직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나섰다.
금융 클러스터 | 문현 혁신지구
2월10일 부산에는 종일 비가 내렸다. 오전 11시쯤 빗방울이 떨어지나 싶더니 금세 빗줄기가 굵어졌다. 부산의 겨울 날씨치곤 드물게 사흘째 비라고 했다. 그럼에도 혁신도시건설팀 직원들은 “현장을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혁신도시 일을 하면서 이전기관 직원들과 교류할 일이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실무자가 지역 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한마디로 부산 혁신도시는 시작부터 다릅니다. 다른 지역들은 허허벌판에 ‘거대 신도시’를 짓는 데 반해, 부산은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에 건물만 올리면 되는 상황이죠.” 첫 행선지인 문현 지구로 향하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구정모 주무관은 부산 혁신도시의 순조로운 출발을 ‘타이밍’의 공으로 돌렸다. 혁신도시 말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부산시는 비슷한 사업을 구상했다. 일명 시를 먹여 살릴 사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10대 비전사업’이 그것. 이 사업을 준비하던 중 혁신도시 계획이 발표됐고, 부산시는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구 주무관이 말을 이었다. “부산시는 해양, 영화 등 부산시에 맞는 콘셉트를 잡고 부지를 마련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혁신도시 계획이 발표돼 추진 중이던 사업과 연계할 수 있었고요. 클러스터를 조성하려면 입주기관을 유치해야 하는데, 어차피 내려와야 할 공공기관이 생겨 수고를 덜 수 있었죠. 강제성이 없으면 공공기관은 절대 내려오려 하지 않아요.” 운때만 맞았던 것은 아니다. 부산시의 사전 전략과 적극성도 한몫했다. 2005년 발표 당시에는 하나의 부지에 혁신도시를 일괄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부지가 없고 ‘10대 비전사업’에 따라 소규모 부지를 마련해둔 부산시로서는 공공기관을 분산 이전하는 편이 유리했다. 그래서 부산시는 정부에 ‘복수의 혁신도시를 만들게 해달라’고 건의했고, 4개의 핵심지구를 조성할 수 있었다. 부지를 한눈에 담기 위해 근처 아파트 옥상에 올랐다. 손에 들린 조감도 속의 도쿄 롯폰기힐스를 닮은 전경 대신, 초목만 무성한 가운데 일부 부지에서 터 닦기 작업이 한창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들어설 4개(미정)의 건물은 올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문현 지구에 들어설 공공기관은 모두 6곳.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대한주택보증㈜ 등 금융기관 4곳과 한국남부발전㈜, 한국청소년상담원 등 기타 기관 2곳이다. 부산은행, 한국은행, 기술보증기금 등 유관기관 3곳도 입주한다. 문현 지구의 특징은 63층짜리 고층빌딩에 공공기관 6곳이 한꺼번에 둥지를 튼다는 것. 서영석 주무관은 “이곳은 국제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 할 문현 지구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역 결과, 문현 지구는 개별 기관을 들이는 것보다 복합 개발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이 결과를 들어 각 기관을 설득했죠. 금융기관들은 보안문제로 반대가 심했지만, 매듭이 잘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전기관 측의 시각은 달랐다. 한국자산관리공사 경영지원팀 이상훈 과장은 “도시공사가 일을 진행하는 관계로 기관들은 계획을 주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초고층빌딩에 들어가는 것도 부산시가 회유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 혁신도시 사업의 상당 부분은 부산도시공사가 맡아 진행하고 있다. “초고층빌딩이 효율적이라는 용역 결과도 있었고, 단독 사옥을 짓는 게 낫다는 결과도 있었어요. 부산시의 원래 계획에 따라 고층빌딩에 입주하기로 했지만 다른 지원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양가도 비싼 편이죠. 정부 지침은 3.3㎡당 230만3000원인데, 현재 사업시행자가 제시한 분양가는 약 300만원입니다.” 이 빌딩의 착공 예정시점은 올해 9월. 부산시와 이전기관 관계자들은 사옥관리협의회를 구성해 면적, 층수, 분양가 등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
영화 클러스터 | 센텀 혁신지구
외지인은 물론, 부산 사람들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는 곳. 해운대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다. 슬리퍼를 끌고 나가면 바로 해운대 앞바다가 펼쳐지는 마린시티는 초고층빌딩이 빼곡한 고급 주거단지다. 일부 스위트층은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최고 분양가를 기록했다. 바로 옆 동네인 센텀시티는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작은 도시다. 신설 학교와 신세계·롯데 백화점, 영화관 등이 단지 안에 모여 있다. 이전기관 중 상당수도 “이왕 갈 거면 센텀 지구로 가겠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센텀 지구에 입주하는 공공기관은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 등 3곳. 유관기관으로는 영화후반작업시설, 문화콘텐츠컴플렉스, 영상센터가 들어온다. 센텀 지구 부지는 도로변과 맞닿아 있다. 초고층빌딩이 들어서는 문현 지구와 달리, 넓지만 나지막한 건물 4개가 일렬로 배치된다. 현재 완공된 건물은 영화후반작업시설 하나. 이전기관이 들어설 건물은 올해 설계를 마치고 하반기쯤 착공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유명하잖아요. 한국 영화 40% 이상이 부산에서 촬영되고요. 이곳을 영화 제작과 편집 등의 후반작업, 관람, 페스티벌 개최까지 가능한 영화 인프라도시로 만들 계획입니다. 해운대라는 입지 조건도 최고잖아요.”
