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말에 따라가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일체 '있음'에 따라가지 않을 때(不隨諸有時)는 어떻습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제 본분의 일(本分事)입니까?”
“따라가는구나, 따라가(隨也隨也)."
불교에서 유(有), '있음'은 매우 다양하고 깊은 뜻을 담고 있는 용어로 사용되는데, 유무(有無)를 떠나라고 할 때의 유(有)는 모든 법(法)은 평등한데 옳으니, 그르니 차별하여 선택하는 한 국면을 말하고, 3유(三有), 25유(有)라고 할 때의 유(有)는 삼계(三界)에 생사윤회(生死輪廻) 하는 각각의 중생(존재)을 일컫는다.
위 질문의 원문을 보면, 불수제유시(不隨諸有時)란 문구가 있는데, 여기서 제유(諸有), 곧 일체의 있음이란, 원래 삼계, 즉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 생존하는 모든 존재(有)를 말하며, 이것을 세분하면 삼계 25유(有)라 한다. 세상의 모든 것, 모든 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스님은‘일체의 있음(有, 존재), 곧 세상의 모든 법을 좇아 따라가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하고 물은 것이다. 조주는“당연히 그래야 한다.” 즉, 그대가 말한 바로 그대로, 그 무엇에도 끌려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스님은“그것이 바로 저의 본분사(本分事)입니까?”라고 되물었는데, 제가 바로 수행의 목표로 삼고 나아갈 바가 그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조주는“따라가는구나, 따라가(隨也隨也)."라고 대답했다. 그 스님이 무얼 따라가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조주는 스님의 질문대로 모든 것에 따라가지 않는 그것이 바른길이라고 말했고, 그 스님은 다시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본분사냐고 물었는데, '따라가고 있어!'라고 허탈한 듯 말했으니 그 뜻을 잘 음미해야 한다.
모든 것이 다 자기 마음일 뿐이지만, 조주는 '무엇을 따라간다고 했는가?' 이것도 풀어야 할 숙제이다. 힌트는 '일체의 있음()을 따름'에 있다. 말을 쫓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이 뜻을 확실히 알면 된다.
102. 이 화살을 보라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은 30년 만에 활을 한번 당겨 화살 두 발로 성인 반쪽을 쏘아 맞혔는데, 오늘
큰스님께서는 완전히 맞혀 주십시오.”
조주선사는 불쑥 일어나 나가버렸다.
위 질문은 마조도일(709∼788)대사의 제자 가운데 과거 사냥꾼이었던 석공혜장 선사란 사람이 있는데, 석공 선사가 나중에 삼평 스님을 만났을 때 설한 법문과 관련이 있다. 그 법문의 출처인전등록을 통해 살펴본다.
'그런 후에 세월이 흘러 석공 선사가 회상(會上)을 열어 삼십 년 동안 설법을 했는데, 상당해서는 항상 활시위를 당기고는 이어 할(喝)을 하고 말하기를, “대중들은 이 화살을 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삼십 년을 똑같이 이 법문만 했는데, 하루는 삼평(三平) 스님이 듣고 법상 앞에서 일어나 문득 가슴을 열어젖히니, 석공 선사가 이내 활(弓)을 놓아 버렸다.
이에 삼평 스님이 말하기를,
“이것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화살(殺人箭)인데, 어떤 것이 사람을 살리는 화살(活人箭)입니까?” 하니, 석공 선사는 화살 시위를 세 번 튕겼다.
이에 삼평 스님이 절을 하니, 석공 선사가 말했다.
“삼십 년 동안 활 하나로 두 화살을 쏘았는데, 오늘에야 겨우 반 개 성인(聖人)을 쏘아 얻음이로다.”라고 했다.'
이 법문의 요지(要旨)는 '대중들은 이 화살을 보라!'에 있다. 이 화살은 무엇이고, 삼평이 가슴을 열어젖힌 뜻, 석공이 시위를 세 번 튕긴 뜻, 이에 삼평이 절을 한뜻을 알아채야 한다. 아직도 저 '화살'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가? 나라면, '이 화살'은 '하늘은 높고 땅은 끝없다.'이고, '삼평의 가슴'은 '불길 속에 핀 연꽃'이고, '시위를 세 번 튕김'은 '도둑이 제 발 저림'이고, '삼평의 절'은 '애 밴 소녀가 회전목마 위에서 잔다'라고 하겠다. 나도 때로는 도둑질(?)에 골몰해야 한다.
