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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진실 존 케이 지음 에코리브르 / 2008년 8월 / 517쪽 / 23,000원
▣ 저자 존 케이 영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다.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 너필드 칼리지에서 제임스 멀리스(199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사사했다. 스물한 살에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며, 1986년 런던경영대학원 경제학과장으로 부임해 경제학을 바탕으로 한 경영학 이론을 탐구했다. 1996년 옥스퍼드 대학교에 새로 설립된 사이드경영대학원 초대 학장으로 부임했으며 경영학자로서는 최초로 영국왕립학회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99년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고정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 역자 홍기훈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알래스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해양연구원 연구원이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역사, 지리, 경제 이론 등을 넘나들면서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생겨나게 된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분석한다. 부국들을 분석하면서 존 케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오랜 시간 진행되어온 경제의 진화다. 그는 시장경제의 역사에서 새로운 기계를 발명한 영웅적인 인물들은 있었지만 그 어떤 지도자도 경제제도의 구조를 규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농업 수립, 대중시장 생성, 은행과 보험 개발, 기업 조직 등은 경제제도, 사회적 발달, 기술적 혁신의 공진화의 한 단계였으며, 이것은 선형적 원인이 없기 때문에 각각의 개발의 끈은 상호 지원하기도 하고 동시에 필요로 하는 공진화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생산적인 경제와 부국 출현의 공통적인 배경이었다. 따라서 이로부터 얻은 교훈들, 즉 시장제도의 진화, 시장제도가 정치적 상황에 짜 맞추어져야 할 필요성, 경제 발전에서 다원주의의 중심역할은 이 책에서 반복되는 주제다.
이 책의 1부는 진화의 과정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된다. 하나는 부국들의 사회가 어떻게 다원화로 진행해 왔는가를 역사적 · 지리적 배경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세기에 걸쳐 부를 거머쥔 나라들이 일궈낸 가장 중요한 제도들의 진화를 추적한다.
첫 번째 다원화의 진행과정 추적은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되어 식민지 개척시대로 이어지는데, 당시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정착은 오늘날의 미국 상황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제도의 진화 추적은 초기 조건의 차이가 부국과 빈국을 가르는 배경이 되었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제도들의 발달과 경제 이론의 역사가 2부에서 4부까지 다루어지며, 마지막 5부에서는 빈국이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와 경제개발 시행자들의 자만을 줄어들게 만든 경제학의 한계를 다룬다.
경제에 관한 대중적이고 정치적인 인식의 문제점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이 ‘시장의 진실’로 규정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 책은 미국 비즈니스 모델에 포함된, 그리고 정치가와 기업가가 선호하는 과도하게 단순한 시장에 관한 해석을 경계하며, 실제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제도들의 네트워크를 이해시키고자 한다. 경제 분야의 수많은 분야가 다루어지기 때문에 경제학 이론서로 읽힐 수 있고, 세계 경제 발전사나 국가 경제의 성장 조건들에 관한 분석서로 접근할 수도 있는 이 책은 한 국가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맥락과 그 경제적 성과 사이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경제정책에 대한 안목과 더불어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틀도 함께 제공해준다.