영화 클러스터의 개념을 묻자 돌아온 서 주무관의 대답이다. 최근 영화 ‘해운대’는 물론 ‘주유소 습격사건’ ‘부산’, 드라마 ‘친구’ 등 부산에서 촬영한 작품이 유독 많았는데, 알고 보니 이는 부산영상위원회의 공이 컸다. 부산은 바지런히 촬영현장을 제공하는 한편 ‘제니스엔터테인먼트’ ‘한류웍스’ 등의 기업 유치, ‘아시안필름마켓’ ‘부산콘텐츠마켓’ 등의 페스티벌 개최로 영화도시 이미지를 굳히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전기관 직원들은 “산업을 끌어오려면 다른 지원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화와 게임 관련 기관 3개가 부산에 내려오는데, 파급효과가 의심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다음은 영화진흥위원회 경영관리부 김상철 차장의 말이다.
“콘텐츠 관련 공공기관이 모두 부산으로 내려오는 건 아니에요. 콘텐츠진흥원, 문화예술진흥원 등은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죠. 물론 부산이 미래영상도시로서 잠재력은 있지만,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제작업체 등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해양 클러스터 | 동삼 혁신지구
동삼 지구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해운대에서 차로 40분 넘게 꼬불꼬불 비탈길과 산길을 달렸다. 동삼 지구가 들어설 부지는 영도섬의 매립지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영도섬에 해양 관련 대부분의 기관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여기는 대형 선박들이 머무는 묘박지예요. 주차비를 내는 것처럼 바다 위에 서 있을 때도 돈을 내야 하죠. 이 아래쪽에는 교과서에 나온 동삼패총박물관이 있고요.”
차로 5분 거리인 태종대를 한 바퀴 둘러 동삼 지구 부지로 갔다. 이곳은 부산스러운 향기가 유독 짙게 밴 곳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에는 정박 중인 대형 화물선들이 진풍경을 연출했고, 비와 섞인 바람에서는 짠 내가 묻어났다.
이곳은 61만5932㎡ 규모로 혁신지구 가운데 가장 넓다. 이전기관과 관련기관도 압도적으로 많다. 부산해양경찰서, 크루즈터미널, 부산해사고등학교 등 기존시설 3개, 한국해양연구원,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국립해양조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공공기관 4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한국해양대학교, 국립해양박물관 등 계획시설 6개가 더해져 모두 13개의 기관이 들어서게 된다.