위 문답 속의 스님은 이 법문은 조주에게 들고 와서, '오늘은 저에게 한번 온전히 쏘아 맞혀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그러니까 조주는 불쑥 일어나 그냥 나가버렸다. 화살을 제대로 한번 쏘아 달라고 했는데 큰스님이 그냥 나가버리니 어리둥절하여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영화, 소설 속이라면 바로 여기서 깨쳐야 한다. 번갯불이 번쩍 머릿속을 뚫고 지나가는 그런 경험을 만끽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주는 이 스님의 요청대로 화살을 제대로 쏘아 맞힌 것인가, 맞히지 않은 것인가? 맞히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직 눈뜬 봉사이고, 맞혔다고 한다면 사람을 속인 죄로 평지에 고꾸라진다고 하겠다. '오온(五蘊)이 비록 공(空)하지만 신통, 방통하게 작용함은 그 끝이 없다는 곳에 붙잡을 화살이 가로누워 있다.‘
103. 오직 가려 선택하지만 말라
師 示衆云 至道無難 唯嫌揀擇 纔有言語 是揀擇 是明白 老僧却不在明白裏 是你還護惜也無 問 和尙 旣不在明白裏 又護惜箇什麽 師云 我亦不知學 云 和尙旣不知爲什麽道 不在明白裏 師云 問事卽得禮拜了 退
조주선사가 시중(示衆)하여 말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 선택하지만 말라고 했다. 말로 표현했다 하면 이것은 벌써 가려 선택함이다. 나는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는데 그대들은 어디서 조사를 보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큰스님께서는 이미 분명함 속에도 계시지 않으시다면서 또 무엇을애지중지하십니까?”
“나도 모른다(我亦不知)."
“큰스님께서 이미 모르신다면 무엇 때문에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다고 하십니까?”
“질문은 그만하면 됐으니 절이나 하고 물러가거라.”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달마대사부터 세 번째 조사(3祖)가 되는 승찬 대사의 '신심명(信心銘)‘에 나오는 이 유명한 구절(名句)은 이 조주록에도 자주 나오지만, 아마도 선종의 역사상 가장 널리 회자된 법문(法文)이라고 할 것이다. 나도 과거에 '지극한 도(道)는 어려울 것 없다. 오직 분별하지만 말라' 하는 이 법문을 집 앞에서 암송하며 거닐다가, 머리 위로 전기가 찌르륵 지나가는 것처럼 느꼈던 적이 있다.
'가려 선택하지만 말라'는 이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 이것을 말하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온 것이다. 그만큼 효력이 큰 법문이니 거의 모든 조사, 선사들이 이 ‘신심명’을 자신도 읊고 외우며, 후손들에게도 가르쳐 온전히 뜻을 알아채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화두 들기가 힘들면 이 법문을 계속 외어 보라. 화두는 하나만 지속적으로 몰입해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 특히 일반인들은 동안거, 하안거 기간 동안 참선만 할 수도 없고, 직장도 다니고 가족도 부양하면서 선(禪)을 공부한다. 그러기 위해선 법문 공부를 하면서 가슴에 와닿는 몇 가지 법어(法語)를 번갈아 가면서 참구하는 방법도 효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밤에 잠을 잘 때는 '동쪽 산이 물 위로 간다'라는 화두를 안고 눈을 감고, 낮에 일을 할 때는 '지도무난 유혐간택' 같은 법어를 되뇌이면서 지속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는 날이 올 것이다. 도(道)는 전광석화처럼 갑자기 들이닥친다. 바로 몰록 깨달음, 곧 돈오(頓悟)일 뿐이다. 한번 깨달은 후에는 잊어버릴 수가 없으며, 계속 공부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깊은 경지로 들어간다.
위 조주선사의 말씀.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 선택하지만 말라고 했다. 말로 표현했다 하면 이것은 벌써 가려 선택함이다. 나는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는데 그대들은 어디서 조사를 보겠느냐?”
어찌 보면 전부 말장난이다. 도(道)는 모양이 없고(無相), 텅 빈 것임을 체득하면 분별이고, 명백한 것이고, 애지중지하는 것이며, 이 모든 말이 다 헛소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조주가 이렇게 설하는 것도 자기 말에 끌려다니지 말고 '너 자신을 찾으라.'라는 뜻을 반복적으로 암시한다. 오직 자기 부처를 자기 자신 안에서 되찾아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을 자들아! 깨달은 자는 그대 속에 있으니 달리 내 말 속에서 찾지 말라는 뜻이다.
이 스님은 그 뜻을 알 길이 없으니“큰스님께서는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다면서 무엇을 애지중지하십니까?”“스님이 이미 모르겠다고 해놓고선 왜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다고 하십니까?” 등등 쓸데없는 질문만 늘어놓는다. 그래“질문은 그만하면 됐다. 이제 절하고 나가거라.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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