▣ 차례
제1부 이슈들 시장의 승리 사람들 부국은 어떻게 부유해졌는가
제2부 시스템의 구조 거래와 규범 생산과 교환 중앙계획 자생적 질서
제3부 완전경쟁시장 경쟁시장 위험시장 환시장 일반균형
제4부 시장에 관한 진실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그 이후 합리성과 적응성 현실에서의 위험 협동 지식경제
제5부 어떻게 그것이 모두 함께 작동하는가 빈국은 언제까지나 가난하다 누가 무엇을 갖는가 미국 비즈니스 모델
시장의 진실 존 케이 지음 에코리브르 / 2008년 8월 / 517쪽 / 23,000원
제1부 이슈들
시장의 승리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고 가장 파멸적일 뻔했던 전쟁 - 소련에 대한 냉전-에서 총 한 방 쏘지 않고 승리했다. 전장은 ‘경제’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공표함으로써 미국 승전의 승리주의를 널리 알렸다. 그러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1999년 미국 자본주의는 금융 역사상 황당하기 짝이 없는 최대의 투기 거품에 걸려들었다. 그 뒤 주식가치의 하락으로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기업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다. 새로운 천 년이 밝아오자 역사의 종말은 오히려 더 멀어져갔다. 국제관계는 새로운 복잡성을 띠고, 선과 악의 단순한 구분이 경제, 이념, 종교, 정치의 복잡한 혼합물로 변했다. 러시아의 생활수준은 공산 치하에서의 비참한 수준보다도 더 떨어졌고 민주주의와 시장에 대한 가장 악의적이고 위협적인 반대는 시장경제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에 활력을 주는 가치들까지 거부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시장의 승리는 사회적 · 정치적 · 문화적 정황에서 작용하는 제도의 승리다. 그리고 그 정황은 결과론이 아니고 시장경제의 냉혹한 현실에 의한 개선이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러시아는 효과적인 체제를 수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 성능이 국민과 천연자원의 잠재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장 경제는 경제체제와 정치 · 문화의 공진화(共進化)라는 독특한 과정의 산물이다. 이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위대한 통찰력은 분업의 출현을 규명한 것이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제품들은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기업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개인, 기업, 국가는 각자의 독특한 역량을 전문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는 기술과 조직적인 혁신의 끊임없는 진전 또한 중요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규제된 다원주의’일 것이다. 규제된 다원주의란 시장경제의 진화과정에서 실패한 대부분의 실험들은 소멸되고, 성공적인 소수의 것들만 빠르게 복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자연도태의 끊임없는 돌연변이 과정에서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국은 어떻게 부유해졌는가 현대 경제체제는 복잡하고, 수천 년간 진화해온 제도들과 상호 작용한다.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미토콘드리아 이브로부터 진화해온 자손들은 약 4만 년 전에 유럽으로 진출해 네안데르탈인을 축출했다. 크로마뇽인은 무역을 하고 있었고 도구를 사용하고 발달시켰다. 도구는 농업을 발달시켰다. 비옥한 삼각주였던 메소포타미아에서 8000년에서 1만 년 전 사이에 농업이 시작되었다. 농업은 땅과 동물에 대한 소유권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권리들은 성문화되어야 했으며, 그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제도들은 더 나은 기술혁신의 기회를 창출했다. 곡물의 선택적인 품종개량과 동물의 가축화는 종자와 동물의 소유권으로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과 제도들은 발생지로부터 점차 멀리 퍼져나가게 되었는데, 농경은 남북보다는 기후 변화가 더 작은 동서 방향으로 더 쉽게 퍼져나갔다. 오늘날 부국들은 1만 년 전의 메소포타미아와 엇비슷한 온대기후대에 위치해 있다.
현대 경제생활로 진화하는 단계는 유럽에서 일어났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생산과 무역을 체계화했고 사업과 경영 기법도 개발했다. 아테네의 고대 시장-경쟁적인 구매자가 판매자를 만나던 물리적인 장소-은 공공설비였고, 상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가 마련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정치학의 개념을 창안했다. 그로 인해 시민들은 자연적인 세계와 사회 조직의 구조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신은 암흑시대 동안 정지해 있다가 중세기에 다시 살아났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는 다원주의와 미술, 건축, 문학에서의 실험으로 특징지어진다. 다원주의와 실험은 경제 조직과 제도, 새로운 모험사업에도 확장되었다. 보험시장과 자본시장이 발생했고, 이와 함께 권리 증서로써 상품을 교환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개발되었다. 이것이 현대 증권시장의 시초다. 무역회사나 은행과 마찬가지로 증권시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개인들과 그 기업을 분리하도록 만들었다.