부지에 들어서니 바삐 움직이는 레미콘과 크레인에 눈이 어지럽다. 이전기관이 많아 공사 속도도 제각각. 가장 많이 올라간 건물은 2, 3층 높이고 대부분은 터 닦기 작업 중이었다. 매립지라 그런지 진흙에 발이 푹푹 빠졌다. 이곳은 국유지라서 다른 지구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부산도시공사 혁신도시2팀 우동권 부장은 “이곳은 해양대의 인력이 해양연구원에서 연구하고 그 결과를 해양과학기술산업에 활용하는, 산·학·연이 이뤄지는 해양 관련 산업의 집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다른 곳과 달리 동삼 지구에는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이 꽤 있다. 25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공애자(77) 씨는 “동네가 좋아진다는데 뭐가 어떻게 바뀌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공사를 시작한 뒤로 바다가 안 보여 안 좋다”고 했다. 동삼 지구대 우방식(37) 씨도 “해 뜨는 게 안 보여 아쉽다. 나도 그렇지만, 주민들 역시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동주거지 | 대연 혁신지구
원래는 다른 지역에 주거지를 조성하려고 했는데, 기관 협의체에서 강하게 요구해 이 부지를 내주게 됐어요. 요구조건을 들어달라며 방송카메라까지 들고 부산시장실로 쳐들어오기도 했죠. 원하는 부지를 내줬더니 또 이왕이면 브랜드 아파트를 지어달라고 하더군요.”(부산도시공사 관계자)
대연은 혁신지구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곳에는 산업 클러스터가 아닌, 공동 주거지가 들어선다. 대우건설, 현대건설이 부산도시공사와 컨소시엄 형태로 25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것. 직원들로서는 주거가 가장 실질적인 고민이다. 그런 만큼 더 좋은 조건을 바라는 기관과 시공을 책임진 부산시 사이에 밀고 당기기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경성대와 부경대 학생이 모여드는 일명 ‘경대 앞’은 서울의 신촌쯤 된다. 대연 지구는 그 바로 옆에 자리해 있다. 문현 지구, 센텀 지구 등과 전철로 연결돼 교통 조건도 좋다. 구 주무관은 “분양가는 800만~900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슷한 아파트 분양가의 80% 수준으로, 지역민들이 ‘알짜배기 땅을 그렇게 내주고,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이 무슨 점령군이냐’고 할 정도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분양한 뒤 잔여분은 일반분양할 계획이다. 입주 기관 직원들의 공동주거지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부산 전체 시세에 비해 그렇게 저렴하진 않다고 봐요. 서울하고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사실 서울에서도 그 가격 안 되는 곳에 사는 분들이 많거든요. 부산에 집을 사려면 재테크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데, 추이를 좀 봐야겠어요.”(영화진흥위원회 노조 관계자)
“3년 뒤의 일이라 혼자 내려갈지, 가족과 함께 내려갈지, 아이의 학교 문제는 어떻게 바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래서 직원들도 그때 가봐야 주거지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분위기이고요.”(국립해양조사원 백공구 주무관)
부산시 관계자들의 말투에는 ‘그래도 10개 혁신도시 중에는 부산이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진행속도도 빠르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전이 거의 확실시되자, 13개 이전기관 사이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퍼졌다는 것. 정부에서 이전 작업이 빠른 기관장에게 인사 인센티브를 준다는 방침을 발표한 뒤 일부 기관은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산시와 이전기관의 속내는 다른 면이 많다. 정 팀장과 한 이전기관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2012년 완공 목표가 어쩌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정부 지침에 따라 이전기관 직원들과 스킨십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초청해 크루즈를 타거나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등 행사를 개최하고, 기관 직원들이 이곳 고등학교에서 특강도 했죠. 물론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 배우자 직장 알선 등 요구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겠지만, 차근히 추진하면 부산 지역을 살리는 혁신도시 건립이 가능하리라 봅니다.”(정 팀장)
“지금은 거의 결정이 난 분위기지만 혁신도시는 여러 번 재검토된 바 있어요. 정부의 정책방향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고, 분양가와 복지 문제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죠. 내려가야 한다면 가겠지만, 미래의 일인 만큼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한 이전기관 관계자)
[COVER STORY | 혁신·기업도시 ‘세종’에 울다 07] |
공정률 4~5%…자칫 반쪽짜리 될라 아직도 수목 제거 등 기본 작업뿐 … 이전 기관 수 줄어들 가능성도 높아 |
충북 음성=이민우 중부매일 기자 minu@jbnews.com |
〈르포〉 공사 진척률 꼴찌 ‘충북 혁신도시’