르네상스 다음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경제제도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기존의 사고와 관례에 대한 도전은 검소하고 근면한 도덕성을 창출하게 되었고, 기술과 제도의 동시적 진화를 야기했다. 이로써 시장경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17세기와 18세기에 영국과 네덜란드는 주요 무역 국가가 되었다. 에스파냐 식민주의자들은 금을 찾아 나선 군인들이었으나, 영국과 네덜란드는 주로 동인도회사와 통합동인도회사를 통해 식민지 정책을 펼쳤다. 그 목적은 상업이었다. 이주자들은 그들이 떠나온 나라의 기술과 경제제도를 가져왔다. 종파심이 강한 프로테스탄트들은 근면한 정신과 개인의 총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식민지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과 델라웨어 계곡의 퀘이커교도들은 아메리카 공화국을 건설하고 미국 경제개발의 토대가 된 경제제도를 발전시킨 두 주요 그룹이다. 이들은 신생국가에서 영국 및 네덜란드와 유사한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제2부 경제 시스템의 구조
거래와 규범 경제 역사상 일자리란 통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 농업은 자신이 쓸 요량으로 시작되었으나 노예제도와 농노제가 탄생하면서 농부를 고용주에게 예속시켰다. 다른 노동자들은 귀족 가문에 속해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살며 일을 했다. 도제는 독립할 때까지 장인에게서 일을 배우고 같이 감독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직장생활은 개인생활과 분리되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정치와 사회의 특성을 바꾸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는 옳았다. 그러나 그는 직장의 경제력이 자본주가 아닌 임금을 받는 경영자들에 의해 행사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20세기 말에 와서 대기업의 임원 등 임금소득자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공동체에서 가장 돈을 많이 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와 같이 노동의 질은 노동이 행해지는 사회적 정황의 영향을 받게 된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나 네덜란드의 VOC(통합동인도회사) 같은 무역회사들이 현대 법인의 원조였다. 이 회사들은 식민지에서 비즈니스와 정부 두 가지 역할을 수행했고, 본국보다 더 큰 영토를 관리했다. 정부는 그들에게 운하나 철도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권한을 주고 자본 구조와 법인 경영법을 규정하는 법률로써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의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래서 현대적 의미의 유한책임법인 체제가 생성되었다. 주주들은 자신들이 출자한 금액만큼만 회사의 부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주주들이 임금을 받는 경영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대규모 조직에 투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자기 자본이 없는 기업가들이 기업을 운영할 수 있고, 부유한 개인들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도 기업에 개인 자본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이러한 기업들이 모든 산업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의 특성은 21세기에는 덜 분명하다. 과거에는 주주들이 공장을 구매하고 주주와 고용인 간의 구분이 뚜렷했으나 현대 회사의 주된 자산은 지식, 상표, 명성으로, 이것들은 고용인들의 머리와 손에 달려 있다.
중앙계획과 다원주의 스탈린 사후에 자유화를 시작한 니키타 후르쇼프는 미국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이오와의 프레리는 세계 최대의 옥수수 곡창이었다. 흐루쇼프는 눈이 닿는 데까지 펼쳐진 비옥한 토지를 바라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소련 농업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이후 소련 경작지의 상당 부분이 옥수수 농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에 따른 경제적 후퇴로 말미암아 흐루쇼프는 5년 후에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또 하나의 공산주의 대국인 중국은 훨씬 나빴다. 1957년,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을 선언했다. 1억 명 이상의 농민이 자치구에 살게 되었고, 시설 내에서 식량을 해결했으며, 철을 생산하도록 권장되었다. 후원에 설치한 용광로가 급격한 산업화의 관건이었다. 그런데 마오쩌둥은 파리, 모기, 쥐, 참새 등 ‘4대 해충’에 대해서도 전쟁을 선언했다. 용광로에 쓸 연료를 수집하고 참새를 겁주어 쫓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면서 대약진운동은 광대극에서 비극으로 가차없이 진행되었다. 농업생산은 붕괴되었고, 1960년대 초반 기근이 전국을 휩쓸었다.
흐루쇼프와 마오쩌둥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결정은 아니었다. 옥수수는 대규모의 식량문제를 해결해줄 대안이었다. 그러나 옥수수는 우크라이나에 적합한 곡물이 아니었다. 마오쩌둥 역시 중국 농업은 대규모 단위로 합리화되어야 하고, 철강 생산은 대규모 설비보다는 소단위로 생산되어야 한다고 올바르게 결정을 내렸다. 농업 생산의 집중과 철강 생산의 성장은 대부분의 부국에서 이루어낸 개발 양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의사결정은 중앙화·개인화되었으며,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시행되었다. 결말을 보고할 사람들은 아예 들으려 하지 않고 나쁜 소식을 전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보호하는 데 주력했고 강력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아주 천천히 질뿐이었다.
자생적 질서 생물학 바깥에서 다윈 이론의 중요성은 자생적 질서의 비상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는 설계 없는 질서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다. 스미스는 분업이 어떻게 경제성장-부의 ‘자연스러운 진전’-을 일으켰는지 기술했다. 그러나 ‘분업이 어떻게 조직되고 조정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스미스의 이러한 해석이 올바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은 좋은 질문을 제시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예를 들어 이해해보자.
슈퍼마켓에 갔을 때 각 계산대 입구에 여러 개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느 줄에 서야 할지 고민한 경우, 당신은 줄의 특성을 살펴볼 것이다. 몇 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들의 카트에는 물건이 가득 차 있는지, 카트에서 물건을 바로바로 내리는지. 이러한 관찰에 따라 대개 줄을 서게 되는데 혹은 그저 가장 가까운 줄에 합류하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어느 줄이 짧아 보이면, 행동주의자들은 그곳에 합류할 것이다. 이러한 자생적 질서는 누가 지시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자체 조직화의 체계는 개인적인 결정에 의해 나타나지만 이기적이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 개의 물건을 산 사람이 중간에 끼어드는 것을 기꺼이 용인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일부 슈퍼마켓에서는 별도의 줄을 만들어놓는다. 이러한 슈퍼마켓 경험에서 두 가지 진화 과정을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개별 구매 고객이 전체적인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인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슈퍼마켓이 다른 슈퍼마켓과의 경쟁 때문에 효율적으로 고객의 수요에 부응하는 기구-소량 구매자의 줄서기-를 채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조합하여 소우주적으로 시장경제가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제3부 완전경쟁시장
경쟁시장 완전경쟁시장이란 필수품 각각에 대해 매수자와 매도자가 워낙 많아서 이들 중 아무도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시장을 말한다. 그 예로 산레모 꽃시장을 들 수 있다. 산레모 시장은 이탈리아 상인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더불어 수만 송이 꽃이 매일 주인을 바꾼다. 이렇듯 겉보기에는 혼란스러우나 그 속에서 자생적인 질서가 매일 형성된다. 새벽에 수천 곳의 해안 농장에서 도착한 꽃들은 시장이 파하면 생산지의 수보다 더 많은 유럽 도시 전체로 이동해간다. 꼬리를 물고 도착하는 트럭에 실려 있는 꽃들은 개별 농장의 생산이며, 끊임없이 떠나가는 트럭에 실려 있는 꽃들은 개별 꽃가게의 수요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개별 거래에만 형성되지만, 공급과 수요를 맞추는 시장가격이라는 통상가격이 있다. 상인들은 만약 그들의 가격이 경쟁자들보다 높으면 많이 팔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오전이 끝나갈 무렵에는 모든 재고를 처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매일 재고물량과 수요의 정도를 판단한다. 또한 옆 가게의 상황도 판단한다. 산레모 시장의 자생적인 질서는 슈퍼마켓 줄서기의 자생적인 질서와 비슷하다. 슈퍼마켓에서 소수의 활동가가 있듯이 산레모에서도 노련한 상인들의 유사한 활동이 가격을 결정한다.