충북 혁신도시 공정률은 4~5%. 10개 혁신도시 중 꼴찌다. 민간 기업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혁신 대상 도시’ ‘부실 도시’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현장은 어떨까. 혁신도시 조성 예정지인 충북 진천군 덕산면, 음성군 맹동면 현장에 다녀왔다. 2월10일 오전 11시 충북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 일대. 692만4000㎡의 이 부지는 충북 혁신도시 1공구 구간이다. 2012년 말까지 이전 공공기관의 직원 4만2000여 명이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대형 축사와 가옥들이 빚은 황량한 풍경. 방문한 날은 비까지 내려 분위기가 더 으스스했다. 이곳은 2008년 9월 착공했지만 지장물 철거와 수목 제거, 문화재 시굴조사 등 기본 작업만 마쳤다. 터다지기나 도로 건설 등 본격적인 작업은 시작도 못한 상태. 이처럼 공정이 더딘 까닭은 뭘까. 여기엔 여러 이유가 얽혀 있다. 혁신도시 지구 선정에 대한 정부와 충북의 이견, 보상단가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 분묘와 지장물 철거를 둘러싼 주민 간 갈등 등이 그동안 주요 걸림돌이었는데 이런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는 5월 토지·지장물 조사, 6월 보상계획 공고, 10월 보상 개시를 거쳐 남은 부지를 편입해야 한다. 문화재 시굴조사도 60%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아 속도를 낼 수 없다. 지난해 7월 순차적으로 착공한 2~5공구도 3%대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따르면 전북 혁신도시는 1공구 공정률이 5.2%이고, 2~5공구는 1%도 안 된다. 경남 혁신도시는 1공구 5.2%, 3공구 2.6%, 4공구 1% 수준이다. 대구, 강원, 울산도 전체 공정률이 6∼7%에 머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전 기관과 부지 분양을 체결한 혁신도시는 한 곳도 없다. 민간 사업자들은 혁신도시가 제대로 조성될지 의문을 품고 있는 데다 경기도 나빠 투자를 꺼리고 있다.
당초 12곳에서 10곳만 내려올 수도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서울 잔류 문제다. 충북 혁신도시는 기관들의 서울 잔류 방침 때문에 골치를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으로서는 많은 곳이 내려올수록 환영인데 기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미 확정된 이전기관의 수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곳으로 이전하는 기관 12곳 중 1곳은 폐지가 결정됐고, 2곳은 타 혁신도시 이전 대상 기관과 통합돼 이전기관이 10개밖에 안 될 수도 있다. 충북으로 이전이 확정된 기관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소비자보호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기술표준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법무연수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고용정보원으로 모두 10곳이다. 이에 대해 충북혁신도시사업단 김지훈 차장은 “반쪽짜리 혁신도시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구별 시공업체와 협의해 차질 없이 공정을 추진하도록 독려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원안 수정 추진의 영향도 크다.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자 혁신도시 지역의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혁신도시건설촉진국회의원 모임’은 “혁신도시는 공공기관과 연관된 민간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동반 이주해 시너지 효과를 거둬야 광역경제권의 성장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세종시로 이전하는 기업, 연구소, 대학에 주어지는 값싼 토지와 무차별적 세제혜택 때문에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건설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반발에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여러 지원책을 제시했다. 주·간선도로, 상·하수도 등 기초 인프라를 공급하고, 미개발 상태인 원형지 공급을 확대하며, 분양가를 14% 인하하고, 세종시와 동일한 수준의 세제를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지자체의 걱정은 여전하다. |
원형지 공급할 만한 땅 적어
먼저 혁신도시에는 원형지로 공급할 만한 땅이 적다. 충북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이전용지(85만6000㎡)와 산·학·연 혁신클러스터용지(19만5000㎡)를 비롯해 주택건설용지(148만3000㎡), 공원·녹지·도로(297만3000㎡) 등이 전부다. 원형지는 규모가 커야만 효과가 있다. 그런데 혁신도시는 물량이 적고 조성 중인 부지 대부분은 이미 용도가 결정된 상태라, 새로운 물량을 찾기도 쉽지 않다.
또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혁신도시의 자족용지를 244만㎡에서 338만㎡로 38% 확대해 분양가를 14%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지난해 9월 지자체와 함께 마련한 혁신도시 발전방안을 확정한 것일 뿐 추가적인 인하조치가 아니다. 이 자족시설용지가 원형지 가능 부지로 검토될 수도 있지만, 혁신도시별로는 33만8000㎡에 불과한 데다 주변 지역과의 조화나 도시개발계획, 입주 기업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 검토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혁신도시대책위원회 임윤빈 공동위원장(음성혁신도시주민대책위원장)은 “충북 혁신도시는 특수목적고등학교 등 우수 학교 유치와 선진도시 기법의 도입, 정주 여건 및 기업환경 개선 등 다른 혁신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원 계획이 전혀 없다. 이전 기관의 토지매입을 신속히 완료하고, 협력 민간 기업의 동반 이전을 유도하는 등 기업투자 유치대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