위험시장 초기 해상보험은 취약한 개인들이 자신들의 위험을 분산해 부담한 위험 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런던의 에드워드 로이드 커피하우스에서 개발되었다. 그로부터 수백 년 후, 1989년 9월 허리케인 휴고가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도시를 덮치자 총 90억 달러의 보험 청구액 중 20퍼센트가 로이드 보험시장에 직간접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더 큰 재난이 로이드 자사에 떨어졌다. 재보험 때문이었다. 보험자(혹은 보험회사)는 보통 그들의 위험 때문에 재보험을 든다. 재보험은 다른 보험자가 합의된 총액을 초과하는 청구액의 일부분을 충족시켜주겠다고 합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허리케인 휴고로 인한 청구액은 워낙 커서 단계적으로 처리되었다. 로이드회사에 청구된 금액은 건마다 15억 달러에 이르렀고, 대부분 한 보험회사에 청구되었다. 다른 보험회사에 과잉손실정책을 약정한 보험회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허리케인 휴고에 중복되게 보험계약을 한 셈이었던 것이다. 보험시장은 위험을 여러 사람에게 분산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몇몇 회사에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허리케인 휴고와 관련된 위험의 더욱 극적인 결과는 그 위험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기관-미국의 1차 보험회사들과 공공기관들-에서 위험을 잘 다루지 못하는 취약한 개인들로 이동되었다는 점이다. 재정기관은 위험에 내기를 거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재정시장에서는 은행 또는 증권회사들이 다루는 자산의 이동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형성하기 위해 시장을 만드는 일이 흔하다. 애널리스트들은 개별 주식에 대한 전망 보고서를 발표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경제 전망도 공공문서로 발표된다. 일부 거래자는 상대 거래자들의 활동을 특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사실일 수 있으나 대개는 그렇지 않다. 위험에 관한 모든 정보는 이미 연관된 주식가격에 반영되어 있다. 평균적으로 투자관리자들은 증권을 임의로 선택하는 것보다 기량이 뛰어나지는 않고, 그들의 과거 성적은 미래의 성공에 대한 불량한 지시자다.
일반균형 중앙계획자들은 자원을 바꾸어줌으로써 결핍이나 과잉을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계나 기업을 경영할 때 적용하는 방법이고, 소련 경제를 운영한 사람들이 늘 해온 방법이었다. 문제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곳에서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 몸의 근육을 움직이거나 평면맞춤 가구를 조립할 때 발견한다. 한 부분을 맞추는 것은 쉬우나, 모든 부분을 동시에 맞추는 것은 어렵다. 부국 시민들의 경제생활은 끊임없이 바뀐다. 과거의 질서로 오늘의 질서를 대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는 중요하다. 산레모 혹은 시카고 상업거래소에서 오늘 일어난 일은 어제 일어난 일과 다르고, 내일 일어날 일과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꽃시장이나 곡물시장이 작동하는 기구는 매일 변하기는 하지만 서서히 변한다. 복잡한 제도는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잡한 생물체들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진화한다. 이것이 정교한 시장제도를 기왕에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 수립하기 어려운 이유다.
제4부 시장에 관한 진실
합리성과 적응성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를 스미스의 ‘이기심론’으로 요약한다. ‘개인적 이익의 추구는 누적되고 보태어져서 사회 전반에 진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스미스는 이기적인 행동이 반드시 사회에 최선의 이익을 증진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은유의 목적은 관세가 없어졌음에도 상인들이 국산품을 계속 구매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이외의 다른 걸작인 《도덕감정론》에서 ‘동정심’이 사람의 행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러한 스미스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의견이 있다. 세계은행의 경제학자인 윌리엄 이스털리는 “무엇이 경제의 논리인가?”라고 묻고 “인도의 과부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고 수단의 젊은이들은 국가가 이슬람법에 관한 논쟁으로 갈려 있기 때문에 굶주리며, 이집트 농부는 두 번째 부인을 얻기 위해 토끼풀 초지를 매각한다”고 비유를 들었다. 그러나 극단적이고 보편적인 이기심과 이타심만으로 사람의 행동을 규정지을 수는 없다. 즉, 복수의 목표를 저울질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기는 어렵다.
행동은 그들이 존재하는 환경의 산물이다. 경제적 행동의 모든 측면은 적응적이거나 순응적이다. 인간 본성이 모든 곳에서 이기적이라면, 왜 파키스탄의 공공서비스는 부패하고 세계은행은 그렇지 않은가? 세계은행 총재가 만약 파키스탄의 공무원이라면 부패할까? 당신이 세계은행의 부패한 직원이라면 해고되지만, 파키스탄의 부패한 공무원이라면 그렇지 않다. 성실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기구의 직원은 정직함을 드러내기를 원할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부패한 환경에서는 부패하고, 정직한 환경에서는 정직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환경을 추구한다. 적응이란 우리가 관찰하는 행동의 특징들이 그것들이 발견되는 환경에서 복제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진화는 좋은 것보다는 그 자체를 복제하기에 좋은 것을 선호한다. 이 같은 근본적인 구분은 진화하는 모든 체계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이다.
협동 루소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모든 사람을 더 잘살게 하더라도 반드시 협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사슴사냥에 비유했다. “사슴 한 마리를 잡으려면 각자의 위치를 충실히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산토끼 한 마리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는 위치에 나타나면, 그는 토끼를 주저 없이 쫓아서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동료들이 놓치게 된다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루소의 비유에서 우리는 협동을 강제하는 힘을 가진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사슴을 더 많이 잡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룹 내의 상호주의는 협동을 고무한다. 우리는 향후 유사한 호의를 기대하기 때문에 협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향후 그들이 우리를 도와줄 것을 기대하지 않아도 돕는다. 낯선 사람이 길을 물으면, 우리는 기꺼이 알려준다. 이러한 행동은 합리적이 아니라 적응적이다.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이기심의 추구보다 협동적 행동이 훨씬 많은 것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데 고심해왔다. 자손을 양육하는 부모의 투자는 비록 합리적이 아닐지라도 적응적이다. 우리는 가족 내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할 만한 강한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계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희생을 한다. 큰 이익이 협동적 행동에 기인할 때, 협동적 그룹을 형성하고 강제하려는 본능은 그룹 전체뿐만 아니라 개별 구성원으로서도 이익이다. 냉정한 진화론의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협동적이 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 땀이 나며 얼굴이 붉어진다. 이러한 특성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그러한 모든 것이 사회 발전의 요인이 된다.
지식경제 취리히의 특허청 서기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여가시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고안했다. 이로 인해 이전에 그를 배제한 대학에 고용되었고,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부유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찰스 배비지는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했다. 배비지의 기계는 훗날 다른 모든 것- 편지쓰기, 오자 검색, 주소 기억, 중앙난방장치 가동-을 할 수 있다는 통찰력이었다. 이 통찰력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대학교 연구원인 앨런 튜링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초에 암호 해독가로 일했으며, 영국 학계의 정수를 대표하는 그룹 속에서 최초로 사용가능한 컴퓨터를 제작했다. 그 후 튜링은 킹스 대학교로 돌아왔고 나중에는 맨체스터 대학교의 왕립학과 교수가 되었으나 동성애 활동으로 비난을 받고 결국 자살했다. 제임스 왓슨은 케임브리지에서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DNA 나선구조를 규명했다. 두 사람은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왓슨은 미국의 지도적 과학자가 되었고, 크릭은 좀더 소박한 학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들 중 누구도 상당한 재정적 보상을 받지 못했다.
상대성이론, 계산기, DNA는 20세기의 가장 큰 발견이며 상업적으로도 엄청나게 주요한 발견이다. 이 발견들의 개념은 항생제 · 텔레비전 · 개선된 다양한 종자와 같은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알렉산더 플레밍의 특정 곰팡이가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다는 발견은 록펠러 제단의 연구 지원으로 10년 만에 항생제를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항생제는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 원인을 거의 박멸했고, 현대 제약업의 기반을 형성했다. 이와 같이 과학과 공학의 모든 부분은 새로운 제품이 출현하는 데 필요하다. 처음에는 우연히 그것들을 연계시키고, 대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그렇게 한다. 발전은 영웅적인 개인보다는 체제로부터 시작된다. 박애주의는 연구를 지원하는 다원주의의 도구다. 시장은 아직 새로운 지식을 질서 있게 혹은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산하고 관리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시장경제가 속해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혁신을 창출한다.
제5부 어떻게 그것이 모두 함께 작동하는가
빈국은 언제까지나 가난하다 1947년 8월 14일,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되돌려 받았다. 네루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정부 관리들은 비범한 인물이었다. 인도를 향한 낙관주의는 개발경제학을 재생시켰다. 개발 경제학은 당시 저축, 투자, 생산량의 증가 사이의 관계를 기술한 로버트 솔로(Robert Solow)가 고안한 체계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 이론은 생산성의 수준이 자본의 축적과 저축수준으로 결정되므로, 외국 원조와 강제적인 국내 저축을 통해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제기구를 지배한 개발경제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개발 계획을 실행했고 다른 빈국들도 인도의 예를 따라서 개발계획 체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인도 경제는 성공하지 못했다. 인도의 1인당 GDP는 매년 약 2퍼센트씩 성장했으나 부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다른 빈국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성장률은 인도보다 낮았고,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독립 당시보다 더 가난해졌다. 오직 아시아에서만 이전에 가난했던 나라들이 선진국과의 생산성 및 생활수준의 차이를 좁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만약 스웨덴 농장에서 사용한 자본, 기술, 조직화 방법을 빈국에 도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생산의 다른 방법들에 필요한 토지 소유,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 교육혁명, 인프라-도로에서 수리공까지-의 변화가 없이는 도입된 자본을 결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없다. 재래경제와 마찬가지로 생산은 자본과 노동만의 산물이 아니라 제도의 산물이다. 개발경제학의 초기 업적에서 널리 인용되는 한 사람인 로젠슈타인 로단(P. N. Rosenstein-Rodan)은 신발공장을 예로 들어 ‘빅 푸시(big push)’의 필요성-도약을 위한 조정-을 설명했다. 그는 만약 빈국이 신발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산업화를 시작한다면, 개발은 신발공장, 의류공장, 자전거공장을 동시에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발공장 근로자들은 그들의 소득을 옷과 자전거를 사는 데 사용할 수 있고, 자전거공장 근로자들은 신발을 살 수 있어야 하며, 정부의 경제계획부처는 이러한 동시개발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50년 뒤, 반자본주의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이 필리핀의 신발공장을 방문했다. 신발공장의 피고용인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으로, 그들은 긴 시간 동안 일했고, 적은 임금에 네 사람이나 여섯 사람이 함께 쓰는 작은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부쳐야 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만든 신발은 한 켤레도 사지 않았다. 로젠슈타인 로단이 염려했던 문제는 공장의 전 생산품을 수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이 신발들은 나이키 상표가 부착되어, 필리핀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1개월 치 급여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부국의 아이들에게 판매되었다. 탄자니아의 모로고로 신발공장은 세계은행의 자금으로 세워졌다. 그 공장은 현대식 설비와 제조기술로 탄자니아의 모든 신발 수요를 만족시키고, 유럽으로 수출까지 할 수 있도록 건설되었다. 그러나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서구의 현대식 공장과 마찬가지로 알루미늄 재질의 벽으로 지어진 공장은 탄자니아 기후에는 맞지 않았다. 또한 유지보수가 부실하여 장비가 주기적으로 고장이 났다. 게다가 근로자와 관리자들은 공장에서 물건을 훔쳐 갔다. 모로고로 신발공장은 한 켤레의 신발도 수출하지 못했고, 결국 1990년에 문을 닫았다. 이 두 사례는 부국에서 생산적으로 사용된 기술 · 자본 · 장비들이 사회 문화 정치제도와 한 조가 되어 동시에 이전되지 않으면 얼마나 위험하지를 보여준다.
장소 1965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육군 지휘관 모부투는 자신을 국가원수라 선언하고 이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32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그는 공포정치와 뇌물로 통제권을 수립하고 제어했으며, 주요 보좌관들은 ‘뚱보배추’로 알려졌다. 1970년대에 서방 은행들은 콩고민주공화국의 명목뿐인 정부에 상당한 돈을 빌려주었다. 시티은행은 가장 큰 대부자였다. 콩고정부는 빚이 쌓여서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지경이었으나 지도자들은 엄청나게 부유해졌다. 민간 대여가 후퇴하자, 세계은행이 그 자리를 메워주었다. 빌린 돈의 상당부분은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오지 않았고, 모부투와 뚱보배추들의 외국은행 계좌로 직행했다. 1997년 모부투가 사망하기 전에 콩고민주공화국의 구리와 코발트 생산은 붕괴되었고, 전력선과 장비들은 도둑을 맞았다. 다이아몬드 무역은 주로 폭력배들에 의해 통제되었고 모부투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여서 그가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콩고강의 보트에서 살다가 죽었다.
미국 대사는 “모부투가 황금거위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시체를 먹어치우고, 깃털에서 기름을 짜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방이 콩고민주공화국에 개입한 역사는 한마디로 수치스럽다. 서방국가들은 공포적인 정부와 무장반군을 지원하고, 범죄자들에게 정치인이라는 지위를 주었다. 또한 국제기구와 민간은행을 통해 지원된 돈은 도적들에게 건네졌다. 세계은행이 20년 이상이나 모부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다. 오늘날 콩고 민주공화국의 빚은 약 150억 달러다. 이는 단지 숫자일 뿐 결코 갚을 수 없는 액수다. 빚 자체가 경제개발의 장애가 될 것이므로, 콩고에서 경제개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장에 관한 진실 토크빌은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사회는 공통의 목표를 공동으로 추구하는 기술을 완벽하게 만들고, 이 새로운 과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한 곳에서 발견된다”고 했다. 부국들의 시장경제는 그러한 제도에 의존한다. 시장은 작동하지만 항상 그리고 완벽하게 운영되지는 않는다. 다원주의적 시장구조는 혁신을 증진하고, 경쟁적인 시장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지만, 시장의 결과가 효율적일 것이라고 믿을 만한 포괄적인 근거는 없다. 이 제도들은 문화와 가치, 법과 역사에 의존한다. 부패한 공공행정기관과 정직한 공공행정기관의 차이, 부패한 기업과 정직한 기업의 차이는 규칙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반부패법은 공평무사한 국가보다도 부패한 국가에서 더 엄중하다. 즉, 광범위한 규칙은 해법이기보다는 문제의 징후인 경우가 흔하다. 제도의 고결성은 관리구조의 산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의 산물이다.
부국과 빈국들 간의 차이는 각각의 경제적 제도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부국들은 글자 그대로 시민사회와 정치적 · 경제적 제도들이 수세기를 거쳐 이룬 공진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는 공진화는 빈국에 이식할 수 없다. 인구 전체와 그 제도들의 이식에서 극소수의 성공적인 사례들은 거의 비어 있던 곳의 이주국들에서나 이루어졌다. 현재의 미국 비즈니스 모델은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결과에 다다를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거대담론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미시담론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거대담론은 인간의 사고에 확고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그것에 대한 무익한 추구는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복잡한 현실성을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거짓된 보편적 설명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는 일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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